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목적 공정성·익명성만으론 그저 그런 보통 건축물만... 공공건축 품격 구현 힘들어”_함인선 총괄건축가 2022.4

2023. 2. 18. 09:25카테고리 없음

“Only with nominal fairness · anonymity, 
  just ordinary buildings but not enough to realize the dignity of public architecture”

 

월간 <건축사>가 지난 3월 21일 함인선 광주광역시 총괄건축가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의무가입 시대를 맞아 건축사 윤리 확립을 위한 윤리강령 제정, 신뢰 기반의 공공건축 설계공모 심사 도입 및 건축 인허가 제도에 대한 평소 생각을 전했다. 또 건축계가 의무가입 건축사법 시행과 새 정부 출범 등 변화의 시기를 겪는 상황에서 좋은 건축을 위해서는 건축사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더욱 두텁게 해야 한다는 뜻을 전했으며, 공공건축 설계공모에 대해선 명목적 공정성에 집착하기보다 심사위원 재량을 강화하고 문제가 생길 경우 책임을 확실히 묻는 ‘신뢰 기반 심사제도’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현행 건축심의 관련 건축물의 성능과 디자인에 관련된 사항은 건축사 재량에 맡기고 공공성에 대한 것을 심의 대상으로 삼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는 생각도 밝혔다. 함인선 총괄건축가의 저서로는 ‘구조의 구조’, ‘정의와 비용 그리고 도시와 건축’, ‘건물이 무너지는 21가지 이유’ 등이 있다.

함인선 건축사(광주광역시 총괄건축가) _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특임교수. 저서로는 <구조의 구조>, <정의와 비용 그리고 도시와 건축>, <건물이 무너지는 21가지 이유>, <건축은 반역이 다> 등이 있다


# 의무가입 건축사법 통과, 새 정부 출범 등 변화 시기
   좋은 건축 위해서는 건축사 사회적 신뢰 제고 필요
   건축사 스스로 흔들리지 않는 윤리의식 갖춰야

홍성용_지난 1월 의무가입 건축사법이 통과된 데다 5월에는 새 정부도 출범해 올해 하반기 건축계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됩니다. 중요한 시기 건축계에 주로 논의되는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듣고 함께 대안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나눌 주제는 ▲건축사 윤리강령과 공공건축 설계공모 심사 공정성 ▲지구단위계획 문제점 개선 방향 ▲건축사 책임에 의한 인·허가제도 도입에 대해서입니다.

함인선_세 가지 문제 모두 현 시기 중요한 문제인 동시에 서로 맥이 닿아있는 문제입니다. 또 건축사에 대한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홍성용_먼저 새 건축사 윤리강령부터 이야기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함인선_우리 건축사 스스로 흔들리지 않는 윤리 의식을 갖추는 것이 이번 의무가입 법제화 취지를 이루는 시작점입니다.

바뀐 건축사법은 건축사 업무 수행을 위한 자격 등록 시 ‘건축사 윤리선언’을 하도록 규정하며, 건축사협회가 회원이 업무를 수행할 때 지켜야 할 직업윤리에 관한 ‘윤리규정’을 국토부장관의 승인을 얻어 제정토록 하고 있습니다.

이 윤리선언, 윤리규정에 대응하여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건축사협회 자체의 ‘윤리강령’입니다. 강령 조문과 더불어 조항마다 구체적으로 세칙을 마련하고 이의 실행력을 담보하기 위한 각종 장치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의무가입제가 도입된 것은 그만큼 건축물의 안전과 성능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이 되었기 때문이며 이를 건축사 자체적인 규율을 통해 이루어내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법 규정과 협회의 강령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건축사들 스스로 “좋은 건축과 건축사들의 위상 제고를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 건축 설계공모, 명목적 공정성에만 집착…정작 본래 취지 못 살려
   심사위원 재량에 맡기고 책임 묻는 ‘신뢰 기반 방식’ 도입 필요

홍성용_공공건축 설계공모 심사에 관한 이야기도 계속해서 회자됩니다. 공공건축 설계공모 심사가 경쟁을 통해 우수한 건축물을 선정하는 선진적 제도임에도 공공건축의 품격을 실현하는 데 부족함이 많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함인선_동의합니다. 실제 설계공모를 거친 공공건축물이 세간의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지난 2013년 동아일보가 건축 전문 월간 ‘SPACE’와 함께 건축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광복 이후 지어진 현대건축물 가운데 최고와 최악의 건축물을 선정하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잘 지은 건축물 10곳 중에 포함된 공공건축물은 하나인 반면 최악의 건축물 10곳 중 8곳이 공공건축물이었습니다.

