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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림의 슬기

The wisdom of counting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어머니가 인두를 이용해 저고리 동정을 다림질하신 것이 기억난다. 어머니는 인두를 숯불에 올려놓고 적당한 온도에 다다르면 동정을 다림질하셨다. 그때 인두가 너무 달궈지면 동정이 손상되므로 적정한 온도에 기준을 정하기 위해 어머니는 소리 내어 셈을 하시곤 했다. 이윽고 수차례 인두 다림질을 마치고 동정이 반듯하게 다려지면, 동정 달기 바느질을 하시고 어머니는 일을 마치셨다.

어머니 하시는 일을 도와드릴 나이가 안되었고 손도 서투르므로 나는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 기억이 나는데, 중요한 사실은 정확한 시간을 기다려서 알맞은 온도를 이용하여 해당 일을 균등하게 적용시킨 후, 원하는 품질로 일을 마친다는 지혜를 배운 것이다. 그 헤아림의 슬기는 나의 인생에 많은 적용을 가져왔다.

나는 아침에 잠이 깨면 기지개를 켤 때 셈을 열 번 한다. 좌로 몸을 비틀어 셈을 균등하게 하고 우로 비틀어 동일하게 한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지난 하루에 맛있게 섭취한 영양분을 활용하고 난 후 버려야 할 것을 시간 3분 이내로 정해놓고 배출한 후, 몸을 씻는다. 그리고 양치질에 셈을 또 적용한다. 왼쪽 아랫니 안쪽에 칫솔질을 셈으로 20번 하고, 아랫니 상부 면을 동일한 셈으로 하며 우측을 또 그런 식으로 한다. 아랫니에 했던 방식으로 윗니를 양치하고 앞니 역시 동일하게 하고 난 후, 앞니 아랫니 앞면을 3등분 하여 동일한 셈으로 한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건치는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는데, 어느 날에는 거울을 보다가 나의 이가 누렁니라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양치질 시간과 나의 시간을 비교하여 보니, 3배 이상 차이가 났다. 나는 1분 미만, 어머니는 3분 30초…. 이를 너무 박박 닦으면 치아 면 상아질과 잇몸에 손상이 오므로 박박 닦지 않으시고 꾸준하게 양치질하시는 어머니 모습을 보고 나의 양치질을 반성하게 되었고, 이를 적용하여 5분 정도(혓바닥 닦기, 물 헹굼 포함)의 시간 동안 이를 닦고 나니, 나도 이젠 건치와 이전과 비교하여 하얀 이를 가지게 되었다.

설계 일을 하면서도 헤아림의 슬기를 적용한 경우가 있었다. 손으로 도면을 작도하던 시절에는 연필이나 샤프펜슬로 트레이싱지에 작도하게 되는데, 특별히 도면을 고급으로 작성하여 납품하거나, 수없이 많은 청사진 작업에도 오랫동안 견뎌낼 수 있는 고급 품질의 도면을 만들어 내야 할 때에는 ‘로트링’이라는 특정 제품의 만년필 도구로 고급 비닐 트레이싱지(트레팔지)에 잉킹을 하여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그러다가 자칫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삼각자나 수평 작도용 아이 자가 닿으면 잉크가 번지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엔 잉크가 마르기를 기다린 후 돌돌이라는 전동 지우개를 이용하거나, 특별히 제작된 잉크 지우개를 이용하여 지워야 다음 일을 하게 되므로 무척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그때 셈하며 기다리는 지혜는 아주 유용하게 적용되어 그림을 잉킹하고 난 후 속으로 셈을 하면서 마르기를 기다리면, 번지거나 지우는 일 없이 일정하고도 반듯하게 그림을 그려서 설계 업무를 마친 적이 있었다. 도면을 완성한 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설계도를 한참 감상하면서, 어릴 적 눈과 귀로 배운 어머니의 ‘헤아림의 슬기’에 감탄하곤 했다.

