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선물일까 괴물일까? 2024.6
AI, a gift or a monster?
모 전자회사에서 새로 내놓은 제품의 마케팅을 위해 회의를 하기로 했다. 회의의 주제는 이 제품을 ‘누구에게 팔 것인가?’였는데, 관련한 팀원들이 각자 생각한 것을 정리해서 발표하기로 했다. 노트북을 열고 파워포인트의 ‘새 문서’ 화면을 펼쳤다. 아이디어가 순식간에 떠오를 리 없으니 몇 분이 흐르도록 빈 화면의 커서만 졸린 눈처럼 끔뻑끔뻑거렸다. 온라인 세상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인공지능(AI) 프로그램에게 물었다.
모모전자에서 이런저런 특징을 가진 제품이 새로 나왔어. 이 제품의 타깃 고객층은 누구일까?
1분이 채 되기 전에 700자, 즉 원고지 3장 반 분량의 답변이 돌아왔다.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이었지만 아이디어를 전개하는 발판으로 삼기에는 손색이 없었다. 더 정교한 답을 듣기 위해 명령어를 바꾸어 질문을 계속했다.
이미 모모전자의 제품을 구매한 사람 중에 이 신제품을 살만한 고객은 누구일까?
제품의 가격을 고려했을 때 이 제품을 살 수 있는 타깃을 말해 줘.
1인가구가 증가하는 추세를 감안해서 이 제품의 타깃을 알려 줘.
나의 거듭되는 질문에도 AI는 전혀 지치지 않고 답변을 쏟아냈다. 팀원들과 회의를 하기 전에 AI와 둘이서 미리 회의하는 기분이 들었다. AI의 대답이 모두 정답은 아니었지만, 짧은 시간 안에 쉽게 참고할 만한 자료를 얻었으니 만족스러웠다. AI의 대답을 정리해 앞장을 채우고 내 생각을 뒷장에 덧붙여 회의 자료를 완성했다. 회의 참가자 4명 중 나를 포함한 2명이 AI가 생성한 자료를 들고 참석했다. 재미있고 신기한데 어딘지 개운치 않은 기분도 들었다.
지금은 익숙하지 않고 아주 정확하지도 않아서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자주 쓰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스마트폰처럼 손에 쥐고 내려놓지 않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인공지능이 왜곡된 정보를 생성하거나, 저작권 침해, 정보 유출 등의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AI를 활용하는 것에 신중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기업도 있다. 그 한 사례가 유니레버 그룹의 뷰티 브랜드 도브(Dove)이다. 도브는 올해 새로 선보인 광고 캠페인을 통해 실제 인간을 묘사할 때 AI 기술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자막) 2025년에는 인공지능(AI)이 온라인 콘텐츠의 90%를 생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이 영상을 위해 만들어진 모든 이미지들은 AI 도구로부터 얻은 실제 결과물이다.
명령어) 멋진 여자를 생성해 줘.
#바다를 배경으로 서있는 금발머리의 백인 여성이 보인다.
명령어) 완벽한 피부색을 상상해 봐.
#파란 눈동자를 가진 티 한 점 없이 매끈한 갈색 피부의 여성이 보인다.
명령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생성해 줘.
#금발과 푸른 눈동자를 가진 날씬한 백인 여성들의 모습이 연달아 생성된다.
자막) 20년 동안 도브는 진정한 아름다움(Real Beauty)을 위해 헌신해왔습니다.
다음은 우리가 ‘Dove’를 명령어에 추가했을 때 AI가 생성하는 이미지입니다.
명령어) 도브의 리얼 뷰티 광고에 기반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생성해 줘.
#뚱뚱하고, 늙고,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다양한 인종과 연령대의 여자 이미지가 나타난다.
명령어) 도브의 리얼 뷰티 광고에 기반해서 완벽한 피부색을 생성해 줘.
#기미가 가득한 백발 노인 여성의 얼굴이 보인다.
명령어) 도브의 리얼 뷰티 광고에 기반해서 멋진 여자를 생성해 줘.
#도심이나 인파를 배경으로 다양한 종교와 인종을 가진 여성들 여성들의 이미지가 생성된다.
자막) AI가 어떤 종류의 아름다움을 학습하기 바라나요?
