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메종 드 엘리프 송산, 벼랑 끝에 환히 핀 한 송이 꽃 2024.8
Architecture Criticism _ MAISON DE ELIF SONGSAN A full-blown flower on the edge of a cliff
연립주택, 그 부침(浮沈)의 역사
한국에서 연립주택의 시발점은 1956년 한미재단이 서울시 서대문구 행촌동에 2층짜리 연립주택 52가구를 준공해 한국 정부에 인계한 것이다. 6·25 한국전쟁 이후 파괴된 주택과 피란민을 수용하는 데는 짧은 시간과 적은 비용이 드는 연립주택이 안성맞춤이었고, 피폐한 국력으로 인해 미국의 원조가 그 시발점이 된 셈이다.
이렇게 시작된 연립주택은 건축법과 주택법에 의해 1977년도에 “10가구 이상 2층까지 건축할 수 있으며, 1층과 2층은 한 가구가 사용해야 한다”고 했으나 시행 1년 만에 1층과 2층을 각기 다른 가구로 해도 된다고 완화했고, 2년이 경과한 1980년에는 3층으로 개정했다.
이 시기는 아파트가 선망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건축업자들은 높은 분양가로 아파트 입주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규모가 작고 층수가 낮아서 자투리땅에도 짧은 기간에 지을 수 있는 연립주택을 건설했고, 나아가 땅 값이 싼 자연녹지에 단지를 조성했다. 환경과 교통과 편의시설이 아파트보다 열악한 연립주택은 이렇게 서민층의 보금자리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이 시기 또 한편에서는 이런 대세를 거스르는 시도도 있었다. 즉 청담동 등 고급 주거지에서는 듀플렉스 스타일(duplex style), 스킵플로어(skip floor) 형식, 테라스하우스(terrace house) 등의 설계를 통해 아파트와 차별화를 시도했고, 아파트보다 비싼 값에 분양되기도 했다.
이후, 10여 년이 흐른 1990년대에 이르러 연립주택은 ‘공동주택으로서 1개 동 면적이 660제곱미터를 초과하고 4층 이하인 주택’으로 개정되었다. 이로 인하여 연립주택은 660제곱미터 이하인 다세대주택과 면적의 크기만 다르고, 다가구주택과도 변별력을 잃게 되면서 주택가를 파고들었다. 이런 형태는 연립주택(Row-hause)과 아파트의 특성을 잃은 개성 없는 집이 되어, 삶의 질은 물론 매매 등 부동산 가치에서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애물단지가 되어가고 있다. 다만 근래에 정부와 지자체는 신도시나 대규모 주거단지를 계획하면서, 아파트와 단독주택 단지 외에 작은 규모지만 연립주택 단지를 조성했다. 이는 국민의 주거선택권을 위한 당연한 결과로서, 연립주택만의 특성을 창조하는 새로운 시도들이 건축사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아파트와 독립주택을 넘어서다
화성시 송산 신도시에 위치한 본 단지는 동·서·남면이 하천을 낀 공원이고, 북쪽 또한 어린이놀이터를 겸한 소공원이 조성된 평탄하고 쾌적한 곳으로, 4개 블럭 중 남쪽 두 블럭에 자리 잡았다. 배치는 한국인이 선호하는 남향배치를 기본으로 하되, 동단과 서남단은 조망을 우선하여 공원을 향해 배치함으로써 취향에 따른 선택을 유도하고 있다. 남향배치는 일사열(日射熱) 취득(solar heat gain)에도 유리하나, 자칫 여러 세대가 한일(一)자가 되는 경직성과 지루함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본 단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절반의 동에서 주거 단위 배치를 세대별로 들어가거나 나오게 리듬감을 주어 다이나믹한 외관을 형성했다.
이에 더해 그라데이션(gradation)화한 색상과 대조적 색상을 동별로 다르게 함으로써 조화와 대비에 의한 아름다운 마을 풍경을 창조했다. 그뿐 아니라 모든 차량의 지하화와 북 카페, 주민카페, 운동시설을 비롯한 골프 연습장, 그리고 아파트단지에서나 볼 수 있는 맘스 스테이션까지 다양한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당해 지자체의 허가조건일 수도 있으나, 건축주의 공사비에 대한 통 큰 결심과 담당 건축사의 열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제 단위세대를 살펴보자. 승용차 두어 대쯤은 집 앞에 자리할 수 있는 주차의 확장성과 발코니의 확장 시공에도 불구하고 2층에 베란다가 있어 일상의 편의성을 제고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두드러진 것은 세대별로 앞뜰과 뒤뜰 합해 30제곱미터 정도의 전용정원을 갖춰 단독주택만의 특권을 누릴 수 있게 한 점과, 1층에서 현관을 제외한 모든 공간을 비워놓음으로써 다른 주거 공간에서 갖지 못한 창의적 공간을 세대원들에게 선물한 것이다.
