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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 생존기 2024.11

월간 건축사지 2024. 11. 30. 09:30
A Record of surviving as a korean architect

 

 

 

 

2020년, 우연한 기회로 아무런 배경도 인맥도 없이 호기롭게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했다. 그동안 다양한 용도와 규모의 수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경험치를 쌓아왔다. 늘 해오던 설계업무는 익숙했고, 편집과 3D도 가능한데다 손도 빨랐기에 어떤 일이 주어지든 문제없이 수행할 자신도 있었다. 

때마침 개업 즈음에 개인 건축주와의 계약 건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회사 업무가 아닌 온전히 나의 프로젝트를 한다는 사실과 내 힘으로 뭔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에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었으나, 곧 문제에 부딪혔다. 설계비로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전혀 감이 없었다. 주변에 조언도 얻어보고 ‘첫 프로젝트이니 돈을 남기려 욕심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다짐하며 나름 합리적인, 아니 완전 초저가의 저렴한 가격을 제시했지만, 깎였다. 두 번 깎였다. 설계와 감리계약을 동시에 하는 거니 감리비용은 그대로 두고 설계 비용을 줄여달라고 했다. 감리비까지 감안해 보면 나쁘지 않은 금액이라 수용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니 그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진짜 사업이란 걸 하는구나… 나도 이제 대표다! 월급만 받아오던 통장에 큰돈이 한 번에 들어왔다. 협력사 용역비를 지불하고도 잔고가 많이 남아 어깨가 절로 으쓱거렸다.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모든 정성과 온 힘을 다해 이 첫 번째 프로젝트를 멋지게 완성시켜 나를 세상에 드러내리라!

순조롭게 계획설계가 진행됐다. 비전문가인 건축주를 위해 스케치업 모델링에 PPT도 만들고, 멋지게 콘셉트페이지도 넣고, 이해하기 쉽도록 다이어그램도 준비했다. 회사업무와 달리 정말 신나고 재미있었다. 그러다 상반기 부가세 고지서가 날아왔다. 한순간에 몇백만 원을 뜯겼… 납부했다. 괜찮다. 나는 경영인이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위기가 찾아왔다. 도시계획심의와 건축심의가 2차, 3차까지 가는 고난의 시간이었다. 억지스럽고 용납할 수 없는 심의 의견들에 억울함과 분함으로 한참을 불면증에 시달렸다. 우여곡절 끝에 통과는 했지만 심의기간으로만 1년 정도 소요됐다. 예상보다 수행기간이 훨씬 길어지면서, 내가 번 돈은 전에 받던 월급보다도 적어졌다.

다음엔 수금이 문제였다. 계획설계 20%, 중간설계 30% 실시설계 50%. 나름 준공금 10%를 없앴다고 뿌듯했는데, 건축주가 허가를 끝으로 프로젝트 종료를 선언했다. 코로나로 인한 경영 악화로 토지를 매각한다고 한다. 남은 실시설계 기성 50%가 날아갔다. 더불어 감리계약도 사라져버렸다. 어깨가 점점 처진다. 세금도 미처 생각지 못했다. 얼마 전에 하반기 부가세도 냈는데, 종합소득세를 또 내란다. 계약할 땐 분명 꽤 큰돈을 벌었다고 생각했는데, 통장에 잔고가 없다. 은행에서 대출상담을 하니 종소세 납부기록이 없어서 소득을 책정할 수 없다고 거절당했다. 맙소사! 월급쟁이일 땐 쉽게 받을 수 있었던 신용대출이었는데, 개인사업자가 되니 철벽처럼 느껴진다. 마치 사회적 신분이 추락한 듯한 기분이다. 회사에 다닐 때도 가장 바닥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 지금은? 다행히 소상공인 지원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세금을 낼 돈은 생겼다.
첫 계약건은 명백한 ‘마이너스’ 수주였다. 수주한 프로젝트를 끝내려면 대출이 필요한 상황이다. 돈을 벌려고 시작한 일인데 빚을 내야 끝마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받은 기성금은 밀린 카드값과 생활비를 해결하고 나니 모두 사라져버렸다. 결국 대출금만 고스란히 남았다. 선배 건축사들의 경험담과 후기를 보면서 그렇게 경계했던 마이너스 수주를 내가 하고 있었다. 아니, 마이너스가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이렇게 큰 타격을 남기고 날 만신창이로 만든 채 사라졌다. 

