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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의 건축유산 ② 사마르칸트의 이슬람 예배공간 - 모스크 2024.8

월간 건축사지 2024. 8. 31. 10:00
Architectural Heritage in Samarkand ② Mosques in Samarkand

 

 

 

 

<건축사> 6월 호(June 2024, Vol.662) 사마르칸트의 건축유산 ① 실크로드 사마르칸트에서 계속

 

1-2. 사마르칸트-도시의 형성과 구조 
전 호에 이어 도시형성과 구조에 대해 세계유산 등재 당시의 문헌을 토대로 조금 더 부언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중앙아시아를 가로지르는 큰 교역로들이 교차하는 곳에 있는 사마르칸트는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세계 문화들의 교차로이며 용광로였다. 기원전 7세기에 고대 도시 아프로시압으로 건설된 사마르칸트는 14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티무르 제국 시대에 가장 큰 번영을 누렸다. 고고학 발굴에 의해 기원전 제1천년기의 전반기에 존재했던 거주지의 유적이 계속 드러나고 있다. 한국 국가유산청이 발굴프로젝트 및 출토유물 보존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소그디아. Author: Kmusser English: This is a map of area around the Aral Sea including the Amu Darya and Syr Darya rivers. The Aral Sea boundaries are circa 1960 but the political boundaries are the present-day ones. Countries that are at least partially in the Aral Sea watershed are in yellow.

(1) 소그디아나의 수도 사마르칸트 – 실크로드의 중심지
중앙아시아에 처음으로 호라즘(Khorezm), 박트리아(Bactria), 소그드(Sogd) 같은 거대 국가들이 생기던 시기에 전략적 요충지였던 아프로시압은 소그디아나(Sogdiana)의 수도였다. 기원전 6세기부터 4세기 사이에는 아케메네스 제국(Achaemenid Empire)의 일부였고, 기원전 4세기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제국에 속했다. 중국, 아프카니스탄, 이란, 인도, 캅카스 지방의 교역로가 교차하는 곳에 위치한 사마르칸트는 서기 2세기에 비단 교역의 중요한 중심지로 번성하기도 했다. 


- 호라즘 지역은 중앙아시아 서부에 위치한 역사적 지역으로, 아무다리야강 하류 유역의 유목민들의 오아시스 도시로 번창했다. 8세기경 이슬람 왕조에서 이슬람 종교가 전파되었고, 9세기 무렵에는 이슬람교를 수용하게 된다. 동쪽으로는 키질쿰 사막, 서쪽으로는 우스튜르트고원, 남쪽으로는 카라쿰 사막, 북쪽으로는 아랄해가 있다. 현재는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으로 분할되어 있다. 

- 박트리아는 힌두쿠시산맥과 아무다리야강(옥서스) 사이에 있는 역사적 지역으로 불교의 발상지인 고대 간다라 지방과 마주하고 있다. 박트리아는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의 남쪽과 아프가니스탄의 북쪽으로, 근래에는 중앙아시아의 모든 나라를 지칭하는데 쓰인다. 기후가 적합한 산지로, 물이 많고 땅은 비옥하다. 

- 소그디아 또는 소그디아나(Sogdiana)는 ‘소그드’(Sogd)의 ‘땅’(ia)이라는 의미를 지닌, 고대 이란족 계열의 유목민족인 스키타이인들을 부르는 단어로 소그드인들이 사는 나라라는 뜻이다. 중앙아시아의 아무다리야강과 시르다리야강 상류의 중간을 동서로 흐르는 제라프샨 강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이 지역은 비옥한 지역이었다. 오늘날의 중앙아시아의 일부 지역을 포함한다. 소그디아나는 중국과 서아시아, 유럽을 잇는 동서의 대상 무역로, 즉 실크로드의 요충지였을 뿐만 아니라 남으로는 인도, 북으로는 초원의 세계를 잇는 교통상의 요지로서 국제적인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소그드 국가들은 정치적으로 완전히 통합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통합된 상태에서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소그디아나의 남쪽은 그리스 박트리아였고, 서쪽은 호라즘이었으며, 북서쪽에는 강거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2) 이슬람의 유입과 이슬람 도시로의 변화 
6세기에 투르크 왕국의 땅이었던 도시는 이슬람 문화가 침투하기 시작했던 712년에 쿠테이바-이븐-무슬림(Kuteiba-ibn-Muslim)에게 정복당했다.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영토인 마베라나르흐르(Maverannahr)와 트란스옥시아나(Transoxiana) 지역에 이슬람 문화가 유입되었다. 아랍의 지배자들은 고대 신전을 모스크, 행정 건물, 교육 시설, 궁전 그리고 국고로 바꾸었다. 이란계(系) 사만 왕조가 9~10세기, 투르크 인들은 11~13세기에 이 도시를 점령했다. 이어 13세기에는 호라즘 왕국에 속했다가 1220년에 몽골 칭기즈 칸의 침입을 받으면서 파괴되었다. 

