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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오딧세이 ⑫ 마장동 축산물시장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2024.5

월간 건축사지 2024. 5. 31. 09:40
City Odyssey ⑫ Our perspective on Majang Meat Market

 

 

 

마장가축시장(1962) © 서울역사박물관

 

모여야 좋아지는 것들이 있다. 사람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좋은 사람들이 모이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반대의 경우 사회악이 될 개연성이 농후해진다. 도시 공간 또한 그렇다. 모인다는 건 주고받을 게 많다는 것이고, 이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장시(場市)의 형성이다. 경제학에선 이를 집적이익이나 집적효과라 부르는 모양이다. 도성 밖 청계천 끝자락, 2,000여 축산물 가게가 모여 집적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공간이 있다. 마장 축산물시장이다.
동쪽으로 흐르던 청계천이 몸을 틀어 중랑천으로 꺾어 드는 곳 남쪽에 마장동이 자리한다. 왕조 시대, 이곳엔 말 사육이 특화되어 있었고, 마을은 여기(馬場[마장])서 말미암았다. 중랑천 살곶이 다리 건너 살곶이벌이라거나 뚝섬으로 불리던 곳도, 왕의 사냥터이자 군인들 훈련장이요 말 목장이었다. 각지에서 사육된 좋은 말이 한양에 오면 암컷은 자양동 건국대학교 자리로, 수컷은 마장동으로 보내졌다.
그러나 축산물시장은 말과는 무관하다. 1958년 숭인동 가축시장이 이곳으로 이전해 오면서, 청계천 변 빼곡하던 판잣집을 철거하고 시장을 개설한 게 효시다. 지금 아파트가 들어선 자리다. 3년 후인 1961년, 가축시장 남측으로 당시로선 최신 설비를 갖춘 서울시립 도축장이 들어선다. 경매장도 함께였다. 지금의 마장초·중학교 자리다. 이 두 시설이 축산물시장 공간구조를 형성한 시작이다.



모여서 만들어 낸
이곳에 들어서면 굳센 황소 뒷다리 근육이 연상된다. 시장은 24시간 쉼 없이 이어지며 건강한 삶의 자양분을 만들어 낸다. 도축되어 온 가축의 정형과 대분할, 소분할이 이뤄진다. 분할된 육류는 각 업체를 통해 유통된다. 수도권에서 소비하는 육류의 2/3를 마장동이 맡고 있다. 업체 60%가량이 도매업을, 35%가량이 도소매업을 겸업하고 소매업체는 5% 남짓이다. 최근엔 소매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생태계는 업체가 한곳에 모여야 할 필요충분조건이었다.
공간은 소처럼 우직하고 순하며, 정직하고 건강하다. 예전의 불미스러운 풍경이나 모습, 기억은 모두 사라졌다. 품질도 뛰어나다. 상인들이 조합을 만들어 정화 운동을 벌인 덕분이다. 위생은 물론 정품, 정량, 정찰제가 이 공간이 추구하는 캐치프레이즈다. 인프라도 개선되어 도로와 위생 설비, 중앙 통로는 물론 주차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대를 잇는 젊은 상인도 많다. 이들의 활약으로 예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도가 이뤄지기도 한다.
뼈를 추려 부위별로 나누는 정형이, 이 공간의 꽃이라 할만하다. 정형은 눈과 손, 훈련을 통해 전수된다. 가장 힘들고 위험한 작업으로, 상품으로써 고기 품질을 좌우하는 기술이면서 마장동이 마장동이게끔 지탱해 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가르치고 배우는 선배와 후배는, 형제처럼 사이가 돈독하다. 잘 우려낸 고깃국물처럼 깔끔하고 담백하며 진솔한 풍경이다. 정(情)으로 연결된 관계다.

 

 

마장축산시장의 주 출입구인 북문 © 이영천


공간의 아이러니
도축장이 들어선 1960년대 초, 냉동·냉장 시설은 부족했고 운반용 냉동 차량도 없었다. 이런 시대 여건은 도축장 부근에 축산물시장 형성이 가능하게 한 요인이었다. 그날그날 도축한 고기는 최고의 품질을 유지한 상태로 빠르게 배달되어 소비가 이뤄져야만 했다. 이런 요인이 한곳으로 도매업의 집적을 이끈 요인이다. 소비처로의 빠른 배달이 사업 성패를 가르는 필수 요소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청계천 변 허름한 판잣집에 잡고기와 함께 부속을 판매하는 시장이 형성된다. 가격 부담도 낮아 자연스럽게 사람이 몰려든다. 1968년 청계천 건너 용두동에 들어선 마장시외버스터미널은 경기도 곳곳으로 신선한 고기가 실려 나가는 기틀이 된다. 신선도가 생명인 육류 유통의 숨통이 트인 셈이다. 시장 확산의 일등 공신이다.
경원선 철도가 마장동을 동과 서로 나누고 있었다. 동쪽 도축장과 철도 사이는 도매업 위주로, 서쪽은 소매 공간으로 커나간다. 두 공간을 잇대려는 열망이 경원선 밑으로 굴다리를 뚫는다. 이로써 시장은 동서가 하나로 어울리는 ‘T’자형 공간을 형성하게 되었다.
가축시장은 1974년, 도축장은 1998년 문을 닫는다. 두 시설이 있던 공간은 역시 재개발되어 아파트와 학교가 들어서 있다. 한때는 서로의 필요로 떼려야 뗄 수 없었던 두 공간이, 지금은 높은 벽으로 차단되어 철저히 분리된 아이러니가 연출되어 있다. 집값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굳이 애써 차이를 드러내려 의도했음인가? 어떤 벽이고, 무엇을 말하려 함인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방안을 찾을 순 없었을까?

