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angLim Culture park

사진작가 김성희_사진짓기

잇다…과거–현재-사람을
광주 양림동 공예특화거리(펭귄마을) 건축기행

근대식 건축물에서 재기발랄한 공예가게까지…500년 마을의 지문을 찾아서
광주 양림동은 시간이 멈춘 것도 같고 흘러가는 것도 같은 알쏭달쏭한 마을이다. 백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가옥에서 근대식 학교와 병원, 최근에 조성된 공예특화거리까지 과거와 현재가 켜켜이 공간에 새겨진 듯하다. 500년 간 축적된 지문(指紋)이 뻗어 있는 마을답다. 몇 년 전부터는 이런 옛 감성이 중장년에겐 향수와 공감을, 젊은 층엔 새로움으로 인식되면서 뉴트로 감성의 골목길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2017년엔 문화관광부가 주최한 올해의 관광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래 살아온 인생사처럼 펭귄마을에도 희로애락이 깃들어 있다.

양림동, 과거-현재-사람의 앙상블
양림동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어느 시절엔가 이곳은 광주 최초로 서양 근대문물을 받아들인 공동체 역사의 성지였다. 일제강점기 때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이 만든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윈스브로우 홀(등록문화재 제370호), 커티스메모리얼 홀, 오웬기념각(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6호), 우일선 선교사 사택, 제중헌(현 기독교병원) 등의 근대식 건축물들이 이곳에 지어졌다. 120년 전에 건립된 옛 정낙교 가옥(현 이장우 가옥)이며 독립운동가 최상현이 짓고 기거했던 현 최승효 가옥(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 제2호)도 이곳에 있다. 그러나 이곳 역시 ‘개발’의 물결을 피해갈 순 없었다. 2008년 양림동 일대에 천여 세대의 아파트가 들어섰고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위해 시는 2011년 양림동을 주거환경개선사업 정비구역으로 지정했다. 낙후된 동네를 정비하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라도 들어서 부동산 가치가 오르길 바랐던 주민들은 하나둘 양림동을 떠났다.

빈 집이 늘어났고, 골목에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생활용품들이 나뒹굴었다. 설상가상으로 어느 폐가에서 화재까지 발생했다. 한때 근대화의 중심지기도 했던 무구한 역사의 장이 퇴색하는 데에는 몇 년이 안 걸렸다. 남은 주민들의 심정은 아마 참담했으리라. 하지만 그 마음 한편에는 유쾌함이 있었다. 2013년에 김동균 촌장이 주민들과 함께 빗자루와 붓을 들고 골목으로 나왔다. 이들은 구석구석 동네를 청소하고, 폐품으로는 담벼락을 알록달록하게 꾸몄다. 빈 공간 몇 군데에는 작은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은 어느 주민의 뒤뚱뒤뚱 걷는 뒷모습을 본 따서 텃밭과 마을에 각각 ‘펭귄텃밭’과 ‘펭귄마을’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이것이 펭귄마을을 있게 한 또 다른 역사의 페이지다.

펭귄마을을 세상과 연결시킨 지금의 펭귄마을을 있게 한 이들은 ‘양림동 공예특화거리조성사업 프로젝트’ 팀들이다. 홍건영 광주디자인진흥원 디자인융합팀장은 “광주시와 남구청이 양림동의 보존 가치를 인정하기로 의견을 모으면서 양림동의 지정구역을 기존 어린이공원에서 문화공원으로 바뀌었고 ‘양림동 공예특화거리 조성사업’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면서 “문화공원으로 지정되면 전시, 체험, 소매 등의 가게를 법적 허용 범위 내에서 운영할 수 있어 부지활용이 보다 자유롭다”라고 설명했다.

골목을 타고 흐르는 역사, 예스러워 더 새롭네
2017년 면적 4,071m²(건축면적 1,077m²) 총 사업비 44억대 규모의 ‘양림동 공예특화거리조성사업’이 착수됐다. 공사는 2019년 9월에 시작해서 올해 6월에 완공됐다. 총 사업기간 중 가장 시간을 들인 부분은 기본 조사와 설계(2017~2019년)다. 광주광역시와 남구청, 광주디자인진흥원 등의 행정기관들과 건축사, 지역주민들이 함께 의견을 교류하면서 기획을 만들어나갔다. 다양한 의견들을 절충하는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구는 부동산을 걱정했다. 사업의 꿍꿍이(?)를 의심하는 주민도 있었다. 한 번은 주차장 부지 문제 때문에 행정기관과 건축사 간에 의견이 충돌한 적도 있다. 이 사업에 총괄건축가로 참여한 박홍근 건축사는 “문화공원을 조성할 땐 법적 허용범위만큼 주차장을 설치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골목길 한 곳을 막아야 했다”면서 “하지만 그 부분은 펭귄마을을 잇는 중요한 지점이었기에 우리는 그 골목만큼은 지켜야한다고 주장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우여곡절 끝에 법적 허용 범위 내에서 면적을 조정해 골목을 사수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그렇다면 ‘골목’은 펭귄마을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박홍근 건축사는 양림동 공예특화거리조성사업의 건축 콘셉트를 이렇게 설명한다. “유서 깊은 건축물들에 점을 찍고 이를 골목이란 선으로 연결해 동네 구석구석을 잇는 것.” 박홍근 건축사는 선을 이어 면을 만들고 그 면에 볼거리와 체험 등을 연결해 골목을 보다 입체적인 공간으로 확장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서는 골목을 살려야 했다. 일부 담장과 대문을 허물었던 것도 골목을 확장하기 위함이었다. 동네에 있는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필요한 부분에 한해서만 보수공사를 진행했고 대부분은 기존의 형태를 살렸다. 기존에 있던 우물 옆에 두레박을 설치할 때에도, 처마길 아래 그늘진 공간을 활용해 툇마루를 놓을 때에도, 어떤 부분을 놔두고 어떤 부분을 수정해야 할지 조심스러웠다. 덧댐으로써 누추해지는 것은 아닐까, 고민됐다. 그러나 ‘검이불누 화이불치(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를 떠올리면 답이 나왔다. 이는 삼국사기에 기재된 백제 건축의 미의식으로, 박홍근 건축사가 사업 기간 내내 되새긴 말이다.

