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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형태의 집·필지, 계층의 혼재 상징…이런 잡종성이 ‘도시의 힘’”_김시덕 박사

월간 건축사지 2022. 11. 11. 15:47
“A mixed symbol of various types of houses · lots and hierarchies… This hybridity is the ‘power of the city’”
김시덕 박사 Kim, Shiduck 도시문헌학자

 

『이국정벌전기의 세계(異国征伐戦記の世界, 2010)』를 통해 외국인 최초로 일본 고전문학 학술상을 수상한 바 있는 김시덕 문학박사(일본 국립 문헌학 연구소인 국문학 연구 자료관/일본국립 총합연구대학원대학 소속)는 지역답사를 통해 도시의 역사·문화를 서민의 관점에서 ‘도시문헌학’이라는 고유 모델로 기록하고 있는 문헌학자다. 저서 『서울선언(2018)』, 『갈등도시(2019)』, 『대서울의 길(2021)』 등 서울선언 시리즈와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2022)』를 집필했으며, 지난해에는 관악구 문화예술 기초자료집인 『관악 동네 역사』를 출간했다. 또한 서울선언 시리즈 등의 도시 기록으로 지역문화예술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 서울특별시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문헌에서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직접 답사한 도시의 변천사를 유튜브 ‘일프로TV_김시덕 박사의 도시야사’ 코너에서 특유의 입담으로 풀어내며 주목받고 있는 김시덕 박사를 지난 10월 7일 직접 만났다.


# 도시를 읽어내고 기록하는 ‘도시문헌학자’ 김시덕
 “재개발 지역의 벽보, 서민들의 목소리 담은 중요 텍스트”
   건축·도시에 시간의 지층 쌓여, 
   길 따라 이어진 지역끼리 소속감·정체성 형성

홍성용_문헌학자이시면서도 책과 영상 등을 통해 건축과 도시 공간에 대한 얘기를 박사님의 시각으로 흥미롭게 풀어내시고 있는데, 도시문헌학자라는 용어가 생소하게 느껴지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도시문헌학자로서 하시는 역할에 관해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김시덕_예를 들어 흔히 접하는 문학이나 역사학은 책, 그러니까 텍스트가 있다고 할 때 내용을 보는 거라면, 전 당장 책의 무게나 크기 같은 그 자체의 물성을 많이 봅니다. 글과 여백 하나하나가 다 의미하는 바가 있다고 보고요. 저는 책을 볼 때 내용은 그 책이 전달하는 정보의 한 10% 정도라고 이해하고 있어요.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의미가 있고, 그걸 최대한 존중하고 그 얘기를 끌어내는 게 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방식으로, 이제 3차원적으로 도시를 다니면서 읽어내는 것을 도시문헌학이라고 지칭하는 거죠. 제가 만들어낸 용어입니다. 아르헨티나의 보르헤스라는 소설가가 했던 “세계는 거대한 도서관”이라는 말을 그대로 적용한 거예요. 정말 도서관으로서 도시를 읽어보자!
일본에서 역사학과 문화의 중간 지점을 연구하는 공부를 했었는데, 재개발 지역에서 반대와 찬성파가 붙여놓은 벽보들을 해석해낸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그건 약간 정치적인 해석이죠. 그렇지만 자기가 말하는 방법을 모르는 민중이 가끔 폭동을 일으키거나 할 때 성토문을 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텍스트거든요. 그걸 봤을 때 현대 한국의 도시에서 가장 양산되고 있는 서민의 텍스트는 벽보다! 재개발 관련한…. 이런 식으로, 보고 있으면 굉장히 여러 가지를 읽을 수 있다는 거죠. 그걸 읽어내고 있습니다. 

홍성용_여러모로 조사를 하시다 보면 도시 구조나 건축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으실 수 없을 텐데, 그런 관점에서 어떤 대상을 처음 발견했을 때와 지금 한참 연구를 하시다 다시 돌아봤을 때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김시덕_2017년쯤부터 도시를 읽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최대한 건물 얘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제 영역도 아니고, 너무 복잡한 세계라. 제 입장에서 집이나 건축은 공학에 가깝다고 느껴져서, 제가 다룰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냥 건물에 붙어 있는 정보들을 주로 보려고 했죠. 예를 들어 개량기와집이면 가옥 조사표 딱지라든지, 그런 게 그야말로 글자로 적혀 있기 때문에 읽을 게 많거든요. 초기에는 그렇게 했었어요. 을지로만 보더라도 식민지 때의 공간이 용도가 바뀌고 있다는 점에 관심을 가졌지만, 건물 자체는 제가 안 다뤄도 뭐 을지로는 다들 아니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난해쯤부터 스스로 한계에 도달한 거죠. 도저히 집이나 건물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때부터 집을 읽고 있습니다. 저는 건축을 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건축사 분들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내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요.

