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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에서 백두까지 2024.8

월간 건축사지 2024. 8. 31. 09:25
From Halla to Baekdu

 

 

 

우리는 산의 나라요 산의 민족이다. 국토의 70%가 산으로 산림청 통계상(2007년) 남한에만 4,440개의 산이 있다. 백두대간을 근간으로 한 산으로 이루어진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의 기운을 모두 받아 세계에서 가장 강한 민족이다. 대표적인 산이 백두산과 한라산으로 민족의 영산(靈山)이자 성산(聖山)이다. 두 산의 머리엔 화산 폭발로 생긴 분화구로 백록담과 천지를 이고 있어 신비로움을 더해 준다. 
지난 6월 일주일 사이로 한라산(1,950m)과 백두산(2,744m)을 다녀왔다. 6월 7일부터 9일까지(2박 3일) 전국건축사 등반대회가 제주에서 열렸다. 대한건축사등산동호회 2024년 상반기 행사로 10년 전에 이어 제주에서 행사를 갖고 한라산에 올랐다. 그리고 6월 14일부터 17일까지 건축사가 주축이 된 대학원산악회 300회 등정 기념으로 백두산을 다녀왔다.

 



바다와 바람이 만든 한라산
사람도 풍경이 되는 매력적인 섬 제주도, 한라산은 제주 사람에게는 아버지 같은 산이다. 
매번 갈 때마다 바다처럼 넉넉하고 바위처럼 단단한 모습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2021년부터 한라산 정상 백록담을 탐방할 수 있는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는 ‘한라산 탐방 예약제’를 시행 중이다. 하루 탐방객 수는 성판악 코스 1,000명, 관음사 코스 500명이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6월 8일(토) 새벽에 기상특보(기상악화)로 성판악 탐방이 통제된다는 안내 문자가 떴다. 숙소의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제비가 낮게 날며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영실코스로 변경하여 올라가기로 했다. 등산로는 길이 5.8킬로미터로 한라산 코스 중 가장 짧으면서도 아름다운 구간이다. 이곳은 별도 예약이 필요 없다.


특히 철쭉의 ‘분홍빛 물결’을 볼 수 있는 곳인데, 올해는 개화 시기가 열흘 정도 빠른 데다 5월 중순경 꽃이 피기도 전에 냉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접한 터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제1주차장에 도착하니 비가 더욱 세차게 내린다. 등산객은 우리 서울건축사 등산팀밖에 없다. 화장실에서 우비를 걸치고 산행을 시작, 영실탐방안내소부터 3시간 정도 남벽 분기점까지만 다녀오기로 했다. 해발 1,280미터 지점에서 시작, 주로 데크길로 이어지는 탐방로는 난이도가 비교적 쉬운 편인데 문제는 비바람이다. 길바닥엔 빗물이 고여 등산화가 바로 젖었다. 왼편 계곡에 물 내려가는 소리가 장쾌하다. 수없이 겪는 이런 우중 산행도 나름 즐겁다. 산에서 나쁜 날씨는 없다.

얼마쯤 가다 보니 영실기암 안내판이 있고 오른편으로 흐릿하게나마 두 줄기 쌍폭포가 실타래처럼 흘러내린다. 전망대에서 잠시 휴식 후<사진 1> 다시 이동하면서 철쭉을 처음 목격했다. 더 올라가니 짙은 운무 사이로 영실기암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길가엔 철쭉을 대신한 병꽃과 찔레꽃이 우리처럼 거센 비바람을 맞고 있다. 해발 1,600미터 표지석 오른쪽 너머로 병풍바위가 보인다.

 

앞으로 수많은 계단이 펼쳐져 있는데 운무 속에 가려져 있다. 비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싸락눈까지 내리며 얼굴을 따갑게 때린다. 오래전엔 햇볕이 너무 강해 팔뚝이 벌겋게 익었는데 지금은 추워서 소름이 돋는다. 해발 1,700미터 부근까지 올라가다 윗세오름을 앞두고 하산을 해야 했다. ‘이미 젖은 신발은 다시 젖지 않는다’는 최영미 시인의 시구(詩句)를 떠올리면서 고난도 감당을 해내면 살아갈 힘이 되고 추억이 된다는 생각을 다시 또 가져보았다.

