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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좋은 공간 위한 건축언어 고민, 공동운영체제로 유연하고 다양한 해답 찾는다" 정태권 건축사 2024.7

월간 건축사지 2024. 7. 31. 10:35
Concerned about architectural language for a good space, finding flexible and diverse solutions through a joint operating system

 

 

 

정태권 건축사가 월간 <건축사> 7월호 표지를 장식한 ‘4×4’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강남에 위치한 ‘4×4’는 형태적 기교를 최소화하고 벽돌을 활용해 볼륨을 간결하게 정리한 건축물로, 4개의 층, 4개의 덩어리, 4개의 외부 공간으로 단순 명료하게 정돈돼 있다. 이는 유행을 좇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건축물을 위한 깊은 고민 끝에 나온 답이다. 벽돌로 쌓아 올린 4개의 분할된 덩어리 사이의 외부 공간은 출입구, 노대, 발코니, 테라스로 구성돼 자연과의 만남과 더불어 다양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를 설계한 (주)인에이 건축사사무소의 정태권 건축사와 서영진 프로젝트 매니저(PM)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 사람과 건축의 관계를 탐구하는 ‘인에이’
   첫 신축 프로젝트의 시작

(주)인에이 건축사사무소는 사람(人)과 건축(Architecture)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민하는 젊은 건축 집단이다. 이 사무소는 대학 재학 시절부터 ‘만약 우리가 함께 사업을 한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함께 그려온 네 친구가 모여 시작한 젊은 건축사사무소다. 개소 전부터 서로의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고, 건축을 좋아하고 열정적으로 새로운 공간을 시도하려는 꿈을 가진 이들이 모였다. 이렇게 함께 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4×4’ 프로젝트와의 인연은 2021년 사무소 개소 후 우연히 시작한 첫 준공 프로젝트로부터 비롯됐다. 이 프로젝트는 같은 역삼동에 위치한 근린생활시설로, 1∼3층은 상가, 4∼5층은 주거로 이용되는 건물의 대수선 작업이었다. 과거 도로 사선 제한으로 잃어버렸던 용적률을 찾아내 반듯하게 증축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해당 건축주의 소개를 통해 ‘4×4’ 프로젝트의 건축주가 땅을 매입하고 첫 신축 건물을 짓기 위해 인에이를 찾았다. 인에이 건축사사무소의 첫 신축 설계는 그렇게 시작됐다. 서로 ‘처음’의 의미를 담아 함께 진행한 작업으로, 모두가 재미있게 참여한 프로젝트였다.

 



# 상업 공간 ∩ 좋은 공간, 교집합 확대하기
   건축주 니즈 반영하며 좋은 건축 공간 만들기 위해 노력

정태권 건축사는 “개소 당시에는 리모델링이나 대수선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지만, 우연히 시작한 대수선 프로젝트로 인해 많은 기회가 열리고 다양한 건축주들을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첫 작업에서 시작된 인연으로 강남의 꼬마빌딩들을 여러 차례 작업하게 됐다. 강남구 역삼동에서는 땅값이 높은 만큼 건축 면적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설계가 요구됐다.

오랫동안 부동산에 종사해왔던 건축주는 북쪽 도로에 접한 땅이 건축에 유리하다는 사실은 물론, 면적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건축적 지식도 풍부했다. 좋은 공간·좋은 건축물을 목표로 하는 인에이의 꿈과 수익률을 중시하는 건축주의 요구 사이에서 조율이 필요했다. 건축주의 니즈와 수익성을 최대한 맞추면서도 인에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계속 고민한 결과, 면적에 포함되지 않는 장치를 건축 디자인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4×4’는 상업용 건물이지만 각 층마다 두세 개의 테라스와 발코니를 갖추고 있다. 발코니, 노대, 테라스, 선큰 등 면적에 산입되지 않으면서 외부 공간을 만날 수 있는 장치를 통해 건축 환경을 개선하고자 한 것이다. 이는 건축으로 제안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 사람들이 좋은 공간이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 결과다. 도심의 소규모 필지에서 사선 제한 등의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적절한 발코니와 테라스를 제공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평면을 유지하면서 기둥 등의 구조적 돌출부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작업 내내 고민했다.