전통 가옥·선교사 교회·촌장실·공예거리·카페가 곳곳에
2020년 현재 양림동은 양림동 오거리에서 시작해 펭귄마을로, 신선한 커피향이 흐르는 근대식 건축물들이 자리 잡은 골목으로, 좌우 곳곳으로 뻗어있다. 펭귄마을 마당엔 공연무대 등 다목적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단아한 한옥이 자리하고 있다. 인근에는 김 촌장의 공간인 ‘펭귄마을 촌장실’이 있다. 둥글넓적한 붓글씨가 새겨진 나무 팻말이 정겹고 예스럽다. 기자가 펭귄마을을 방문한 날은 코로나19 여파로 펭귄마을을 대표하는 공예가게들이 휴일이었다. 재기발랄한 공예가들이 만든 은반지, 도자기 컵, 나무도마 등 공예품들을 창문 너머로 보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한눈에도 담백하고 개운한 멋을 느낄 수 있었다. 펭귄마을만의 멋일 것이다. 골목 담벼락에 장식돼있는 폐품들로 만든 정크아트와 마주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옛날 시계들을 엮어 만든 작품이며 앙증맞은 펭귄 그림, 반가운 시를 꾹꾹 눌러 담은 담벼락에 어린아이와 같은 순박함이 묻어 있었다. 소박하고, 그래서 소중하게 느껴지는 골목 풍경이다.

공예거리 반대편으로 가면 건축적 가치를 지닌 근·현대 건축물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일제강점기 때 서양에서 건너온 선교사들의 흔적들이 양림교회, 수피아여학교, 기독교 병원 등의 건축물에 고스란히 서려 있다. 건축물들의 보존 상태도 좋아 꼼꼼히 봐도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농업 전문 선교사이자 광주 어비슨 농업학교, YMCA의 설립자 어비슨의 업적을 기리는 어비슨 기념관은 현재 전시장과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커피를 마시며 잠시 지친 걸음을 쉬어보는 것도 좋겠다. 카페를 생각하니 기억나는 곳이 또 있는데, 그 카페에는 놀랍게도 양림동굴이 있다. 동굴을 막아 없애지 않고 이를 살려서 카페 인테리어로 활용한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동굴이다.

“준비한 체험활동과 행사들이 많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보류된 상태입니다. 추후 상황을 봐가면서 준비한 것들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갑작스레 세계를 덮친 코로나19의 여파는 지난 6월 단장을 마친 펭귄마을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앞으로 펭귄마을이 보여줄 풍경의 가능성은 열려있다. 나이 지긋한 동네와 공예가들의 생기 넘치는 에너지가 흐르는 마을. 모든 여행이 그렇겠지만 이곳만큼 직접 보고 느껴야 하는 곳도 없다. 건축사와 함께 마을을 돌며 양림동 건축물에 얽힌 역사를 듣는 건축테마투어도 추천한다. (사)한국건축가협회 광주전남건축가협회에서 운영 중이다. 문의 : 양림역사문화마을 홈페이지(http://visityangnim.kr)

글 이유리 기자

사진작가 김성희_사진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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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도

양림동 공예특화거리 펭귄마을

총괄건축가 | 박홍근 _ (주)포유 건축사사무소

설계자 | 박종호 _ 유민 건축사사무소

사업주체 | 광주광역시·광주광역시남구·광주디자인진흥원

대지위치 | 광주광역시 남구 백서로 92-8(양림동) 외 56필지

주요용도 | 문화집회시설(체험장, 전시장), 근린생활시설(소매점)

대지면적 | 4,071.00㎡

건축면적 | 1,068.34㎡

연면적 | 1,246.76㎡

규모 | 지상 1층, 지상 2층 / 총 21개동

구조 | 목구조, 조적조+슬래브, 조적조+기와

설계·공사기간 | 2018. 07 ~ 2020. 04

사진 | 김성희 _ 사진짓기

YangLim Culture park

General Architect | Park, Hongguen _ FORYOU Architects

Architect | Park, Jongho _ UMEAN Architect

Public ordering organization | Gwangju Metropolitan City·Gwangju Namgu Office· Gwangju Institute of Design Promotion

Location | 92-8, Baekseo-ro, Nam-gu, Gwangju, Korea

Program | Cultural, Neighbourhood facility

Site area | 4,071.00㎡

Building area | 1,068.34㎡

Gross floor area | 1,246.76㎡

Building scope | 1F, 2F

Structure | Wooden structure, Brick structure

Design·Construction period | Jul. 2018 ∼ Apr. 2020

Photograph | Kim, Seong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