‘명목적 공정성’과 익명성에 집착해 온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공이 주최하는 설계공모이다 보니 심사 과정에서 문제가 될 소지를 모두 없애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탁월함 보다는 무난함, 실험적이기보다는 경제적, 효율적인 것들이 뽑힙니다. 더 나아가 뽑히기 위해 알아서 무난하게 만드는 경향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의 그저 그런 공공건축물들이겠지요.

심사위원 명단을 사전 공개하는 제도에 이어 작년에는 심사위원을 모집 후 추첨에 의해서가 아니라 운영위원회에서 추천을 통해 구성하도록 바뀌었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위원 선정부터 결과 발표까지 심사 과정의 공정성을 지키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치밀하게 절차를 만들어 놓아도 한계는 존재합니다.

종전까지는 사전 접촉이 가져올 폐해를 고려해 심사위원을 공개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로비가 없었나요? 현실은 가장 정보력이 뛰어난 건축사사무소가 맨 먼저 명단을 입수하게 돼 규모가 작은 사무소들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본 게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 명단을 언제 공개하느냐가 아니라 심사를 맡은 위원들이 어떤 원칙으로 심사에 임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명단이 미리 공개되든 나중에 공개되든 위원들이 심사에서 사적인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자신의 건축철학에 따라 평가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독일 지하철에는 개찰구가 없어서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무임승차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불시에 사복 검표원이 표 검사를 했을 때 무임승차한 것이 발각되면 60유로 이상의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이같이 믿되 신뢰를 저버리면 가혹한 대가가 따르는 방식을 ‘신용기반형’이라 합니다.

같은 원리로 저는 모든 것을 다 공개하고 권위·역량 있는 심사위원을 선정해 그들에게 더 많은 재량을 주는 대신, 심사 결과에 책임지게 하는 신뢰 기반형 심사제도가 정착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다면 프랑스의 콩쿠르 상처럼 종신심사위원제도 좋습니다. 자신의 평생 명예가 달려 있고, 만약 잘못된 심사를 한다면 독일 지하철에서 무임승차하다 걸린 것처럼 지금까지 이뤄온 성과들이 모두 무너지는 데 사사로운 이익에 따라 심사하는 경우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건축물의 경우는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심사라는 말이 어불성설입니다. 정량평가가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사를 맡은 이들이 자신의 건축 소신에 따라 주관적으로 평가를 하되 그 결과에 대해 무한 책임지게 하는 것이 품격 있는 공공건축물 구현이라는 공공건축 설계공모 본연의 취지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권한을 주고 결과에 스스로 책임지게 하는 것이 여러 절차를 만들고 관리하는 것보다 비용 대비 편익 차원에서도 더 낫습니다.

덧붙여서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됐든 건축공간연구원이 됐든 전문기관이 주도해서 (가칭)공공건축심사센터를 만들어서 공공건축 설계공모 심사를 전담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 건축물 성능과 디자인, 건축사 재량에 맡기고
   건축심의는 건축물의 공공성 관련에 한정해야

홍성용_신뢰 기반 방식으로서의 개선이라는 같은 맥락에서 건축사 책임 하의 건축 인허가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오셨는데 이 주제에 대한 생각도 듣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건축 관련 법령에 저촉되는 지 여부를 판단하느라 허가 과정도 너무 오래 걸리고 행정력 낭비도 많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함인선_건축허가 패러다임은 영미법과 대륙법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영미법에서는 시시콜콜한 네거티브 규제가 없지요.
예를 들어 영국에서의 건축 허가란 그 지역 주민 등 당사자들과 정책담당자 문화재 관리 담당자 등이 모여서 논의한 후에 법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합의가 되면 그 자체가 ‘허가’입니다. 재량주의라고 하지요. 이에 반해 대륙법 계통인 우리나라는 법 기속주의를 택합니다. 그렇다 보니 법에 모든 것을 다 넣어야 합니다. 법이 두꺼워지고 그마저도 다 담아내지 못하니 건축심의까지 해야 하는 게 우리 현실입니다.

사실 심의를 통해 건축을 제한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건축은 기본권에 속하는 것이고 심의는 어디까지니 자문, 권고입니다. 개성적인 건축물이 많이 나오려면 법에 모든 것을 규정하는 현재 방식을 포기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법체계를 영미법식으로 전면적으로 바꿀 수는 없겠지요.

이의 대안이 건축물의 성능과 디자인에 관련한 사항과 건축물의 공공성에 대한 사항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려면 건축물의 성능에 대한 것은 건축사의 재량으로 인정하고 건축물의 공공성에 관련된 것은 심의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합니다.