상업 공간을 작업하면서 또 다른 고민도 있었다. 서영진 PM은 “전용 공간을 더 확보하려다 보면 결국 지하 공간은 채광이 안 되고 습기가 차는 문제가 생기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건축주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지상층으로 올라가는 공간은 건물의 왼쪽 편에 두고, 지하로는 계단을 연결하지 않았다. 대신 반대편의 선큰 공간을 통해 지하로 내려갈 수 있도록 했다. 1층을 반개 층 들어 올린 후, 직통 계단을 별도로 설치하고 그 위를 오픈시켜 자연스럽게 채광과 환기 문제를 해결해 지하 공간을 개선하는 해법을 찾았다. 이렇게 공간을 나누면 전용 공간은 다소 줄어들 수밖에 없었기에, 최대한 비슷한 사례를 찾아 제안하며 건축주를 설득했다.

 



# 어떤 각도에서도 하나의 형태로 보이도록
   명료한 네 개의 층과 네 개의 덩어리, 네 개의 외부 공간 설계
  
클라이언트와의 소통 방식에 따라 다양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길을 열어두는 것이 인에이가 추구하는 건축의 방향이다. 정태권 건축사는 “튀지 않으면서도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건물이 애초 클라이언트의 요구 조건이기도 했지만, 저희도 여기서 발현할 수 있는 건축 언어가 무엇일지 고민하게 됐다”면서 “누구나 좋아할 디자인, 호불호 없는 디자인을 고민하다 보니 결국 누가 봐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형태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남녀노소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장식적인 요소를 최소화하고, 배관 등의 설비를 내부로 배치하도록 계획하다 보니 형태가 온전해졌다. 건축물의 앞뒤나 정면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하나의 형태로 보일 수 있는 기본에 충실한 건축물을 디자인하려 했고, 그렇게 ‘4×4’ 작품이 지금의 모습으로 탄생했다.

 

 

지난 6월 12일 월간 <건축사> 인터뷰가 진행됐다. 왼쪽부터 본지 편집국장, (주)인에이 건축사사무소 서영진 프로젝트 매니저, 정태권 건축사

# 건축물 자체의 모습 고민한 결과, 생각지 못한 장점 얻어
   작은 디테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

준공 후 서영진 PM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옥상이다. “설계 단계에서는 상상만 했던 공간이었는데, 막상 짓고 나서 올라가 보니 주변이 잘 보이고 정말 좋았다”면서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와 만족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태권 건축사도 이야기를 덧붙였다. “건폐율 60%에 용적률이 200% 정도 되는 땅인데, 건폐율을 많이 활용하지 않았다”며 “건물을 많이 펼치기보다는 응축시키고 높이를 더 높이는 방식을 선택한 결과 주변 건물보다 훨씬 높은 매스가 형성됐고, 예상치 못했던 옥상 뷰를 추가로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건물을 낮고 넓게 지었다면 일조사선 등의 법규에 의해 형태가 제한되었을 텐데, 우리는 그런 부분에서 조금 더 자유롭게, 온전히 이 건물이 서 있을 수 있도록 의도했다. 그 선택이 여러모로 장점으로 다가왔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첫 신축 프로젝트에 열정을 다한 만큼, 기간과 다투며 천장과 배관 정리 부분에서 충분히 디테일하게 다듬지 못한 점이 서영진 PM의 마음에 걸렸다. 정태권 건축사는 “모든 상업 건축의 숙명인 것 같다. 이런 금싸라기 땅 같은 경우, 대출이나 금전적 문제들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넉넉하지 못한 설계 기간에서 디테일이나 배관 등을 완벽히 준비해 납품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설계 기간이 충분히 길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공사 감리를 우리가 맡아 납품 당시 챙기지 못한 디테일을 후에라도 챙길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건축’
   각자의 개성 유지하며 다양한 디자인 도출할 것

과거에는 한 명의 건축사가 직원들을 이끌어가는 것이 이상적인 건축사사무소의 형태로 여겨졌다면, 현재 주목받고 있는 새로운 조직 체계는 이와 다르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에서는 학과를 졸업하면 자격을 취득하게 되어 여러 명의 건축사가 공동으로 작업하며 각기 자신만의 특화된 영역을 갖고 업무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국내에서도 탄력적 대응을 위해 새로운 구조를 도입하고 있다. 다수의 건축사와 여러 명의 리더가 함께 사무소를 이끌어가는 인에이 건축사사무소가 그 예이다.

