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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자극적인 건축인의 생로병사

The somewhat exciting birth, old age, sickness, and death of architects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생각하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하신 한 건축사분의 모바일 부고장이 나에게 좀 충격이었다. 그분과 나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는 없다. 다만 비슷한 연배로 추측이 되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부고는 대부분 우리의 조부모님 또는 부모님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래서 부고에 대해 그리 큰마음이 남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이 부고장이 눈이 들어온 것은 특히 건축사 당사자에게 일어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일면식도 없는 그분의 부고가 나에게 마음의 충격으로 남았던 것은 그분을 대신해 그의 가족이 그분의 건축사사무소와 작업하던 설계일, 계약관계 등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의 막막함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슬픔의 무게도 힘든데 그 가족을 오롯이 현실의 상황을 정리해야 하는 궁지로 모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안타까움과 저림이 있다. 이건 건축사라는 직업군의 감정이입일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 내 사무소를 정리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개설하고 10년이 지나는 시점에서 세월의 짐들이 많다. 자료 황화일과 도면이 한가득이고, 나조차도 어찌 정리해야 할지 막막하다. 이사하는 것과 정리하여 없애는 것은 참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제일 편한 것은 다 버리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인생의 반 이상을 걸어온 것에 대한 미련 때문에 정리가 쉽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더욱 막막한 생각이 든다. 물리적으로 보이는 것들이야 눈 딱 감고 버린다 치고, 우리의 도면과 데이터들은 어떻게 할까. 건축주에게 나 이제 그만두게 되어 자료를 줄 테니 잘 간직해라, 이러면 되나? 아님 잠적 모르쇠로 하면 될까?

건축사사무소를 개업할 때, 인생 스케줄에 대한 생각보다 건축사를 취득했으니 사무소 개소는 한번 해 봐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무작정 시작했다. 독립을 하면 좀 더 무한정으로 내 맘대로 자유로운 건축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적 생각을 했다. 좀 무모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이런 무모한 생각이 인생을 다른 방향으로 재미있게 끌고 가기는 한다. 하지만 시작과 이후의 여정과 끝에 무엇이 있는지는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비로소, 건축과 같이 가는 건축인의 생로병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독립한 건축사들의 평균적 시간으로 보면 건축과를 졸업하고 10년(30대)은 건축실무를 익히고 나머지 20년(40~50대)을 독립해서 운영한다. 사실 큰 사무소를 제외하고 열정적으로 건축설계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15년 정도일 것이다. 그리고 한 5년 정도는 사무소 일이 점차 줄다가 폐업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그럼 대략 60세가 넘을 것이다. 예전과 다르게 60세의 정년이 우습다고 생각하지만, 개인 사무소를 운영하는 건축사 본인이 점점 젊어지는 건축주를 상대하고 새로운 행정처리를 신세대(젊은 건축사)처럼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다. 직원이 많거나 큰 법인이라면 이런 게 문제 될 것이 없지만 독립해서 개인 사업자로 운영하는 건축사가 이 모든 과정을 포괄적 이해를 하며 따라가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어찌했든 60세 전후로 우리의 건축설계는 대략 정리될 거라 생각한다. 한 번쯤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건축사분들도, 시작하는 건축사분들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된다. 모두 겪어내야 할 부분이니 개인이 알아서 해결하는 무관심 말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같이 준비하고 맞이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해본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 공간을 만들어 주듯이 우리의 마지막쯤의 공간도 함께 아름답게 만들어 보자는 의미이다.

사실 글 요청을 받고 건축 인생을 되돌아보는 즐거운 시간을 가져보려고 수락을 했다. 한 번은 건축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려는 요량이었고, 후배 건축사에게 10년이 지난 어느 건축사의, 도움이 될 만한 노하우를 정리해서 대방출하고 그들에게 용기도 주는 말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정리하려고 하면 할수록 나의 앞으로의 모습이 고민되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중 직원과의 대화에서 건축사협회 경력관리를 하러 갔었는데 폐업신고를 하러 오신 분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앞의 건축사분의 부고와 같이 오버랩 되었다.

건축사협회에 가서 사무소 개설신고를 했던 기억은 사라졌다. 하지만 분명 개설신고를 했을 것이다. 또한 나도 언젠가 그분처럼 사무소 폐업신고를 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를 잠시 상상해 보았을 때 폐업신고는 맘이 편치 않았다. 협회에 들어가는 발걸음조차 별로일 것 같고, 개설신고 때와는 다른 쭈뼛거림이 있을 것 같은 상상은 뭔지 모르게 찜찜하다.

“건축사사무소 개설하러 왔습니다” VS “건축사사무소 폐업하러 왔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폐업을 하는 것은 꽤나 자랑스러울 것 같은데, 그럼에도 왠지 슬퍼지는 것 같다. 그동안 수고했음에 축하받을 일인데, 내가 기획하여 스스로 상을 줄 수도 없고… 혼자서 이런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 공간을 만들고 그 감성을 논리로 풀어서 형상화하는 대단한 일을 한 건축사다. 이런 건축사가 마지막에 좀 멋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마지막까지 수고한 건축사가 축하받았으면 좋겠고, 그 멋진 일을 건축사협회가 우리에게 제공해 주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건축사협회는 건축사를 교육하고 서류적인 경력을 관리하는 장소이지만 동시에 우리의 감성을 채워주는 장소였으면 한다. 결론적으로 건축사협회 차원에서 폐업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건축사협회는 폐업 시 수고한 회원이 아름다운 정리를 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건축사의 위상을 높여 주었으면 한다. 일차적으로는 폐업 서류목록표를 제공할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 정신적 물리적 관계적 도움까지 준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예를 들면 사무소가 폐업하더라도 건축사협회에 이관된 폐업사무소의 설계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 수 있도록 하면 개인 건축사가 걱정하고 찜찜해하는 부분을 일부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사업체처럼 사무소를 깔끔히 정리해 주거나, 건축사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은퇴할 수 있도록 감사패를 만들어 축하해 주는 등 감정 프로그램 또한 제공해 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특별히 앞의 사건처럼 건축사가 본인의 업 중 사망한 경우가 생기면 가족들을 도와 사무소를 정리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서 가족들의 막막함에 의지가 되어주면 더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대략 30년 동안 설계를 하고 마무리한 건축사들의 노하우가 연계되는 장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봉사도 좋고 새로운 일자리도 좋다. 건축사협회에 이런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 수 있다. 다만 있는데 이용하지 않는 것과 아예 그런 것이 없는 것은 좀 다르지 않을까라는 점에 있어서, 있는 것이 좋겠다는 동의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지막 글을 맺으려 하니 후배 건축사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든다. 도움이 되는 말들을 해주고 싶었는데 결국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하지 못하고 앞으로 닥칠 나의 고민에 대한 생각으로 걱정과 넋두리를 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후배 건축사가 선배 건축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누구보다도 자기 일처럼 나서 준다. 우리 건축인들은 고립적으로 일을 하여 기본성향들이 독립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고민에 대해 해결해 주려는 이타적인 마음들이 있다. 도움을 요청하면 다들 열심히 노력해 줄 것이다. 그러니 밥을 사 달라는 정도로만 다가가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글. 민경원 Min, Kyungwon 건축사사무소 라움플랜

민경원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라움플랜

2011년 11월 어느날, 서초구에 건축사사무소 라움플랜을 개소하여 작은 규모의 근생건물과 주거를 위주로 설계를 하고 있다. 다음 프로젝트로는 항상 건축사의 자가 건물짓기를 준비하고 있다.
raumplan2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