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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비평] 순환과 공생의 가치가 성장하는 사회적 장소 2024.6

월간 건축사지 2024. 6. 30. 10:45
Architecture Criticism A social place cultivates the value of circulation and symbiosis

 

 

 

근대의 건축사(architect)들에게 공장설계는 기술적 혁신을 실험하고, 시대의 정신을 표현하는 기회였다. 공장은 필연적으로 내부의 제조공정, 즉 기능을 따르는 형태로 만들어져야 했고, 이는 곧 근대건축의 덕목과 일치했다. 높고 넓은 보편공간(universal space), 투명함, 가변성, 빠른 시공 및 교체 가능한 조립식 시스템 등 공장 건축의 미덕은 현대 건축 전반으로 빠르게 수용되었다. 기본적으로 공장은 보안과 안전, 관리의 영역이다 보니 건축적 의미는 파사드 디자인이나 혁신적 구조 시스템에 집중되곤 한다. 하지만 서서히 공장의 경험 자체가 지닌 힘을 이해하고 공정을 체험하도록 하는 프로젝트들이 나타났고, 21세기에는 그 경험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지닐지 고민하는 계획안들이 등장했다. ‘Sunset Park Material Recovery Facility(2014)’, ‘CopenHill(2019)’ 등은 공장을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과 결합해 지속 가능한 환경적 활동을 지원한다. 이들은 보통 공공기관이 주체가 되어 기획·운영되는데, 우리나라의 민간에서 환경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체험형 공장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김이홍 건축사가 설계한 수퍼빈 아이엠팩토리다. 

설계자는 크게 두 가지 프로그램의 관계를 풀어내야 했다. 우선 이곳은 수거된 플라스틱 페트(PET)병을 재활용이 가능한 원재료(flake)로 가공하는 공장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재활용 이슈와 일상 속 환경적 노력에 대한 중요성을 교육하는 장소로서 기획되었다. 일단, 공장은 150미터로 길게 이어지는 공정을 담아야 했으며, 높은 층고를 요구했다. 또한 수거된 병들이 유입되는 시작점과 가공된 원재료가 출고되는 마지막 지점은 화물 동선과 근접해야 했다. 여기에 공정 전체를 관리, 체험하고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적재적소에 삽입되어야 했다. 기묘한 형태의 대지 내에서, 현재의 U자형 배치는 모든 요구 사항을 만족하는 명쾌한 모범답안이다. 건물의 중심부에는 동선 공간과 관리실, 투어를 위한 전시와 다목적 공간을 두어 평단면적으로 모든 프로그램들이 필요에 따라 적절히 관계 맺는다. 중정은 재건축 현장에서 폐기된 나무들을 수거해 생명력이 넘치는 정원으로 조성했다. 재활용된 생명을 양팔로 안아주는 U자형 형국은 기업이 추구하는 순환 경제를 상징하는 형태로도 해석될 수 있으니 절묘하기까지 하다.

건물의 스케일과 마감은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진 주변 공장들의 맥락과 조화를 이루되 점잖은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방문객의 시각적 경험을 주도하는 U자형 볼륨은 크게 상부 2개 층 높이의 은색 매스와 지상층의 어두운 회색 매스로 나누어진다. 올라탄 볼륨이 더 크고 돌출되어 있어 시각적인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데, 아래의 어두운 색상은 밝은 매스의 부유하는 인상을 강화한다. 매스의 튀어나온 깊이는 얕은 처마가 되어 저층부 슬라이딩 도어의 레일을 풍화로부터 보호하고, 옥상의 빗물을 배출하는 선형 홈통들이 매립될 두께를 만든다. 세로방향의 알루미늄 메가패널은 이음새 없이 깔끔하게 수직성을 전달하며, 표면에 섬세한 깊이감을 주어 자칫 단조로울 수 있었던 매스에 질감을 부여한다. 불규칙적으로 배치된 창문들은 상당한 깊이를 지녀 매스의 덩어리감을 강화한다. 아래의 매스는 다시 지면과 맞닿은 기단부와 어두운 회색 알루미늄 패널이 약 1:2의 비례로 나누어져 있다. 기단부는 단단하고 경제적인 재료인 콘크리트 블록을 사용해 빗물이나 눈 등 관리 이슈를 예방하고, 혹시 모를 충격에도 대비한다. 블록은 그리드를 강조하는 통줄눈으로 시공되었고, 이는 알루미늄 패널 파사드와 같이 축조의 메시지보다는 균질하고 추상화된 볼륨으로서의 성격을 강조한다. 