 

김시덕 도시문헌학자


# 국가가 욕망을 설계하는 개발·토지 수용 옳지 않아
   계층의 단일화, 장기적인 도시 성장 저해 요소

홍성용_박사님께서 도시를 설명하시는 걸 보면 욕망, 돈과 관련한 해석을 하시잖아요. 요즘에는 또 부동산과 관련된 분들과 얘기하시던데, 문헌지리학자·도시문헌학자 입장에서 ‘도시 공간에서 보이는 어떤 욕망이나 갈등의 극점들을 이렇게 보고 싶다’ 하는 부분의 예를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김시덕_앞서 다른 일정에서 파주 이야기를 하다 왔는데요. 파주는 접경지역이라 갈등이 너무 심각해서 더 터질 수 없는 곳이죠. 개성과 서울의 중간지점으로서 정말 좋은 땅이고, 천도도 여러 번 하려고 했고요. 그런데 분단 때문에 너무 큰 갈등이 있다 보니 다른 갈등이 그냥 진압돼 버리는 거예요. 때문에 당분간 변동이 없어서 살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갈등이나 욕망이 노골적으로 가장 드러나는 곳이 교외지역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서, 최근에 천안아산역 때문에 이슈가 된 충남의 아산 배방읍에 다녀왔는데요. 이걸 하나 보시면 납득이 되실 겁니다.<사진 1> 요즘 배방의 영향을 받아서 아산 온양동 쪽에도 재건축이 진행 중인데, 벽보를 보면 “가족·손자들을 위해서 새 집을 마련해 물려주자, 우리 고향 떠나시라는 얘기가 아닙니다”라고 해놓고 뒤에 보면 “만약 돈이 부족한 분은 파시고 딴 데 가셔도 됩니다”라고 합니다. 앞뒤가 안 맞아요.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해놓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느낌이 들고요. 저는 부동산으로 본다기보다 자본주의 개념으로 보고 있습니다. 공공개발도 그렇고 지주조합 결성에서 일정 비율이 넘으면 강제로 수용하는 거라든지,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가 희생하라는 건 반자본주의라고 봅니다. 지금 사회에서는 개발이 공공의 이익처럼 받아들여지고 저항할 수 없는 분위기입니다. 스스로의 재산을 지키고 동네를 떠나지 않는 게 왜 알박기로 치부되는가 하는 불만도 있고요. 저는 그런 부분을 비자본주의라고 보고, 노동자들에게는 자본주의를 언급하면서 자본가들이 땅을 개발할 때 공공을 언급하는 것에서 모순이 잘 드러난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층고 제한을 푸는 게 현재 강남 집값이 치솟는 현상을 해결하는 방식이라고 보거든요. 이용률을 올리고, 계속 살고 싶은 대로 살게 해서 최대한의 문제에 도달하면 그때 자발적으로 해결되는 걸 바라야지, 국가가 욕망을 설계하는 건 옳지 않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층수를 제한하는 건 결국은 본인들의 편의거든요. 강남을 더 이상 불편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강남 주민들과 오피니언 리더들의 강렬한 욕망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김시덕 박사는 서울 도시 기록으로 지역문화예술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1년 서울특별시문화상을 수상했다.


홍성용_도시의 다양성·획일성이라는 측면을 놓고 봤을 때, 박사님께서는 도시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계시는지요?

