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21. 09:29ㆍ아티클 | Article/특집 | Special
Special talk
The hidden pine tree in the middle of Gangnam, ‘Songeun’
6월 14일 화요일 오후에서 저녁 사이, 서울 중구 세종대로 (주)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9층 김정철 홀에서는 서울과 스위스를 잇는 특별한 온라인 화상 대담이 열렸다. 한국에 세워진 HdM의 첫 건축물 ‘ST송은빌딩’을 주제로 서울에서는 이은석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와 기현철 정림건축 NID 본부장이, 스위스에서는 HdM을 이끄는 듀오 중 한 명인 피에르 드 뫼롱(Pierre de Meuron) 건축사가 자리해 이번 프로젝트 준비 초기에 고려했던 맥락부터 건축물의 예술성에 대한 문제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서울에서 피에르 드 뫼롱(Pierre de Meuron) 건축사를 기다리던 이은석 경희대 건축학부 교수와 기현철 정림건축 NID 본부장은 마침내 화면 속에 드 뫼롱 건축사가 나타나자 인사를 건넸다.
“잘 들리시나요?”
“예 잘 들립니다.”
서울의 늦은 오후와 바젤의 오전 10시가 만났다. 대담이 시작됐다. 대담은 이은석 교수가 질문을 하면 드 뫼롱 건축사가 대답하고, HdM의 한국 측 파트너였던 정림건축의 기현철 본부장이 필요할 때마다 첨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주제는 크게 네 가지로 ▲프로젝트를 둘러싼 맥락 ▲외형과 볼륨 ▲재료의 사용 ▲예술적 효용성에 대해 대담이 진행됐다. 대담의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반세기 전에는 없던 입지 강남…
도심이라는 맥락에서 강력한 존재성 갖길
이은석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이하 이)_ 먼저 이번 프로젝트를 둘러싼 맥락에 대해 여쭤보겠습니다. 유럽의 대형 건축사사무소들 중에는 미국과 홍콩에 지사를 두고 세계 전역을 활동무대로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HdM도 그러한 사무소 중에 하나인데요. ‘ST송은빌딩’은 한국에 세워지는 HdM의 첫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건축사가 새로 접하는 지역의 건축물을 맡게 되면 그 지역의 특성을 연구하고 디자인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한국이라는 지역적 특성에 접근하는 HdM 만의 방식은 어떠했고, 어떤 인연으로 송은문화재단과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피에르 드 뫼롱 건축사(이하 드 뫼롱)_ 우선 확실히 할 것이, ‘ST송은빌딩(이하 송은빌딩)’이 한국에서의 첫 프로젝트는 아니고 첫 방문도 아닙니다. 다만 이전에 서울에서 계획 중이었던 프로젝트들이 실제 빛을 보지 못했던 것뿐입니다. 그렇기에 송은빌딩은 우리가 대한민국 서울로 복귀하는 프로젝트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한 작업을 구체적으로 다루기 시작할 때, 설계 단계에서 그 작품에 대한 인식·이해가 달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HdM에서 내부적으로 조사를 먼저 진행하는데 사이트에 대한 데이터나 기능적인 법과 관련된 부분, 또는 건축물로서 도시계획의 일환으로만 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지역을 아우르는 마음, 심리에 대해서도 연구합니다.
‘송은’에서는 정치적인 면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극동지역에서 미·중·일·러 등 거대 세력에 둘러싸여 있는 중견국가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역학 관계를 관심을 갖고 바라봤는데요. 한국은 어떻게 보면 스위스와도 비슷한 입지를 가진 국가입니다.
경제 관련해서도 관심을 갖고 조사했는데, 한국은 많은 대기업들이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매우 빠른 경제발전을 이룬 국가입니다. 송은빌딩이 위치한 강남지역은 50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개발되지도 않았던 지역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서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역학관계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_ 건축물이 들어선 강남지역은 서울의 다른 지역과는 다른 독특한 콘셉트를 갖고 있는데….
드 뫼롱_ 그렇습니다. 서울과도 같은 극동아시아 대도시들을 살펴볼 때 건물 교체 주기가 빠른 지역이며, 건축물 수명이 짧은 편입니다. 하지만(송은빌딩처럼) 공적인 기능을 띄는 건물은 수명이 더 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 상가들보다 지속가능성, 연속성이 가능하기에 수명이 더 길 수 있습니다.
이_ 이 프로젝트를 의뢰받으면서 ‘송은’의 기업 이미지 또는 맥락을 녹여내려는 노력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드 뫼롱_ 건축주 측도, 우리 HdM도 이 건축물의 표현이 강력하길 원했습니다. 문화적 기능뿐 아니라 도심이라는 맥락 안에서 강한 존재성과 입지를 갖길 원했던 것이지요.
우선 도시적 맥락은 매우 일반화돼 있었습니다. 도산대로 주변 건축물은 대체적으로 기능적이고 유리와 철근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파리나 비엔나의 큰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뚜렷한 균일성은 없었지요. 또 주변 건축물의 높이도 역사도 소재도 제각각이었습니다.
