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주의 취향 2024.1

월간 건축사지 2024. 1. 31. 09:35
The Client’s Taste

 

 

 

캠핑장 옆에 집을 짓는다고?
3년 전쯤의 강원도 어느 깊은 산, 계곡이 흐르는 물 맑은 곳에 세컨드 하우스를 짓고 싶다는 건축주를 만났다. 건축주는 자주 방문하는 캠핑장 근처의 일부 땅을 매입해 집을 짓고 싶다고 했다. 당시 코로나로 인해 갑자기 캠핑붐이 일었다는 사실을 알기는 했으나, 나는 캠핑을 직접 가본 적도 없었고, 캠핑장이 무슨 매력이 있어 그 깊은 산속에 집을 짓고자 하는지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저 흔히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집을 짓고자 한다는 막연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프로젝트는, 대지에 가보지도 못한 채 기획업무를 일부 진행하는 도중 캠핑장 사장님이 땅 파는 것을 주저하면서 멈추게 됐다.



나의 캠핑라이프
그렇다. 2020년 본격적으로 코로나가 시작되며 삶의 많은 부분이 달라지던 때, 한쪽에서는 캠핑붐이 일었다. 우리는 밀폐된 내부 공간에서 사람을 만나기를 주저하게 되었고, 모임은 취소되었으며, 해외여행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어 버렸으니 사람들은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반면에 코로나 당시의 나는 일에 치여 다른 사람들의 생활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도 모르고 2년을 보냈다. 그러다 코로나가 막바지에 이르러 남들은 다 해외여행으로 눈을 돌리던 때, 조금 뒤늦었지만 너무도 우연한 기회에 캠핑을 시작했다.  
캠핑을 하면서 깨닫게 된 가장 중요한 사실은 평소 도시의 생활에서는 절대 꺼지지 않았던 업무에 대한 스위치가 꺼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주말에도 모든 것에 신경을 끄지 못하고, 모든 것에 촉각을 곤두세워가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캠핑을 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됨을, 그저 시간을 보내도 되는 것을 알았다. 무언가를 다시 채우기 위해 비워내는 시간, 모두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을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은 그런 무경계의 시간을 캠핑을 통해 배웠다. 
캠핑은 집을 짓는 것부터 시작한다. 텐트의 위치는 사이즈를 고려해 어디에 배치하는 것이 좋은지. 출입문은 어디로 향하게 하고, 주된 조망은 어느 쪽을 바라보게 할지. 부엌은 어디로 할 것이며 아이스박스와 식재료 보관, 설거지한 그릇과 쓰레기통의 위치는 어디로 하는 것이 동선상 편할 것인가 하는 소소한 것까지도 결정한다. 하루 또는 이틀 동안 우리가 머물게 될 공간을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시간이다. 마치 오랜 기간 생활할 것처럼 정성 들여 고민하고 결정하지만, 곧 다시 내 손으로 허물게 될 집을 짓는다. 이렇게 캠핑을 할 때마다 매번 집을 짓다 보니 매번 전혀 다른 환경에서 상황에 맞는 ‘집’을 만들어 내게 된다. 이는 평상시 오랜 기간에 걸쳐 업으로서 행하는 ‘건축설계’라는 행위와 매우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하다. 한두 시간에 걸쳐 뚝딱 만들어내고 단기간 사용한다는 점이 다르고, 대지의 상황에 맞춰 나에게 맞는 공간을 짓기 위해 고민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캠핑장에서의 일회용 건축은 기존과는 다른 입장에서 주변 환경을 바라보고, 조금, 아니 많이 불편하지만 내가 이 장소에서 원하는 무언가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취미, 취향, 건축
처음 건축주를 만난 지 3년이 지난 올해, 프로젝트는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사이트 답사를 겸해 캠핑을 간 것이었다. 건축주와 현장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날보다 이틀 빠르게 도착해서 삼 일간 머무를 집을 지었다. 키 큰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선 계곡 앞 대지는 주변의 모든 소음이 모두 묻힐 만큼 시원한 물소리를 만들어냈다. 남서쪽에 위치한 계곡 건너편에는 큰 바위와 급경사 산지가 이어져 햇빛이 온전히 들어오는 시간은 짧았지만 강렬했다. 계속 평온한 주말 같은 하루가 이어질 듯이 느긋한 마음으로 여름의 끝자락 숲에 귀를 기울인다. 단순하고 평온한 시간은 분주한 삶에 잠시 쉴 틈을 만들어주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잠깐 멈춤’의 시간은 마음먹는다고 쉽게 실현되지 않음을, ‘멍 때리기’를 제대로 하려면 이렇게 장소를 옮겨서라도 다시 채울 수 있도록 비워내는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리고 건축주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과 공간을 사용할 건축주의 눈높이는 늘 다를 수밖에 없다. 건축주의 상황과 경제 여건, 건축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와 대지 조건은 매번 모두 다르다. 대지를 바라보는 방식도, 삶의 방식과 취향도 다르므로 그 눈높이는 같을 수 없다. 하지만 건축사는 이 모든 조건을 고려해 건축주가 원하는 바에 가까운 최적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해결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대화와 이해, 공감대의 형성이 필요하다. 특히 경제논리의 지배를 강하게 받는 종류의 건물이 아닌 ‘내가 사용할 공간’을 짓는다면 건축주를 이해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건축주는 오랜 기간 동안 캠핑을 다녔다고 했다. 집을 짓고자 하는 이 캠핑장을 자주 찾기 시작한 지도 벌써 8년째인데, 보통 바이크를 타고 오기에 장박용 텐트를 설치해 두기도 하고 캠핑장에서 함께 운영하는 펜션에서 머물기도 한다. 그런데 이곳만 오면 불면증도 없이 잠도 잘 자고 마음이 너무 편안해 계속 오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가끔 텐트도 치고, 그냥 편하게 몸만 와 머물 수 있는 집을 짓고 싶다고, 너무 큰 집은 필요 없지만 숲속에 온전히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싶다고 했다. 아마 건축주도 캠핑을 좋아하는 나와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편안하고 쾌적한 도시에서의 호캉스와 정반대로 흙먼지 날리고 불친절하고 불편한 세계지만 온몸으로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숲의 세계는 긴장으로 날카로운 신경을 잠깐 멈춰주니까. 

