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 _ 한미 수교 100주년 기념탑

위치 인천광역시 자유공원 내
대지면적 2,475.00㎡
바닥면적 686.55㎡
구조 철골조 및 철근 콘크리트조
마감재 탑 – 철골조 위 동판 마감 / 기타 – 화강석 마감

한국과 미국은 1882년 제물포에서 수교조약을 체결하였다. 미국과 최초로 맺은 이 조약은 청나라 리홍장(李鴻章)의 알선으로 우리나라의 전권대신(全權大臣) 신헌(申櫶)과 미국의 해군제독 슈펠트(R.W.Shufeldt) 간에 체결되었다. 1982년은 그로부터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에 한미 수교 100주년 기념사업회는 “그 역사적 의미를 재음미”하고 “양국과 양국 국민의 상호 신뢰와 우호 협력관계의 계속적인 발전과 전진을 희구하는 표징”으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있는 자유공원에 기념탑을 세우게 된다. 그동안 한국의 기념탑에는 기단을 만들고 수직탑을 세우는 통념이 작동해왔다. 불탑에 연유된 탓에 수직체의 기호 또한 통념이다. 반면 한미 수교 100주년 기념탑은 단순한 탑신 조형이 아니라 바닥에 공간을 구성하고 동선을 탑신 밑으로 유도한다. 그 과정에서 최만린의 조각 <움직임과 그 100년, 胎 작품40>과 박두진의 시와 김충현의 글씨가 기념성을 보조한다. 기념탐 계획을 위해 우선 가로, 세로의 축을 설정했다. X축은 동과 서를 연결한 축으로 기념탑이 세워질 자유공원 정상과 처음 조약이 체결될 당시 인천항에 닻을 내린 미국 배의 위치를 직선으로 연결한 축이다. 그리고 Y축은 남북 간의 연결축으로 처음 조약이 체결된 인천 동구 화수동과 자유공원 정상을 직선으로 연결한 선이다. 이 두 선, 즉 X축과 Y축의 교차점을 기념탑의 중심이자 정점으로 설정하고 계획했다. 탑의 외형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는 조형물로 설계되었다. 그 하나가 배(범선)의 돛이다. 또 하나는 이 탑을 바라보는 향에 따른 의미이다. 남쪽 혹은 북쪽에서 이 탑을 바라보면 미국과 한국이 중앙에 탁자를 사이에 두고 상견례하는 형상이 된다. 또한 동쪽 혹은 서쪽에서 보면 미국을 상징하는 탑과 한국을 상징하는 탑이 합쳐져서 하나로 보인다. 이것은 두 나라의 우정을 형상화시킨 것이다. 기념탑은 2군, 4쌍(8날)으로 구성되어 있다. 2군은 앞서 설명한 한국과 미국을 상징한다. 4쌍은 한 쌍 한 쌍이 두 나라를 나타내며, 또 각각의 쌍은 인간, 자연, 평화, 자유를 상징한다. 기념탑의 재료는 철재로 만들어 외피를 동판으로 싸도록 계획했다. 이것은 바닷가의 해풍에도 부식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동판에는 한국을 상징하는 완자 문양과 미국을 상징하는 직선(성조기에서 따온)이 탑 형태에 맞게 디자인되었다. 이 기념탑은 탑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데 이로써 자연과 기념탑과 사람이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탑 내부는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하나는 전망 및 휴식 공간이고 또 하나는 전시 및 의식 공간이다. 탑의 높이는 최고가 수직 20m로서 1.5m씩 낮아져 각각 18.5m, 17m, 15.5m가 된다. 경사면의 높이는 평균 25m 정도이다. 내부 공간의 면적은 673㎡로서 기준 높이보다 1.8m 낮게 땅 속에 들어가 있다. 내부는 화강석으로 마감되었다. 여덟 개의 날은 한꺼번에 하늘을 지향하며 첨예한 선을 만드는데 기하학적 추상으로 이루는 표현이 장렬하다. 이렇듯 순수한 기하학적 추상성은 어떤 수사(修辭)보다도 힘차다.