송은빌딩이 들어설 입지는 도로 언덕의 가장 높은 위치였고, 빌딩의 높이와 관련된 법적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건축적인 표현이 강한 설계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지역 파트너와의 협력이 국제 프로젝트 기반
이번에도 파트너 정림건축 도움으로 많은 난관 극복
이_ 한국 측 파트너 정림건축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정림건축이 담당한 역할은 무엇이었습니까?
드 뫼롱_ 정림건축은 건축주의 선택으로 저희와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됐고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스위스가 아닌 외국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 항상 그곳 파트너사와 협력합니다. 해당 지역의 조건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역 파트너와의 협력이 국제 프로젝트의 기반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현철 정림건축 NID 본부장(이하 기)_ 정림건축의 역할은 기술적인 문제와 법규의 제한에 해결책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법규와 심의 인허가 절차문제에 대한 이해와 해결방법을 찾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일조사선 제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면적을 확보하기 위해 적정 층고를 찾아야 했고, 천정 속 공간을 최대한 줄여야 했기 때문에 소방, 전기, 기계설비 검토를 기획 단계부터 정확히 진행했습니다. 구조에서는 삼각형의 형태가 만드는 경사진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경사진 기둥, 층고 확보를 위한 포스트텐션보, 지상 1층의 개방감을 위해 기둥을 최소화하는 방법들이 연구되었습니다. 유리창을 설치하는 방법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저희 소속 디자이너가 HdM에 직접 파견돼 실시간으로 의견 조율 과정을 거치기도 했습니다.
드 뫼롱_ 설계에 들어가면서 우선 법적인 제한을 이해해야 했고, 되도록 빨리 건축물이 완성되길 바라는 건축주의 요구도 맞춰야 했습니다, 거기에 초기설계 볼륨이 현행법과 충돌해 현실적으로는 시행 불가능한 상황이었지요. 기 본부장이 말씀하신 대로 현지 파트너사 정림건축의 도움이 이번 프로젝트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건축물 형태의 유래에 대해 말하자면 각진 형태, 즉 측면에서 바라볼 때 규정된 각도입니다(prescribed profile). 이 프로젝트를 간단하게 묘사하자면, 외부 볼륨의 최대화, 건물을 지지하는 기둥 구조의 최소화, 실제 활용가능한 면적의 극대화 그리고 이 전체의 최적화입니다. 이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한 가지 예시를 들면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한 넓은 계단이 있는데, 이 계단은 동시에 지하로 내려가는 램프의 천장이 됩니다. 기 본부장께서 언급하신 대로 제한된 그리고 상대적으로 작은 면적을 최대화·최적화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뚜렷하고 강력한 구조가 도심 속 장소 특징 드러내
공적 성격 갖는 문화기관 설계에도 중요한 요소
이_ 통상적으로 HdM 설계는 형태주의(Formalism)적 방식으로는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고, 직육면체형 볼륨 사용이 많은 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첨두형 또는 고딕 형태의 날카롭고 뾰족한 삼각 형태를 선택했는데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강남 건물들과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의도적인 전략이었는지요?
드 뫼롱_ 송은빌딩의 최종 형태는 좀 전에 언급한 최적화와 최대화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어떻게 보면 강제로 주어진 조건의 결과물입니다. 주어진 가상의 선을 통해 물리적인 형태가 만들어진 셈이지요. 이러한 형태의 건축물이 흥미로운 이유는 주변에 찾아볼 수 없는 고유의 특징과 상징성을 갖고 있는 점과 강력한 표현을 통해 재현된 아이코닉한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띄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당기는 볼륨입니다.
이_ 측면에서 보았을 때 뾰쪽한 삼각형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정면에서 보았을 때는 완전히 막혀 있는 솔리드 한 볼륨이며 최소한의 창문만 있습니다. 건축주의 요청이었는지 아니면 HdM 고유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주변의 건물들과 대비시키기 위한 것이었는지 그 의도가 궁금합니다.
드 뫼롱_ 세 가지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아이코닉 한 상징성에 대해 말해보자면 손으로 건물의 특징과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뚜렷하고 강력한 구조야말로 도심 속 특정 장소를 드러낸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공적인 성격을 띤 문화 기관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기_ 이러한 건축사의 의도를 기능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주요 역할이기도 했습니다. 최적의 면적을 확보하기 위해 그리고 사선제한이 있기 때문에 각층을 서비스하는 코어가 가장 높은 쪽으로 있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대로 쪽이었습니다. 코어가 대로 쪽으로 있으면 창문을 내기가 어렵게 됩니다. 그렇기에 매우 솔리드하고 가장 작은 창문을 낼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 것입니다. 기능적인 해결 방법과 건축사의 의도가 결합된 결과입니다.
드 뫼롱_ 방금 설명한 기술적인 측면이 있고 또 기능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건물 아래쪽에는 전시실이 있는데 자연광이 거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창문이나 개구부를 최소화하는 것이 합리적이었습니다.