김시덕_저는 토지 수용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의 대원칙 아래 알박기를 하든 뭘 하든간에 합의를 통해 보상을 해줘야 하고, 그걸 공공의 적으로 돌리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마 대규모 택지 개발이 어려울 것이고, 되더라도 소규모로 진행될 테니, 자연스럽게 공간적으로든 건물적으로든 다양성이 남을 거예요. 저는 도시의 본질은 다양성이라고 봅니다. 계층이 섞이기 때문이죠. 이건 건물의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 사는 사람의 문제입니다. 소위 상층계급에서만 그 사회를 이끌 사람이 나타날 게 아니기 때문에. 순종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섞여야 합니다. 혼혈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상대적 박탈감이 더 커질 수 있음에도 도시와 농촌이 분리되는 것보다는 서로 엉켜 사는 게 좋다고 봐요. 그런 자극에서 비롯된 복잡성에서 나오는 힘이 있다고 봅니다. 저는 특히 강남 같은 곳의 용적률을 높이고 층고를 올리는 대신 최대한 국가가 도시 내에서 공공 임대주택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사진 1> 아산 온양의 재건축 벽보 © 김시덕


홍성용_옛 시내에 관한 얘기도 많이 하시던데, 어떤 시각으로 주택의 변천사를 바라보시는지 궁금합니다.

김시덕_정말 많은데요. 제가 ‘시층’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가 시간이 지층처럼 있어서입니다. 기와집으로만 가득한 것도, 아파트만 있는 것도 재미가 없고, 섞여 있는 게 재밌어요. 그래야 스토리텔링도 할 수 있고, 또 여러 형태의 집이나 필지가 있다는 건 여러 형태의 계층이 모여 있다는 거니까요. 그런 잡종성이 도시의 힘이라고 보거든요. 근데 지금은 점점 구도심이 사라지고 있죠. 북아현동은 아직 버티고 있지만 나머지 아현동에 밀리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계층이 단일화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서울도 그렇고 부산도 마찬가지고. 핵심 지역에서 이런 현상은 장기적으로 도시의 성장을 막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 시간의 지층이 차곡차곡 쌓인 도시들
   영등포·상도동 등…개발되었으나 구도심 흔적 품고 있어

홍성용_시내의 다양한 건축적 형태들이 주택에서 드러나는데, 도시가 크게 바뀌는 과정에서의 시대적 포인트를 몇 가지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시덕_너무 다양해서 포인트를 말씀드리는 것보다 지역을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야외 박물관이라 느껴지는 지역이 몇 군데 있는데요. 예를 들어 식민지 시대까지 포함하는 지역으로는 영등포, 영등포는 1910년대부터 개발이 시작된 데 아닙니까. 원래 영등포는 신길이고, 신도심으로 신 영토를 만든 거예요. 그때부터 현재까지, 신길 뉴타운까지의 시층이 차곡차곡 있어서 딱 백 년간의 실험장 같은 데죠. 상도동도 마찬가지고. 상도동이 경성부의 마지막 신도시입니다. 저는 국가기록원에 있는 그 시기의 도시 구획 정리사업 지도를 보고 답사하는데요(김시덕 저 『갈등도시』 中 상도부유지 안내도[1943] 참고).<사진 2> 그래서 지금 상도부유지를 걷다 보면 상도동 택지 개발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진 2> 상도부유지 안내도_대한주택공사 20년사


이렇게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구도심은 전체적으로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당시 택지로 표시된 곳은 지금도 주택과 건물이 있고, 택지 외곽의 산은 아파트 단지가 되어 있고요. 당시에 주변에 경사져서 개발하지 못했던 데에 판자집을 들여다 놓고 그걸 먼저 없애고, 정말 정비가 필요한 아래쪽은 남긴다는 점이 아이러니죠. 쉬운 데를 먼저 개발하고 있는… 흔한 얘기죠. 그리고 고개를 넘어오면 이제 봉천고개, 서울대 입구 쪽은 옛 흔적이 없는 1950년대부터의 박물관으로 벽에 붙어 있는 집부터 아파트까지 존재하고요. 구한말까지 갈 수 있는 곳은 을지로 2·3가 정도, 필동-남산 쪽. 그렇게 큰 블록을 보고 있습니다. 대학로 쪽은 그런 의미에서는 1920~1930년대 경성제국대학 교수관사부터 1950년대 이화동 벽화마을이라 불리는 부흥 주택도 있고, 낙산공원도 현재 공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지적도에 유령처럼 옛 모습이 남아 있고요. 제 기본 입장은 ‘찾으면 나온다’는 거예요.

# 급격한 변화 적은 지방 도시
   인적 단절 없던 부산·대구 등 구도심에서 확장 

홍성용_지방의 도시에서도 이런 흔적을 볼 수 있나요?