1986 _ 성심여자대학교 학생회관 소피이바라관

위치 경기도 부천시 지봉로 43
대지면적 244,625.00㎡
건축면적 2,153.95㎡
연면적 6,902.52㎡
규모 지하 1층, 지상 3층
구조 철근 콘크리트조, 철골조

1992년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이 된 성심여자대학교에 1984년부터 집중적으로 3개의 프로젝트-학생회관, 강당, 성당-를 설계했다. 그중에서 성당과 학생회관은 비교적 잘 보전하고 있으나 강당은 콘서트홀로 개조되면서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학교는 부천시 북쪽 방향의 얕은 야산에 자리잡고 있다. 부지의 형태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데 교내 포장도로를 따라서 올라가다 보면 좌로는 기존 교사들이 있고 정면의 경사 부지 위에 비교적 강한 수평, 수직선을 가진 3층 적벽돌 건물이 보인다. 이 건물이 바로 학생회관 건물이다. 기존 건물의 획일성 있는 배치를 기본으로 남북 방향의 평행한 좌표로 배치하였고, 그 축을 중심으로 대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경사지 위에 배치하였다. 학생회관은 대학시설 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다. 사용자가 다중적(多重的)이고, 기능이 문예, 자치 활동, 커뮤니티, 학생 행정, 식당, 편의 등으로 복합적이다. 동선이 다지적(多枝的)이고 사용자 시간대는 원칙적으로 24시간이다. 더구나 이 건물은 어느 곳에서도 눈에 잘 띄는 곳에 위치하여 캠퍼스 전체의 중심이 된다. 우선 산등을 깎아서 만든 땅의 형상을 그대로 이용하여 현관의 오른쪽은 계단식 시청각실을 배치하고 왼쪽에는 휴게실(때에 따라서는 전시공간으로 활용)을 계획했다. 2층에는 탁 트인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테라스를 두었고, 학생식당과 개인연구실을 각각 배치하였으며, 각 기능에 대응하도록 건물 여러 부분에 출입문을 설치하였다. 또한 3층 공간은 학생 심신 수련장인 연수실과 회의실 등을 구성했는데, 크고 작은 테라스를 적절히 배치하여 최대한 학생들의 시간 외 개별공간의 기능을 부여하고자 했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위해 평면은 다각이 되었고, 입구가 여럿이며, 접근 레벨이 2개 층에 걸쳐 형성된 셈이다. 이처럼 평면이 부등형으로 이루어지면서 형태를 지배하는 것은 예각(銳角)의 돌출부이다. 다소 과장된 듯한 건물 외관의 형태를 보완하기 위해 외부로 돌출된 예각 기둥이라는 과감한 디자인을 시도했다. 그런데 이 각도의 구성은 내부공간에서도 다이나믹한 상황을 이룬다. 계단은 수직적 사선의 상승 운동이기에 직각을 벗어난 공간은 더욱 동적일 수 있다. 홀처럼 개방된 공간을 거닐다 보면 예-둔각이 우리의 지각을 일깨운다.

1986 _ 그룹가 사옥

위치 서울특별시 성북구 대사관로 32
대지면적 825.00㎡
건축면적 224.00㎡
연면적 486.00㎡
규모 지하 1층, 지상 2층
구조 벽돌 조적조
외부마감 적벽돌, 진카트 샤시