나에겐 새로운 건축주를 찾을 인맥도 학벌도 없다. 나름 수주를 할 만한 길을 모색해 보지만, 누구나 그러하듯 두드릴 곳은 이미 정해져 있다. 설계공모에 도전한다. 신입 시절부터 늘 해왔던 일이다. 제출물 작성도 혼자서 가능하고, 계획에도 나름 자신 있으니 문제 될 건 없다. 

첫 도전 프로젝트를 정했다. 내 고향에 주민들을 위한 복지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주변이 빽빽한 주거지임을 고려해 24시간 열려있는 수직공원을 제안했다. 건물의 운영시간과 상관없이 층마다 마련된 다양한 외부공간을 거쳐 옥상까지 이어지도록 했다. 모듈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버려지는 면적이 없도록 알뜰하게 챙기고, 이동 동선에 무리가 없도록 신경 썼다. 매스도 최대한 단정하게 연출하고자 했다. 눈여겨보았던 보고서 샘플들을 참고해가며 선을 지우고 여백을 늘이면서 최대한 담백하게 표현했다. 단어 하나, 조사 하나 신경써 문구를 계속 다듬어가면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내 방식으로 열심히 준비했고 무사히 제출했다.

주변에선 심사위원을 찾아가라고 재촉한다. 거기까지 해야 최선을 다한 거라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해야만 하는 걸까… 찾아가려면 돈이 필요할 텐데, 난 생활비도 없다. 내키지 않는다. 솔직히 모르는 사람을 찾아가 청탁할 용기도 자신도 없다. 결국 그냥 가만히 있었다.
결과는 4등. 한 심사위원에게 최고점을 받긴 했지만, 다른 심사위원이 적은 ‘질서가 없고 조잡하다’라는 문구가 머릿속을 계속 맴돈다. 내 설계안이 정말 그렇게 별로인가? 요즘도 가끔 꺼내본다. 나쁘진 않은데… 아마 다시 한다고 해도 이대로 풀어낼 것 같다. 그래도 첫 설계공모인데 입상했으니 만족스럽다. 다음엔 더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번째 도전, 4등.
세 번째 도전, 탈락.
네 번째 도전, 탈락.

이젠 입상도 어려워졌다. 
혼자서 계획안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었다.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가 없었다. 다른 방향의 시각이 필요했다. 계획안을 들고 주변 사람들을 찾아가 이런저런 의견을 듣고서야 내가 만든 계획안의 허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보다 합리적이고 완성도 높은 계획안을 제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발표장에서 문제가 생겼다. 심사위원에게 지하층 직통계단이 왜 한 개밖에 없는지 질문을 받고, 엄청나게 당황했다. 선큰이 있어 피난에는 용이하다며 엉뚱한 답변을 늘어놓고는 발표장을 나서는 순간, 갑자기 떠올랐다. 지하층 거실 면적이 200제곱미터 미만이라 직통계단 2개소는 필요 없었는데! 워낙 초반에 설정한 거라 완전히 잊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입상은 했지만 어설픈 대응방법과 미숙한 임기응변이 상당히 아쉬웠던 뼈아픈 경험이었다. 

첫 마이너스 프로젝트 이후에 수주가 전혀 없던 터라, 연체를 거듭하면서 경영난에 허덕이며 여기저기 도면 외주로 간신히 버텼다. 몇 달째 수입이 없다. 대출받았던 돈도 이미 사라졌다.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 불면증에 시달린 지 이미 몇 개월은 되었다. 어딜 가서 무얼 해야 돈을 벌 수 있을까? 더 늦기 전에 그냥 폐업하고 취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똑같은 고민을 몇 년째 계속하는 중이다. 잠들어 있는 가족들을 볼 낯이 없다.

