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파도에게' 자연을 담아내는 건축 2024.10
Architecture Criticism _ Dear Wave Architecture that blends into nature
장소의 정체성
강릉은 거대한 백두대간과 광활한 동해가 마주하고 있는, 천혜의 환경을 지닌 우리나라 대표적 관광도시이다. 최근 이 도시에 다양한 지역 콘텐츠들이 개발되면서 관광객들이 증가함에 따라 숙박시설의 수요, 그중 풀빌라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대지는 근사한 소나무 가로와 함께 송정에서 경포대로 이어지는 해안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파도에게(Dear Wave)’란 프로젝트명과 제법 어울리는 사근진해변에 인접해 있다. 옛 기록에 따르면 ‘사근진’이란 지명은 ‘과거 외부에서 왔던 사기그릇 장수가 살던 나루터’란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최근에는 사근해중공원 전망대가 생기면서 더 많은 대중들이 선호하고 있는 곳이다.
프로젝트 눈으로 보기
바다로 향하는 차별화된 입면을 구성하면서 이러한 의미 있는 곳에 최근 자리 잡은 ‘파도에게(Dear Wave)’ 프로젝트는 주변과 관계 맺기를 통해 마치 숨은 보석처럼 앉혀져 있다. 이 시설은 지하 1층에서 지상 4층까지 총 5개 층으로 구성된 풀빌라로, 배치상 대지의 형태를 존중하며 북서측은 작은 언덕, 북동측은 바다, 남동측은 진입로, 남서측은 마을과 유기적으로 연계하며 계획됐다.
각 층별로 평면을 살펴보면, 우선 지하 1층에는 기계실을 대지 안으로 관입시키면서 주차장과 외부공간이 이어지는 계단을 설치해 자연을 닮은 곡선을 활용하며 보행과 차량 동선이 자연스럽게 나뉘는 경계 공간의 형태를 만든다. 반면, 층마다 특색 있는 평면을 구성하며 지상 1~4층까지 총 4가지 타입의 실을 정갈한 박스 형태로 계획한 것이 확실히 지하층과 대비를 이룬다. 특히, 지상 1~3층에 캔틸레버 형식으로 과감하게 돌출된 수영장은 마치 공중에 뜬 채 동해로 향하는 사각의 배처럼 바다와의 관계를 강조하며 외부 디자인을 돋보이게 한다. 이외에도 주어진 지형의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듯 모든 층들이 북서측 작은 언덕과 시각 또는 동선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것도 제법 눈여겨볼만하다.
프로젝트의 숨은 의미 찾기
일반적으로 설계 프로젝트들은 대지가 정해진 이후 건축주의 생각, 향, 조망, 지형, 인접 시설의 영향, 법규 등 건축상의 자유로운 디자인을 제한하는 수많은 도전을 받게 된다. 이것을 달리 해석해 보면, 주변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창의적으로 해결할 때 비로소 장소적 의미가 극대화되면서 디자인에 대한 시나리오가 풍부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프로젝트를 설계한 최이선 건축사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제한 사항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발전시킨 생각의 흔적이 보인다.
첫 번째, 대지가 가진 장점을 최대화할 수 있는 디자인적 요소를 찾아야 하는데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건축사가 자연과의 교감을 최우선적 가치로 여기면서 설계를 진행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즉, 땅의 생김새와 높이에 따라 평면을 연결시키는 방식이나, 직접 닿을 수는 없지만 돌출형 매스를 입면에 부각하면서 바다와 연계시키는 방식 등을 보면 건축사가 설계에서 주변 환경과의 맥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두 번째, 건축사는 대부분 초기 대지분석부터 외부에서 주요 진출입 위치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보행 및 주차 동선을 사용의 편의성 및 직관적 인지성을 위해 주요 도로에서 직접 연결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주차장 및 출입구를 해안 도로에 직접 연결하지 않고, 후면에 위치한 남동측 마을 방향으로 진입 동선을 만들고 있다. 이를 통해 외부 도로변에서 주차장을 시각적으로 어느 정도 차폐해 주면서 남서측에 위치한 기존 마을과의 관계를 더욱 명확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만약 해안 도로에서 주차장이 직접 연결되었다면 외부에서 이 프로젝트를 맞이하는 첫 느낌은 주차장의 모습일 수밖에 없고, 또한 마을과의 시각 및 동선적 단절로 주변 맥락과의 관계가 약화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세 번째, 건축사는 적절한 벽의 열고 닫음을 통해 다소 이분법적으로 분리될 수 있는 주변 자연의 시퀀스(Sequence)를 정리해 각 공간에서의 감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사용자가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각 실로 올라갈 때부터 시작된다. 지하 1층부는 바다를 일부러 감추고 있듯이 보행 시 시선을 건축으로 향하게 한다. 사용자가 지상층 풀빌라 내부로 들어섰을 때, 비로소 전면 창에 너른 바다를 시원하게 담아냄으로써 시각적 감동을 고조시킨다. 더욱이 북동측 작은 언덕으로 일부 열린 창문을 통해 푸르른 숲의 풍경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돌출형 수영장은 닿지 못하는 바다를 한층 더 가깝게 만드는 금상첨화의 요소가 된다.
주변과 관계 맺기
어찌 보면, 이 프로젝트에서 건축사가 지향하는 건축 방식은 ‘주변과의 지속적인 관계 맺기를 통한 공간의 구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종합해 보면 1단계는 대지의 생김새와 주변 요소와의 관계를 통한 매스 형태이고, 2단계는 주변 프로그램의 정체성 및 외부에서의 접근성을 염두에 둔 주요 진출입로 구성, 그리고 마지막 3단계는 주변 자연과 적극적으로 연계되면서 인식할 수 있는 내·외부 공간에 대한 감응성이다.
결론적으로 이 ‘파도에서(Dear Wave)’프로젝트는 대지가 가진 장소적 의미를 최대화시키고자 하는 담당 건축사의 명확한 설계적 지향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러한 설계적 관점은 강릉이라는 지역을 벗어나 여타 다양한 조건을 가진 환경의 대지가 주어지더라도 차별화될 수 있으며 가치 있는 디자인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 엄준식 EOM, JunSik 국립경상대학교 교수·프랑스 건축사(HMONP)
엄준식 교수(프랑스 건축사)·경상국립대학교 건축학과
주변에서 발생하는 인문사회학적 현상을 기반으로 공간을 해석한다. 파리-라빌레뜨 국립고등 건축대학(ENSAPLV)에서 학·석사 졸업 후 프랑스건축사(HMONP) 자격을 취득했고,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도시설계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년간의 실무를 통해 다수의 국내외 건축·도시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현재는 경상국립대학교 건축학과에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jseom@g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