도브는 여성의 이미지를 생성하거나 왜곡하는 데 AI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진정한아름다움을 지키자.(Let’s #KeepBeautyReal)
광고에서 AI에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이미지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더니 AI는 날씬한 금발의 백인 여성 이미지를 생성했다. ‘아름다움’에 대한 백인 위주의 편협한 고정관념을 인공지능이 그대로 반영한 결과다. 광고는 도브가 오랫동안 홍보해온 ‘리얼 뷰티’에 근거해서 아름다운 여성 이미지를 생성하라고 명령어를 바꾸어 요구한다. 그러자 AI는 다양한 인종과 체형, 연령대의 여성 이미지를 보여준다. 당연하게도 명령어에 따라 AI가 만든 이미지가 달라진 것이다.
도브는 2004년부터 지속해 온 ‘리얼 뷰티(Real Beauty)’ 캠페인 20주년을 기념하는 이 광고를 통해, 여성 이미지를 생성하는 데 AI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여성의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인 ‘진정한 아름다움’을 계속 옹호하겠다고 밝혔다. 도브의 설명에 따르면 여성 3명 중 1명은 이미지가 가짜이거나 AI가 생성한 것임을 알면서도 온라인에서 보는 내용 때문에 외모를 바꿔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생성한 편견이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다.
이 글을 쓰다가 포털을 보니 실제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대화가 가능한 최신 인공지능 모델 ‘GPT-4o’가 공개됐다는 뉴스가 떠있다.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인공지능이 ‘쓰나미’처럼 세계 노동시장을 강타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AI가 향후 2년 내 전 세계 일자리의 40%에 영향 미칠 것이라고 얘기했다는 뉴스도 보인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가 5월 14일 발표한 MS의 연례보고서 ‘2024 업무동향지표’에 따르면 전 세계 근로자의 75%가 직장에서 AI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직장에서 AI를 쓰고 있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73%에 달했다. 응답한 전 세계 근로자를 세대별로 보면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태어난 Z세대의 AI 활용 비율이 85%로 가장 높았고, 밀레니얼세대나 X세대, 베이비붐 세대의 이용률도 70%대였다. 전 연령대가 고루 AI를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스마트폰을 처음 사용했던 때가 떠오른다.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몇 달 만에 삶이, 세상이 통째로 바뀌었다는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독일의 통일이나 소련의 붕괴 같은 어마어마한 세계사적 사건도 실시간으로 들었지만, 그것은 그저 나와 직접 상관없는 뉴스에 불과했다. 그에 비해 스마트폰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되지 않는 연결을 가능하게 했고, 나의 일, 관계 맺기, 소통의 형태를 총체적으로 변화시켰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또 한 번 내 인생에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를 일으킬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좋은 변화일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인공지능을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AI의 거짓말을 철석같이 믿거나 AI가 만든 허구 이미지를 진짜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외로운 날이면 친절하게 대답하는 AI의 목소리를 사람이라고 착각해 대화를 계속할지도 모른다.
“프롬프트에 언급하지 않으면 AI는 어떤 것도 생성하지 않는다.”
도브가 AI를 통해 최대한 현실적인 아름다움을 탐색하고 생성할 때 활용하라고 만든 전술서(Prompt Playbook)에 기술한 문장이다. 인공지능으로부터 현실 세계를 제대로 대변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구체적이고 적확한 프롬프트(prompt;:명령어, 지시어)를 사용해서 요구하라는 얘기다.
AI는 지나치게 빠르고 빈틈없고 전방위적이다. 나는 과연 AI에 압도당하지 않고 밥벌이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한 달이 가도 안부 전화 한 통 없는 아드님들 대신 상냥한 AI를 입양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미래에 인공지능이 괴물이 될지 선물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지금 당장 요물인 것만은 분명하다. 인공지능이 나를 어떤 세상으로 데리고 갈지 두렵고 또 궁금해지는 요즈음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sD-R2OzcleQ&t=15s
도브(Dove)_더코드(The Code)_유튜브 영상_2024_유튜브 링크
https://www.dove.com/us/en/stories/campaigns/keep-beauty-real.html
도브(Dove)_리얼 뷰티(Real Beauty)_홈페이지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2019)』 시리즈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