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건축사지 2024. 7. 31. 09:20
Putting a period

 

 

 

 

신입사원 시절, 인쇄광고의 카피를 쓸 때 헤드라인에는 마침표를 찍지 말라고 배웠다. 물음표나 느낌표, 쉼표는 다 사용하는데 유독 마침표는 쓰지 않았다. 무심코 마침표를 써서 카피를 넘겨도 함께 작업하는 디자이너가 알아서 헤드라인의 마침표를 빼고 제작물을 만들었다. 문법적으로는 분명 문장의 끝에 마침표를 찍어야 옳은데 헤드라인은 항상 그 문법을 무시했다. 시각적으로 더 깔끔해 보여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검색을 하다가 마침표를 생략하는 것이 미국에서 널리 준수되는 AP(Associated Press)통신의 스타일 지침과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AP통신의 지침은 기사의 헤드라인을 쓸 때 요점을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마침표를 포함한 불필요한 구두점을 없애고 간결하게 작성하라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나 타임지 등 미국 신문과 잡지들은 AP통신의 지침을 준수하여 헤드라인에 마침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다. 헤드라인이 깔끔하고 한 눈에 쉽게 읽을 수 있어야 시각적 혼란을 피할 수 있고 독자의 주의를 필수 정보에 집중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마침표를 찍지 않는 이유다. 신문기사의 머리글에 마침표를 쓰지 않는 관행이 광고에까지 그대로 이어져 인쇄광고의 헤드라인에서도 마침표가 사라진 것이 아닌가 싶다. 같은 맥락에서 영상광고에 자막을 넣는 경우에도 거의 마침표를 쓰지 않는다. 
그런데 SSG닷컴의 2023년 광고에서 굵은 마침표를 발견했다. SSG닷컴은 7년 동안 자사의 광고모델이었던 배우 공효진, 공유와 계약을 종료하면서 두 사람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담은 영상을 만들어 공개했다. 영상은 2016년부터 2022년까지 공효진과 공유가 출연한 쓱닷컴 광고를 파노라마처럼 보여준 뒤 ‘See you again Say Good Bye / 쓱스럽게 안녕.’이라는 자막으로 두 사람과의 작별을 알렸다. 안녕이라는 단어 옆에 찍힌 마침표가 낯설고 신기해 보였다. 

 

SSG닷컴_온라인 광고:See you again Say Good Bye, 쓱스럽게 안녕 편_2023

주로 광고·홍보·미디어 산업계의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 신문인 AP신문은 이 광고를 ‘화려한 마침표로 2막 기대케 하는 쓱닷컴(SSG) 새광고’라고 평가했다. 지금까지 했던 광고의 최종 마무리라는 뜻으로 ‘마침표‘라는 단어를 썼을 텐데, 내게는 문장부호 마침표를 사용했다는 의미로도 읽혔다. 
영화가 끝나면 엔딩크레딧이 영화의 끝을 알리고 미니시리즈 드라마가 끝날 때에는 마지막 장면에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자막과 제작진의 단체사진이 뜨기도 한다. 하지만 광고 캠페인에서 끝을 알리는 사례를 본 기억이 없다. 아무리 오래 이어진 캠페인이라도 예고 없이 슬그머니 중단되고 다른 캠페인이 나온다. 새 광고캠페인을 시작한다는 보도자료는 만들어 배포하지만 캠페인 종료를 알리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SSG닷컴은 캠페인이 막을 내린다는 사실을 제작비를 들여 영상으로 만들고 매체비를 써서 공표한 것이다. 캠페인의 ‘마침’을 알리는 광고의 자막에 ‘마침표’가 쓰였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광고에 마침표가 쓰인 예가 아주 없지는 않다. 애플은 1997년 광고 대행사 TBWA를 통해 만든 슬로건 ‘씽크 디퍼런트.(Think different.)’를 인쇄광고물, 포스터 등에 적용하면서 마침표를 사용하고 있다. 씽크 디퍼런트, 즉 ‘다르게 생각하라’는 해고됐던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복귀한 뒤에 만들어진 슬로건이다. 애플의 선배이자 경쟁자인 IBM이 1915년부터 회사의 철학으로 삼아 널리 사용하고 있던 ‘씽크(Think)’라는 슬로건과 비교되기도 한다. IBM의 전 회장이자 CEO인 토마스 왓슨은 “지식은 생각(Think)의 결과이며, 생각은 이 사업이나 어떤 사업에서든 성공의 핵심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애플은 그냥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고 한 발 더 나가면서 창의성, 개성 및 혁신의 이미지를 선점하는데 성공했다. 

Think Different.

 

애플_슬로건_1997~2002

 

Think

 

IBM_THINK 표지판_다국어 모음 © ibm.com

애플의 씽크 디퍼런트는 또 1959년에 시작된 독일 폭스바겐의 ‘씽크 스몰.(Think Small.)’ 캠페인과 닮은꼴이다. 1950년대 후반, 폭스바겐은 크고 강력한 자동차가 지배하던 미국 자동차 시장에 진출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했다. 당시 폭스바겐의 주요 제품인 비틀(Beetle)은 미국 소비자의 선호도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작고 경제적인 자동차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폭스바겐의 광고 대행사인 DDB는 작다는 약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장점으로 만드는 전략을 구사했다. 씽크 스몰에도 헤드라인에 크고 굵은 마침표가 쓰였다. 애플이나 폭스바겐은 마침표를 사용한 인상적인 슬로건으로 시장의 흐름을 바꾸는데 성공했다. 광고의 헤드라인에서 마침표는 강력한 경쟁자가 시장을 휘어잡고 있을 때 존재감을 드러내는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폭스바겐의 비틀은 2019년 7월 10일 멕시코 푸에블라 공장에서의 마지막 생산을 끝으로 81년 만에 단종됐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31일 비틀과의 작별을 기념하는 광고 캠페인 ‘더 라스트 마일(The Last Mile)’을 선보였다. 신문광고의 헤드라인은 마침표를 생략하지 않은 ‘굿바이.(Goodbye.)’였다. 


Think Small.  Goodbye.

 

폭스바겐_신문광고_1959 / 2019

SSG닷컴과 폭스바겐 비틀의 마침표를 따라가다가, 내가 찍은 수많은 마침표를 떠올린다. 어떤 마침표는 눈물을 삼키며 찍었다. 어떤 건 분노에 부들부들 떨며 찍기도 했다. 관계에 조직에, 다시 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장소에, 이미 지나버린 시간에, 낡은 운동화, 해진 셔츠, 이 빠진 접시에도… 꾹꾹 눌러 마침표를 찍었다.  
앞으로 찍어야 할 마침표들을 생각한다.  
내가 마침표가 되는 그날과 내 모든 당신이 마침표가 되는 그날을 아득한 마음으로 상상한다. 그리고, 
아직 내게 남은 쉼표와 느낌표, 물음표들이 있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rckIPEPcTkI 
SSG닷컴_온라인 광고:See you again Say Good Bye, 
쓱스럽게 안녕 편_2023_유튜브 링크  
 
https://www.facebook.com/VW/videos/2493766500870019/ 
폭스바겐_비틀_온라인 광고: The Last Mile 편_2019_페이스북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2019)』 시리즈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