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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적으로 본 한국 앨범 디자인의 발자취 2024.6

월간 건축사지 2024. 6. 30. 09:15
A summary of the traces of Korean album design

 

 

 

 

서울생활사박물관에서 ‘서울의 젊은이와 대중가요’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한국 대중가요의 발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젊은이들이 어떤 경로로 대중가요를 감상하게 되었는지 살펴본다. 축음기, 라디오, 카세트 녹음기, 휴대용 카세트 재생기, CD 플레이어, MP3 플레이어와 같은 음악 재생 장치, 그밖에 음악 감상 장소, 음악 관련 잡지와 소식지 등을 다룬다. 음악을 감상하는 미디어의 발전, 그리고 앨범 커버 이미지의 진화 과정을 함께 볼 수 있다. 미디어와 앨범 커버 이미지 사이에서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기술적인 발전과 함께 예술적 표현 역시 같이 발전하는 현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앨범 커버 이미지는 그 당시의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표다. 

 

<사진 1> 트윈폴리오 리사이틀 앨범, 1969년

1969년에 발매된 트윈폴리오 리사이틀 앨범은 당시 앨범 제작이 얼마나 급하고 조잡하게 제작되었는지 보여준다.<사진 1> 이 앨범의 사진은 아마도 잡지 같은 것에 실린 사진을 반사분해 해서 쓴 것 같다. 원래 잡지에 쓰인 사진보다 더 크게 확대하다 보니 인쇄 망점이 다 드러날 정도로 해상도가 엉망이다. 사진 찍고 원본 필름을 분해해 인쇄를 하는 것이 정상인데, 아마도 시간에 쫓겨 이렇게 한 모양이다. 1960년대 한국은 임시변통의 시대였다. 자원은 부족하고 일단 무엇이든지 빨리 만들어내야 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고품질을 기대하긴 힘들다.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임시변통과 같은 조잡한 제작도 미학적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런 관점으로 이 앨범 커버를 다시 평가하면 아주 나쁜 것도 아니다. 어렵던 시절의 조급하고 절박한 처지를 읽을 수 있다. 

 

<사진 2> 골든 포크 앨범 10집, 1975년

1975년에 발매된 <골든 포크 앨범 10집>을 보자.<사진 2> 가수이자 작곡가인 이장희가 손에 담배를 들고 바에 서 있는 사진의 의도는 무엇일까? 서양 광고에서 위스키나 와인, 그리고 그런 술이 진열된 바는 언제나 성공한 비즈니스맨 또는 상류사회 남자의 기호로서 의미작용을 해왔다. 1970년대 조국 근대화가 최대의 과제였던 한국의 대중에게 이런 이미지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비쳤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안에 담긴 음악은 세시봉의 포크 음악이다. 미국의 경우 밥 딜런으로 대표되는 포크 음악의 앨범 커버는 이런 류의 속물스러운 인테리어 이미지로 결코 제작되지 않는다. 이 이미지는 앨범 속에 담긴 음악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1970년대 한국 대중의 욕망을 반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당시 한국은 미국의 문화라면 무조건 동경하는 심리가 있었다. 그 동경은 미국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사치스러운 인테리어, 그리고 그것을 격렬하게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1960년대 반문화적인 포크음악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모순적인 커버 디자인이 탄생한 것은 아닐까? 

 

<사진 3>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 제2집, 서울로 가는 길, 1972년

시대착오적인 <골든 포크 앨범 10집>보다 3년 먼저 발매된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 제2집, 서울로 가는 길>은 포크음악의 정서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사진 3> 양희은은 고목 위에 앉아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게다가 맨발이다. 자연 속의 거대한 나무와 맨발, 통기타, 청바지, 단발머리, 그리고 손글씨체까지, 이 모든 것들은 1960년대 말 서구에서 불었던 반문화(counterculture)를 정확하게 재현하고 있다. 포크음악의 정수를 음악가들이 파악한 것만큼 이미지를 제작하는 기술 역시 발전한 것을 볼 수 있다. 

 

<사진 4> 한대수 멀고먼 길, 1974년

1974년에 발매된 <한대수 멀고먼 길>은 한국 앨범 커버 디자인 역사상 최고의 작품 가운데 하나다.<사진 4> 수록곡들의 노랫말은 듣기 좋은 막연한 시적 언어가 아니라 한대수가 경험한 생생한 삶의 반영이다. 그런 노랫말만큼이나 커버 이미지 역시 가수의 얼굴을 이상화하는 흔하디흔한 표현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가수의 얼굴은 아름답게 꾸며지지 않았고 바보처럼 일그러져 있으며 결코 사랑받을 만한 모습이 아닌 것이다. 어떻게 이런 앨범 커버가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오늘날 BTS나 블랙핑크가 이런 자학적인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을까? 이 이미지는 말하자면 ‘고통의 리얼리즘’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1970년대 폭력적인 군사독재 시절에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렇게 바보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진 5> 이용 지구전속제 1집, 1982년

1982년에 발매된 <이용 지구전속제1집>은 ‘잊혀진 계절’이라는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노래가 수록된 앨범이다.<사진 5> 1980년대는 금성과 삼성 같은 가전제품 회사들이 아직은 글로벌 기업이 되기 전이지만 그 뿌리를 만든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레이거노믹스, 즉 신자유주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1970년대의 불황이 막을 내리고 소비주의가 팽창하기 시작했다. 디자인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활짝 꽃을 피웠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엄격한 질서를 조롱하고, 로버트 벤투리가 말한 것처럼 “너저분해도 생동감이 있는” 것을 지향하는 디자인적 태도다. 이 앨범의 제작자들이 의식적으로 그런 시대를 반영하려고 한 건 아니겠지만, 이 앨범 커버는 그런 시대를 참 잘 반영한다. 시대의 정신은 무의식중에 가랑비에 옷 젖듯이 스며드는 것이다. 가수의 얼굴은 우수에 젖은 듯하지만 그것을 연출한 태도는 핑크빛처럼 화사하다. 신군부가 민주화의 열망을 짓밟은 시대지만 경제적으로는 풍요로 다가가는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사진 6> 서태지와아이들 1집, 1992년

1992년에 발매된 서태지와아이들의 1집은 그전까지 앨범 커버에서 볼 수 없었던 여러 가지 태도들이 있다.<사진 6> 무엇보다 멤버들을 이처럼 불량하게 표현했던 앨범이 있을까? 하지만 양현석과 이주노와 달리 서태지는 모범생처럼 보인다. 흑백화면에 흑백 스크립트 서체가 아주 세련되었고, 거기에 포인트처럼 대비되는 컬러를 아주 약간만 사용했다. 뭔가 공을 들여 만든 인상이 든다. 1990년대는 금성이 LG로 바뀌고, 삼성은 드디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시기다. 한국인이 그토록 동경했던 소니 워크맨이 서서히 그 힘을 읽어가던 시대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대갈등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아직 세대 개념은 아니지만 오렌지족이 등장했고, 곧이어 X세대라는 단어가 일반화되었다. 서태지와아이들의 1집 앨범 커버는 그런 반항적인 세대의 시작을 알리는 증표다. 이제 기성세대와 신세대는 결코 화합하기 힘든 간격이 벌어질 것이다. 음악과 그것을 표현한 이미지는 그 어떤 이론보다도 함축적으로, 그리고 정직하게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