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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환경을 만들고 미래를 창조하다 ⑨ 욕망과 절제의 관계에 조정되는 도시와 건축 2024.1

월간 건축사지 2024. 1. 31. 09:45
Creating architecture, environment, and the future ⑨ Cities and architecture adjusted to the relationship between desire and moderation

 

 

 

 

건축은 안전하게 사람을 보호하는 피신처의 기능도 있지만, 과시나 욕망의 결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사람들 상호 간의 갈등과 긴장처럼 건축들은 서로 관계를 형성한다. 개별 건축 자체가 소유한 자들의 욕구 또는 필요에 의한 것이라 이해관계가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다양한 건축이 모여서 만들어진 도시는 수많은 사람의 관계처럼 욕망과 절제, 균형과 질서로 형성된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건축과 도시에서 형성 또는 통제되는 ‘관계’에 대한 부분이다. 관계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구와 요구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 자본주의 체제에서 건축과 도시는 욕망의 조절이 중요하다. 도시에서 균형을 가져야 할 건축 사이의 관계는 개별 요소보다 상호 인과성에서의 균형과, 공공 또는 공동에 대한 기능을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통제와 규제 등의 제한수단이 필요해진다. 

 

<사진 1> 홍콩이 초 고밀도 도시가 된 것은 영국 점령 당시 상인을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의 강력한 발언으로 규제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영국이 비슷한 시기 식민지를 운영했던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확연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철저한 욕망, 즉 이익 추구의 시각에서 보면 공공 또는 공동보다 사유재산과 사적 이익에 몰입하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극단의 이익 추구로 형성된 도시에서 자연스럽게 공공 공간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홍콩은 아편전쟁이라는 불순한 시작에서 출발한 상인의 도시다. 이런 태생 때문인지 상인의 발언권이 상당히 강했다.<사진 1> 그들은 도시계획뿐만 아니라 도시 정책과 건축 정책에 관여했다. 이 도시 성장은 철저한 이익추구가 바탕이 되었고, 그 결과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고밀도 도시를 만들었다. 결국 철거되었지만, 한때 영화마다 등장했던 구룡반도의 아파트는 17세기 무렵의 노예선처럼 말 그대로 쌓아 올린 닭장형 주거였다. 

 

<사진 2> 식민지 여부보다는 이익 추구의 욕망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도시의 과밀화가 달라진다. 마카오 도심의 고밀도 주거건축 현상.
<사진 3> 1980년대 이후 홍콩 도심 개발 건축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아트리움 등 대규모의 빈 공간들을 경쟁력 도구로 확장하고 있다.


