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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줄 말이 없을 테니까

월간 건축사지 2022. 11. 7. 11:07
It will be nothing to say

나는 오랫동안 공간에 대해 생각했다. 패션 매거진 에디터로 일하면서 전 세계의 좋은 공간을 많이 보러 다녔다. 허름한 공장이 멋진 미술관으로 바뀐 마법을 꽤 여러 번 보았는데, 그때마다공간을 구체적 장소라기보다는 어떤 개념으로 인식하게 됐다. 공간에 대해 갖게 된 인식을 시로 써보기도 했는데, 읽는 사람마다 난해하다고 해서 요즘은 안 쓴다. 예를 들어 나는우성이라는 내 이름을 어떤 공간으로 두고, ‘우성이 안에서우성이가 증식하는 모습을 썼다. 나는우성이들이 모두 다른우성이가 되기를 바랐는데, 그걸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저 동일한우성이가 여럿 있다, 정도의 표현만이 가능했다. 아무튼 다들 어렵다고 하니까더 쓸 필요를 못 느꼈다.

이런저런 이유로 언젠가 내가 생각하는공간을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었다. 꿈 중에 하나가 된 것이다. 그런데 만날 꿈만 꾸고 사는 게 싫고, 운 좋게 돈이 생겨서 공간을 만들게 됐다. 논현동 가로수길 근처의 반지하다. 부동산 사장님과 그곳을 보러 갔을 때 대뜸 계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해가 잘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빛은 공간을 완성시키는 무엇이라고 믿는다.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무엇일 것 같다. 그곳은 원래 신발 매장이었는데 망해서 나가버렸고, 인테리어는 약간 조잡했지만 중앙의 바닥 타일은 예뻤다. 입구 쪽은 바닥이 나무로 돼 있어서 이 두 바닥을 잘 살리면 재미있는 걸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인테리어 하는 친구와 상의해서 바닥만 남겨 두고 다 뜯었다. 우리는 빛이 가득 차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30평이 채 안돼서 가구를 많이 들여놓을 수는 없었다. 있는 그 자체로, 가능한 넓고 고요한 상태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면 아무것도 안 하면 될 것 같은데, ‘넓고 고요한 상태로 두기 위해서는 손이 많이 갔다. 기존에 있던 못생긴 창을 교체하면서, 창가에 무엇인가 올려둘 수 있게 약간의 공간을 마련했다. 요즘은 그곳에 꽃을 올려둔다. 따로 책꽂이나 서랍을 들여 놓지 않는 대신 나무 벽을 안으로 파서 공간을 만든 후 책꽂이와 선반을 제작했다. 그곳에 색이 다양한 책들과 크기가 다른 액자들을 두었다. 이런 식으로, 채우지 않으면서 채우는 방식으로 하나하나 만들어 나갔다. 결과는…? 사람들이 와서 보고, 심심하다고 한다. “얼마 들었어?”라고 묻기에 알려줬더니 그 돈을 어디에 썼냐고 한다. 그래서 매우 실망스러웠지만, , 나는 마음에 든다.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드냐면, 내부 벽을 노란색이 약간 섞인 흰색으로 칠한 점이다. 그래서 믿거나 말거나, 해가 쌓이는 느낌이 든다. 고요하다. 색이 다른 책들, 크기가 다른 액자들이 약간의 소음을 만든다. 물론, 그 소리가 들리는 건 아니다. 저녁에 불을 켜고 앉아 있으면 낮에 들어온 해가 조명과 섞여 서로 안부를 묻는다. 물론, 그 소리도 들리지는 않는다. 아마 없는 것들이겠지. 없는 것들을 감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 그게 내가 공간에 거는 기대고, 시에 거는 기대다. 시로는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이 공간이 지금 존재하는 형태가 이 공간이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상태라고 믿는다.

이곳은 렌털 스튜디오로 사용되고 있다. 영업을 시작한지는 두 달 정도 됐고, 촬영 문의는 잘 안 온다. 홍보가 부족한 것도 이유겠지만, , 좁고, 낮다! 낮은 게 가장 큰 문제다. 사진가가 조명을 설치하기 어렵고 사진을 찍을 때마다 천장이 거슬린다. “렌털 스튜디오를 할 거면 조금 더 높은 데를 찾았어야지. 조금 더 넓고.” 사람들이 이렇게 말해주었다. 나는 렌털 스튜디오를 할 마음은 있었지만 렌털 스튜디오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시작한 일은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엇을 할지 생각하고 만든 공간이 아니라, 그저 처음 들어왔을 때 쌓여 있는 빛들을 보고 반드시 이곳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 라는 가장 정확한 대답 역시 나는 하지 않았다. 뭔 소리야, 라는 표정을 하고 쳐다보면 그땐 정말 해줄 말이 없기 때문이다.

 

. 이우성  Lee, Woosung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