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의 빌런은 누구일까? 2024.3
Who is the villain of our company?
2023년 8월 롯데손해보험은 ‘세상에 없던 보험의 원더랜드’를 지향하는 보험플랫폼 앨리스를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를 통해 출시했다. 앨리스에서는 가족 한 명만 대표로 가입하면 되는 ‘캠핑차박보험’, 학교폭력이나 스쿨존 교통사고 등을 보장하는 ‘청소년보험’, 부모님에게 보이스피싱 등 전자통신금융사기가 발생할 때 보상하는 ‘MY FAM 불효자보험’ 등 생활밀착형 보험상품을 판매한다. 16가지의 보험상품 중 직장인보험이 특히 나의 눈길을 끌었다. 원형탈모·대상포진·통풍 등 직장 내 괴롭힘이나 스트레스로 생기는 질병을 보장하는 보험인데, 직장인의 일상 속 악당(빌런)으로부터 나를 지킨다는 뜻에서 ‘빌런(VILLAIN)’ 보험으로 이름 붙여졌다. 앨리스는 직장에서 우리가 만나는 빌런의 행동을 시리즈 광고로 만들어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다.
# 금요일 오후 6시 퇴근시간의 사무실. 부장이 부하직원들에게 칼퇴근을 권하며 먼저 퇴근한다. 다들 신나서 퇴근 준비를 하려는데 차장의 휴대전화로 월요일 오전까지 수정하라는 문서 파일이 전송된다. 칼퇴근하라던 부장이 보낸 문자다.
부장) 자 금요일인데 칼퇴해야지. 집에 갑시다.
차장) (신나서 춤을 추며)퇴근 퇴근 퇴근!
부장) (문자메시지로)이거 월요일 오전까지 부탁해요.
아 주말엔 푹 쉬시고.
Na) 직장빌런도감, 주말파괴 빌런.
금요일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할 일을 만드는 것이 특징.
# 사원이 차장의 지시대로 수정한 문서를 차장에게 보고한다. 차장은 자세히 보지도 않고 다른 방향으로 수정하라고 지시한다. 그대로 해서 올리면 또 다른 방향을 얘기하고 마지막엔 결국 처음 안으로 가자고 결정한다.
사원1) 차장님 말씀하신 B방향으르 수정했습니다.
차장) 음. 아니야, C방향으로 해봅시다.
사원1) 넵.
차장) 아니야 D로…, E?
사원1) …말씀하신 방향으로….
차장) 오~ 처음에 했던 게 제일 좋은 거 같아요. 원래 안으로 갑시다. 생유!
사원1) 생유….
Na) 직장빌런 도감, 도로마무 빌런.
다시 다시 다시 시킨 후 도로 A안으로 고르는 것이 특징.
# 차장이나 선배 직원 심지어 부장이 지시를 해도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요?”라고 해맑게 묻기만 하는 사원2
차장) 이것 좀 부탁해.
사원2) 이걸요?
차장) 아니야….
선배사원) 회의 준비는?
사원2) 제가요?
부장) 참여할 거지?
사원2) 왜요?
부장) 하, 됐어요.
사원2) (부장이 걸어간 쪽에 대고 소리친다.)왜요? 왜요? 왜요오? 왜요?
Na) 직장빌런도감, 3요 빌런.
스스로 납득되지 않으면 질문하는 것이 특징.
사원2) 이거요? 제가요? 왜요?
Na) 착한 동료만 있을 거라 모험하지 말자. 어느 직장이나 빌런은 존재하니까.
마음의 상처도 몸의 상처처럼 케어가 필요하다는 앨리스의 이상한 생각.
앨리스 직장인 보험.
빌런, 피할 수 없다면 모험 말고 보험하자.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파지는 빌런은 또 있다. 월급루팡 빌런은 출근은 했는데 종일 탕비실, 흡연실, 화장실 등에 가 있어서 얼굴 보기가 힘든 월급도둑이다. 아무말대잔치 빌런은 회의 시간에 후배 사원들을 앉혀놓고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 모순된 단어들을 조합해서 횡설수설을 늘어놓는다.
