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어지지 않은 건축 2025.4
Unbuilt 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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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한 지 만 11년이 되었다. 멋모르고 서른 중반에 개소한 게 엊그제 일 같다. 원고를 쓸 기회가 생겨서, 11년이란 시간도 세어 본 듯하다. 돌이켜 보니, 망하지 않은 게, 아니 살아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내 마음대로 설계하고 싶어서, 월급은 많이 받았지만 시키는 대로 일만 하던 대형 건축사사무소를 그만둔걸, 종종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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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와 함께 둘이서 개소했다. 온갖 시행착오도, 첫 번째 설계공모 당선도 그 친구와 함께했다.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에게 고맙다. 그런데 그리 오래 함께하지는 못했다. 정말 내 마음대로 설계하려면, 혼자 하는 게 마음이 편했고 덜 미안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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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공공건축물 설계공모에서 3번 당선되었다. 그리고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리모델링이나 그린리모델링 같은 공공건축물 설계용역을 수의계약 형태로 몇 차례 수행했다. 물론 그 기회도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민간건축물을 지어본 적이 없으니 개소한 것을 종종 후회했다. 민간건축물을 여러 번 설계해 본 적은 있지만, 아직 지어진 건물은 없다. 복이 없나 보다 생각하고, 공공건축물 설계공모만 열심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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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설계공모를 몇 번이나 참여했는지 궁금해졌다. 당선 횟수는 쉽게 대답할 수 있지만, 그동안 설계공모에 몇 번 참여했는지는 세어보지 못했다. 며칠 전 제출한 설계공모를 포함해서 29번이나 제출했다. 당선 3번,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한 번을 제외하면, 25번 낙선한 셈이다. ‘지나간 공모는 새로운 공모로 잊는다’라는 말로 스스로를 달래며, 아내에게 미안해질 찰나에 새로운 설계공모를 시작했다. 본업도 설계, 취미도 설계이다. 설계라면, 평일에 해도, 주말에 해도 재미있다. 참 이상한 사람이어서 다행이다. 이런 이상한 사람을 이해해 주는 아내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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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예쁜 25명의 자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몇 번은 남의 자식이 더 예뻐 보이기도 했다. 설계를 잘하는 분이 참 많구나 생각하다가도, 때로는 ‘어떻게 저런 안이 당선되었을까?’ 의심도 여러 번 한듯하다. 10년 전에 비해서, 설계공모를 심사하는 방식이 다소 공정해졌다고 느끼지만, 아직 부족하다. 개소하던 당시, ‘지금은 지저분하지만 5년, 10년 뒤에는 많이 깨끗해질 테니 버텨보자’고 생각했는데, 안일한 생각이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한 것 하나 없이, 남들이 만들어주기만을 기대한 소극적인 태도를 요즘 들어 반성한다.
不患人之不己知(불환인지불기지), 患不知人也(환부지인야)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 상당히 위로가 되는 말이다. 이 말 덕분에 지금까지 버텨온 듯하고, 평생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공자에게 감사하다. 하지만 어떨 때는 위로가 부족할 때도 있다. 그때는 소심하게도 한 번씩, 지어지거나 리모델링한 공공건축물을 몰래 찾아가 본다. 그럴 때는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는 게 공공건축물의 매력인 듯하다.
살기 좋은 세상 만들기
말하기 참으로 민망하지만, 내 꿈은 ‘살기 좋은 세상 만들기’이다. 가진 재주가 건축설계라서, 건축설계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 건축물이 많이 지어져야 꿈이 이루어질 텐데, 역시 꿈은 이루기가 어렵다. 그래도 혹시 당선되어서 지어질지 모르니, 설계할 때는 ‘어떻게 설계하면 더 살기 좋아질 것인가?’만 생각한다. 사실 일이 없어서 공공건축물 설계공모에 계속 참여하지만, 미약하나마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기여라고 생각하면, 또 위안이 된다.
그래도 짓고 싶다
살기 좋은 세상 만들기가 꿈이라고는 하지만, 나부터 좀 잘 살고 보자는 생각을 안 해봤을 리가 없다. 일이 없으니 일을 만들어보겠다고, 4년 전 신혼집 아파트를 팔고 덜컥 토지를 분양받았다. 그리고 그 땅이 내려다보이는 인근 아파트로 이주했다. 공교롭게도 그 이후로 당선이 되지 않다 보니, 공사비가 부족해서 아직도 집을 짓지 못하고 있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아내랑 아이랑 창밖을 본다. 햇살이 비쳐도 예쁘고, 비가 내려도 예쁘고, 안개가 끼어도 예쁘고, 눈이 쌓여도 예쁜 땅이다. 틈틈이 고민해 본 대안만 수십 개고, 이미 그중에서 하나를 정했다.
횡설수설
요즘같이 혼란하고 어려운 시기에 어울리는 횡설수설이다. 힘을 빼고 이러쿵저러쿵 쓰고 나니,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혹시나 이 글을 읽게 될 건축사 여러분들도 부드러운 마음으로 집 많이 지으시길 바랍니다.
글·사진. 문경진 Moon, Gyeong Jin 아울러건축사사무소
문경진 건축사·아울러건축사사무소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14년부터 지금까지 아울러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해오고 있다.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주요 작업으로는 장위동 국공립어린이집, 천호3동 구립어린이집, 강동구립 해공노인복지관 등이 있다.
gj.moon@aule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