방문자는 우거진 식생의 오솔길로 입장한다. 서해의 바다 내음을 품은 짭짤한 바람은 싱그러운 풀 내음과 어우러지고, 자갈은 걸을 때마다 사각사각 부드럽게 미끄러진다. 이곳이 과연 공장인가? 산책하듯 구불구불한 길을 걷다 보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거대한 쇼윈도를 마주하여 내부의 공정을 슬쩍 엿볼 수 있다. 마침내 U자의 중심부에 다다르면 투명한 파사드와 친근한 입구를 만나게 된다. 파사드는 커튼월로 시공되어 추상적인 평면으로 독해되며, 그곳에 삽입된 입구 캐노피 볼륨은 의도적으로 높이를 낮추어 거대한 공장의 스케일을 사람의 스케일로 중재하고 속도감을 낮춘다. 로비는 청량한 파란색의 스틸 계단이 분위기를 주도한다. 얇은 철판이 이음새 없이 율동하듯 상승하는데, 계단 주변의 보이드를 통해 사람들의 시선과 발걸음을 위로 끌어당긴다. 이 계단 또한 파사드 언어와 일관되게 구성 부재의 결합을 시각적으로 최소화하는 추상적 요소로 독해되는데, 1층 바닥의 접합부에만 볼트 체결의 흔적을 남겨 후반부의 경험을 복선처럼 암시한다. 

3층에 올라서야 비로소 건물의 정수를 마주한다. 백색의 천장 마감이 사라지며 각종 설비와 구조체들이 분주하게 노출된 공장으로 갑작스레 변화한다.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전체 공정을 투명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오른쪽의 전창으로 향한다. 일상에서 볼 수 없는 복잡하고 거대한 기계설비들이 줄지어 연결되어 있다. 방문객은 이 시설의 관리자가 된 듯, 플라스틱이 재탄생하는 역동적인 최첨단의 스펙터클을 공정별로 관찰하며 몰입한다. 사실 건물의 중앙에서 시작되는 동선은 매스의 한쪽 끝으로 걸어갔다가 다시 그 복도를 되돌아와야 하기에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설계자는 공장 설비와 면한 벽면의 창 크기와 배열을 섬세하게 조율해, 때로는 벽으로 막아 전시된 콘텐츠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결정적인 순간에만 오프닝을 두어 공정의 현장감을 극대화했다. 또한 중정 측 벽에는 다양한 크기의 창문들을 두어 복도에 적절한 조도를 제공하고, 외부의 자연 요소들을 여러 높낮이로 담아내며 되돌아오는 복도의 경험을 입체적으로 환기한다. 

창문을 담은 밝은 은색의 매스는 분명 2층부터 시작하지만, 막상 2층에서는 그 창문을 경험할 수 없다. 이 수수께끼는 1층의 공장 내부로 들어와야 풀린다. 14미터 높이의 압도적인 공간감을 느끼며 3층에서 내려다보았던 플라스틱 더미와 설비들이 얼마나 거대했는지를 느낀다. 그런데 예상한 경험보다 쾌적하다. 이는 비단 설비나 관리의 우수함뿐 아니라, 높은 천장고와 적절한 건물의 너비, 맞통풍이 이뤄지는 형태, 무엇보다 양측 상단에서 들어오는 자연광 덕분이다. 규칙적인 기둥열 사이를 자유롭게 부유하는 크고 작은 창문들은 공장 설비에 간섭하지 않으면서 내부를 밝혀준다. 빛은 돌출된 외부 매스의 깊이만큼 적절히 산란되어 내부를 밝혀준다. 부유하는 은색의 매스는 이러한 창문들을 담아내기 위한 덩어리로 해석되어 비로소 안과 밖 모두에서 형태의 타당성을 증명한다. 

건축사는 기업이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순환 경제, 공존의 문화 등 무형의 가치를 물리적이고 공간적인 환경으로 구현했다.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가치를 건물로 드러내고 담아내며, 나아가 그 가치가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장소를 만들어 주는 것, 이는 건축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서해의 수평선이 보이는 4층의 다목적 공간은 이 공장의 의미를 되새기며 서로 이야기하고, 머물고 싶은 장소다. 이 공장은 화려한 기교 없이 차분하고 단정하며, 기본기에 충실해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곳곳에서 섬세한 배려를 발견할 수 있어 따뜻하기까지 하다. 건축사는 건축만이 할 수 있는 일과 그 가치에 대해 담담하고 담백하게 답하는 듯하다. 그 여운은 되새길수록 길고도 깊다.

 

 

 

 

글. 마승범 Ma, SeungBum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교수

 

 

마승범  교수·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실내건축학과

 

스튜디오 에스엠에이의 대표이자 미국 건축사(AIA)로, 서울대학교에서 건축학 학사와 석사를,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건축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ODA Architecture NY, 삼우, 공간, 한울에서 실무를 익혔으며, 현재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건축, 인테리어, 가구, 소품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디자인과 예술 작업을 통해 사람들의 일상을 보다 의미 있게 만들고자 한다.

sma@hongi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