가족들이 꾸미는 자유 공간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구현한 필로티 구조에서 개방된 지상층은 비 오는 날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나 주차공간 등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한 것이며, 빛과 공기가 건물 아래로 흐르도록 하고 건물의 전면과 후면을 하나로 이어주기 위한 것이다. 현장엘 가보니 집에 따라 어린이를 위한 이동식 간이 풀장세트와 텐트, 바비큐 도구와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식탁부터 각종 공구와 간이 공작대, 피아노와 몇 개의 보면대, 헬스기구 등이 놓여 있어 어느 한 곳도 같은 집이 없었다.
평자는 과거 호화주택의 경계선인 약 300제곱미터(90평대) 가량의 주택을 다수 설계했다. 그러나 설계하다 보면 방마다 화장실은 있어도 자유롭게 쓸 공간은 만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단지는 단독주택에서도 소유하기 어려운 자유공간을 연립주택에서 창출한 것이다.
주어진 작은 정원도 마찬가지이다. 태양광 조명등부터 각종 꽃이 집집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피어 있고, 저녁 식탁에 오를지도 모를 오이와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린 집도 있다. 토기 화분과 작은 분수, 우체통과 앙증스런 조각 소품까지 집집마다 개성이 넘친 정원들은 아름다운 하모니를 연주하고 있다. 아파트 공화국에서 우리는 언제 이렇게 작지만 소중한 자유를 누렸던가?
획일화된 기계문명 속에서 키우는 꿈
1945년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난 후 1950년대부터 시작된 세계의 전후 문학이 한국에서는 6·25 전쟁으로 인하여 그 10여 년 뒤인 1960대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전후 문학의 특징은 전쟁이 가져온 참혹한 문명파괴 상황과 사상자로 인한 정신적 상처와 우울 등 인간 존재의 부조리와, 적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기계 문명에 대한 소외가 주제로 다뤄지고 있다. 한국전후문학전집에는 평자가 젊은 시절인 1960년대에 읽은 김관식의 ‘213호 주택’이 있다.
전후 정부에서 분양한 주택단지 중 제일 작은 면적인 을호주택 213호에 사는 인쇄기술자 김명학은 성실했으나 새로 들여온 기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무능력자로 낙인찍혀 해고당한다. 홧김에 폭음하고 자기 집을 향해 가다가, 미국인과 한국 여자가 사는 집을 자기 집인 줄 착각하고 들어간 후 결국 유치장 신세까지 지게 된다. 이튿날 자기 집에 돌아온 김명학은 대문에서 현관까지 디딤돌을 놓고, 부엌칼로 현관문에 빨래판 모양의 표시를 해 놓는다. 그리고 눈을 감고 몇 번이고 걸어본다. 획일화된 주택단지에서 일어나는 이런 현상은 산업화로 획일화된 현대 문명을 상징하며, 이 소설은 그 속에서 소외된 삶을 형상화하고 있다.
평자의 아파트 현관문에는 평자의 아호인 양촌재(陽村齋)란 현판을 붙여 놓았다. 기계화된 동호수가 싫어서 한 짓이지만 아주 가끔은 옆 동에 갔다가 실수하지 아니하고 돌아오는 역할도 한다. 필자는 적어도 본 단지에서는 ‘213호 주택’이나 평자의 아파트 같은 현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는 기계문명의 편의성과 함께 정원과 자유공간을 통해 원초적 인간 정서를 회복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유쾌 통쾌한 일인가.
이곳에 사는 자녀들은 자신의 스케일에 맞는 다락방과 옆에 있는 두 곳의 작은 옥상에서 내일의 꿈을 꾸고, 가족이 함께 가꾸는 아기자기한 작은 정원에서 생명의 신비함을 배우며, 텅 빈 1층 공간을 부모와 함께 꾸미면서 이 나라를 내일을 위해 무럭무럭 커나갈 것이다.
이 집에서 나는 보았다. 벼랑 끝에서 환히 핀 한 송이 꽃을.
글·사진. 장양순 Chang, Yangsoon (주)로만티코 건축사사무소
장양순 건축사, Columnist · (주)로만티코 건축사사무소
홍익대 및 동 대학원에서 한국건축사를 전공하고, 대한건축사협회의 임원으로 본지 편찬위원장, 건축사신문 초대 편집국장과 건축문화대상 시행위원장을 역임하면서, 홍익대, 강원대, 명지대 및 한서대에서 40년 간 제자를 육성했다. 저서로 『한옥 건축학개론과 시로 지은 집』, 『툇마루 한담』 등이 있고, ‘본 협회 50년사’ 건축사지 500호 별책 등을 편찬했다. 가곡 ‘논개’, 동요 ‘무지개 떴다’, ‘건축사 찬가’ 등 작곡 활동과 더불어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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