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오딧세이 ⑨ 어떤 힘으로 공간을 지켜내야 할까? 2024.2
City Odyssey ⑨ What power should we have to protect the space?
동네는 낙산 언덕배기에 기댔다. 다닥다닥 어깨 겨누어 앉은 집들이 평화로워, 오히려 맵시 있어 보인다. 구불구불 골목은 가파르다 못해 숫제 등산을 방불한다. 아슬아슬 주차된 차바퀴엔 예외 없이 벽돌이 괴이고, 걷기에도 버거운 가파른 길을 오토바이는 빨리도 오른다.
골목은 온통 소리로 그득하다. 소형차와 오토바이, 삼발이가 쉴 새 없이 골목 구석구석을 누빈다. 이곳을 동대문 패션타운과 연결하는 실핏줄 같은 존재들이다. 여기저기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는 마치 재깍거리는 시계 같다. 하지만 이곳엔 빨갛고 노란 꽃들이 가득 필 꽃밭이 없다. 오히려 소금 땀 비지땀 연신 흘려야, 다가오는 계절을 온전히 맞을 듯 보였다.
하얀 머리카락의 봉제 기술자가 잰 몸놀림으로 바지런히 옷을 짓는다. 평화시장에서부터 봉제 기술로 잔뼈가 굵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손놀림이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재봉틀 돌림 바퀴에 청춘이 감돌았고, 이젠 주름진 손으로 바늘판에 연신 옷감을 먹이고 있다.
하도급과 재 하도, 재단에서부터 한 벌의 옷이 완성되기까지 공정과 공정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공간. 일한 만큼만 임금을 받는 임시 고용된 객공의 공간. 그러함에도 기획·주문에서 유통까지 하루면 해결되는 공간. 대를 이은 젊은이가 재봉틀을 돌리는 공간. ‘Made in 창신동’ 봉제거리 일상이다. 하지만 마냥 평화롭기만 한 건 아니다. 이런 평범한 일상 속에 ‘도시재생과 철거재개발’이 첨예하게 대척하는 위태로운 공간이기도 하다.
평화 없던 평화시장
1970년 11월 13일, 이날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성찰하기 시작한다. ‘어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인간 존엄의 가치에 대한 피 끓는 외침을 들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은 그때는 물론 지금도 충격과 울림으로 남아 있다.
그러함에도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폭압적 저임금엔 큰 변화가 없었다. 분신에 놀란 당국의 손에 겨우 다락이 뜯겨 나가는 수준이었고, 공장과 판매장 직영체계도 인근 다른 시장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반면, 의류 산업은 끝없는 내수 확장과 수출 호조로 1970년대 엄청난 호황을 누린다.
1980년대에 이르러 청계천 봉제공장이 줄기 시작한다. 생산과 유통 위험, 비용을 하도급 업체에 전가하려는 회피 전략 때문이다. 또한 봉제 노동자의 수급이 어려워진 데다 수출에 치중하던 의류 대기업이 내수시장에 진출하면서 청계천의 시장 지배력이 급격히 줄어든 까닭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대(地代)와 지리적 접근성으로 공장과 노동자들은 인근 창신, 신당, 장충동 등지로 옮겨간다. 하도급의 시작과 성립이다.
청계천이 ‘동대문 패션타운’으로 변모하고 K-패션이 세계 패션계를 선도하고 있는 지금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패션타운은 창신동 등 주변 봉제거리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다. 봉제 노동자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자긍심과 자괴감 사이
의류 산업도 비용이다. 유행에 비교적 둔감한 신사복은 임금이 더 싼 중국과 동남아로 이전한 지 오래고, 민감한 여성복이 동대문 주변에서 제작된다. K-패션은 주문자 요구사항에 즉시 대응 가능하다는 장점으로, 대량생산보다 소량 다품종이 대세를 이룬지 오래다. 이런 영향으로 한때 3,000여 곳이던 창신동 봉제공장도 급격히 줄어 1,000여 남짓이다. 여기에 수십 년간 오르지 않은 직공 품삯(공임)은 이중의 고통이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옷이 갖는 품위의 다른 표현이다. 사람의 격을 옷으로 평가할 순 없겠으나, 분명 돋보이게 하는 가치가 있다. 봉제인은 기술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아름답고 멋진 옷, 예쁜 옷을 짓는 손길에 자긍심이 없다면 이율배반이다. 품위를 높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기술로 아름다움을 짓는 일이며, 궁극은 창조다.
이렇듯 봉제는 삶과 인품을 일궈가는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고된 노동이기도 하다. 가내 수공업 수준의 작업장 환경은 열악하고, 많은 종사자가 객공이다. 이런 고용환경은 4대 보험에 취약하다. 사회보장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2018년 ‘서울봉제인노동조합’이 창립되고, 1년 후 ‘봉제인공제회’가 세워져 노동환경과 임금 개선, 소액대출 및 퇴직공제부금 마련 등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많은 제약 요소가 있는 것도 현실이다.
자긍심과 자괴감의 틈을 좁히는 일은 결국 ‘어떻게 활력을 불어넣을 것인가?’로 귀결된다. 의류 산업의 이익 분배와 재편이 화두일 것이나, 이는 거대 담론이다. 활력 있는 골목은 일감 창출과 직결된다. 아울러 창신동 봉제거리라는 공간구조를 어떻게 지키고 가꿔나갈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도시재생과 불가분의 관계로 이해해야 하는 지점이다.