건축의 역사를 보면 이런 이익 추구의 극단적 형태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처음 시장 자본주의가 등장했던 18~19세기 유럽의 영리 임대 주택들은 위생과 인간성이라고 찾아보기 힘든 최악의 다층 구조물이었다. 건축이라기보다는 그냥 구조물 또는 건물이라는 표현에 적합한 노동자 계급의 열악한 공간은 당연히 분노가 층층이 쌓이는 구조일 수밖에 없었다. 영화나 소설, 그림 등에서 욕망이 지배하던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영화 <올리버 트위스트>뿐만 아니라 디즈니 만화영화에도 당시 풍경이 그려진다. 결국, 이러한 공간은 각종 전염병의 근윈지가 되었고, 인간이 가진 기본적 도덕성과 자율회복적 성향으로 인해 개선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사진 2> 숨이 막힐 듯 빽빽한 도시에 텅 빈 공간이 들어선 것이다. 거대한 중정의 아트리움이 만들어지면서 숨 막히는 도시에 한숨 돌릴 공간이 생겨났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공간 역시 상업 시설임에도 사람들이 이렇게 불특정 다수에게 열린 공간을 더 많이 찾아간 것이다. 결국 유동인구, 방문객들의 증가로 상업적 가치가 상승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후 수많은 홍콩섬의 고층 복합 건물들은 개방공간을 앞다퉈 구성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치유되는 자정성이 나타난 것일지도 모른다.<사진 3>
철저한 계획에 입각해서 극단적 도시 부품 같은 건축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다. 이런 통제성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극단으로 나타나고, 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한 국가나 도시에도 나타난다. 극단의 정글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20세기 진입 시기의 혼란 이후 어느 나라, 어느 도시든 약간의 통제와 더불어 일부 규칙이 만들어졌고, 경쟁에서 도태되는 계층을 위한 사회 안전망의 개념으로 보완되기도 했다. 아무튼 크든 작든 국가나 공공 주도의 도시 구성은 크기와 영역의 문제일 뿐 기본적으로 작동·작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도시들은, 극도의 통제와 계획에 입각해서 건축과 도시를 구성하거나 혹은 극도의 자유방임에 가깝게 자율로 맡기는 이 양 극단보다는 중간 어디쯤의 지점에서 균형과 타협으로 형성되기도 한다. 이런 타협은 욕망의 조절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는 당연하게도 도시와 건축에서 갈등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엘리트주의의 전제적 권력으로 과감하게 기존 도시를 뭉개버리고 계획도시로 재건축한 파리가 지독한 계획주의의 한 축이라면, 상인과 귀족의 적절한 타협으로 인해 가로망과 조닝으로 적절하게 구성된 비효율이 섞여 있는 런던은 파리의 대척점에 있는 도시이다. 이 두 도시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통제와 타협의 접점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 200년 전의 이런 움직임은 오늘까지 이어져서 두 도시의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이 가진 본연적 속성에 있는 타협과 안정 지향성이 제도와 규율, 법령을 통해서 절충하게 된다. 도시계획 또는 도시 설계, 그리고 건축의 역사에는 이런 시대적 모순과 문제점에 대한 고민과 대안이 고스란히 등장해 여론의 명분을 얻게 된다. 그 결과 각종 건축법과 규제, 제도들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 건축법을 위시한 각종 도시와 건축관계법령은 인간의 욕망에 대한 대응으로 하나 둘 등장한 것들이다. 

 



갈등의 출발인 불평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
도시는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밀집된 구조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갈등이 발생한다. 갈등 자체가 제거될 수는 없다. 왜냐면 도시를 구성하는 모든 구성원들의 외모가 다른 것처럼 목적과 지향점도, 추구하는 바도 다르며, 그들이 느끼는 절대적 필요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웃과의 관계는 당연히 갈등이 존재하며, 갈등을 어떻게 합리적이고 순리에 맞게 풀어나가 협상과 타협에 이르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복잡한 인간의 심리적 요소들도 작용한다.

이런 갈등은 도시의 여러 가지 불평등에서 기인하는데, 완벽한 평등은 불가능하기에 적정성, 즉 인내하거나 수긍할 수 있을 정도의 균형이 요구된다. 가장 큰 갈등의 요인은 자산 가격의 급격한 변화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에서 60% 이상이 거주하는 공동주택 아파트 가격이 2배 이상 순식간에 급등락하는 것은 개별 지역의 부동산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에 영향을 준다. 이는 주택 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원초적 원인이다. 본인의 노력이 아닌 제도와 정책, 시스템의 오류로 인한 이런 변화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기 어렵고, 정치적 불안과 심리적 불만의 요소가 된다. 환경에 의한 이런 불평등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영향을 끼친다. 건축이 우리 사회와 삶에 끼치는 갈등의 인자들인데, 이런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의 경우를 언급할 수 있다.

주택 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 _ 특정 지역의 급격한 가격 상승은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격차를 벌린다. 이러한 주택 불평등은 사회적 불의의 감정을 조성하여 경제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있는 개인들 사이에 좌절감, 분노, 불안을 유발할 수 있다.


