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사줘야 국내 브랜드가 명품이 됩니다 2024.2
Buying more makes Korean brands luxury items.
5년 전 건축사지에 기고한 칼럼의 제목이다. 사대주의에 맞서는 국수주의자 혹은 민족주의자의 태도가 아니라, 해외 건축사만큼 신뢰해 주고 대우해 주면 우리도 충분히 좋은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당사자로서의 자부심 어린 글이었다. 최근 규모가 큰 국제설계공모에서 해외 건축사들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다수 보인다. 건축학과의 교육과, 건축사로서의 자격에 대해 국제적인 기준을 만들었으니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몇 가지 오해가 있다고 공통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지자체장 혹은 발주처장이 해외 유명 건축사의 작품은 대단한 명품이며, 국내 건축사의 작품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혹은 실무자가 해외 유명 건축사의 참여가 많을수록 설계공모가 성황리에 진행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이러한 진행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해외 건축사가 보다 자유롭게 신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분명히 했으면 하는 것은 해외 건축사는 잘할 것이고, 국내 건축사는 그보다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 배우의 수상 소감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선입견은 편견을 만들고, 편견은 차별을 만든다’라는 말이다.
최근 한 사립대학에서 해외 유명 건축사들의 경쟁을 통해 캠퍼스 내 건축물 설계공모를 진행했다. 개인이나 민간단체가 옷이나 가방, 자동차를 구입할 때 가격이 더 비싸더라도 우수한 기능과 디자인을 가진 제품을 선택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십 년간 대학이 배출한 수많은 건축사들이 이 설계 공모에 참여한 해외 유명 건축사들보다 못하다고 공표한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괜스레 아쉬움을 느꼈다.
또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설계 공모도 당선작이 선정된 후 광주지역 원로 미술인들이 설계 공모를 다시 진행하라고 촉구했다고 한다. ‘세계 미술계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세계적 위상을 갖춘 건축사에 의한 지명공모로 진행하라’는 주장이었다. 이는 우리 건축사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느껴졌다. 세계적 위상을 갖춘 건축사의 작품을 원한다는 그분들이 사용한 문구를 그대로 재사용하면, ‘국내 미술작가의 작품은 참신성과 실험성이 크게 부족하니 세계적 위상을 갖춘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라’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국내 건축사를 선입견을 가지고 폄하하는 것이며 건축사들이 함께 유감을 표명해야 하는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과연 해외 유명 건축사들이 참여하는 설계공모전이 지자체장과 발주처장의 기대처럼 진행될까. 명품 브랜드에 비유하자면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들 것인가? 그러한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국내법을 준수하기 위해 주 계약자는 해외 건축사와 공동으로 참여한 국내 건축사가 되어야 하며, 해외 건축사는 신선하고 독특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나머지의 모든 설계 과정은 국내 건축사가 진행하는 경우가 많기에 이탈리아 장인의 한 땀 한 땀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명품은 오랜 세월 동안 디자인과 기능, 서비스 등을 인정받아서 명품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이것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충분한 가치를 가진 제품임에도 선입견에 의해 쓰임 받을 기회조차 잃어버리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 본지에 게재된 작품들이 해외 유명 건축사의 작품보다 규모가 작거나 덜 독특해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젊고 열정적인 이들을 믿어주고 기회를 준다면 이들이 곧 세계적 위상을 가지는 건축사가 되어 해외에서도 활약하게 되지 말라는 법 있는가. “많이 사줘야 국내 브랜드가 명품이 됩니다.”
글. 박정연 Bahk, Joung Yeon 본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