도시재생
도시재생의 핵심은 ‘공간과 장소의 매력 창출’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을 끌어모으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조화로워야 한다. 하드웨어는 도시 인프라 개선이다. 오로지 공공부문 몫이다. 골목을 넓혀 단장하고 공영주차장은 물론 상하수도 및 전기, 에너지 공급 시설을 개선하고, 소방·방재시설이 취약한 곳에 적정 시설을 설치하는 등의 일이다. 이런 바탕이 이뤄지면 민간의 소프트웨어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2014년부터 시작된 도시재생에, 창신동 활동가들은 그간 여러 노력을 기울여왔고 다양한 성과를 거뒀음도 사실이다. ‘봉제거리박물관’이 생겨났고 ‘이음피움 봉제역사관’도 들어서 봉제거리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 있다. 조선총독부 건물 재료로 사용되기도 한 창신동 채석장 자리에 ‘전망대’가 들어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의상 디자인을 전공한 청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예술과 문화행사가 벌어지며, 봉제를 기반으로 하는 패션쇼가 열린다. 협업을 통한 생산구조의 변화 조짐도 보인다. 백남준 등 창신동에서 살았던 문화·예술인의 옛집 등 묻혀있던 역사가 발굴되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몇몇 사회적기업이 여러 공익사업을 벌이고 있으며, 도시재생 스타트업도 관심을 보이며 투자에 나서고 있다. 공간구조가 좋은 방향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는 징조다.
그러나 창신동 도시재생은, 미흡한 인프라 개선에 발목 잡혔다. 서울시 책임으로 긴 시간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벽화 그리기로 대변되는 도시재생사업”이라는 현 서울시장의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재생과 철거의 갈림길
창신동은 오래전, 도시재생을 지속하려는 주민과 재개발을 밀어붙이려는 주민으로 편이 갈려버렸다. 토건족이 주입한 삿된 욕망이 빚어낸 비극이다. 2007년 지정된 뉴타운에, 소송으로 맞선 주민의 극렬한 반대로 뉴타운이 해제된 1호 지역이다. 박원순 시장에 이르러 ‘도시재생 선도사업지구’로 지정(2014)되어 생활 공동체 보존과 복원이라는 ‘서울형 도시재생 사업지구’로 탈바꿈한다.
다시 시장이 된 오세훈은 그간의 도시재생 성과를 폄훼하기 바쁘다. 이를 지워내려는 듯 2021년 12월 창신동 지역을 ‘신속통합기획 민간 재개발 후보지’로 선정한다. 이는 인허가 기간 단축과 도시계획 등에 서울시가 개입하고, 시행은 조합 등 민간이 주도케 하는 철거재개발이다. 뉴타운 도돌이표다. 사업을 주도하는 ‘창신동 재개발추진위원회’는 애초 공공 재개발을 선호하다, 임대주택 의무 비율이 없는 민간 재개발로 선회했다. 회피책이다. 하지만 여전히 핵심 쟁점은 분담금이다.
무조건적 보존을 말하는 건 어리석다. 도시 공간은 살아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재생에 시간제한이란 있을 수 없다. 긴 시간을 갖고 공간구조를 변화시키겠다는 마음가짐과 실천이 우선이다.
철거재개발은 더더욱 어리석은 짓이다. 머니게임으로, 용적률 따먹기와 다름없는 도시 약탈이다. 철거재개발 이전에 단위 토지당 분담금이 얼마인지, 둔촌주공 재건축 등 사례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위험요인을 반영한 경우의 수만큼, 상황별 구체적 액수가 제시되어야 한다. 토지나 건물 소유자와 임차인은 어떤 혜택과 손해를 입게 되는지도 명확히 알려야 한다. 그러함에도 주민 대다수가 동의한다면 재개발하는 게 맞다. 하지만 현재의 생활과 기능, 문화와 역사 공동체 파괴는 불가피하다. 봉제거리도, 그 삶도 사라진다.
골목은 변해야 한다. 뉴욕 파수꾼인 도시사회학자 제인 제이콥스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이란 책에서 “작은 블록과 오래된 건물이 도시 다양성의 요체”라 갈파한다. 오래된 공간 철거로 골목을 없애, 더 넓은 직선 가로와 고층 건물을 세운다고 도시경쟁력이 높아지는 건 아니다. 똬리 튼 고층 아파트는 하늘을 가렸고, 거대해진 블록(大街區)의 수만큼 서울은 이미 충분히 거칠어졌다. 그래서 길을 걷고 있으면 빨리 피곤해진다.
글. 이영천 Lee, Yeongcheon 자유기고가
이영천 자유기고가
도시공학 학사(홍익대학교), 도시계획 석사(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계획기술사(1999). 엔지니어링사에서 도시계획 업무를 시작으로 건설사에서 오랜 기간 사회간접자본 투자사업에 종사했다. 자유기고가로 한국도로협회 계간지 <도로교통>에 다리 에세이 연재 중이다.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에 다리 및 근대건축 관련 에세이를 연재했고, 현재 도시 관련 에세이 연재 중이다. 저서로 『다시, 오래된 다리를 거닐다』와 『근대가 세운 건축, 건축이 만든 역사』가 있다.
shrenrhw@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