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건축사지 2024. 3. 8. 09:15
Mom is just mom

 

 

 

막내가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로 여행을 간단다. 행여 뭔가 빠트리고 가지나 않을까 생각날 때마다 전화를 했다. 
“트레킹도 한다며? 목이 긴 양말도 챙겨.” 
“병원 예약 미리 연기해. 한 번 놓치면 한 달 기다려야 하잖아.”
“잘 못 온 신발 교환하러 택배 기사님 올 텐데 먼저 받은 거 현관문 밖에 내놓는 거 잊지 마.”
“눈 온다, 공항에 늦지 않게 좀 미리 움직여.”
노심초사 엄마의 잔소리는 결국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하는 퉁명스러운 대답으로 막을 내렸다.  
큰 아이가 밤낮이 거꾸로인 북미로 출장 갈 예정이란다. 아침 비행기인지 며칠이나 머물다 오는지 누구와 같이 가는지 궁금해서 계속 물었다. 호기심 엄마의 질문은 “뭐 하러 그걸 다 알려고 해요?” 하는 떨떠름한 대꾸로 끝이 났다. 
친절함이라고는 개미 눈물만큼도 찾을 수 없는 녀석들에게 도대체 엄마란 무엇일까? 고독한 엄마로서 존재론적 고민(?)에 빠진 나는 우리 아이들보다 아주 조금 덜 무뚝뚝한 아들이 등장하는 일본 광고를 찾아본다. 광고 속의 아들은 엄마가 평소에 무심코 하는 행동을 보며 혼잣말을 한다.



#청소기를 들고 아들 방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엄마.


아들V.O) 엄마는 절대 노크를 하지 않는다. 


#상냥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다가 아들이 보고 있는 TV 소리가 시끄럽다고 소리 지르는 엄마. 


아들V.O) 전화할 때는 목소리 톤이 바뀐다.


#장을 보다가 아들에게 맞춤법이 틀린 문자를 보내는 엄마.


아들V.O) 문자 보낼 때 맞춤법을 틀린다. 


#아들의 추리닝을 입고 어떠냐고 묻는 엄마.


아들V.O) 남의 옷을 마음대로 입는다. 


#TV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엄마. 


아들V.O) 엄마는 눈물이 많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가 ‘너 여자친구 생겼지?’하고 묻는 엄마.


아들V.O) 엄마는 직감이 예리하다.


#소고기 스튜를 끓이고 있는 엄마.


아들) 오 비프 스튜네~ 마침 먹고 싶었는데!
엄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아들V.O) 텔레파시를 사용하는 것 같다. 


#한참 요리를 하면서 ‘식사 준비 다 됐어!’라며 부르는 엄마.


아들V.O) 매번 음식이 다 되지 않았는데도 다 됐다고 부른다. 


#식탁을 차려놓고 식겠다고 빨리 먹으라고 하는 엄마.


아들V.O) 바로 먹지 않으면 화를 낸다.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누구세요?’라고 싸늘하게 묻는 엄마.


아들V.O) 아빠한테는 화를 더 많이 낸다. 


#많이 먹으라고 상냥하게 말하며 강아지에게 먹이를 주는 엄마. 


아들V.O) 강아지한테는 상냥하다.


#아들에게 숄을 선물받고 기뻐하며 차를 마시거나 요리하면서 계속 입고 있는 엄마. 


아들V.O) 선물을 받으면 무척이나 좋아한다.
               미안할 정도로 좋아한다.


#아들에게 빨리 자라고 말하면서 정작 본인은 밤늦도록 설거지를 하고, 아들이 자고 있는데 일찍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는 엄마.


아들V.O) 엄마는 누구보다 가장 늦게 자고 또 누구보다 일찍 일어난다. 


#출근하는 아들의 넥타이를 바로잡아 주는 엄마. 


아들V.O) 그리고, 어느새 나이가 들어간다.


#남편, 아들과 밥을 먹으며 ‘맛이 어때?’라고 묻는 엄마. 맛있다고 대답하는 아들.


아들V.O)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요리를 잘 한다. 


Na) 가족을 이어주는 요리와 함께 합니다, 도쿄가스.

 

 

도쿄가스(Tokyo Gas)_TVCM_가족의 유대감:어머니란 편_2015

 

맏이에게 영상을 보여주었다. 아이의 반응은 “엄마랑 비슷해요”였다. 엥? 뭐야? 난 광고에 나오는 엄마처럼 방문을 벌컥 열거나, 밥 차리기도 전에 먹으라고 부르지는 않았어, 하고 확신했는데 아니란다. 하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춘기가 돼서 욕실 문을 꼭 잠그고 노크를 안 하면 신경질을 부리기 전까지는 아무 때나 아이의 방문을 열곤 했다. 
세상에서 엄마가 만든 음식이 제일 맛있고, 크면 엄마랑 결혼하겠다던 녀석들이 어른이 되었다. 각자 나가 살고 있는 아드님들은 이제 김장김치를 가져다 먹으라고 해도 주문하면 된다고 고개를 젓는다. 안부를 묻는 톡을 보내면 다음 날까지 답이 없기 일쑤다. 하긴 그 나이 때의 나를 돌아보면 당연한 일이다. 스무 살의 나는 그리고 서른의 나도, 엄마는 안중에 없었다. 내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아서 엄마가 뭘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이 없었다. 내 연애가, 내 사교가, 내 커리어가 바빠서 엄마가 무얼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전혀 몰랐다. 엄마는 그냥 엄마였다. 엄마는 여자이기 전에 사람이기 전에 공기처럼 물처럼 언제나 그대로 있는 엄마였다. 내 아이가 생긴 뒤로는 더욱더 나의 엄마는 언제나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 중에 가장 끝자리였다.
내 안에 동시에 존재하는 못된 딸과 철없는 엄마 사이를 오가며 자문한다. 다 커버린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까? 심각한 척 묻지만 나는 답을 이미 알고 있다. 내 엄마가 그러하듯 그냥 엄마로 있으면 될 일이다. 제 몫의 인생을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참견이나 잔소리, 과도한 관심은 부담스럽다. 아쉽더라도 엄마라는 나의 1번 정체성을 부캐로 내려놓아야겠다고 제법 비장한 다짐을 한다. 

*추신
남반구에 간 막내에게서 문자가 왔다. ‘친구한테 맡기고 온 고양이가 아프대요. 병원 좀 데리고 가 주실 수 있나요? 어른이라고 해놓고 매번 죄송합니다.’ 아쉬울 때만 엄마지? 투덜거리면서도 아들바라기 엄마는 냥이 공주님을 고이 병원에 모시고 갔다.
맏이가 출장 가기 전에 함께 저녁을 먹었다. 나의 노파심 본능과 잔소리 증상이 심해질 것 같으면 아이가 미리 ‘이 얘기는 그만하자’고 화제를 돌려서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아이가 저녁 값을 내는 것에 감동한 경제문맹 엄마는 저녁 식대의 두 배가 넘는 2차를 호기롭게 쏘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iX6pp158PjI 
도쿄가스(Tokyo Gas)_TVCM_가족의 유대감:어머니 편_2015_유튜브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2019)』 시리즈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