정태권 건축사는 “건축의 경계가 허물어진 세상에서, 투시도 작업 등도 AI 등의 기술로 대체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 같다. 그러한 부분에 본질적인 질문을 할 수 있는 건축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진짜 좋은 건축물은 무엇인가, 상업 건축물에서는 어떤 것을 신경 써야 하는가. 이런 문제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최소한의 가치를 공유하고, 각자의 개성과 스타일을 유지하며 디자인이 다양하게 도출되는 방식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사무소 운영 철학을 밝혔다.

어떻게 보면 지향점이나 일관된 철학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많은 가능성을 열어놓고 서로의 스타일을 참조하면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더 좋아질지 답을 찾아나가는 것이 인에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조직 운영 방식이다. 하나의 답으로 통일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다양한 길을 열어두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이는 급변하는 시대에 다양한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방식이며, 시너지 효과를 통해 더 좋은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는 모델로도 볼 수 있다.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건축을 하는 것을 목표로, 그 안에서 개인의 성공을 이뤄낼 수 있는 집단으로 성공하고자 한다”는 답변 또한 ‘인에이’의 일관된 목소리를 드러낸다.

인에이 건축사사무소는 이제 막 개소 4년 차에 접어들었다. 좋은 사람들과 시작했지만, 경험 부족과 동업 문제에서 비롯된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완벽한 준비 후 시작하기보다, 추후 부족한 것을 채워가겠다는 용기만으로도 시작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네 친구는 깨달았다. 설계하고 작품을 만들고 보여주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이 모였으니, 개소는 시기의 문제일 뿐이었다.
독자들에게 한 마디를 부탁했다. 정태권 건축사는 “건축사사무소 개소를 준비하고 있거나 어떤 일의 시작을 앞두고 계시다면, 현실에 부딪혀 지치더라도 마음속에 있는 불씨(열정)을 지켜내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서영진 PM도 “그 마음만 잃지 않는다면 더 좋은 건축, 그리고 스스로 좋아하는 건축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인에이 건축사사무소는 사람(人)과 건축(Architecture)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민하는 젊은 건축 집단이다. 인에이 건축사사무소는 사회적 책임에 따른 원대한 건축 비전을 제시하기에 앞서 스스로 감당하고 책임질 수 있는 시작점을 찾고 나아갈 수 있는 목표를 위한 타협과 소통을 우선한다.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오가는 수많은 대화에 집중하고 귀 기울이는 것이 좋은 디자인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방법이라 믿는다. 사진은 네 명의 공동대표 모습(왼쪽부터 서영진 PM, 윤종호 건축사, 신용환 건축사, 정태권 건축사).

끝으로, 정태권 건축사는 “일반 사람들은 ‘건물을 짓는다’고 하면 건축사를 찾기보다 부동산을 먼저 찾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건축사라는 직업이 일반인들과 거리가 있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며 “그래서 주변의 건축사를 소개받는 경우가 많은데, ‘맞아, 그 사람이 내 주변에 있는 건축사였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기 위해 온라인 등을 통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저희 이야기에 귀기울여주시는 분들이 많다. 이런 이야기를 더 많이 전달할 수 있는 건축사분들이 많아지는 것이 건축의 전체적인 문화가 나아질 수 있는 방향이 아닐까 생각한다”면서 “좋은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하시는 다양한 건축사분들이 많아져서 서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고, 저희가 그런 부분에서 또 다른 운영 방식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인터뷰 정태권 Jeong, Taekwon (주)인에이 건축사사무소

대담 박정연 편집국장

글 육혜민 기자

사진 홍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