사마르칸트는 티무르(Timur the Lame, Tamerlane, 1336~1405)의 노력으로 주요 중심지로 떠올랐다. 사마르칸트는 아프로시압의 남서쪽인 현재 위치에 다시 지어졌고, 강력한 티무르 제국의 수도이자 중앙아시아에서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 인도로까지 뻗은 정복지로부터 가지고 온 재화의 저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울루그 벡(1392~1449, r. 1409~1449)과 그의 후계자들이 통치할 때까지 티무르 제국의 문화적 수도로 남아 있었다. 

-티무르 왕조는 군벌 티무르를 시조로 하는 몽골족 부족 출신의 수니파 무슬림 왕조다. 이 왕조에서 세운 역사적으로 두드러지는 정체로 페르시아-중앙아시아의 티무르 제국(1370~1507년)과 인도 아 대륙의 무굴 제국(1526~1857년)이 있다.

(3) 주변제국의 끊임없는 쟁탈 중심지로서의 사마르칸트
티무르는 성채, 쿡-사레이(Kuk-Saray, 푸른 궁전), 그리고 다른 중요한 건물들을 지었다. 이 시기의 특징은 예술들이 새롭게 통합됐다는 점이었다. 사마르칸트의 전통은 제국의 다른 지역들, 즉 페르시아 호라산과 호라즘 지역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도시의 주요 문들 앞에 비비하눔 모스크와 구르 에미르 단지, 무하마드 술탄의 궁전 옆에 에미르(Emir)의 무덤을 지었던 것도 같은 이치였다. 도시의 동쪽 문은 레기스탄 광장으로 알려진 도시의 중심부와 연결되며, 울루그 벡은 1447년 레기스탄 광장에 주요 건물들을 짓기 시작했다. 

17세기에도 몇몇 눈길을 끄는 건축물들이 지어졌지만, 16세기에 우즈벡의 점령(1500) 이후 16세기에 사마르칸트는 부하라 칸국(1500~1920)에 속하게 되면서 점차 이전의 중요성을 잃었다. 17세기에 지어진 건축물들 가운데는 레기스탄 광장의 울루그 벡 마드라사 맞은편에 얄란투시 바하두르(Yalandtush Bahadur)가 세운 셰어도르(Shir-Dor) 마드라사가 포함된다. 뒤이어 레기스탄 광장에 틸라-카리(Tilla Kari) 마드라사와 새로운 금요일 모스크(Friday mosque)가 지어지면서 단지를 이루게 되었다. 18세기에는 경제적으로 심각하게 쇠락했다. 

-부하라 칸국(우즈베크어: Buxoro Xonligi, 타지크어: Χоноти Бухоро)는 중앙아시아에 있었던 나라 중의 하나이다. 1500년, 티무르 제국을 대체하여 사마르칸트까지 영토를 넓혔으나, 19세기 이래 차츰 쇠퇴하였다. 또한, 부하라 칸국은 코칸트 칸국, 히바 칸국과 함께 우즈베키스탄의 3대 칸국 중 하나였다. 

(4) 현대 도시로 가는 사마르칸트
그러다 러시아가 1868년에 사마르칸트를 점령해 1887년에 지방 수도로 삼았고, 점차 도시의 경제는 회복되어 갔다. 1888년에 카스피 해 철도가 놓이면서 유럽의 러시아와 중앙아시아가 연결되었고, 철도는 중요한 교역 중심지로서 사마르칸트의 역할을 강화시켰다. 

러시아는 학교, 교회, 병원을 지었고, 사마르칸트의 서쪽 지역은 새로운 도시 계획에 따라 재개발되었다. 그러나 티무르 시대에 지어진 성채 같은 몇몇 기념물들뿐만 아니라 도시의 성벽과 문들이 당시에 파괴되기도 했다. 20세기 초 이 도시는 세 주요 구역들로 구성되었다. 고대 도시 아프로시압의 고고학 발굴 지역, 중세 티무르 도시, 1870년대에 건설을 시작한 현대 도시가 세 주요 구역들이다. 

현대 도시는 1924~1930년에 우즈벡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Uzbek SSR)의 수도였다가 나중에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이곳의 많은 기념물이 세계유산의 유적지에 포함된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들은 샤히-진다 단지, 하즈라트 히즈르(Hazrat-Hizr) 모스크, 아프라시압 고고학 발굴 지역에 있는 도시 성벽 유적, 비비하눔 단지, 레기스탄 단지, 구르에미르와 루하바드(Rukhabad) 단지, 울루그 벡 천문대, 압디다룬(Abdi-Darun)과 이슈라트-호나(Ishrat-khona) 단지, 19세기에 지어진 도시 정원 단지(City Garden ensemble) 등이다.  


※ 세계유산 신청서 본문의 내용을 차용하여 보완 및 첨삭. 
    https://heritage.unesco.or.kr/사마르칸트-문화-교차로


 

 

 

사마르칸트의 건축유산 ② 사마르칸트의 이슬람 예배공간 – 모스크

이슬람 건축에서 예배 공간(모스크), 교육 및 수행공간(마드라사), 사후 공간(마우솔레움/영묘)을 따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예배공간과 교육 공간이 함께 있던가 교육공간이 사후 공간과 같이 있던가, 모두가 다 함께 있던가 대개 앙상블로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가치를 존중하여 공간별로 소개를 하고 문맥을 어렵지 않게 이어 가기 위해 전 후에 부언 설명을 하기로 한다.