김시덕_지방의 도시는 좀 다릅니다. 제일 안타까운 게 목포죠. 발전이 멈춰버린 도시라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목포시와 무안군이 도청을 같이 갖고 있고, 신안군까지 세 곳의 통합 얘기가 늘 나오는데요. 원래 마치 서울이 경기도 땅을 가져온 것처럼 목포도 무안을 가져왔어야 하는데, 무안이 공장을 많이 짓고 하면서 갑자기 커져버리는 바람에 그러지 못한 상태입니다. 서울이란 도시조차도 커져가면서 새로 만드는 거고, 전남도청을 걸쳐 만든 것도 그런 의도가 있었던 건데 무한이 커지면서 목포는 그렇게 딱 갇혀버렸죠.
대구하고 부산이 재밌는 이유가 6.25 때 공격을 안 당했잖아요. 서울이나 나머지 도시들은 폭격을 받은 뒤 개발이 많이 이뤄졌고 외곽 지역도 새로 많이 구획했는데, 부산과 대구에서는 그게 안 느껴집니다. 만약 6.25가 없었다면 서울이나 인천이 어떻게 발전했을까 하는 것을 도시 공간적으로 부산과 대구에서 찾아보고 싶어요.

홍성용_말씀하신 부산과 대구의 구도심이 갖고 있는 특징이 무엇인가요?

김시덕_폭격과 점령이 없었던 곳으로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근대 도시가 고스란히 다닥다닥 붙어서 그대로 확장되고 부풀어진 상태죠. 예시로 부산이 적합할 것 같은데요. 대략 영도를 포함해서 동쪽으로는 수영만 서쪽까지, 남해안 쪽을 보면 제일 큰 특징이 건물 사이에 간격이 없습니다. 이격거리 없이 계속 떡 겹치듯 있는 이게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개념이잖아요.
수영구 남촌동 같은 경우는 그래도 옛날 조선시대 때 좌수영(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이 있을 때부터의 구조가 좀 남아 있는데… 구도심, 그러니까 말하자면 부산역 근처라든지 부산항에 비하면 조금 다음 세대이긴 합니다. 블록 자체는 일제강점기 때의 모습이 좀 남아 있고요. 나머지는 그때 나눈 블록에 그대로 피난민들이 들어와 살면서 뻥튀기 된 거고 블록 자체에는 손대지 않은… 손댈 수가 없는 구조죠. 부산은 한 번도 단절이 없었으니까. 인적인 단절이 없었던 대구와 부산은 그런 의미에서 재미있다고 봐요.

# 전의·말죽거리 등 원도심·구도심 구조 그대로 간직
   개발된 도시에 숨은 DNA 같은 옛 모습 찾아내고,
   개발 예정지의 변화된 모습 예측
   지역 넘나들며 생기는 정체성에도 관심
  
홍성용_그럼 대구에 남아있는 옛 길은 어떻게 찾아볼 수 있나요?

김시덕_대구의 구도심은 아시다시피 향교 주변입니다. 대구향교 명륜당이라고… 지명에 ‘교’자 붙어있는 데가 그런데, 답사하다 보면 느끼는 게 향교는 도심의 끝에 언덕바지에 있습니다. 그보다 더 위에 짓는 게 신사고요.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는 성당이 그 위치에 있고요. 교동이라는 지명은 우리나라 도시에 대부분 다 있습니다. 교동, 명동, 교리 이런 데가 다 그런 거죠. 교동이나 교리 등의 용어가 있으면 ‘여기가 조선시대 원도심의 끝이구나!’하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걸 제일 잘 보여주는 곳이 세종의 ‘전의’라는 도시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세종은 아마 도심 세종일 텐데, 전에 연기군 시절에 자치시를 만들기 위해 인구와 면적을 넓히면서 어쩔 수 없이 농촌을 끌어와 방치해두는 데가 있어요. 그곳이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입니다. 여기는 지금도 세종 도시하고는 무관하게 그냥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고 있죠. 저는 흔히 옛날 공간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는 지역으로 두 곳을 소개하는데 그중 하나가 전의고 하나가 말죽거리입니다.

홍성용_말죽거리는 완전히 빌라나 아파트로 다 바뀌지 않았나요?