주택시장의 불확실성 _ 가격이 급등하는 지역에서는 주택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 있다. 기회를 놓치거나 잘못된 투자 결정을 내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해당 지역의 사람들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


의도치 않은 이주 _ 해당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면 더 이상 그곳에서 살 수 없는 장기 거주자가 강제 이주를 당할 수 있다. 이는 정서적 고통을 야기하고, 소셜 네트워크를 붕괴시키며, 불안정과 상실감을 초래할 수 있다.


문화적·사회적 정체성 _ 뚜렷한 문화적 또는 사회적 정체성을 가진 지역은 구매력이 높은 신규 이민자가 유입됨에 따라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이는 기존 거주자들 사이에 이주 욕구, 정체성 위기 및 불안감을 초래할 수 있다.


세대 간 갈등 _ 아파트 가격 차이로 인해 세대 간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젊은 세대는 주택 전망에 대해 좌절감과 불안을 느끼는 반면, 노년층은 자녀의 재정적 안정에 대해 걱정할 수 있다.


집에 대한 정서적 애착 _ 집과 지역사회에 대한 정서적 애착이 강한 주민들은 가격 상승으로 인해 떠나야 할 가능성을 고려할 때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상실감과 불안정감을 초래할 수 있다.


분노와 사회적 긴장 _ 아파트 가격의 격차는 가격 상승으로 이익을 얻는 개인과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들 사이에 분노와 사회적 긴장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긴장은 지역사회 내에서 스트레스와 불안을 유발할 수 있다.


경제성 스트레스 _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미 고가 지역에 살고 있는 개인과 가족은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재정 관리에 대한 스트레스와 잠재적인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은 불안감을 유발할 수 있다.


정부 정책 및 기대 _ 특정 지역의 부동산 가격 억제를 목표로 하는 정부 정책은 향후 시장 안정성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정책이 변경되거나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면 주민들 사이에 실망, 혼란, 불안이 발생할 수 있다.

 

<사진 4> 사회의 균열은 여러 가지 미세한 내용들이 축적되며 점점 커지게 된다. 마치 틈을 벌려나가는 나무뿌리처럼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불평등과 균열을 촉발시키는 시작에는 거의 대부분 건축이 존재한다.


요약하면, 한국의 아파트 가격 급등으로 인한 지역적 차이는 주거 불평등 심화, 주택 시장 불확실성 증가, 이주 강요, 문화 및 사회적 정체성 영향, 세대 간 갈등 조성, 정서적 애착 형성 등을 통해 국민의 심리적 안정과 불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사진 4> 분노와 사회적 긴장을 조장하고, 경제성에 대한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이주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정부 정책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도시에서 건축, 특히 그중에도 다수를 차지하는 주거 공간은 물리적 대상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심리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이런 영향은 도시의 여러 관계를 형성하는 개인, 또는 집단의 균형에 따른다.

 



욕망의 균형이 중요하다
서울은 세계적으로 깨끗하고 잘 준비되고 다듬어진 도시다. 그리고 어느 나라보다 새로운 건축이 활성화된 곳이다. 여행을 다녀보면 서울만큼 여기저기 골목길까지 새 건물이 들어서는 현장을 만나기 어렵다. 그만큼 서울, 그리고 대한민국 도시들은 끝없이 새로운 환경을 만들고 있다.

 

<사진 5> 도시의 공공공간이나 건축은 도시와 건축의 불평등을 부분적으로 완화시키는 완충 역할을 한다.

 

규제가 강하고, 사회의 에너지가 약하다면 이런 변화가 나타나기 어렵다. 변화는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시스템으로써 도시, 건축을 제공해서 ‘보다 나은’ 환경을 구성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변화를 촉발하는 핵심이 개인의 욕망이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표출하는 욕망의 크기는 다양하지만, 시스템이나 체제, 제도가 이를 자극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은 시스템과 제도, 정책이 개인의 욕망을 끝없이 자극하고 있다. 서울은 실제 이상의 욕망 충돌과 변화로 인해 불만이 가득하고, 만족하기 어려운 상태로 시민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도시의 대다수를 구성하고 차지하는 주택, 특히 공동주택의 변화에서 어느 사람의 욕망도 억제되기 힘들다. 욕구와 욕망이 단죄되는 식으로 죄악시되어선 안 된다. 욕망은 사람의 본질에서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도적, 이성적, 도덕적으로 조절이 필요하다.<사진 5>