 

틸라 카리 모스크와 마드라사 평면(재작성 : 조인숙)


2. 사마르칸트의 주요 이슬람 예배공간
    – 모스크 Mosque

무슬림은 보통 시간대에 관계없이 태양의 하늘 경로에 따라 매일 다섯 번(새벽dawn, 정오noon, 오후mid-afternoon, 일몰sunset, 그리고 밤night) 기도한다. 
주무아(Jumu'ah -"day of congregation")는 아랍어로 금요일을 의미하며, 무슬림들이 매주 금요일 정오 이후에 정오예배 기도 대신에 하는 기도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한 곳에서 기도를 하기 위해 대규모 모스크를 조성한다. 금요일 정오 기도회를 주최하는 모스크는 회중(会衆) 모스크, 금요일 모스크(아랍어 masjid jāmi' 또는 jāmi', 터키어 Cami), 대 모스크, 그랜드 모스크(아랍어 jāmi' kabir, 터키어 Ulu Cami) 등 명칭이 다양하다. 이는 간단히 말해 오체투지(五體投地, prostration) 기도를 하는 곳이다.
초기에는 한 도시에 있는 회중 모스크의 수가 엄격하게 제한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고 도시가 커지면서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여러 모스크가 같은 지역에서 금요일 기도회를 주최하게 되었고, 그 결과 금요일 모스크의 숫자제한은 더 이상 두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 회중 모스크 또는 금요일 모스크(A congregational mosque or Friday mosque)는 공동체 공간으로서 기도와 사회적 참여가 가능하므로 이슬람 지역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동체의 모든 남성 구성원은 금요일 기도회에 참석해야 하므로 회중 모스크는 그들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커야 하는데 규모는 공동체마다 다르고 서로 다른 지역의 회중 모스크 사이에는 차이점과 유사점이 있다. 

모스크를 굳이 규모나 기능을 중심으로 구분을 하자면 회중 모스크(자미jami or masjid jami: congregational mosque)는 집회나 기도를 위한 규모가 큰 기도처이고, 소규모의 동네 사원 마스지드(masjid: neighborhood mosque)나 기도실(Musalla or Namaz-gah: prayer enclosure)은 일상생활과 아주 밀접한 소규모 기도처다. 한국에서는 성원(聖院) 또는 사원(寺院)이라 칭한다.

마스지드(Masjid) 또는 모스크(mosque)는 무슬림 기도처다. 일반적으로 지붕이 있는 건물을 의미하지만 어느 장소나 가능하다. 야외 안뜰과 같이 이슬람 기도가 수행되는 곳이다. 원래 모스크는 초기 무슬림의 단순한 기도 장소였으며 정교한 건물이라기 보다는 열린 공간이었다. 이슬람 건축의 첫 번째 단계(서기 650~750년) 초기 모스크는 벽으로 둘러싸인 개방형 및 폐쇄형 공간으로 구성되었으며, 종종 첨탑이 있어 이슬람 기도가 매일 전달되었다.
무살라(Muṣallá)는 이슬람 기도처로 모스크와는 별개의 공간이다. 전통적으로 일년에 두 번 열리는 Eid 기도와 Sunnah에 따른 장례 기도에도 사용된다.
‘무살라’는 살라(ṣallā, 표준 기도)를 수행하기 위한 방, 구조물 또는 장소를 의미할 수도 있으며, 모스크보다 작을 때는 ‘기도실’로 번역되기도 한다. 금요일 기도나 이드 기도와 같은 대규모 회중 예배에는 사용되지 않고, 일반적으로 민바(minbar)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나마즈가(Namaz-gah)는 페르시아어로 ‘기도처(Place of Prayer)’ 라는 의미다. 

 

 


2-1. 모스크의 건축적인 유형 구분
(1) 하이포스타일 모스크(the Arab Hypostyle Mosque) : 기도실이 무한히 늘어날 수 있는 수직 지지대 또는 기둥으로 구성된 모스크로 초기에 지배적이던 유형. 

 

히바의 줌마 모스크 : 히바(Khiba)의 줌마 모스크는 목조 기둥이 213개이다. 3.15m x 3.15m 그리드로 17줄 x 13 줄인데, 가장 끝 열에 다섯 개가 빠지고 광정(光庭)에 하나씩 두 개 빠지고 미흐랍 부위에 하나가 빠져서 221-8=213개의 저마다 다른 기둥이 있고, 상당부분의 천정은 목조말각조정을 하고 있다.
튀르키예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 532-37


(2) 이완 모스크(Iwan Mosque/The Persian four-iwan mosque) : 기도실이 안뜰을 둘러싸고 있는 이완 또는 최대 4개의 이완인 모스크. 중세에 가장 인기 있는 유형이었으며 이란에서 풍미했다. (118쪽 틸라 카리 모스크 평면 참조)


(3) 중앙 돔 모스크(the Turkish Central-Dome Mosque/The centrally-planned mosque) : 기도실 공간이 더 작고 낮은 반 돔으로 둘러싸인 중앙 돔에 의해 지배되는 모스크. 이는 15세기 오스만 제국에 의해 도입되었다.(Hagia Sophia, 532–37)


(4) 세 개의 돔 모스크(the Indian three-dome mosque) : 이 형식의 대표적인 인도의 타지 마할은 단순 무덤으로 모스크 기능은 사실 없다.