 



하늘을 품은 백두산(천지)
우리 민족의 영산이며 고조선과 고구려의 웅혼이 깃든 백두산이 지난 3월 중국 이름 ‘창바이산(長白山)’으로 유네스코(UNESCO)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됐다. 백두산은 4분의 3이 중국, 4분의 1이 북한에 속한다. 그러나 천지는 약 55%가 북한이다. 북한도 2019년 백두산을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해 달라고 신청했으나 후보지에 거론되지 못했다. 국내 학계는 이번 기회에 백두산을 중국화하려는 시도이자 동북공정의 일환이라 분석하며 우려하고 있다. 

백두산 정상은 ‘병사봉(兵史峰)’이 본래의 이름이다. 장군봉은 60년대에 병사를 병사(兵士)로 착각한 김정일이 김일성 탄생지 위상에 걸맞지 않다며 백두혈통 신격화 차원에서 ‘장군봉’으로 바꿨다고 한다.
백두산 오르는 길은 동파, 서파, 남파, 북파 4개 코스가 있는데, ‘파’는 기슭, 또는 비탈이라는 뜻으로 북한 지역의 동파 외에는 모두 중국에 속해 있으며 남파는 개발 중에 있다.

2006년 8월 12일 처음으로 백두산 등정길에 올랐다. 사나운 비바람의 악천후 속에 서파에서 북파까지 18킬로미터 종주를 하며 죽을 고생을 했다. 그리고 9시간 산행 끝에 잠시나마 비가 그치고 먹구름 속에서 기적처럼 하늘이 열리며 천지를 볼 수 있었다.<사진 2> 천문봉에서 한걸음에 달려 내려가 천지 물에 손을 담그고 가져간 물을 쏟아부었다(지금은 종주 산행은 물론 2009년부터 천지로 내려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그리고 올 2월 17일, 눈과 얼음이 덮인 천지를 보고자 다시 백두산을 찾았지만 기상악화로 장백폭포까지만 다녀와야 했다. 백두산은 백 번 와야 두 번 천지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기상이 안 좋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가게 된 것이다. 서파 코스는 보수공사 중이었다가 우리가 가기 이틀 전(6월 13일)에 개통되었다.

 



백두산 서파로 올라가 운무 속에 천지를 보다
백두산 서파로 가는 길에 3번의 셔틀버스와 미니버스를 갈아타고서야 멀리 백두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그재그 오르막길 차창 밖으로 야생화 노랑만병초가 군락으로 피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사진 3> 그런데 아래와 달리 날씨가 흐려지면서 주차장에 도착하니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그래도 기대를 안고 총 1,442개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데 40분 정도 걸린다. 정상(2,470m) 위에는 6월 중순인데도 아직 녹지 않은 눈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일본 북알프스에서는 7월 말인데도 8미터 이상 눈이 쌓여 있는 것을 보았었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북한과 중국의 경계지역을 나타내는 37호 경계비였다. 이곳이 중국 영토라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며 천지를 보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운무 속에서나마 반쯤 가려진 천지를 보았다.<사진 4> 여지를 남겨둔 모습이 오히려 더 신비롭고 매력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2006년엔 비구름 속에 바로 옆에 두고도 볼 수 없었다. 줄 서서 천지 표지석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자리를 옮겨 더 좋은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 했으나, 정상 부분의 날씨는 수시로 바뀌어 점점 더 기상이 안 좋더니 급기야 비와 함께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옷을 다시 꺼내 입고 서둘러 하산했다. 

 

천지는 백두산의 16개 산봉우리로 둘러싸여 해발 2,200미터 높이에 위치한 화산의 분화구로, 백두산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연못이다. 전체 면적은 10제곱킬로미터, 호수 주위의 길이가 13킬로미터 정도이다. 가장 깊은 곳은 373미터나 되고 평균 수심은 200미터로 20억 톤 가량의 물이 항상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이곳 천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송화강, 두만강, 압록강을 이루고 있다. 
점심 후 용암과 모래들이 씻기며 생성된 금강대협곡을 트레킹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동양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불리는 이곳은 백두산 화산 폭발로 분출된 용암이 흐르면서 생긴 V자 계곡에 다양한 모양의 기묘한 바위들이 있는데 울창한 나무숲으로 가려져 있는 것이 아쉽다. 천연 데크길 따라 천혜의 원시림과 함께 새소리를 들으며 삼림욕을 즐겼다.