현재 시시콜콜한 건축법령을 적용하느라 허가 기간이 무한정 늘어지는 허가제를, 건축사가 해당 도서를 작성하고 이를 당국에 등록하고 확인 받는 도서확인제로 변경하고 재료를 잘못 써서 화재가 났다든지 하면 건축사가 책임지게 하면 됩니다.

정리하면 건축물의 미관 혹은 성능은 건축사들의 자율적인 능력에 따라 책임지게 하고 도시건축 전체에 대한 문제는 계속해서 공공영역에서의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건축물 설계 과정의 결함으로 발생한 문제에 대해 건축사들이 사법적, 금전적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에 하는 프로세스가 마련돼야 합니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건축사윤리위원회를 통해 건축사 자격 박탈이나 정지 조치를 취하고, 공제조합이나 직능보험 등을 통해 건축사업계 차원에서 금전적 피해보상을 할 수 있는 절차가 확립돼야 합니다.

홍성용_의사나 변호사 등 다른 전문자격사에 비해 건축사가 갖는 사회적 위상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전문자격사로서의 건축사 위상을 확실히 세워야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요?

함인선_건축사는 의사, 변호사와 함께 예부터 활약한 3대 고전적 전문자격사(proffession)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건축사로서 자격을 어떻게 보호·보전할지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의사와 변호사가 자신의 업역을 어떻게 지키는지 파악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의사와 변호사의 경우, 의료행위와 변호행위가 무엇인지 확실히 규정돼 있으며 다른 사람이 의료행위를 하거나 변호행위를 하면 처벌받게 됩니다. 그런데 건축설계의 경우 건축설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규정이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건축설계를 구분 짓는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보니 건축사가 아닌 여러 사람들이 건축설계에 대해 한 마디씩 거듭니다. 이 경계를 제대로 세우는 작업이 시급합니다.

# 기존 지구단위계획, 지역 특성 못 담고 천편일률적
   지역 따라 제한 많을 수 있어, 문제는 사전 합의가 없다는 것
   사회적 합의 거쳐 지역 맥락과 미래 담은 계획 나와야  

홍성용_다음으로 지구단위계획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를 옮겨볼까 합니다. 지구단위계획의 필요성에는 모두가 공감하지만 기존 지구단위계획은 지역별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건축사가 설계하는 데 있어서 불필요한 제한규정만 만든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함인선_맞습니다. 지구단위계획의 경직성이 큰 문제입니다. 지역에 따라 제한사항이 많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종로나 인사동 등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곳에 대해서는 그 맥락에 따라 여러 제한 요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지구단위 계획은 차등적인 규제라기보다는 일률규제에 가깝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곳에는 너무 느슨하고 어는 곳에서는 과잉 규제가 됩니다.

 지구단위 계획 수립 과정에서 주민들의 합의 과정은 요식적으로 넘어가고 관과 전문가 위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역사적 배경과 전통적 가치에 따라서 이러한 방향에 따라 지구단위계획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민들에 의한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 과정은 대개 요식적이고 다른 지역의 계획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사례가 많습니다. 선진국들의 경우는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 지역 별로 필요할 경우 자세하게 여러 사항을 규정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건축사들의 재량을 폭넓게 인정하는 포괄적 규정을 만듭니다. 어떤 곳에는 형태 기반 규정(Form Base Code)이라고 해서 건폐율과 용적률은 물론 건축물의 형태, 블록 내 오픈스페이스까지 정해 놓기도 하지요.

생각해 보면 지구단위계획 작성에는 실제 그 지역에 건축물을 설계할 건축사들이 중심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1980년 건축법에 ‘도시설계(지구단위계획)’라는 개념이 처음 도입되고 이 사항이 건축법에 규정되자 당시 건축사들이 왜 이 사항을 건축법에 규정하느냐고 반대 목소리를 냈거든요.

돌아보면 안타까운데, 당시에는 많은 건축사들이 도시설계와 도시계획이 다르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보니 지구단위계획을 토목 전공자들이 규모에 따른 정량적 기준에 따라 계획을 짜게 됐고, 엄밀히 말해 토지이용계획이 약간 발전한 정도가 된 것입니다.

이곳이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갖고 현재와 미래에 담당해야 할 역할은 무엇이며 그 역할을 잘 담당하기 위한 건축물 설계는 어떠해야 한다는 고민 없이 세워진 지구단위계획이 많습니다.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지점입니다.

함께 합의한 계획에 따라 그에 걸맞은 건축을 하고, 만약 사정에 따라 계획에 예외나 수정이 필요할 경우가 생기면 그 부분에 대해서만 추가 협의를 거치면 시간 낭비도 없고 불필요한 갈등을 겪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함인선 광주광역시 총괄건축가 Hahm, Insun 건축사

 

 


대담 홍성용 편집국장
글 서정필 기자 · 사진 장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