일상생활에도 많은 부분을 적용하는 사례는 또 있다. 나는 건강관리 스포츠로 일주일에 1번 맑은 날씨를 골라 토, 일요일 중에 10킬로미터 마라톤을 하고 있다.
나는 삶 속에서 여러 가지 스포츠를 해보았다. 테니스, 족구, 야구, 축구, 골프 등. 그러나 위에 열거한 운동은 허리 축을 중심으로 몸을 비틀어서 하는 운동이므로 늙어서까지 지속적인 운동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척추 관절 전문가의 조언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척추, 무릎, 발목에 무리가 오지 않은 운동인 10킬로미터 마라톤이 내 몸에 가장 적당하고 지속 가능한 것임을 자각한 후, 마라톤을 배우게 되었다. 마라톤 학습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졸고 ‘마라톤을 합시다(월간 건축사 VOL.638[2022.06월]호 수록)’를 참고하기로 하고 헤아림 적용 사례를 이어가 보자.

마라톤은 시작 전 그리고 뛴 후 몸풀기, 즉 스트레칭을 잘해야 부상을 예방할 수 있다.
일정한 시간 동안 좌우 대칭의 몸 근육을 효과적으로 스트레칭하는 일에도 셈은 적용된다. 각 부위 스트레칭을 열을 세면서 하고 골고루 실시하면 부상 없는 마라톤을 즐길 수 있다. 밀레니엄 시대 전인 1999년 마라톤을 배워 운동한 지 벌써 20년 넘게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인생 말년까지, 다시 말해 한계 수명에 다다를 때까지 평생 하고픈 운동 욕심 중 하나가 주 1회 10킬로미터 마라톤이다. 원활한 유산소 운동에 신진대사 촉진, 그리고 뇌의 혈류량 증가로 언제나 싱싱한 아이디어 창출, 건전한 정신 함양, 맑은 마음가짐 유지 등이 마라톤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이점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동창의 집들이를 갔다 캄캄한 밤에 계단을 내려오면서 연탄아궁이 맨홀에 빠져 왼쪽 어깨가 맨홀 턱에 걸치면서 심하게 다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병원에 갈 엄두를 못 내고 그저 파스로 대신하며 큰 생각 없이 수십 년 방치했었다. 이후 왕년에 잘했던 턱걸이가 안 되었는데 근래 무리한 골프 연습과 쏘가리 루어 낚시를 자주 다니면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와 정형외과에 가서 MRI와 CT 촬영을 해보니 회전근개 근육 중 극상근이 찢어져 있었던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제 건강, 실손 보험이 잘 적용되는 시대니까 어깨 근육 리모델링을 위해 수술을 하고 재활운동을 했었는데, 재활운동은 회전근개 치료 과정 중 가장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이 악물고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도 셈의 진리를 활용하여 7개월을 재활하고 나니, 이젠 이전의 다친 근육보다 더 싱싱한 어깨 근육을 보유하여 골프, 쏘가리 루어 낚시, 방패연 날리기를 지속적으로 재미있게 하고 있다. ‘말년에 수술하느니 그냥 쓰다가 가지 뭐’라는 마음가짐보다 전문의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리모델링하고 재활치료하면서 몸의 뼈, 근육을 바로잡아 흐트러지지 않는 축을 유지하며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지혜를 여기에도 적용한 것이다.

인생 지혜 중 하나인 헤아림의 슬기를 어머니로부터 배운 후, 나는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고 싱싱한 몸과 근육 놀림 그리고 맑은 뇌와 건전한 정신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도 나는 글을 쓰고 설계도면을 그리고 건축을 하며, 쏘가리 낚시를 즐기고, 기타 반주를 이용한 노래를 만들어 흥겹게 부르면서 살고 있다.

 

글. 조정만 Cho, Jeongman (주)무영씨엠 건축사사무소

조정만 (주)무영씨엠 건축사사무소 건축사·문학작가·뮤지션

조정만(趙正滿)은 전북 남원 출생으로 성원고, 건국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천일건축, 금호그룹 종합설계실, 아키플랜에서 실무를 익혔다. 2007년 선함재 건축을 설립, 강원 청암재, 고양농경문화박물관, 동교 주상헌, 대방동 H빌딩 등을 설계했다. 2021년 이후에는 미단시티 G오피스텔, 옥천Y주택, 대청호 수연재, 마포 K오피스텔 등을 설계하고 있다. 2016년 봄에 한국수필에 ‘방패연 사랑’과 ‘아버지와 자전거’로 등단하였고, 2022년 여름에 취미를 주제로 ‘쏘가리’, ‘꽃과 빛망울의 하모니’ 창작곡을 디지털 음원으로 발표하였다. 현재 건축사, 문학작가,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고 저서로는 산문집 『요원의 들불처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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