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커버가 말하는 것은? 2024.4
What does the album cover say?
1980년대, 음악에 대한 정보라고는 라디오 방송이 거의 전부이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 당시로서는 거금을 주고 하나의 앨범을 선택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음반 가게에 가서 어떤 앨범을 살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음악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갈등이 일어나는 현상을 요즘 세대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지금은 모르는 음악을 구매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음악은 유튜브나 스트리밍 서비스로 다 들을 수 있다. 그렇게 이미 확인한 음악 중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고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노래만을 1,000원 안팎의 돈을 주고 산다. 음악의 구매란 음원, 즉 디지털 파일을 내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다운로드 하는 것이다. 그도 아니면 그냥 스트리밍 구독 서비스를 구매해 무제한으로 들으면 된다.
하지만 이런 디지털 세상이 오기 전의 음악상품은 무조건 물리적 앨범을 구매하는 것이었다. 앨범에는 대개 10곡 안팎의 노래가 들어 있는데, 소비자가 들은 곡도 있지만 못 들은 노래가 더 많다. 여러 곡이 수록된 앨범은 요즘 가치로 치면 2만 원 안팎 정도의 가격일 것이다. 게다가 때로는 노래를 전혀 듣지 못한 채 앨범을 선택할 수도 있다. 1970~80년대에는 공적으로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미디어가 라디오와 TV밖에 없었다. 라디오나 TV는 오늘날의 온라인 미디어와 달리 방송국이 송출하는 음악을 일방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방송국이 제공하는 노래란 이미 인기를 끈 노래들 위주로 아주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가 좋아하는 밴드나 가수의 앨범을 구매한다고 하더라도 정말 그 앨범 속 모든 노래가 내가 지불한 돈만한 가치가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때 판단의 기준을 제시하는 단서가 하나 있다. 바로 앨범의 커버 이미지다. 음반 가게에서 노래는 전혀 들을 수 없지만, 커버 이미지는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그 이미지가 매혹적이라면 왠지 음악도 매혹적이지 않을까?
음악은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무형의 예술이지만, 19세기 말 음악을 저장하고 재생할 수 있는 디스크와 축음기가 등장한 뒤 회화처럼 물리적인 형태를 갖게 되었다. 그것은 곧 소장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런데 회화와 달리 음악은 궁극적으로 소리와 시간의 예술이다. 즉 오디오 기기라는 미디어를 통하지는 않고는 경험할 수 없다. 바로 이 문제로 인해 음악이라는 무형의 상품은 회화, 즉 이미지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람들은 음악을 듣기 전에 이미지로 먼저 음악을 유추하는 것이다. 앨범 커버 이미지는 1950년대부터 발전하기 시작했고, 1960년대 로큰롤이 젊은 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록음악의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앨범 디자인 그룹도 탄생한다. 바로 힙노시스(Hipgnosis)다. 힙노시스는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핑크 플로이드, 레드 제플린, 폴 매카트니의 윙스 등 수많은 로큰롤 밴드의 앨범을 디자인했다. 위대한 앨범 커버 디자인 그룹인 힙노시스의 전시회가 그라운드시소 서촌에서 열리고 있다.