 

세 개의 돔 모스크-The Taj Mahal in Agra, India.

 


2-2. 모스크의 전례적인 요소들
모스크의 전례적인 요소들(The Liturgical Elements of a Mosque)을 내•외부로 나눠서 살펴본다. 

① 모스크 내부 공간의 주요 요소들은 민바르(Minbar) - 키블라(Qibla) - 미흐랍(Mihrab)이다.

 

키블라(Qibla)-미흐랍(Mihrab)-민바르(Minbar). 틸라 카리 모스크

이맘(기도의 지도자)이 회중에게 연설하는 여러 계단으로 이루어진 높은 단인 민바르(Minbar)는 일반적으로 메카(Mecca)의 카바(Kaaba) 방향인 키블라 벽(Qibla: direction)과 벽감 미흐랍(the Mihrab: a wall niche)의 오른쪽에 위치한다.


② 모스크 외부 공간의 주요 요소들은 진입 부분과 안뜰 및 상징을 포함한 조형물이다.


-모스크로 들어가는 입구부분의 이완(Iwan) - 피스타크(Pishtaq) - 무카르나스(Muqarnas) : 이완은 직사각형의 홀 또는 공간으로, 일반적으로 아치로 되어 있고 삼(3) 면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나머지 한 면은 완전히 열려 있다. 이완으로 향하는 공식적인 관문은 페르시아어 용어로 피스타크라고 불리는 거대한 사각형 프레임인데, 건물 정면에 돌출된 포털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캘리그라피 밴드, 유리 타일, 기하학적 디자인으로 장식된다. 무카르나스(Muqarnas)는 이완의 내부를 장식하는 종유석 형태의 장식이다. 이완의 내부는 기하학적 문양으로도 장식한다. 무카르나스는 둥근 천장이나 돔의 표면이 하중 지지 기능이 없는 벽감 모양의 셀로 세분된다.

 

이완-피스타크-무카르나스


-산(Sahn: courtyard) – 리와크(Riwaq: arcade/portico) – 미나레트(Minaret: tower) : 이슬람 건축의 안뜰, 특히 모스크의 공식적인 안뜰인 산(Sahn)이 있고, 적어도 한 쪽이 열려 있는 아케이드인 리와크가 안뜰인 산(sahn)을 에워싸고 있다. 리와크는 종종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 사이의 전환 공간 역할을 한다. 포르티코 또는 아케이드 구조로서 더운 기후에서 그늘을 제공하고 햇빛을 조절하며 모든 지역에서 비를 피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예배자들이 기도하기 전에 씻는 의식을 수행할 수 있도록 모스크 안뜰 중앙에는 재계분수(齋戒噴水, Ablution Fountain)가 있고, 돔과 건물을 둘러싼 미나레트라 불리는 첨탑이 있다. 

 

산-리와크-재계분수

안뜰 산(Sahn)은 유럽의 중세 종교건축물의 회랑(cloister)과 같은 기능이다. 굳이 한국건축과 비교하자면 한국 궁궐이나 사찰 공간에서 주요건축물을 너른 마당이 에워싸고 그 마당을 회랑으로 에워싸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미나레트(Minaret)는 예배 시간 공지(아잔 Adhan: 기도요청 ṣalāh)를 하는데 내는 일종의 외침에 사용되는 첨탑이다. 대부분의 현대 모스크에서 아잔은 무살라(기도실)에서 마이크를 통해 미나레트의 스피커 시스템으로 호출된다. 첨탑은 일반적으로는 무에진(muezzin: to call/calling one)이 무슬림 기도 요청(adhan)을 하는 데 사용되지만, 이슬람의 랜드마크이자 상징으로도 사용된다. 두껍고 웅크린 듯한 모양의 탑에서부터 솟아오른 연필처럼 가는 첨탑까지 다양한 형태가 있다.

미나레트 (루하바드 모스크_좌), 미나레트 (호자 아크라르 모스크_우)


-돔(Qubba: dome)
아랍어 단어인 쿠파(Qubba)는 큐폴라 또는 돔형 구조로, 일반적으로 이슬람 건축의 무덤 또는 성소를 의미한다. 원래는 가죽으로 만든 천막이나 천과 같은 재료를 원형으로 조립하는 것을 의미했는데, 돔형 건축이 발전한 이후 돔형 건물을 의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슬람 건축물에서 가장 오래된 돔형 무덤의 예는 현재 이라크 사마라에 있는 쿠바트 알 술라이비야(Qubbat al-Sulaybiyya: )로 9세기 중반에 건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돔-사마니스 마우솔레움. 부하라 / 쿠바트 알 술라이비야, 이라크 © archinet.org/sites/3831

넓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돔을 만들고 벽이 없는 기둥으로만 넓은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내부에는 성상이나 조각 등이 없이, 기하학적 문양 등으로 장식된다.

이슬람 건축에서 즐겨 사용한 돔 자체는 이슬람 이전부터 많은 문화권에서 즐겨 사용한 건축요소이다. 예루살렘 성전산 위에 있는 바위(Dome of the Rock)는 많은 이슬람 건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지금의 모습은 재건된 것이지만, 7세기 후반에도 돔의 형태였다고 한다. 