그런데 과연 인간의 욕망을 통제하고 조정할 수 있을까? 20세기 문명의 패러다임 전환기에 많은 건축 거장들은 도시와 건축을 도덕적 가치와 윤리로 통제되는 방향으로 지향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도시와 건축계획을 전면으로 내세워 진두지휘한 때도 상당하다. 르 코르뷔지에 이후부터의 수많은 건축 거장들은 사회의 이상향을 언급하고, 이에 참여하고 주도했다. 그들의 성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진 6> 루치오 코스타 설계의 브라질리아 _ 출처 https://es.wikipedia.org/wiki/Plan_Piloto_de_Brasilia#/media/Archivo:Bras%C3%ADlia,_Brasil.jpg
<사진 7> 르 코르뷔지에의 샹디가르 _ 출처 https://www.townandcountryplanning info.com/2020/09/chandigarh-city-planning-by-le-corbusier.html


유토피아적 도시와 건축을 지향한 르 코르뷔지에의 이상이 실천된 인도의 샹디가르(Chandigarh)나 르 코르뷔지에의 동조자였던 오스카 니마이어와 루치오 코스타가 만든 브라질리아 도시(Brasilia)를 떠올려 보자. 합리주의적 이성에 입각해 철저하게 계획한 도시와, 구성물인 건축들은 미학적으로 감동 그 자체이다.<사진 6, 7>
하지만 현재의 샹디가르나 브라질리아는 전혀 예상치 못한 현상이 존재한다. 기하학과 기능으로 매력적인 구성을 보여준 도시들이지만, 의도치 않은 이주민들의 주거지가 형성되고 도시의 모습 일부가 변형되었다. 계획에 의도치 않은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계획된 도시들 어디에도 존재한다. 한편에서는 이들의 시도를 철저하게 실패한 도전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는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프루이트 아이고 단지 철거를 언급한다. 하지만 건축이나 도시 자체의 실패라기보다는 정책과 디테일, 타이밍의 실패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충분히 유의미한 도전이라고 본다.

브라질리아나 샹디가르 정도의 강렬한 도시 풍경은 아니지만, 지난 40년간 주택 가격의 안정이나 산업 목적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도시들에서도 마찬가지 풍경이 등장한다. 건축의 외형 변경은 거의 모든 경우에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공공 목적의 건물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용자의 목적이든 건물주의 목적이든, 다양한 이유와 원인으로 나타난다. 이런 현상의 저변에는 인간의 욕구와 필요가 깔려 있다. 이는 계획된 도시에서도 나타나는데, 하물며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도시들과 건축에서는 더욱 당연한 일이다.

때문에 적절한 시스템적 통제와 방향 설정이 중요하다. 누구도 사회의 변화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욕망을 이해하고 인정한 후에 도시와 건축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가변적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하며, 욕망이 적절히 통제되는 중화적 시스템과 공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극단의 이성과 감성의 양 끝단에 서 있을 것이 아니라 중간의 접점, 적절한 균형의 범위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제도와 시스템이 그 범위를 지지해야 한다. 제도와 시스템, 정책과 방향이 균형의 범위가 아닌 욕망의 입장에 있을 때 그야말로 최악의 환경이 탄생할 수 있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건축사사무소 NCS lab

 

 

홍성용  건축사·건축사사무소 NCS lab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영화 속 건축이야기(1999)』, 건축사가 쓴 최초의 경영서적 『스페이스마케팅(2007)』, 『하트마크(2016)』 등의 저서가 있다. 1998년 부터 다수의 건축 및 인테리어 설계작업 활동 중이다.

ncslab@ncsarchitec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