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건축사’ 특집 2회를 시작하며

건축은 여러 조직과 참여자들의 종합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작품이든, 아틀리에의 작품이든 철저한 개인의 사고에서 출발한다. 물론 오늘날 산업에서 건축설계는 조직의 성과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전 세계가 그렇다. 건축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런 불특정 다수의 집단지성 같은 결과로 말한다. 과연 그럴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조직이 커지고, 집단 지성이라 할지라도 주도하는 특정인이 있고, 반드시 중심을 정리하는 개인이 있다. 없을 수가 없다. 다만, 아시아적 경영개념이라던가, 경영 전략상 퇴사한 자의 경력을 제거하려고 주도한 자를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오래전 미국의 대형 건축사사무소에 근무하던 피터프랑이라는 사람은 그런 조직에서도 독창적인 개인을 드러낸 건축사다. 피터프랑은 조직의 한 명이었지만, 동시에 개인 건축사였다. 누구의 아이디어냐에 대한 존중과 가치 인정, 그리고 보상은 서구적 전통 같기도 하다.
대한민국 산업사회 건축의 역사, 건축사의 역사는 해방 이후부터 보는 것이 타당하다. 1945년부터 현재까지 볼 때 아쉽게도 서구나 일본과 달리 만년(萬年)에 건축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분들이 드물다. 당사자에게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사회의 분위기가 그렇다. 그렇다 보니 뿌리가 약한 나무처럼 바람이 불면 날아가 버리듯, 대한민국 건축의 정체성은 여전히 모호하다. 연대기 전 진화를 주도하지 못해서 그럴까? 발주처의 권력과 자본의 위력은 만년의 건축사를 외면하기 일쑤다. 천만다행으로 이런 환경과 맥락 속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
올해는 의무가입의 첫 단추가 다시 연결되려는 시점이다. 우리 건축사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분들을 우리 스스로 대우하고, 존경해야 할 시점이다. 이에 월간 건축사는 2019년 ‘이 시대의 건축사’ 기획을 마련하고 승효상 건축사 특집을 발간했다. 2020년은 그 두 번째다. 대한민국 산업사회의 본격적인 진입 시부터 시작해서, 대형 건축사사무소 출신으로 40여 년 가까이 건축설계 작업을 하고 있는 이성관 건축사를 두 번째 특집으로 했다. 서정적 형태와 공간이 특징인 그의 작품들에서는 연대기별로 변화와 진화를 볼 수 있다.
2회째 시도된 ‘이 시대의 건축사’ 코너의 맥이 끊어지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월간 건축사의 한 코너로 자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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