하지만 건축사로 할 수 있는 일이 보이지 않는다. 또 한 번 설계공모에 도전한다. 일조권과 대지 내 공지, 공연장 직통계단 추가 확보 등 상당히 까다로운 대지 조건의 프로젝트였다. 풀어내기만 한다면 입상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쥐어짜며 수많은 스터디를 거쳐 모든 조건을 만족시킨 계획안을 제출했다. 결과는 탈락.
당선작은 스페이스 프로그램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입상작은 계단이 부족했다. 심지어 내 계획안은 심사위원에게 법규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계획안이라고 인정도 받았으나 결국 입상조차 하지 못했다. 억울한 마음에 이의 제기를 할까 고민했지만, 결국 바뀔 건 없다는 생각에 이내 마음을 접었다. 

건축사사무소 대표지만, 도면 외주 업무를 하며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일용직 생활을 이어가는 이 생활을 계속 유지해야 하나 회의적인 생각이 자꾸만 든다. 시간은 흐르는데 성장하는 느낌도 없고, 앞으로 나아질 거란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마음은 쉽게 접히지가 않는다.

심사위원 구성을 살펴보며 참여할 만한 공모를 찾았다. 한적한 농촌마을에 폐교 부지를 활용해 주민들을 위한 기초생활거점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현장에 방문했을 때 꽤 오래된 소나무 숲이 인상적인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사이사이에 비석과 조각상 등 옛 학교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이 점을 부각해 소나무 숲을 주인공으로 하여 건물이 둘러싸도록 배치하고, 최대한 낮고 넓게 펼쳐 고즈넉한 마을 분위기와 어우러지도록 계획했다. 그리고 남아있던 조각상 등 옛 흔적을 최대한 보존해 폐교된 학교를 기억하는 주민들을 위한 추억의 공간으로 되돌려주고자 했다. 
제출된 작품 수도 상당히 많았고, 언뜻 보기에도 멋진 비주얼의 계획안들이 눈에 보여 위축된 마음으로 심사과정을 지켜봤다. 결과는 당선! 2등 작품을 두고 심사위원 간에 열띤 토론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첫 당선이라는 너무나 기쁜 결과를 받았다.

소나무 숲을 내세우며 한발 물러선 건물의 배치와, 낮게 주변과 소통하는 콘셉트가 정말 운 좋게도 심사위원들에게 긍정적으로 읽혔고 심사 성향과도 잘 맞아떨어져 당선이란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처음 수주하면서 느낀 뿌듯함과 벅찬 감동이 마구 밀려왔다. 그토록 바라던 내 이름이 적힌 건축물을 남길 수 있게 되었구나! 더 효과적인 연출과 디테일을 깊게 고민하며 한동안 들뜬 마음으로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행복도 오래 가진 못했다. 공동수급인 데다 워낙 작은 규모라, 아직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데도 또다시 궁핍의 시간이 돌아왔다.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 또다시 현실을 마주할 시간이다. 나는 여전히 설계 공모에 도전하고 있고, 연거푸 탈락의 쓴맛을 보는 중이다. 이제 그만두고 취업할까 하는 생각도 계속 하는 중이다. 

나는 건축사로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생존 시간을 벌고 있는 중이다. 아니, 사무소를 유지할 수 있는 자격을 벌고 있다. 이 생활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시 한번 행운이 나에게 주어지길… 더 늦기 전에 찾아와주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글. 여형종 Yeo, Hyung-jong 와이건축사사무소

 

 

여형종 건축사·와이건축사사무소

 

계명대학교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토담건축사사무소, 휴다임건축사사무소, 원양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2020년 야심차게 개소했으나 별다른 성과 없이 여전히 고군분투중이다. 공간의 활용과 성격에 따른 위치선정을 심각히 따지며, 이에 따른 동선의 효율성에 진심이다. 단독주택, 근린생활시설부터 공동주택 및 주상복합, 체육관, 전시관, 공공청사, 군사시설까지 다양한 용도와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행해오면서 쌓아둔 노하우와 경험치를 발휘할 기회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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