“아 이게 아니지~ 트레디셔널 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이고, 익숙하면서 새로운 느낌.
부드러우면서 강한. 화려하지만 심플한. 아 그런 느낌적인 느낌. 몰라?
잠깐 쉬었다 하자. 난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무말대잔치 빌런은 ‘자기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 정설’이다.
아무말대잔치 빌런과 천생연분인 사내 인물은 판교사투리 빌런이다. 판교사투리 빌런은 ‘굳이 영어로 안 해도 될 말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심지어 후배 직원을 이름 대신 영어 이니셜로 부르기까지 한다.
“MJ? 리소스들 린하게 얼라인 해서 엑시트 해줘. 잊지 마, 듀데잇.” 후배가 “빨리 달라는 거죠?” 한국말로 물어도 “내가 계속 빨로업 할 테니까 에자일하게 토스해 줘. 두 유 언더스탠?”이라고 느끼하게 대답한다.
출시한 보험상품이 틈새시장을 잘 파고든 덕인지 앨리스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두 달여 만에 총 판매 건수 1만 건을 돌파했고, 12월에는 누적 유입자 130만 명, 체결 건수는 2만5,000건을 넘어섰다.
광고를 보며 웃다가 내가 만났던 빌런이 떠올랐다. 랭킹 1위는 이직한 회사에서 만났던 ‘책임회피 빌런’이다. 옮긴 회사에 있는 복지혜택을 입사 1년 뒤에 알게 되었다. 자녀의 학자금을 지원하는 제도였는데 소급 적용은 불가능했다. 당시 입사 계약서를 작성하며 연봉과 휴가 일수 등을 설명했던 인사부장에게 왜 알려주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는 빙글거리며 ‘그걸 제가 알려줘야 했나요?’라고 뻔뻔스럽게 반문했다. 사규집을 읽어보라고 준 것도 아닌데 니가 알려줘야지 누가 알려주냐? 부글부글 부아가 치밀었다. 그때 빌런 보험이 있었다면 화병점수 초과로 보상금을 톡톡히 받았을 것 같다.
지금 내 곁에도 빌런은 존재한다. ‘예의상실 빌런’은 탕비실에서 마주쳐도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인사를 안 하는 신입사원이다. 심지어 내가 먼저 고개를 꾸뻑하며 ‘안녕하세요?’ 해도 고갯짓만 까딱하고 만다. 재활용 분리수거 통에 음식 찌꺼기가 잔뜩 들어있는 플라스틱 통을 버리는 직원은 분리배출해 버리고 싶은 빌런이다. 모처럼의 회식에서 전 직장에서 잘나가던 얘기를 늘어놓으며 50% 이상의 대화를 점유하는 ‘예전에는 빌런’도 있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자주 마주치는 빌런을 보며 비난만 할 수는 없는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다. 젊은 직원의 행동이 못마땅하면 내 아이들도 어디 가서 저런 행동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아이들에게 항상 인사 깍듯이 하고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라고 누누이 얘기하지만, 나가서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확신이 없다. 함부로 남의 가정교육을 탓할 수 없는 이유다. 나이 든 직원의 언행이 부적절하다 싶으면 나도 혹시 저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라떼는’을 연발하는 밉상 꼰대가 바로 나일 수도 있으니 되도록 입을 닫는다.
마주치는 빌런들 속에서 평정심 잃지 않기, 무심코 동료 직원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빌런스러운 언행 하지 않기. 빌런 보험이 보상하는 스트레스로 인한 원형탈모나 대상포진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자세다. 회사에 오래 다녔어도 아니 어쩌면 오래 다니고 있기 때문에 더, ‘슬기로운 회사생활’은 갈수록 어려운 과제다.
https://www.youtube.com/watch?v=YrduXE-kA34
롯데손해보험 앨리스_직장빌런도감#1편_바이럴 영상_2023_유튜브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2019)』 시리즈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