또한 주변에 자리 잡은 건축물들은 전부 유리와 철근을 자재로 사용하고 반복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로 모습을 보면 같은 소재, 반복적인 기하학적 파사드의 건축물들이 이어져 있습니다. 주변 건물들의 유리, 철근과 대비해 미네랄 월의 외관을 선택했으며, 대로 쪽인 남쪽으로는 오프닝을 최소화시켰습니다. 건물의 가장 높은 쪽인 대로변에 건물에 필요하지만 활용가능한 공간이 아닌 엘리베이터나 비상계단이 위치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러 고려 끝에 노출콘크리트로 파사드 만들어
중요한 건 한국인들이 건축물을 실제 경험하며 만들어갈 이야기
이_ 젊은 건축사들은 HdM의 파사드, 즉 외피에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HdM만의 시도가 이뤄졌는지요?
드 뫼롱_ 사전에 다양한 자재를 고려했습니다. 나무, 강철, 금속, 유리 등도 고려해 보았지만 결국에는 앞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콘크리트를 선택하게 되었어요. 지지하는 구조가 건물 밖에 위치해 있는 셈입니다. 지지하는 구조가 노출되어 있고 그게 바로 콘크리트입니다. 단열재는 건물 안에 있습니다.
코어 파트가 외부에 있고 노출 콘크리트인데, 그렇다면 그 표면이 어떻게 되는지가 궁금하실 텐데요. 노출 콘크리트도 종류가 다양합니다. 콘크리트를 부을 때 몰드를 사용하게 되는데 몰드는 목재로 되어 있거나 금속으로 되어있습니다. 이번 경우에는 목재 몰드를 사용했습니다. 나무는 따뜻한 느낌을 주며 자연친화적입니다. 이런 자연 친화적인 요소가 건축적 표현에 담겨있습니다.
이_ 파사드 이미지의 이면에는 방금 말한 소나무와도 같이 어떤 상징적인 의도를 숨기고 있는 듯합니다. 외벽의 노출콘크리트 파사드 이미지가 현대 건축의 역사 속에서 어떠한 가치를 드러내기를 기대하는지, 또 어떤 심오한 상징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드 뫼롱_ 기대(to wish)라는 단어 선택이 매우 적절해요. 주장(to pretend)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건축사는 이렇다 저렇다 또는 이렇지 않다는 주장을 할 수 없습니다. 시각뿐만 아니라 모든 감각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입니다.
사회적인 인식일 수도 있습니다. 한 사회 또는 일부 집단이 건물을 인식하는 방식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한 건물, 한 건축물의 최고의 운명은 하나의 문화, 사회, 집단이 그 건물은 수용하는 것, 즉 아름답게 여기거나 관심을 갖는 것, 심미적으로 끌린다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한국 그리고 더 나아가 서울만의 문화 코드가 어떻게 이 건축물을 수용하고 인식하는 지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결국은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림건축에서 또 서울 주민들이, 한국 사람들이 이 건물을 어떻게 인식하고 경험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만들어 갈 이야기가 더 중요합니다.
기_ 송은문화재단의 뜻을 불어로 번역할 때 ‘pin caché(숨은 소나무)’라고 했는데 한자 은(隱)을 살펴보면 은둔자, ‘ermite’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젊은 아티스트들을 숨어있는 소나무와 같이 후원한다는 것이 송은의 철학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이 HdM에게도 전달되었고, HdM은 이러한 송은의 철학을 아주 적절하게 송판무늬 거푸집을 사용해 송은문화재단에 가장 잘 어울리는 건축물을 디자인해냈다고 생각합니다.
드 뫼롱_ 건축은 연결을 돕습니다. 건축을 통해 표현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했지만 또 건축이 교류를 도모하고 소통의 장을 연다고도 생각합니다.
주변 환경, 생활하는 주민들과도 소통할 수 있게 해주지요. 예술과 건축은 화합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를 도심 속 현실, 사회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와도 연결시켜 준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은 물리적인 요소이면서 동시에 정신세계와 연결을 해줄 수 있습니다. 하나의 건축물이 이러한 연결을 가능하게 했다면, 매우 대단한 것이고 우리 모두에게 영감을 줄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을 안 보이는 것과 연결시키는 것은 하나의 현실을 인식하는 데 있어, 그리고 하나의 현실 속 또는 하나의 사회 속에 놓인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우리가 건축사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축물을 제안하거나 실현시킨다면 그것은 매우 중요하고 또 성공적인 건축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에 있었을 때 송은빌딩의 파사드를 직접 만져보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특이해 보여서 이해하기 위해 만져본 것입니다. 또한 입구 현관(porch)이 건물 안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느낌을 주고 내부에 전시된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게 유도하는 것 같습니다.
이_ 한국이라는 동아시아 지역의 특성과 현대의 미술관이라는 시대성에 비추어 볼 때, 앞으로 이 미술관이 이 지역에서 어떻게 작용하길 기대하고 있는지요?
드 뫼롱_ 2021년 가을,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건물 오프닝에 직접 참석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강렬한 경험이었습니다. 직접 보니 감동받았고, 건축물 자체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볼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개관 후 관람객들이 구경하는 모습을 보면서 건물이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건축물과 전시된 설치물들이 예술적인 생각과 사상 그리고 상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교류와 토론의 장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특히 문화를 넘어 사회적 교류의 장, 만남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리 서정필 기자 · 사진 장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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