 


계획의 방향이 정해졌다.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땅을 덜 훼손하고, 숲과 계곡을 향해 크게 열린 넓은 창을 만든다. 집의 어느 방향에서나 바로 야외로 나가 자연을 만날 수 있게 하고,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의 특성과 깊은 숲과 어울리는 디자인을 고려해 A 프레임 형태의 건물을 제안해 숲속 오두막 같은 분위기를 낸다. 효율적인 공간과 경제적인 건축은 아닐지 몰라도 사용자의 취향을 반영해 단 하나뿐인 집을 계획한다.  
같은 것을 좋아하고 나눈다는 것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가치관과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런 측면에서 건축주와 같은 취미, 캠핑을 좋아한다는 것은 건축주의 마음을 이해하고 방향을 설정하는데 큰 역할을 한듯하다. 만약 내가 캠핑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저 건축주가 필요로 하는 기능적인 공간을 잘 조합한 합리적인 주택을 이 장소에 제안했을지도 모르고, 건축주도 그저 만족했을지 모른다. 물론 모든 것이 개인의 취향으로 흘러선 안 되지만, 건축사도 일종의 ‘취향’이 직업이 되는 삶이 아닌가 싶다. 

 

 

 

 

글. 이영미 Lee, Youngmi (주)에이라우드건축사사무소

 

 

이영미 건축사 · (주)에이라우드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소규모 아틀리에를 거치며 단독주택, 종교시설, 근린생활시설 및 공공프로젝트 등을 수행하며 실무를 익혔다. 2020년부터 대표 건축사로서 에이라우드건축사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건축의 다양한 스케일과 분야를 구분 짓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통합적이고 직관적으로 접근하고자 노력하며, 대지의 가치와 건축적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통해 사용자와 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건축을 지향한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주변의 모습들 속에 설계를 통해 만들어내는 작은 장치로 사람들이 좋은 공간적 경험을 하고 때로는 특별한 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leeym@a-lou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