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칼럼 _ 학교 건축, 혁신학교는 그 마을에서 제일 좋은 건축이어야 한다 2020.10

2023. 1. 25. 09:11아티클 | Article/특집 | Special

Special Column _ School Building Innovation
The school should be the best architecture in the town

 

‘학교’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개인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어떤 연령에게는 그 이미지가 어둡고 추운 공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는 설레는 장소일 것이고, 누구에게는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헌법 31조에 따라서 교육은 국가의 의무이자 국민의 권리이다. 이러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우리나라 학교 건축은 주택과 같이 공급의 대상이었다. 빨리 많이 지어야 하는 건축이었고 이를 위해서 1960∼1980년까지의 표준설계도를 이용한 학교 건축이 이뤄졌다. 그래서 누군가는 “우리나라 학교 건물은 왜 교도소를 닮았을까?” 질문하기도 한다. 

뤽 베송 감독의 ‘루시’라는 영화가 있다. 우리나라 배우 최민식 씨가 열연했던 영화로 유명하다. 뇌의 용량을 100% 사용하게 된 루시(스칼릿 조핸슨)가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을 묻자 노먼 박사(모건 프리먼)는 “생명의 유일한 목표는 자신이 배운 것을 전하는 것이다. 그 이상의 높은 목표는 없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영화의 대사가 마음을 어떻게 변하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후손을 위해서 전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유산이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논리에 동의한다면 우리 건축사들이 학교 설계를 하면서 가져야 하는 마음을 다 잡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좋은 설계, 좋은 공간이 건축사들의 사명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세계적으로 번영을 이룬 복지국가는 저마다 고유한 방법으로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교육적 결과의 성공은 타 국가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나라 학교 건축은 어땠을까? 라는 자문을 해보게 된다. 우리가 최선을 다한 것이 지금 우리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의 모습이었을까? 개인이나 국가는 항상 선택을 해야 하는데, 과거의 학교 건축은 양적 공급이 주된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질적인 성취가 필요한 때이다. 개념적으로 정리해보면, 시험을 잘 볼 수 있는 교육(teaching)을 하는 공간이 아닌 학생 스스로 학습(learning)하고 자랄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건축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국가의 교육정책도 변하고 있다. 2019년부터 시작된 공간혁신사업에 이어서 2020년 ‘그린 스마트 미래 학교 5개년 계획’이 발표되면서 학교 공간을 바꿀 기회가 생겼다.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1단계 사업’에서는 2021년부터 5년간 총 18.5조 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40년 이상 경과된 노후건물’ 중 2,835동을 미래학교로 조성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미래학교의 혁신적인 공간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의 전략은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 저탄소 제로에너지를 지향하는 그린학교 
② 미래형 교수학습이 가능한 첨단 ICT 기반 스마트교실 
③ 학생 중심의 사용자 참여 설계를 통한 공간혁신 
④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생활SOC 학교시설복합화

 

정부는 지난 7월 17일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과거의 열린 교실, 교과교실제 등의 학교 공간에 대한 혁신적인 정책들이 시간이 흘러 빛을 잃어가고 있는 것을 교훈 삼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으로 외국의 학교 건축에 비하여 우리 학교와의 차이점은 공용면적 비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0%대에 머무르고 있는 공용면적을 50%까지 확대하여야 학교교육의 가변성을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 과거 표준 스페이스 프로그램은 새로운 방법으로 제시되어야 하고 격납고의 단위 면적 당 공사비보다 적은 초·중·고등학교 시설건축 예산도 대폭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 학교 현장을 보면, 적은 공사비 탓에 창호, 바닥마감 등 우리 학생들이 직접 접하는 부분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또한 복도, 홀, 홈베이스를 포함한 공용 공간에 냉난방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로 긴 여름과 긴 겨울이 반복되는 현실을 반영하여 아이들이 편하게 공용공간에서 서로의 지식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을 교실에 가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설계과정에서는 공간혁신사업의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사용자 참여 설계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 기존의 촉진자(facilitator)의 양성과 함께 사용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건축교육을 통해서 건축의 이해도를 높이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초·중·고의 교육과정에도 미래시민의 역량에 건축적 소양교육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경험하였던 사용자 참여 디자인은 그들이 성장하여 마을을 변화시키고 도시를 변화시키는 주역으로 활약하는 밑거름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이 과정에서도 지역의 건축사들이 자원봉사로 학교교육에 참여하는 방법도 고민되면 좋을 듯하다.

또한 건축사의 대가에 대해서도 기존과는 달라져야 할 것이다. 사용자 참여 디자인, 지역사회 공공공간을 학교에 설치하는 복합화 학교 등의 설계과정으로 설계기간은 더욱 길어지고 업무가 증가함에 따라 설계원가의 인상은 당연한 것이고 이에 상응하는 예산 배려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교 건축 설계과정에서 설계의도 구현을 위한 건축사의 감리과정이 포함된다면 더욱 완성도 높은 학교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신설 학교에 2∼3개층을 관통하는 층고 높은 소위 상상계단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아쉽게도 예산, 마감 상세 등의 문제로 초기 건축사의 의도가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건축사의 설계의도 구현 과정을 거치면 이러한 감각적인 공간에 섬세한 마무리를 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앞에서 논의한 미래 혁신학교를 만들겠다는 건축사들의 사명감과 창의성이다. 이것이 선행돼야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신축, 개축 학교가 증가할 것이다. 우리 학교 건축을 혁신적으로 개조할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교육이 우리의 미래다. 학교는 그 마을에서 제일 좋은 건축이어야 한다. 

 

 

글. 김진욱 Kim, Jinwook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 Ph.D · 건축사

 

김진욱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Ph.D·건축사

고려대학교와 University of Utah를 졸업했다. 목원대학교 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세종시교육청 총괄기획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교육시설, CPTED, 초고층, 리질리언스 건축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다.

 

jinwook@seoultech.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