눈앞에 펼쳐있는 산과 계곡, 그 위로 지나가는 옛 성곽, 비교적 조용하고 쾌적한 환경, 그리고 급한 경사를 이룬 땅이 이 건물의 대지 조건이었다. 좌우측에는 아직 다른 건축이 세워져 있지 않았으며, 특히 남쪽은 경사를 타고 있으므로 개방성이 뛰어났다. 또한 북쪽이 도로에 면해 있기 때문에 입지에 대한 생각은 자유로운 편이었다. 창도 제대로 없던 회현동 사무소에서 낮과 밤을 구분하지 못하던 환경과 비교하면 성북동은 낙원이었다. 무엇보다 이 자연경관을 애지중지 받아들여야 했다. 주거공간과 개인 아틀리에 설계를 목표로 건물 내부 어느 곳에서나 산과 나무, 하늘과 태양, 모든 자연을 만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계획의 요지였다. 우선 북쪽 도로에서 좌측의 구석진 땅을 주차장으로 쓰고 나니 건축이 들어설 부분은 자연히 사각형(矩形)으로 정리되었다. 급한 경사면에 들어설 수직적 체계는 4개의 큰 장방형 공간을 기능에 따라 분할 조립하여 구성하였다. 중앙의 선룸(sun room)을 중심으로 1층에 작업실(설계사무실)과 응접실(개인 사무실을 겸함)을 두었고 2층에는 침실부와 거실부를 각각 배치하였다. 2층 거실은 업무용 응접기능과 직원 휴식기능을 동시에 수용하기 때문에 전체 공간 중에서 온전히 프라이비트(private)한 공간은 안방과 침실 등의 2층 오른쪽 날개 부분이다. 중앙 선룸은 태양열 온실 효과를 기대하며 남쪽 경관을 3차원으로 확장한다. 외피를 모두 유리로 만들어 마음껏 햇살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늘 위의 구름, 주변 산의 나무들이 부담없이 시야 내로 흘러올 수 있는 공간, 즉 외부(자연)와 건물(인간)을 연결해 주는 매개공간 혹은 휴식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평면이 주는 느낌이 단순 명쾌하듯이 입면의 구성 역시 꾸밈없는 두 개의 매스로 간결하게 마감하였고 모듈화한 창호를 삼각형의 선룸(원래는 반원 곡면의 유리 볼트였으나 이후 수정) 좌우에 디자인했다. 외부 마감은 붉은 벽돌과 진카트 샤시인데, 벽돌은 그동안 애착하던 익숙한 재료였고 이를 사옥에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는 벽돌 산업이 발전하여 대도벽돌, 이화벽돌 등이 기업화되었으며, 특히 대도벽돌은 건축문화에 기여해 온 바가 컸다. 한편 진카트 샤시는 이 집에서 색채를 담당하고 있는데 이 금속 색채를 좀 더 명확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기술적인 문제들을 실험해야 했다.

1997 _ 갈평 피정의 집

위치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오천읍 기림로 1634
대지면적 8,312.00㎡
건축면적 1,284.73㎡
연면적 3,954.97㎡
규모 지하 1층, 지상 5층
구조 철근 콘크리트조
내부마감 신토석 벽돌