체류하는 동안 아프로시압 박물관 현장에 해 뜨기 전 출근했다가 호텔의 조식 시간이 끝나기 전 숙소로 되돌아와서 아침 겸 점심을 든든히 먹고 현장으로 다시 가는 일정을 거의 매일 반복했다. 덕분에 아침, 낮, 저녁으로 모두 다른 경관을 체험할 수 있었다. 숙소인 상조르 호텔이나 비비하눔 호텔에서 아프로시압 박물관까지는 직선거리로 1.8~2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이를 두 번 왕복하는 셈이니 하루 평균 약 7~8킬로미터 정도를 걷게 되어 건강에도 도움이 되었다. 공사 총 감독하는 동안 매일 똑같은 일과를 반복하는 것을 지켜보던 현지 직원 한 사람이 호텔까지 걸어가는 거리의 반 정도인 1킬로미터 정도를 차로 데려다주기도 했다. 하즈라트 히즈르 모스크 못 미쳐 대규모 묘지 입구 바리케이트 있는 곳까지다. 거기서부터는 호텔까지 1킬로미터 정도만 걸으면 된다. 호텔은 관광용 수레같은 차만 다니고, 일반 차량은 안 다니는 보행전용로나 다름없는 이슬람 카리모프 거리에 있다. 

 

호자 아브레룬 모스크, 사마르칸트
볼로하우즈 모스크, 부하라


우선 관련 용어들을 먼저 살펴본다.
아이반(Ayvan: veranda, balcony, Portico, 여름 기도처)은 3면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네 번째 면이 외부로 직접 열려 있는 장식 목조천장을 한 커다란 넓은 홀이다.
카나카(khanaqah)는 특히 종교 조직에 의해 관리되는 여행자들을 위한 휴식처로 수피교 스승들은 보통 이곳에서 집회를 열었다. 수피 휴식처는 일반적으로 중앙 홀과 양쪽에 작은 방이 있는 대규모 구조다.
실실라(Silsila)는 사슬, 연결을 의미하는 아랍어로 혈통의 다양한 의미로 자주 사용되는, 수피 마스터가 영적 후손에게 전달하는 ‘영적 계보’다.
하우즈(khauz/houz/howz)는 전통적인 페르시아 건축에서 모스크 중앙에 있는 대칭 축으로 된 못(웅덩이)이다. 전통 가옥이나 개인 안뜰에 있는 경우 목욕이나 미용 또는 두 가지 모두에 사용된다. 모스크의 안뜰 산(Sahn) 에서는 재계에 사용된다. 하우즈의 깊이는 일반적으로 약 30센티미터다. 사람들이 못 가장자리에 앉아 관람이 가능한 ‘극장’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주요 인물과 관련 용어 :
- 물라(mullah)는 종교적인 교사나 지도자인 무슬림이다. 무슬림 학자, 교사, 종교 지도자: 존경의 칭호로도 사용된다. 
- 호자(Khodja)는 이란어 khwaja에서 유래된 특히 수피교 교사들에게 사용되는 경칭
- 나크쉬반디야(Naqshbandiya)는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널리 퍼져 있고 영향력 있는 수피 무슬림 중 하나다. 이는 선지자의 가장 가까운 동료이자 조언자인 Abu Bakr Siddiq와 Ali ibn Abu Talib를 통해 선지자 무함마드(그에게 평화가 있기를)의 영적 혈통을 잇고 있다.

 



2-3. 사마르칸트의 주요 모스크 건축유산
우즈베키스탄에는 타쉬켄트,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 및 기타 도시에 괄목할만한 모스크 유산이 약 25개 정도 목록에 있다. 그 중 사마르칸트에 있는 주요 모스크 건축유산을 살펴본다.

(1) 틸라 카리 회중 모스크  (Tilla Kari [Gold covered] Friday Mosque, Registan)
다음 챕터인 이슬람 교육 공간에서도 맥락상 다시 언급되겠지만, 모스크는 이곳 모스크 부분에서 다루고 전체 맥락은 틸라 카리 마드라사 부분에서 다룬다.  
“금으로 장식되었다”는 의미를 지닌 틸라 카리 모스크는 레기스탄 광장 내 틸라 카리 마드라사(이슬람 교육기관)의 네 면 중 서쪽 부분이다. 원래 이 건물은 회중 모스크와 마드라사의 혼합 형태다. 틸라 카리 마드라사(1646~1660 완공)의 큰 기도실로 사용되던 부분이, 비비 하눔 모스크가 무너지고 알리케 쿠켈타시 모스크(1439~1440)가 해체됨에 따라 곧 사마르칸트의 회중 모스크가 되었다. 마치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이 훼손된 후 복구가 늦어지는 바람에 이궁인 창덕궁이 더 긴 세월을 정궁 역할을 했듯이 틸라-카리 모스크도 사마르칸트의 회중 모스크가 되었다.  