김시덕_말죽거리가 없어졌다고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여기<사진 3>를 보시면 뚜렷이 보여요. 그런 관념을 깨뜨리는 것이 제 작업 중에 하나입니다. 이곳에도 향교가 있는데요, 웬만한 데는 다 향교가 있어요. 그래서 여기가 옛날 원도심 끝이고, 옆에 새로 놓인 게 신작로고, 철도가 놓이고 농협이 있고 소방서와 경찰서가 있으면 그게 이제 원도심을 구도심이 흡수한 뒤에 커진 사례인 거죠. 딱 이렇게 완결된 구조예요. 흥미로운 곳이죠. 조선시대 때는 물이 넘치니까 좀 안쪽에 살다가 근대들어 내려온, 천변으로 아주 전형적인 공간이죠.
근대 이후에 도시를 개발하는 방식 중 하나가 세종시가 조치원을 빨아들이듯이 농촌 도시를 흡수한 방식입니다. 거기는 예전의 원형이 남아 있거든요. 신도시가 구도심을 감싸면서 갖고 있는 정서가 있습니다. 그게 말죽거리라 보는데, 버드나무집 오른쪽의 이 길이 옛날 영남대로예요. 여기까지가 조선시대 길입니다. 고려시대까지도 갈 수 있는 길이죠.<사진 4> 건축은 없지만 길이 마치 강남 속의 미토콘드리아처럼 남아 있는 거예요. 농협, 학교, 동사무소 이 세 가지가 맞아 들어가고 성당과 향교까지 몇 개의 포인트가 있습니다. 귀납적으로 길마다 뭐가 배치돼있는지 보면서 도시의 옛날 경계를 확인하죠. 최근에는 그 관점에서 이미 개발된 도시 속에서 미토콘드리아를 찾아내고 있고, 택지 개발 예정지에서 어떻게 될 것인가를 확인 중입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세종시 전의면은 연기군인데 자치시를 만들려고 어쩔 수 없이 흡수한 지역이다 보니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세종하고는 다른, 거의 천안에 가까운 세종입니다. 천안에서부터 소정리-전의-전동으로 이어져 조치원이 나오는, 사실상 천안권이에요. 그래서 세종 내에서도 거의 자치구처럼 있는 곳이죠. 이 두 곳은 원도심과 구도심의 구조가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사진 5>

 

<사진 3> 옛 말죽거리 길을 보여주는 1977년 5000분의 1 지도


홍성용_그러면 그곳이 옛날에는 굉장히 큰 지역이었던 건가요?

김시덕_독립적인 지역이고, 농촌 시설로는 인구도 꽤 많았을 겁니다. 향교가 있으면 그런 거죠. 저는 이 정도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는 발전했고 거기서 멈춘 도시라고 봐요. 주변에 나머지 지역은 이제 농업 지역이니까. 농촌을 흡수해서 도시를 만들었는데 억지로 만들다 보니 여러 중심이 생겨버렸고, 특히 이 중심 지역에 나머지를 별로 엮을 생각도 없었던 거죠. 조치원이 원래 연기군청 소재지였거든요. 충남 연기군이었지만 생활권은 또 충북 청주권이에요. 충북 오송 쪽. 이렇게 지자체를 넘나들면서 만들어지는 정체성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사진 4> 옛 말죽거리 길 © 김시덕
<사진 5> 세종시 전의면의 한일 절충식 기와집. 현재는 수리되어 원형이 사라졌다. © 김시덕



#“도시문헌학자로서 대도시 주변의 농촌 기록하고 변천사 살필 것”
   초기 간척마을 구조를 갖고 있는 열대자 마을 등 일제강점기의 유산으로만
   치부되는 것 안타까워…지역별 특징 남은 곳 보존 가치 有
  
