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_ 망고, 탱고, 알로하네부부와 고양이, 강아지가 함께 사는 집 2022.8

2023. 2. 22. 09:22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묘한 생김새를 가진 집 
경사진 도로를 따라 펼쳐진 단독 주택들을 구경하며 올라가다 보면 길의 끝자락에 오묘한 형태를 가진 집이 나타난다. 지붕이 바닥까지 내려온 것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주변 주택들이 백색의 외단열 시스템이나 벽돌 마감인 것과는 다르게 은색의 골강판이 집의 형태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하부의 적삼목과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집의 형태는 마치 커다란 나무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부와 고양이 두 마리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가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 산다. 집은 사는 사람을 닮는다고 하는데, 외관에서 풍기는 이미지부터 소박하지만 재밌는 것을 좋아하는 건축주 부부를 닮아있다. 

둥근 배려가 만든 공간
묘각형 주택의 평면은 오각형이지만 모난 구석이 없다. 직각을 이루는 한쪽 모서리를 제외하고 오각형의 둔각 모서리를 내부에서 곡선으로 정리하여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내부에 들어왔을 때 처음 시선이 닿는 계단의 휘어진 벽면이 자연스럽게 2층의 라운드 처리된 보이드로까지 이어지며 계단을 이루는 벽 자체가 하나의 큰 미술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곡선 벽뿐만 아니라 주방 중앙에 배치한 아일랜드 싱크도 벽처럼 휘어져 있어 유연함을 더한다.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사는 묘각형 주택에는 최소의 필요 공간을 제외하고는 벽으로 구획된 공간이 없다. 실제로 문이 달린 방은 2층 하나뿐이고 나머지 기능은 층별로 구분되어 있다. 한정된 면적에 개방감을 주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겠지만, 나에게는 건축주와 건축사의 작은 배려가 깃든 것이라 느껴졌다. 집의 구석구석을 놀이터 삼아 이동하고 숨기도 하는 고양이들을 위해 벽을 나누는 일을 피하고, 문이 필요한 곳의 아래쪽에는 펫 도어를 설치하여 닫혀 있지만 언제든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묘각형주택> &copy; 노경


햇살이 머물다 가는 집
자연스럽게 휘어지거나 꺾이면서 유연한 평면과는 다르게 외부에서 본 묘각형 주택의 매스는 오히려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2, 3층의 골강판 부분에는 채광이나 환기를 위한 창을 1~2개만 두어 재료가 가진 요철과 위아래로 이어지는 선적인 느낌이 더 도드라져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채광이 유리한 방향에 창이 너무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생기기도 했었지만, 집의 기능이 층별로 나누어져 있다는 이 집의 평면적 특징을 고려한다면 충분한 배치로 보인다. 또한 위로 좁아진 사선형 볼륨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두꺼워진 벽이 깊이감을 만들며 북측의 안산의 풍광이 한눈에 담긴다.
묘각형 주택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을 꼽으라면 1층의 간 살창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창을 열면 한 폭의 그림처럼 들어오는 마당의 풍경이다. 해가 좋은 날 마당 앞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마음도 따뜻해진다. 창문 너머의 햇살은 곡선의 벽을 타고 더욱 깊이 집 안으로 들어오고 마당의 풍경을 넓게 안아주는 듯하다. 외부에서 내부로 이어지는 풍경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데는 건축주 부부의 의기투합도 한몫 한다. 마당은 조경가인 아내의 실험대이자 캔버스로서 식물들을 통해 수확의 기쁨을 누리기도 하고 계절을 만끽하기도 한다. 또한 목공이 취미인 남편은 집안에 필요한 가구나 소품들을 직접 만들었다. 누구보다도 집을 잘 아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창작물보다 집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고양이의 모닝 루틴
하루 동안 묘각형 주택에 머물렀는데 고양이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낯선 사람을 많이 경계하는 둘째 탱고는 특히 더욱 그랬다. 첫째 망고는 경계하면서도 주위를 살피는가 싶더니 시간이 지나 평소의 본인으로 돌아가 테이블 위를 어슬렁거리거나 소파 위에 널브러져 있기도 했다. 다음날이 되어 탱고의 재미있는 모닝 루틴을 보게 되었는데, 건축주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1층 테이블에 앉아 있으니 어느새 탱고가 계단에 가만히 앉아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듣고 있다. 그러고는 계단 옆에 있는 화분으로 이동해 풀을 뜯어먹는다. 탱고는 채식하는 고양이인가? 조용한 공간에 사각거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새로운 가족과 공간 변화
건축은 사용자의 변화에 따라 공간의 이용 방식이 달라진다. 최근 묘각형 주택에도(예측했거나 하지 못했던) 약간의 가족 구성원에 변화가 생겼다. 새로운 가족으로 잔망스러운 강아지 알로하가 함께하게 된 것이다. 한곳에 머물며 숨거나 관찰하기를 좋아하는 고양이와 호기심이 많고 활동적인 강아지가 만난 묘각형은 어떻게 변화되어 갈지 궁금해진다. 고양이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엄청 큰 이 캣타워가 너무 좋아요.’
내가 만난 건축주들은 예전보다 더 많은 상상을 하고 꿈을 꾸는 듯하다. 그만큼 지금 공간이 자신들이 원하는 삶의 방식들을 담아냈기 때문이 아닐까? 이는 박지현 건축사가 얼마나 촘촘하게 건축주와 커뮤니케이션하며 설계를 진행했을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비유에스의 작품에는 늘 평범하지 않은 소박함이 담겨있다. 지금도 개인의, 다수를 위한 공간을 그리고 있을 그들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 본다. 

 

 

글. 황희정 Hwang, Heejung 야무진 건축사사무소

 

 

황희정 건축사·야무진 건축사사무소

 

영남대학교 건축학부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에서 도시환경설계를 공부했다. 건축사사무소 삼간일목을 거쳐 2019년 야무진 건축사사무소를 오픈하였다. 2020년에는 도 시 전문 매거진 요즘도시의 공동 창업자이자 콘텐츠 기획자로 건축과 도시를 넘나드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2022년부터는 서울시교육청의 꿈담 건축가로 활동 중이다

 

thumd3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