모스크는 거대한 돔 아래에 중앙 방이 있고, 아치형 통로를 통해 돔형 측면 갤러리와 연결되어 있다. 돔은 4단계로 높아진다. 높은 직사각형 주각이 주요 기도실을 형성하고 마드라사 벽 위로 솟아 있다. 다음으로, 두 개의 계단식 팔각형 단이 솟아올라 높은 원통형 드럼을 지탱한다. 돔의 단색 파란색은 캘리그라피 띠가 있는 드럼의 다색 장식과 대조를 이룬다. 내부 공간은 평평한 지붕으로 되어 있지만 3단 무카르나 고리를 지지하는 블라인드 아치로 구성된, 정교하게 제작된 트롱프뢰유(tromp l'oeil)로 돔형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중앙 방은 부조 장식(쿤달, kundal)으로 금박을 입혔으며, 유약을 바른 모자이크 페이앙스 상감(mosaic faience inlay)과 새겨진 치장 벽토로 장식됐다. 파란색과 금색의 색조가 내부를 지배한다. 대리석 미흐랍의 복잡하고 다양한 색상과 금박 모티브는 마와라-운-나흐르(Mawara'u'n-nahr: Transoxiana) 지역의 유명한 솜씨를 보여주는 훌륭한 표본이다. 

-페이앙스(Faience: Earthenware; 彩陶)는 토조 상감을 말한다.

 

틸라 카리 회중 모스크


(2) 비비하눔 회중 모스크 (The Bibi Khanym Friday Mosque/1399~1404-5) 
비비하눔 회중 모스크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모스크로 알려져 있다. 폐허 속에서도 20세기 후반까지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고 한다. 외벽 총 167미터, 너비 109미터. 주 건물의 돔 높이 40미터, 입장로 높이 35미터. 약 10,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1897년에 지진으로 상당부분 파괴되었고, 1974년 재건되었다.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사마르칸트-문화교차로, 2001년 등재”에 속한다(Part of UNESCO World Heritage Site Samarkand – Crossroads of Culture, 2001).

 

비비하눔 회중 모스크(좌), 석조 쿠란 받침대(우)

14세기 티무르 제국의 통치자였던 아미르 티무르(1336-1405, r 1370-1405)에 의해 사마르칸트의 회중 모스크로 계획되었지만, 거의 완공 후 구조적 결함으로 인해 처음부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그 약속을 실제로 이행하지 못했다고 한다.
비비하눔 모스크는 바로 건너편 비비하눔 영묘(The Bibi Khanym mausoleum 15th Century)에 묻혀 있는 아미르 티무르의 아내 사라이 물크 카눔(Saray Mulk Khanum, c. 1341~1408)의 이름을 따서 비비 하눔(Bibi Khanym) 모스크라고 불린다. 모스크는1405년에 완공되었으나, 같은 해 티무르는 중국 원정 중 열병으로 사망했다. 1897년에 사마르칸트에 지진이 일어나 주요 이완의 내부 아치가 무너지면서 여전히 서 있기는 하지만, 메인 돔은 균열이 심각했고 거의 붕괴될 뻔했다. 1970년대 소련 환경보호론자들이 붕괴된 구조물을 지탱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면서 폐허의 보수와 복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복구 작업은 소련 붕괴 이후 우즈베키스탄 초대 대통령 때 진행되었다. 지금도 지속적으로 보수작업을 하고 있다. 

(3) 하즈라트 히즈르 모스크(Hazrat Khizr Mosque/Hazrati Xizr masjidi)
하즈라트 히즈르 모스크는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건축물 중 하나다. 이 모스크는 8세기에 처음 지어졌다. 고대 사마르칸트인 아프로시압 정주지 남쪽, 도시 입구 언덕에 있으며, 시압 시장(Siyob Bazaar, 사마르칸트 농산물 직판장) 및 비비하눔 모스크가 맞은 편에 있다. 샤이-진다 영묘군(Shah-i-Zinda)도 그 부근 동쪽으로 있다. 

종파는 수니파(Sunni Islam : 전 세계 무슬림의 85-90% 차지하는 분파)에 속하며 건축양식은 페르시안 모스크, 재료는 벽돌, 나무, 플라스터를 사용했다. 돔과 미나레트가 각각 하나씩 있다. 모스크의 규모는 30미터x16미터이다.

하즈라트 히즈르 모스크는 아이반(ayvan, 기둥위에 세워진 실내 캐노피/여름 기도처)과 카나카(khanaqah, 탁수승 수도원), 두 개의 옆방, 보조실, 창고, 미나레트(minaret)로 구성되어 있다. 나중에 베란다(1899)와 포털(1919)이 건물에 추가되었다. 아이반에서 카나카로 가는 입구가 있다. 카나카는 정사각형이며 중앙에 메카 방향이 있는 벽감 미흐랍이 있고, 측면에 두 개의 허즈리(승려의 방)가 있다. 미나레트는 별도로 위치해 있으며 나선형 계단이 있는 트렁크와 골이 있는 돔이 있는 크라운 랜턴으로 구성되어 있다. 입구 포털은 무카르나스(muqarnas)로 장식되어 있다. 입구 포털의 왼쪽에는 다섯 개의 목조기둥과 채색 조각된 목조천장이 있는 베란다가 있으며, 다채로운 문양과 능숙하게 만든 플라스터로 장식되어 있다. 돔의 외부는 장식타일 마감이다. 포탈과 미나레트는 조각된 벽돌로 장식되어 있으며, 포털의 돔에는 아치형 창문이 있다. 
하즈라트 히즈르 모스크는 13세기에 징기스칸의 무리에 의해에 완전 파괴되었다. 이후 여러 번 복원 및 재건축됐으며, 현재의 모스크는 1854년 고대 기초가 있던 자리에 지어졌다. 건물은 1884년에 장식과 재건축 작업을 거쳐서 1899년에 모스크의 베란다가 재건축되고 포털이 추가됐다. 재건축은 사마르칸트 거장인 아키텍트 압두코디르 빈 보키(Abduqodir bin Boqiy)에 의해 1919년 완료됐으며, 그는 입구 포털과 동쪽 미나레트를 설치하고 포털을 돔으로 덮었다. 1990년 기능을 회복했다.

