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기독교사회복지관 (구여선교사합숙소) 2025.12

2025. 12. 31. 10:40아티클 | Article/포토에세이 | Photo Essay

Incheon Christian Social Welfare Center
(Former Female Missionary Dormitory)

 

 

 

인천기독교사회복지관(구 여선교사 합숙소)은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8호로, 한국의 선교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이 건축물은 단순한 숙소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한국 선교의 발자취와 문화적 가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이다.


역사적 배경
1892년, 아펜젤러 선교사가 안식년으로 한국을 떠난 후, 제물포 지방의 감리사로 부임한 존스 선교사(한국명 조원시)는 인천 지역에서의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1895년, 그는 서울 서부 지역인 인천을 선교 기지로 삼고, 1만1,240제곱미터(3,400평)의 토지를 매입하여 교회당과 목사관을 건축하였다. 이곳은 “애즈베리”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구 여선교사 합숙소는 1905년에 준공되었으며, 이는 P&G사의 매리 갬블 부인의 기부로 가능했다. 당시 선교사들은 이 건물을 “갬블홈”이라고 부르며, 그녀의 기여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합숙소는 여선교사들이 거주하며 선교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지하층 보일러 및 덕트
1, 2층 증기 배출구


건축적 특징
인천기독교사회복지관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건축 연면적은 469제곱미터(142평)에 달한다. 이 건물은 뾰족지붕 형태의 독특한 지붕 구조와 화강석 기단부, 붉은 벽돌 벽체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근세 북유럽의 르네상스 양식과 조선시대 전통 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건축학적으로도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내부 구조는 기능적으로 잘 나누어져 있다. 지하층은 보일러실과 창고로 나뉘어 있으며, 1층은 주로 교육실로 사용되었다. 2층은 여선교사들이 거주하던 주거 공간으로, 3-4명의 여선교사가 숙식을 하던 곳이다. 이곳에는 수세식 화장실과 주방이 마련되어 있어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지하층 벽체는 화강석을 내·외부 각 1단씩 쌓아 지면에서 2단
노출 후 상부에 직사각형 형태의 화강석을 내쌓아 돌림띠 형태로 구성되었다.

1층 상부 계단
2층 트러스

지붕의 형태는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이다. 지붕면은 컬러 골강판으로 마감하고 처마에는 동판으로 선홈통을 설치하였다. 지붕 트러스는 왕대공 트러스가 사용되었다.
인천기독교사회복지관은 1층과 2층 사이의 경계부와 처마부에 벽돌 내쌓기를 통해 독특한 미관을 창출하고 있다. 이 내쌓기는 장식적 역할뿐만 아니라 구조적 및 기능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설계되었다.
내부 구조는 벽돌 세켜를 내쌓기, 45도 빗쌓기, 내쌓기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마구리쌓기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미관을 고려해 마구리쌓기와 길이쌓기를 번갈아 사용하였고, 마지막 켜는 45도로 빗쌓아 장식적인 효과를 주었다.
이러한 설계는 벽체의 강도를 높이는 동시에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요소를 제공한다.


인천기독교사회복지관은 역사적으로도 많은 중요한 사건들을 겪었다. 1940년 11월 6일, 선교사와 가족 219명이 적국민이라는 이유로 강제 출국 조치를 받았다. 이후 1945년에는 정흥운 장로와 미군 군목들이 건물을 관리하며 영어학원을 개설하였고, 1949년에는 미국 감리교 선교사 헨렌 보이스 여사에 의해 사회관이 창설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1950년에는 임시 폐관되었고, 1993년에는 시 유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었다.


인천기독교사회복지관은 한국의 선교 역사와 문화유산을 대표하는 중요한 건축물로, 오늘날에도 그 가치를 지니며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이곳은 단순한 건축물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한국 선교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포치부분 영롱쌓기 / 1, 2층 경계부 내쌓기 / 처마돌림 내쌓기

글·사진. 이윤정 Lee, Yoon-jung 건축사사무소 현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