홍성용_도시 답사 과정에 관찰자의 입장에서 흥미진진하게 보시는 건축과 특징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김시덕_구한말 때 나타났던 초기 적산 가옥들, 일식 가옥들과 서촌 쪽에 보이는 변형된 한일절충식 집들을 보면 조선 초중기의 온돌을 받아들이면서 내려앉았던 한옥이 그걸 벗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봅니다. 근데 이후로 더 나아가지 못한 거죠. 또 제가 최근 주목하는 건 1970년대 주거 건축입니다. 이른바 집장사 집이라고 천대하는 초기 문화 주택들. 인상적이었던 데는 인천의 용현동인데, 수봉산 남쪽에 붉은색과 푸른색 집들이 깔려 있거든요. 전국적으로 이렇게 예쁘게 잘 남아 있는 문화유산들이 없습니다. 방배동이 재건축으로 날아가 버렸고, 남아있는 유일한 대규모 단지는 인천이라 용현동을 살리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은평구도 택지 개발을 하면서 홍제동으로 넘어가서… 은근히 남은 옛 건축이 많은데 은평구에서 관심이 없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기자촌을 없애버린 것이고, 한양주택 단지도 앞서 말한 진건문화마을과 마찬가지 사례인데, 박정희 대통령 시절(1979)에 북한 기자들이 온다는 전제로 통일로 주변을 정비하면서 조성한 곳인데, 특징은 블란서 양식의 지붕을 갖고 있습니다. 미니 양옥, 프랑스 집이 단지를 이루고 있었죠. 지금의 은평뉴타운 북쪽, 구파발역 즈음인데, 북한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만든 선전주택이에요. 그것도 마찬가지로 주민들이 역사성이 있는 곳이니 빼달라고 요구했는데, 알박기라는 사람들의 비난을 듣다가 완전히 날아갔죠.
지방은 의외로 이렇게 단지를 이루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수봉산 남쪽의 용인과, 일제강점기 시대 때 군산 남쪽에 조성된 간척지 마을인 열대자 마을<사진 6>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해안을 메꾸고 중간중간 마을을 만들어 초기 간척마을 구조를 남기고 있는… 지역별로 다 특징들이 있거든요.
초기 간척마을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부산 대저동과 명지동, 그리고 여기 군산이 유명해요. 아직은 구조가 남아 있는데, 군산산업단지가 개발 중이라 조만간 없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저동도 부산이 김해공항 빼고 개발할 예정이라고 하고, 명지신도시도 진행 예정이라 위험 상태에 놓여 있죠. 이게 다 일제강점기의 유산이라고만 생각하고 쉽게 없애버리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흥미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저는 적산가옥이라는 말을 잘 안 쓰는데, 해방 후에도 일본식 집을 지었거든요. 다시 돌아와서, 최근 인구가 줄고 있긴 하지만 대도시 주변 지역은 결국 도시가 될 곳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요즘은 지방을 다니면서 농촌 지역을 많이 보면서 미리 기록해 두고 어떻게 바뀌는지 지켜보려고 합니다.

# 공공개발만이 이익? 예외 인정되어야…
   아파트, 주택난 해결방안 될 수 있어

홍성용_굉장히 많은 자료를 갖고 도시 현장을 답사하고 계신데, LH 택지 개발과 관련한 박사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사진 6> 일제강점기 시대의 전형적인 농촌 구조를 갖는 군산 열대자 마을 © 김시덕


김시덕_최근에 제가 낸 책에도 남양주 진건읍을 언급했는데, 전 3기 왕숙신도시 지구가 좀 안타까운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남양주시에 아파트만 잘 지어도 주택난이 해결될 거라 봅니다만, 아무튼 2000년대에 농어촌정비사업 지원을 받아 취락구조개선사업을 한 진건문화마을이 있습니다. 마을주민들이 돈을 모아 진행한 잘 정비된 농촌 마을인데요. 고속도로가 옆에 딱 있어서 개발을 해도 소음 때문에 아파트도 많이 못 올리는 곳이고, 주민들도 마을에 애착을 가지고 있어서 제척해달라고 꽤 오랫동안 싸웠는데, 결국 LH가 예외는 없다고 못 박았죠. 이런 부분은 남겨두는 게 어떤가 하는 생각입니다. 외곽지역이고, 굳이 산에 파고들어가야 나오는 마을이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분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데서 일종의 악의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판교를 개발할 때도 열몇 개 마을이 제척요구를 했는데 하나도 인정하지 않았죠. 이건 시민에 대한 LH의 오만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성용_마지막으로, 박사님이 연구하는 부분의 한 파트를 실제 현실화하는 건축사들에게 당부하고픈 바람이 있으시다면.

김시덕_제가 아파트 키즈라 그런지… 아파트를 너무 미워하거나 방치하지 말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흡수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파트와 관련한 논란이 많지만, 그렇다고 방치하면 다 똑같은 집이 지어지고 최대한 최저로 만들어지니까… 공기관이 만든 예쁘다는 건물에는 한계가 있으니 오히려 LH도 적극적으로 공략하셔서, 하나하나가 좀 더 예뻐졌으면 좋겠습니다.


대담 홍성용 편집국장
글 육혜민 기자 · 사진 장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