 

하즈라트 히즈르 모스크와 이슬람 카리모프 영묘

 

하즈라트 히즈르(Hazrat Khizr)는 여행자의 후원자이자 무슬림 성인 중 한 명으로 수자원과 부를 책임지고 있다. 아랍어로 그 이름은 ‘녹색 빛’, 즉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아담의 20대 후손이다.(전설에 의하면 성자나 선지자의 각 등급에는 7층의 무덤과 시신이 있다고 한다.)

참고로 ‘하즈라트 히즈르’ 모스크 경내에 우즈베키스탄의 초대 대통령 이슬람 압두가니예비치 카리모프(Islam Karimov 1938~2016)의 영묘가 있다. 2016년 9월 3일, 장례식 직후 우즈베키스탄 문화부 산하 문화재 보존 및 이용 본부는 대통령 묘소 건립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하즈라트 히즈르 모스크가 유네스코의 유산의 영향 구역 내라는 점이었다. 서로 다른 시대의 두 건물을 하나의 건축 양식으로 결합하는 것뿐만 아니라 세계유산(문화)의 역사적 모습을 보존하는 것도 필요해서 아주 예외적으로 두 시대 건물이 공존하게 되었다. 

인도인 장식 장인들(master-decorators from India)을 포함해 약 2,000명이 영묘 건설에 참여했다. 2017년 9월 완공 예정이었는데, 막판에 가서 이슬람 카리모프 탄생 80주년에 맞게 개장하기로 결정되어 2018년 1월 30일 영묘가 엄숙하게 개관되었으며, 첫 번째 방문객은 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였다.

(4) 호자 아크라르 회중 모스크(Khoja Akhrar Mosque 1630-1735) / 루하바드 모스크 The Rukhabad Mosque(1880-82)/호자 니스바트도르 모스크 Khodja Nisbatdor Mosque 19C / 나마즈가 모스크(Namazga Mosque 1630, JXP9+V98, Samarqand: 이 모스크에 대한 개별설명은 생략한다) 

 

나마즈가 모스크 평면, 입면, 단면(저자 : Bogaevskii, Nikolai V., 1843-1912)


① 호자 아크라르 회중 모스크(Khodja Akhrar Mosque), 
JUMA MOSQUE, Khoja Akhrar Mosque 1630-1635(Khodja Akhrar Ensemble, Samarkand)
사마르칸트에는 선지자나 샤이흐(Sheikh: 이슬람의 지식인을 일컫는 아랍어 단어)를 기리는 장소가 많다. 그렇다고 해도 일일이 찾아가기는 쉽지 않다. 그 중 한 곳으로 오래된 묘지 ‘Djakerdiza’ 근처의 사마르칸트 남서쪽 외곽에 건축 앙상블 호자 아크라르(Khodja Akhrar)가 있다. 이곳엔 호자 아크라르(Khodja Akhrar)의 무덤이 있는 다크마(영묘), 재건된 마드라사, 여름 모스크와 겨울 모스크, 아이반 및 미나레트, 마당 중앙에는 팔각형 못 하우즈(khauz)가 있고 아키텍트 Sagdulla가 1909년에 지은 작은 미나레트도 있다.  
수피(Sufi) 조직인 나크쉬반디야(Naqshbandiy)의 샤이흐인 호자 아크라르(Khodja Akhrar)는 이 지역의 정치 생활 발전에 영향을 미쳤고, 일반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당시 많은 통치자들의 영적 지도자로 여겨졌다고 한다. 
이 카프시르(Kafshir) 마을에 이슬람 건축 건설의 시작은 호자 아크라르가 직접 맡았다고 한다. 15세기 후반에 그는 이곳에 마카우타이 물라얀(Mullah Habitat)이라고 불리는 카나카를 지었다.  

 

호자 아크라르 회중 모스크, 사마르칸트


그가 1490년 86세의 나이로 사망해 이곳에 묻힌 후 이 장소는 수많은 신자들의 신성한 묘지이자 순례지가 되었다. 1630년 그의 무덤 근처에 지어진 모스크와 마드라사는 외부 장식이 레기스탄 광장의 셰르도르 마드라사와 비슷했기 때문에 곧 ‘셰르도르의 거울(또는 시외의 셰르도르)'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정문에는 호랑이(어떤 문헌에는 사자로 묘사) 두 마리와 사슴 두 마리의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100년 후 마드라사는 심하게 파괴되어 20세기 초에 대규모 재건축이 시작됐고, 작업 과정에서 장식용 정면이 복구되고 포털이 고정되었다. 동시에 작은 첨탑과 기둥이 있는 아이반으로 앙상블은 확장됐다. 순례자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정신적 평화를 찾고 이 신성한 장소에 홀로 머물기 위해 이곳에 온다고 한다. 