 



다음날 북파로 올라가 천지를 보려 했으나 폭설로 이번에도 실패, 꿩 대신 닭으로 장백폭포 관람
지난 2월에 왔을 때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아침 일찍 서둘러 준비를 했는데 좋지 않은 소식이 들린다. 어제 백두산 북파 쪽에 많은 눈이 내려(서파에는 우박) 산문이 폐쇄되었다는 것이다. 현지 가이드로서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그나마 장백폭포는 갈 수 있다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곳 이도백하의 날씨는 더없이 맑은데…. 허탈한 마음으로 북파산문 터미널로 이동해 셔틀버스를 타고 달렸다. 창밖으로 자작나무 숲이 보였다. 다들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얼마쯤 가다 보니 하늘이 잿빛으로 변한다. 그리고 구름이 몰려오더니 차에서 내리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급히 우비를 입고 장백폭포를 향해 걸어 올라갔다. 여기도 주로 계단인데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얼마 후 비가 멎고 조금씩 날이 개기 시작한다. 
천지의 물이 흘러 골짜기를 따라 쏟아지는 장백폭포. 4개월 만에 다시 그 앞에 서니 또 새롭다. 1년 내내 얼지 않는 장백폭포는 높이 약 60미터의 웅장한 폭포로, 200미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폭포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폭포는 크게 두 갈래의 물줄기로 나눠져 있고, 동쪽 폭포 수량이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하며 송화강으로 흐른다. 또한 용이 날아가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비룡폭포’로 불리고 있다.
오르는 길 주변에 온천 지대가 있는데, 뜨거운 지열이 지하수를 데워 피어오르는 연기와 지표면에 흐르는 자연 온천수를 볼 수 있다. 이 뜨거운 온천물을 이용해서 달걀이나 옥수수를 삶아서 팔고 있었다. 폭포를 뒤로하고 내려와 소천지와 녹연담을 보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에필로그
삶의 의미가 느껴지지 않을 때, 삶의 가치를 다시 찾고 싶을 때 나는 산을 찾는다. 산에 가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호연지기(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 큰 원기)와 함께 몸과 마음의 근육이 생긴다.
40년 이상 산을 가까이하다 보니 산은 높이 올라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깊이 들어가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로 높은 지위에 오르기보다는 더 깊은 인생의 길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올라갈 때는 강건해지고 내려갈 때는 현명해져야 한다. 인생의 법칙도 그러하지 않을까?
산을 보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면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산을 오르면서 자연이 준 선물에 감사하고 나의 두 다리에 감사하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산행은 쉽지가 않다. 그런데 앞으로는 로봇 옷을 입고 등산하는 세상이 온다고 한다.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이 만든 ‘입는 로봇’을 착용하면 근력의 30%를 보강해 주고 장애물도 기계가 스스로 인식해 등산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2026년에 상용화 예정이라니 등산 초보자들이나 노약자들에겐 희소식이 될 수 있겠다.

가슴을 뛰게 하는 이번의 한라산과 백두산 정상에서 겨레의 염원인 통일과 번영을 기원했다. 그리고 한라에서 백두까지 직항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꿈을 꾸어본다.

 

 

 

 

 

 

글·사진. 이종호 Lee. Jongho 시원 건축사사무소

 

 

이종호  건축사 · 시원 건축사사무소

 

연세대 공학대학원을 졸업(공학석사)했다. 현재 시원건축사사무소 대표이자 서울특별시건축사회 풍수지리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서울특별시건축사회·대한건축사협회 등산동호회 회장을 역임했다. 제1회 간향건축문학상 수상 및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특별자치시) 수필 공모전에서 당선(국무총리상)했고, 노원문화정보센터 등의 설계공모에 당선된 바 있다.

leewoonp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