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마을. 젠트리피케이션 – 흰여울 문화마을 2023.1

2023. 1. 19. 20:51아티클 | Article/포토에세이 | Photo Essay

Disappearing village Gentrification – Huinnyeoul Culture Village

 

부산광역시 영도구 절영로 258. 해안가의 경사면, 가파른 절벽 위 끝에 있는 마을. 이전에는 송도를 마주 보고 있다 해서 제2 송도로 불렸고, 아름다운 전경의 독특한 마을로 한국의 산토리니라고도 불리며 많은 관광객이 찾는 흰여울 마을이 있다. 현재는 관광객들을 위한 다양한 상업문화 시설들이 있고, 이곳에서 변호인을 비롯한 많은 영화가 촬영되기도 했다. 지금도 마을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원래 이곳은 절벽이 매우 가파르고 봉래산에서 내려오는 물길 때문에 땅이 항상 물을 머금고 있기에 집을 지을 수 없어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의 공동묘지가 조성되었던 곳이고, 그 후에도 묘지로 사용되었다. 해방 이후 당시 중심지였던 남포동, 중앙동의 발전에 따른 거주 지역 부족으로 이곳 영도지역으로 인구가 대거 유입되면서 해안가에 주거지가 조성되기 시작하였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피난민들과 실향민들이 집단으로 영도지역에 이주하면서 절벽 위의 땅 이곳까지 마을이 생기게 되었고, 무덤 위에 판자촌을 짓고 살았다. 이후 산업화에 따른 영도지역의 하층 노동자들의 고달픈 삶을 지닌 달동네로 변화되었다. 지금도 곳곳에 그 당시의 일명 하꼬방이라 불린 상자형 판잣집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후 영도지역의 산업 쇠퇴와 지역 낙후에 따른 젊은 세대들의 다른 지역 이주, 계속된 고령화와 슬림화로 마을은 정체와 소멸의 길에 접어들게 되었다. 2011년 영도구청과 영도문화원의 주도로 문화마을 형성 사업을 시작하였고 2014년에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지역으로 선정되면서 2015년부터 2021년까지 6년에 걸쳐 다양한 재생 사업을 시행했다. 그러면서 청년 예술작가들이 입주하고 다양한 문화강좌와 예술 활동을 하면서 마을이 재생되고 자생의 힘을 길렀다. 이러한 문화적 변화를 체험하고 관람하기 위해 사람들의 방문과 홍보로 부산의 명소가 되고 상업화 지역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여 지금의 마을로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이곳의 원주민들은 이런 변화 속에 급속히 소외되어 자본의 유입에 따른 거주자들의 이주로 본래의 마을은 사라져 가고 있고, 또 다른 모습의 마을이 만들어지고 있다.  

 

흰여울길
봉래산 기슭에서 굽이쳐 내리는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바다로 굽이쳐 내리치는 모습이 마치 흰 눈이 내리는 듯한 모습과 같다고 하여 흰여울길이라 불리었다. 절벽을 따라 약 2킬로미터의 길이를 가진 길로, 총 14개의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이어져 있는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다양한 종류의 카페와 문화, 상업시설들을 만날 수 있고 고운 바닷바람과 방파제에 부딪히는 맑은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다양한 풍경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또한 곳곳에 다양한 골목과 해변 길로 연결되는 독특한 형태의 채색과 이미지를 부여한 지게 계단, 맏머리 계단, 피아노 계단, 도돌이 계단, 프러포즈 계단 등 다양한 계단이 있어 즐거운 포토존을 제공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낙후지역이나 원도심 전통 마을이 활성화되면서 외부인과 자본이 그곳에 유입되고 이후 원래 있던 원주민이 고통을 겪거나 터전에서 밀려 나가는 현상을 가리키며, 원도심 마을 재생 사업의 부작용의 하나로 발생한다. 흰여울 문화마을의 젠트리피케이션은 문화마을의 재생과 관광 활성화가 성공하면서 자본을 가진 외부인들이 들어와 상업적으로 정착하며 지가가 오르고, 이에 많은 주민이 집을 팔고 떠나갔다. 임대료의 상승과 관광객들로 인한 개인적 삶의 침해와 불편 등으로 남은 주민들의 내몰림 이주 현상이 급격하게 나타나고 있다. 

 

골목
절영로와 흰여울길 사이는 14개의 골목으로 연결되어 있다. 마치 미로처럼 얽혀있는 샛길의 모습이다. 흰여울길에서 잠시 골목 안으로 올라갔을 때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마음속에 묻혀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곳에 오랫동안 배어있는 삶의 고통과 고달픔 또한 함께 볼 수 있게 한다.

 

묘박지(錨泊地)
마을 앞바다에는 계류나 접안하지 아니하고 닻을 이용하여 함정이 정박하는 묘박지가 있다. 중·대형 선박들이 바다 위에 떠 있는 독특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부산항의 대기 주차장인 셈이다. 이곳을 바라보면 우리의 발걸음과 마음도 잠시 멈추어 심호흡을 하게 한다.

 

축대 
절영해안산책로에서 쳐다보면 20미터 높이의 마을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하고 독특한 원형 축대들을 볼 수 있다. 축대 이전에는 경사진 언덕으로 집들과 텃밭, 특히 공동화장실이 많이 있었다. 일명 벼랑 위 화장실이었다. 지금도 그 자리에는 새롭게 조성된 화장실들이 있다. 태풍 등으로 이전의 축대들이 무너지면서 1989년에 지금의 축대가 조성되었다.

 

흰여울 마을
 - 장화순​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전설
심해의 깊이만큼이나 켜켜이 쌓인 삶의 질곡
쪽빛 바다 위 맴돌아 가끔은 태풍에 얹어
그 마음 달래려 폭풍의 눈물 쏟아내고

갯바위마다 이름 붙여 놀던 벌거숭이 꼬마들
반백의 초로 되어 찾은 고향 흰여울 마을
지금도 남아 있는 낡은 슬레이트 지붕은
기억 저편에 묻어둔 것들을 어름어름
푸슬푸슬 쏟아내 눈앞이 아른거리고 

방학 끝난 교실 듬성듬성 빈 의자와 책상의 의미는 
배고픔 잊으려 자맥질하다 지친 흔적이었고
건너편 동네를 헤엄쳐서 건너겠다는
철없는 객기의 흔적이었다고 
반백의 초로 신화처럼 말하네

인고의 삶의 흔적 오래도록 간직해야 할 그 숨결
무지갯빛 피아노 계단에 음률로 노래하게 하고
밝아오는 여명의 빛처럼 새 희망을 꿈꾸는
흰여울 마을 비탈진 골목과 쪽빛 바다 전설은 
오래도록 신화로 남으리라

 

글·사진. 정원규 Jeong, Wonkyu 창대 건축사사무소 ·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