업무가 끝난 후 대중교통으로 간신히 찾아갔는데, 겨울이라 아무리 빨리 가도 날이 어둑어둑했다. 한두 번 더 가서 자세히 보았으나 주요 공간에는 찬 바람을 차단하느라 비닐을 덮어놓아서 좋은 사진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② 루하바드 모스크(The Rukhabad Mosque, 1880~1882) 
구르-아미르 근처에 루하바드 영묘와 마드라사와 모스크가 모두 함께 있고, 마드라사는 기념품 판매소로 재활용되고 있다. 루하바드 모스크는 영묘보다 훨씬 후대이지만, 그 첨탑인 미나레트에는 거의 몽골 이전(pre- Mongolian)에 벽돌로 만든 장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 
- ‘루하바드(Rukhabad)’라는 단어는 ‘영혼의 거처’로 번역된다. 영묘 건물에는 정문(포탈)이 없고 영묘 외부는 밝고 단순하다. 

 

루하바드 모스크, 사마르칸트

사마르칸트 모스크의 건축물은 규모는 작아도 이슬람 건축 전통의 요소들을 간직하고 있다. ‘카나카(khanaka)’ – 내부 미흐랍이 있는 정사각형, 때로는 직사각형의 전제가 모스크의 핵심이다.

목조 기둥과 채색 목조 천장이 있는 개방형 베란다, ‘아이반(ayvan)’이 ‘카나카(khanaqah)’의 한 면 또는 여러 면에 인접해 있다. 작은 못인 ‘하우즈(khauz)‘와 상단에 돔 모양의 ‘랜턴’이 있는 작은 첨탑이 이 여름 모스크의 특징이다. 따라서 이 모스크는 나무의 푸르름(綠), ‘하우즈’의 물(水), 기도실 및 첨탑과 같은 우주의 기본 요소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한편으로는 폐쇄되었으나 충분한 각각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③ 호자 니스바트도르 모스크
    (Khodja Nisbatdor Jome Mosque/Jome Masjidi 18-19C)
    (JXWG+976, So'zangaron ko'chasi, Samarqand)
호자 니스바트도르(Khodja Nisbatdor) 회중 모스크는 19세기 말 건설된 모스크로 레기스탄 광장 남쪽 시내에 있다. 15세기까지 살았던 신학자 호자 니스바트도르(Khodja Nisbatdor)를 기리기 위해 명명됐다. 모스크는 구운 벽돌로 지었으며, 아이반(Ayvan)으로 둘러싸여 있고 미나레트가 있다. 소련 시대에는 모스크 건물이 우체국으로 사용되었다가 1998년에 모스크로 회복되었다.  

 

호자 니시바트도르 회중 모스크, 사마르칸트


레기스탄 광장에서 약 1킬로미터 정도 거리라 지도를 보고 찾아갔다. 건물의 전경을 볼 수 없을 정도였고, 상부는 캐노피로 덮고 뒷부분도 좁은 골목이라 사진을 찍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기도 시간이어서 주요 공간(남성용 홀)을 들어가기는 어려웠지만, 특별히 허락받아 아이반 부분은 볼 수 있었다. 동네에서 활성화된 모스크다. 
알려진 규모가 있는 모스크 외에 뒷골목을 다니다 보면 마을 단위의 기도처들이 골목 골목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네 소규모 모스크들은 대개 목조 기둥과 채색 목조 천장으로 구성된 아이반이라고 하는 여름용 모스크들을 갖추고 있고 웅덩이 같은 못이 있다. 마음 같아서는 서울의 북촌 한옥 보존 프로젝트처럼 마을 가꾸기나 마을보전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상당수의 목구조 기도처들을 복구하고 싶다. 

 

동네 모스크들, 사마르칸트

 



계속: 다음 호는 사마르칸트의 주요 이슬람 교육공간-마드라사(Madrasas)로 이어진다. 
① Ulugh Beg Madrasa, Samarkand(1417~1421), 
② The Sher-Dor Madrasa(1619~1636), 
③ Tilya Kori Madrasa(1646~1660)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글․사진. 조인숙  Cho, In-Souk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조인숙  PhD,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1986~현재)

 

APEC등록건축사(KR-263). ICOMOS 국제목조학술위원회 공동회장(2023~2026). ICOMOS 건축유산구조분석 복원에 관한 국제학술위원회(ISCARSAH) 부회장(2014~2023). 건축유산·문화정체성 UIA 워크프로그램 국제공동디렉터(2014~2021). 국가유산청 문화재수리기술위원회 위원(2021~2024). 건축역사, 건축설계, 설계스튜디오, 한옥 및 전통문화 강사역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로시압 박물관 리모델링 총감독 위촉 전문가(2023).

choinsou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