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6. 09:04ㆍ카테고리 없음
Exhibiting Designed Objects
2019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9월 7일부터 10월 31일까지 열렸다. 나는 디자인 전시회만큼 기획하기 어려운 게 없다고 생각한다. 예술작품은 원래가 전시용으로 만들어지지만, 디자인된 사물은 일상의 필요를 충족시키고자 현실화되는 것이므로 전시와 무관하게 만들어진다. 처음부터 갤러리에 전시될 것을 고려하는 예술작품은 당연히 거기에 걸맞은 내용과 형식을 갖추게 된다. 다시 말해 전시장에서 빛이 날 수 있다. 반면에 대부분 거실이나 방과 같은 은밀한 사적 공간을 위해, 각종 생활의 편리를 위해 디자인되는 사물은 과연 전시 공간에서 빛을 발할 수 있을까? 빛을 발하는 것은 고사하고 전시장에 어울리기나 하는 걸까?
나의 의문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면, 백화점이나 쇼핑몰을 상상하면 된다. 백화점의 가전이나 가구 매장을 떠올려보라. 그곳에서 늘 보아오던 그런 상품들을 전시장에 갖다 놓은 들 무슨 감동이 있고 특별한 게 있겠는가? 2001년에 예술의전당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디자인 미술관이 개관했다. 그 첫 전시회가 열렸을 때 한 디자인 관계자가 개관식에 참석한 귀빈들을 이끌며 전시회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는 여러 관을 돌다가 특정 주제의 전시장에 이르자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서는 좀 더 ‘디자인다운’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좀 더 디자인다운 작품은 무엇일까? 그곳에서는 한 가전 회사의 선행 디자인 작업을 선보이고 있었다. 선행 디자인이란 대량생산을 전제로 하지 않는, 일종의 콘셉트 모델이다.
콘셉트 모델은 양산할 필요가 없으므로 좀 더 과감하고 대담하게 디자인할 수 있다. 디자이너가 자기 마음대로 개성을 발휘할 수 있고, 독특하고 화려하게 표현할 수도 있다. 이런 제품은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전혀 볼 수 없으므로 차라리 전시회를 위한 조각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사물이 디자인다운 것인가? 그것은 차라리 ‘예술답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관람객이 그런 조각 같은 제품들을 디자인 전시회에서 보고 자신의 생활과 사물과 견주면, 실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실생활의 디자인은 그런 것이 아니다. 디자인은 반드시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만족시켜야 하므로 결국 평범한 사물이 되기 쉽다. 그러니까 그런 평범한 사물을 갖고 디자인 전시회를 기획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만약 그런 평범한 사물을 무시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공허한 전시회가 되기 쉽다. 그렇다고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제품들을 갖고 전시회를 하면 뭔가 흥미가 떨어질 것이다.
국내 최대의 디자인 전시회인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기획자들은 늘 이 문제에 봉착하고 그것을 고민했을 것이다. 평범한 디자인을 넘어선 그 무엇을 보여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시장이라는 곳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무언가의 특별함을 요구받는다. 특히 전시장에 들어와 첫인상에서 관람객을 깜짝 놀라게 해줄 필요가 있다. 이번 비엔날레의 첫 번째 주제관인 ‘사람을 노래하다’가 그런 곳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극적인 시각 효과를 보여준다. 또 관객 참여형 전시가 선보인다. 이런 전시 형식은 좋게 말해 아트와 디자인의 경계에 있다고 표현할 만하다. 디자인 전시를 기획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종류의 오감을 자극하는 볼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두 번째로 디자인 전시회에 적합한 것은 ‘명예의 전당’ 류의 역사적인 유산을 보여주는 것이다. 20세기의 디자인 아이콘, 전설이 된 디자인, 그런 것 말이다. 두 번째 주제관 ‘다음 세대에게 주는 선물’ 속 바우하우스 전시가 거기에 딱 부합한다. 특히 올해는 바우하우스 설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니 이보다 더 좋은 전시 아이템은 없을 것이다. 바우하우스의 의자들, 그리고 그 유명한 데사우 바우하우스 빌딩의 미니어처 조형물은 언제 보아도 아우라를 내뿜는다. 이번 전시에 보인 또 다른 전설은 바로 애플의 컴퓨터들이다. 스티브 잡스를 조명하는 주제관에 최초의 애플인 매킨토시부터 최신 아이맥까지 애플 데스크톱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바우하우스의 의자들이 지금도 생산되고 생활 속에 놓이는 것과 달리 컴퓨터는 시간이 흐르면 과거의 유물이 된다. 더이상 쓰지 못하게 된 구식 컴퓨터는 오히려 오브제로서의 가치를 발하는 것 같다.
세 번째는 디자인을 소재로 한 실험적인 작품이다. 바우하우스의 조형적 특성을 소재로 한 여러 실험 작품들이 출품되었다. 예를 들면, 순수 형태에 대한 실험, 순수 색채에 대한 실험 같은 것이다. 생활 속 디자인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대중이 물건을 살 때는 모험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전시회 출품작을 통해서만 실험을 할 수 있다. 표현 욕구가 강한 디자이너들에게는 아주 소중한 기회다.
네 번째는 의미가 깊은 디자인이다. 예를 들면 환경을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디자인, 1인 가구를 위한 주거 환경의 제안 같은 시의적절한 의제를 꺼내고 사회적인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디자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안주 An Ju’라는, 일본 디자이너들의 작품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고자 개발한 천을 이용해 만든 임시 주거 공간이다. 쉽게 만들고 철거할 수 있으며, 임시방편의 구조물치고는 아름답고 견고하다. 이런 제안은 당장 실현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어떤 잠재적인 가능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디자인 전시회가 지향할 방향이 아닌가 싶다. 와이즈건축이 제안한 ‘최소한의 집’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재미있는 출품작이었다.
이 밖에도 당장 거실에 놓거나 생활에서 쓸 수 있는 아주 현실적인 디자인도 많이 출품되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디자인 전시회는 예술작품의 전시회보다 기획하기가 더 어렵다. 이런 어려운 전시회를 광주시가 2년마다 16년 동안 8회째 개최하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이를 통해 광주 시민은 물론 한국의 대중들이 디자인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되었다면, 비엔날레는 아주 가치 있는 일을 한 것이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 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