포항 시가지를 훌쩍 벗어나 남쪽으로 한참을 내려가다 보면 오천이라는 소읍이 있고 여기서도 멀리 떨어진 곳에 갈평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이 농촌 마을과 녹지 속에 수련원이 있는데, 간혹 지나가는 차량 소음 외에는 바람 소리, 새소리, 자연의 소리가 전부인 조용한 곳으로 신앙인들이 피정하기에는 그야말로 천혜의 조건을 두루 갖춘 곳이다. 운영 주체는 ‘예수성심시녀회’로 파리 외방 선교회에서 온 남대영(南大榮) 루이 델랑드 (Louis Deslandes) 신부(1895-1972)가 1965년 은퇴한 후에도 갈평에 공소를 설립하여 주민들에게 하느님을 알게 하고 지역에 봉사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이 피정의 집은 수녀회 수녀를 위한 피정을 우선하지만, 성당을 가지고 있으며 숙박과 분임토의가 가능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에 있다. 건물의 형태는 그동안 익숙했던 방형(方形)의 기하학적 기저 대신 곡면 구성, 즉 타원형의 평면 형태와 1면 경사 지붕을 갖는 형상으로 계획하였다. 동서 방향인 타원의 장축이 건물의 전면동과 후면동을 구분하는데, 전면동에는 건물의 현관과 사무실, 식당, 소성당, 강당, 강의실, 수녀원 등을 배치하였고 후면동은 전체를 피정의 집으로 구성하였다. 피정의 집인 후면동은 경사지를 그대로 이용하여 전면동보다 레벨이 반층 정도 높으며, 외부와 격리되어 있다. 타원형 평면의 중앙부에는 동심형의 중정이 약 30m×20m의 크기로 계획되었다. 중정은 건물의 전후면 동이 품고 있는 형상인데, 동양에서 말하면 원융(圓融)이다. 이 중정은 일종의 마당으로 교육, 야외미사, 사색, 휴식 등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였다. 내부공간은 이 중정을 끼고 복도와 방이 배열되면서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건물 외장은 전부 적벽돌로 마감하였고 중정 방향으로 경사진 지붕은 동판으로 덮었다. 또 지붕 처마를 돌출시키거나 일부 기둥과 보를 노출시켜 입면에 변화를 주고자 했다.

1991 _ 부산 남천성당

위치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로427번길 15
대지면적 10,981.90㎡
건축면적 1,935.00㎡
연면적 4,473.30㎡
규모 지하 1층, 지상 2층
구조 철골조, 철근 콘크리트조
외부마감 적벽돌, 열선반사 복층유리

남천성당은 부산교구 주교좌 성당이다. 북으로 황령산과 금령산을 배후에 두고 남으로는 광안리 해변이 가깝다. 주보(主保) 성인이 정하상 바오로이다. 정하상(丁夏祥, 1795-1839)은 조선의 가톨릭 포교를 위해 박해를 피하면서 국제적인 선교를 펴다가 기해박해(己亥迫害, 1839)때 순교하였다. 우선 설계 시 종교 건축을 조형하면서 건축 기호는 상징으로 작용하도록 했다. 독립된 종탑은 첫 번째 기호가 되고, 본당은 삼각형 단면으로 뾰족집의 인상을 결정짓는다. 특히 종탑의 형태는 천국으로 가는 열쇠를 상징하는데, 이 모두가 하늘을 향한 몸짓이다. 이 성당은 10층 규모의 KBS 건물과 12m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경사진 이형의 대지 위에 자리잡았다. 도로에 평행하게 건물을 배치하고 남측으로 야외미사 공간과 성모상을 두었다. 동측에는 장래 성당의 확장에 대비해 공간을 확보하고 주차공간을 배치했다. 높이 25m, 길이 64m의 거대한 수직벽의 매스에서 오는 중량감은 견고성과 강한 이미지를 주는데, 이는 마주보는 KBS 건물에 대한 반사적 의미로서 교회의 이미지 감소와 왜소함을 해소하려는 의도가 있다. 수평으로 반복 운동하는 상부 개구부는 정적인 형태에 운동성을 부여하고 매스의 무게감을 해소한다. 또 부산 바다에 떠 있는 듯한 범선 형태는 지역 이미지를 강조한 것이다. 남측은 45도 경사의 커튼월로 북측벽과 강하게 대비시켰는데, 이로써 건물에 극적인 양면성을 강조하면서 매스의 무게감을 해소하고 KBS와 동일성을 갖는 도시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자 했다. 낮은 출입구를 통해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시각적, 공간적 확산이 극적인 공간 변화감을 준다. 우측 수직벽의 강렬함과 좌측 경사 커튼월의 투명성은 공간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커튼월을 통해 밀려드는 외적 요소와 수직벽의 요철을 통해 음영의 깊이와 부드러운 공간 분위기가 연출되도록 계획하였다. 이 거대한 유리면은 1995년에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워져 그야말로 광혜(光惠)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