힙노시스가 앨범 커버 디자인 역사에서 일으킨 혁신은 커버의 매력을 ‘얼굴’에서 ‘이야기’로 바꾼 것이다. 1960년대까지 거의 모든 앨범 디자인의 커버는 밴드나 가수의 인물 사진을 커다랗게 채웠다.<사진 1> 앨범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스타의 얼굴을 보고 앨범을 선택한다. 앨범의 노래는 알 수 없지만, 스타의 얼굴은 잠재적 구매자들의 머릿속에 가장 강력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 음반 회사는 새 앨범을 발매할 때마다 밴드의 얼굴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때 앨범 디자인의 창의력이란 그저 스타들의 포즈와 배경을 어떻게 변주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1960년대 최고의 스타라고 할 수 있는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의 앨범을 보더라도 밴드의 얼굴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사진 2>
힙노시스는 그들의 첫 번째 작업인 핑크 플로이드의 <어 소스풀 오브 시크릿(A Saucerful of Secrets)>을 장식적인 그래픽으로 디자인했다.<사진 3> 밴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음반 회사에서는 얼굴이 나와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해서 힙노시스는 왼쪽에 4명의 멤버를 아주 자그맣게 삽입했다. 그마저도 역광이고 몸이 더 많이 보여서 얼굴은 알아볼 수조차 없다. 음악은 앨범마다 바뀌지만 그때마다 밴드의 인물 사진만으로 디자인해야 한다면 창의력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앨범의 음악성을 사람만으로 표현하기란 더욱 힘들다. 차라리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구매자들에게는 더욱 신선하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힙노시스의 전설적인 앨범 커버들이 만들어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중 하나인 <위시 유 워 히어(Wish you were here)>의 앨범에는 두 남자가 등장한다.<사진 4> 물론 이들은 밴드의 멤버가 아니다. 두 사람이 악수를 하고 있는데, 한 사람은 옷이 불타고 있다. 1975년에 제작되어 당연히 포토샵 같은 디지털 기술의 힘을 빌릴 수 없다. 불타는 남자는 스턴트맨으로, 실제로 불타는 옷을 입은 채 태연하게 다른 남자와 악수를 하고 있다. 이 커버 이미지는 무슨 의미일까? 앨범의 주제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 디자인을 소개하는 문헌에 따르면 고독, 부재, 불안, 공허 같은 현대인의 고통을 다룬다고 한다. 하지만 관객들이 그런 주제 의식을 읽어낼 수 있을까? 이 커버 디자인에서 관객이 느끼는 것은 명확한 개념이나 메시지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무슨 이야기가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이며, 강력한 호기심이다.
이런 기법은 앨범의 내용을 축약하거나 상징한다기보다 강력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가 더 강하다. 이는 미국의 전설적인 광고인 데이비드 오길비가 만든 해서웨이 셔츠 광고를 연상시킨다.<사진 5> 이 광고에는 애꾸눈 안대를 한 남자가 등장한다. 옆에서 재단사가 몸의 수치를 재는 동안 한쪽 팔을 허리에 댐으로써 위풍당당한 자세를 취한 이 남자는 왠지 상류사회의 일원으로 보인다. 이 이미지는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이 남자가 무슨 연유로 한쪽 눈을 잃었을까? 하고 궁금해한다. 그러면서 광고의 카피를 읽게 되는데, 그 문장에는 이 사람이 누구이며 왜 애꾸눈 안대를 하게 되었는지 어떠한 단서도 없다. 그저 해서웨이 셔츠에 대한 내용뿐이다. 소비자의 눈을 사로잡고 카피를 읽게 만든 것만으로 이미지는 자기 구실을 100% 이상 한 것이다. 실제로 해서웨이 셔츠 회사는 이 광고로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 광고를 제작한 오길비는 이런 접근을 ‘스토리 어필(story appeal)’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하고, 이야기는 아주 힘이 세다.
힙노시스가 디자인한 레드 제플린의 <프리센스(presence)>는 그런 접근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사진 6> 이 앨범 커버를 보면, 한 가족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고 테이블 위에는 검정색의 작은 물체가 놓여 있다. 정교하게 조각되어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지는 이 물체에 사람들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물체가 이 앨범의 주제나 레드 제플린이라는 밴드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밴드나 디자이너 모두 특정한 상징을 말하지 않는다. 관객이 그것을 자기 멋대로 상상하고 해석하면 그만이다.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사진을 호기심의 대상으로 만드는 건 바로 그 검은색 물체다. 해서웨이 셔츠 광고 모델의 안대 같은 것이다.
힙노시스의 앨범 커버 이미지는 스토리 어필의 걸작들로 가득 차 있다. 위에서 예를 든 두 앨범은 극히 일부다. 그들은 스타의 얼굴이 아니라 문학적이고 서사적인 방식으로 앨범 커버 디자인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혔다. 하지만 그들의 앨범 커버 작업은 1980년대 중반에 끝나고 만다. 1980년대부터 MTV 같은 케이블 채널의 뮤직 비디오가 소비자의 호기심과 욕망을 더욱 자극하는 미디어로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미디어가 음악 감상의 주 미디어가 되면서 동영상이 더욱 강력한 힘을 얻게 되었고, 앨범 이미지는 다시 스타의 얼굴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그나마 앨범을 제작한다면 말이다. 음원 판매가 더 주이기 때문에 앨범으로 스토리 어필을 한다는 건 무의미해 보인다. 힙노시스의 독창적인 디자인 접근 방식은 이제 한 시대의 추억거리가 된 것이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