 


숨기고 외면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기는 계급에 따라 먹는 부위가 달랐다. 살코기는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몫이었고 내장과 간, 허파 등 부속은 민중 차지였다. 부속을 서양은 소시지로, 우리는 구이나 탕으로 먹은 차이뿐이다. 어쩌면 신선도는 사치였는지 모른다.
도축하여 고기를 다루는 사람을 차별하고 천대하며 조롱하고 배척했다. 이들뿐 아니라 농민과 노동자도 그렇게 대했다. 완벽한 역설이다. 무엇으로부터 살아갈 힘과 에너지를 얻어 가는지조차 모르는 청맹과니다. 손에 쥔 숟가락은 물론 그 위에 얹힌 쌀밥이 어찌 거기에 있는지, 제 입으로 들어가 맛있게 씹히는 고기가 누구 손에서 가공되는지를 모르는 얼간이다.
차별은 분명 지독한 이율배반이다. 뒤에는 비겁이 숨겨져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를 배척하고 차별하려는 자들의 이면에, 자기가 속한 계급 이익을 독점하려는 추한 욕망을 숨기기 마련이다. 왕조 시대 양반이 그러했다. 법이건 제도건, 차별을 조장하는 행위는 이런 지독한 이율배반을 감추고 숨기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마장동 공간도 그렇게 외면받고 배척당하며 지나왔는지 모른다. 이곳을 바라보는 위정자들의 시선은 어찌 그리 한결같을까. 왕조는 말 목장으로 사용했으니 그나마 얌전하다 해야 하나? 일제 강점기 이곳에 가축시장을 옮길 계획이었으나 실행되지 못했다. 1958년과 1961년 이곳에 가축시장과 도축장이 들어섰으니, 시대와 무관하게 그들은 이곳을 푸줏간이라며 애써 외면하고 천대하려 시도한 셈이다. 자기들 입안으로 들어가는 맛있는 고기가 어디에서 누구의 손으로 생산되었는지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가?

 

 

북문옆 먹자골목의 낮 풍경 © 이영천


철들어 비로소 보이는
자장면이 싫다고 말하는 어머니를 노래한 대중가요가 있다. 먹고 싶으나 참아내는 어머니 모습을 에둘러 표현한 노래다. 자장면뿐 아니라 고기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실을 철들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늦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만, 그럴 때면 가장 먼저 가족이 떠오르는 게 인지상정이다. 작은 공감이다. 이를 타인과 나눌 줄 알게 되면 비로소 철들어, 세상과 공감할 능력이 생긴다. 나아가 타인의 슬픔을 깊이 공감할 수 있어야 비로소 좋은 사람이다.
청계천 변 마장동엔 시골 장터 같은 ‘먹자골목’이 있다. 축산물시장이 생길 당시를 연상케 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국공유지에 지어진 무허가다. 88올림픽을 핑계로 도축장 인근에 있던 가게들을 모아 이곳으로 이주시킨 건 당시 공권력이다. 그러나 이곳은 지금 반쪽이다. 2022년 3월 화재로 큰 피해를 보았다. 철벽같은 펜스에 ‘구청 재산이니 건들지 말라’는 노란 경고장이 오랫동안 나붙어 있다. 철들지 못한 우리 시선과 공감 능력이 구청 경고문이 되어 찰떡처럼 붙어 있는 셈이다.
화재 전부터 이 작은 공간에 대한 민원이 빈번했다. 슬럼화했다고 배척하고픈 본질은 감춘 채, 화재 위험이 크다는 주장 일색이었다. 그들의 바람이었는지, 불이 나버렸다. 그러자 철거 민원이 반쪽을 태운 불길보다 더 강력해진다. 어쩌면 축산물시장을 바라보는 우리 시선이, 가장 약한 이곳을 먼저 지목하여 손가락질과 차별을 노골화했는지 모른다.
몇 번의 작은 충돌과 줄다리기가 있었다. 생계 문제이자, 수십 년을 영위한 삶이며 존재 이유다. 깡그리 뭉개고 지워낼 공간이 아니다. 법 테두리 안에서 지상권을 인정하고, 양성화하는 방안을 입안할 수는 없을까. 그만큼 지워내고 쫓아내 봤으면, 이제 철들 때도 되지 않았는가?
누군가 그리워지면 마장동에 다녀오길 권한다. 가서 고기의 참맛을 느껴보길 바란다. 철들어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이 지천이다. 삶의 자양분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차별과 멸시가 얼마나 무의미한 행위인지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마장동의 우직하고 강인하며, 정직하고 부드러운 속살을 맛 보시라 권하고 싶다.

 

축산시장을 가르는 철길 하부 통로 © 이영천

 

 

 

 

 

글. 이영천 Lee, Yeongcheon 자유기고가

 

 


이영천
  자유기고가

 

도시공학 학사(홍익대학교), 도시계획 석사(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계획기술사(1999). 엔지니어링사에서 도시계획 업무를 시작으로 건설사에서 오랜 기간 사회간접자본 투자사업에 종사했다. 자유기고가로 한국도로협회 계간지 <도로교통>에 다리 에세이 연재 중이다.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에 다리 및 근대건축 관련 에세이를 연재했고, 현재 도시 관련 에세이 연재 중이다. 저서로 『다시, 오래된 다리를 거닐다』와 『근대가 세운 건축, 건축이 만든 역사』가 있다.

shrenrhw@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