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17. 15:30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al Tour Museom Village and Sayuwon
작년 11월 중순경 가을의 끝자락에 대구광역시의 건축사회, 건축가회, 건축학회 3단체가 매년 함께 주최하는 건축문화답사 기회를 갖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행사가 중단된 지 3년여 만에 개최된 행사였다. 건축인으로서 답사를 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사무실에서 보내는 여유 없는 생활의 연속에서 잠시나마 여유를 가지고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루 동안 영주 무섬마을과 경상북도 군위군에 위치하고 있는 사유원(思惟園)을 투어했다.
먼저 간 곳은 영주 무섬마을.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한국어 이름이다. 삼면이 내성천과 접해있는 전형적인 물도리 마을(풍수에서는 물이 돌아나가는 안쪽으로 기운이 모아지기 때문에 만사형통으로 좋은 매우 귀한터로 여김)로, 마을 앞을 돌아나가는 맑고 잔잔한 내성천이 눈앞에 펼쳐지는 산수의 경치가 절정을 이루는 마을이다. 마을에는 만죽재와 해우당 고택 등을 비롯해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미음(ㅁ)자형 가옥, 부엌의 연기를 빼내기 위한 까치구멍집, 남부지방 민가 등 다양한 형태의 구조와 양식을 갖추고 있어 전통주거민속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서의 가치도 지니고 있으며 대한민국 국가민속문화재 제278호로 지정되어 있다. 무섬마을은 안동의 하회마을, 예천의 회룡포, 무주 내도리, 밀양 삼문동, 영월의 선암마을과 청령포와 같이 마을의 3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는 대표적인 물돌이 마을이다.
수도교를 건너 마을에 들어서면 유유히 흐르는 내성천 강물과 드넓은 금빛 백사장, 고색창연한 고가와 초가들이 조화를 이뤄 정겹고 다정한 느낌이 든다. 마을 내부를 거닐다 보면 시야에 들어오는 전통기와지붕과 더불어 옛 정취 그대로의 초가지붕이 있는 전통한옥은 언제 봐도 편안하고, 자연의 멋스러움이 있다. 전통기와가 얹혀 있는, 가옥 내부가 보일 정도의 나지막한 담장과 담장 사이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마을 전체가 소통되는 듯한 느낌도 든다. 무섬마을의 명물이자 소박한 랜드마크인 내성천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과거 유일한 통로였지만 수도교가 놓인 이후부터 거의 방치되다 마을 주민과 출향민들이 성금을 모아 복원됨)를 체험하고 마을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서로 담소를 나누면서 비빔밥을 먹고 부침전에 막걸리까지 한잔 하니 제대로 전통체험의 마무리가 된듯 했다.
그렇게 무섬마을을 뒤로하고 경상북도 군위군의 사유원으로 향했다. 누리집에 들어가 보면 “‘사유원’은 오랜 풍상을 이겨낸 나무와 마음을 빚은 석상, 아름다운 건축물이 함께하는 고요한 사색의 공간이며 단순한 수목원 관람에서 한발 더 나아가 원내를 거닐며 자아를 돌아보고 깊이 생각하게 하는 진정한 ‘사유’의 정원입니다. 도시를 벗어나 마주하는 고요함, 그리고 이어지는 매력적인 풍경, 그곳에서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소개글 그대로다. 답사를 하고 난 뒤 이 소개글을 보니 다시금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사실 몇 년 전부터 건축사들을 비롯해 건축에 관심이 있는 지인들과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사유원은 작은 산의 진입부에서 몇 가지 경로(종합안내도의 추천코스를 숙지하지 않으면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로 다니면서 산의 정취 속에 테마가 있는 정원과 제각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축물을 만나게 된다. 투어를 하다 보면 장편의 드라마를 몰아보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사유원’이라는 큰 공간 안에서 조경가(키아기시 마츠노부, 정영선, 박승진, 김현희), 조명가(고기영), 석공(윤태중), 서예가(웨이량), 그리고 여러 아키텍트(승효상, 알바로 시자, 박창열, 최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진입부에서부터 건축물을 접하게 되는데, 극도의 비움에 이르는 문이라는 치허문(관리실 겸 화장실 용도, 승효상)이 있다. 이 치허문을 지나 처음 접한 건물은 시적인 건축을 추구하는 작품인 ‘소대(알바로 시자)’라는 전망대다. 구조상 15도가 기울어진 건물 내·외부가 노출콘크리트로 지어졌다. 내부 계단을 오르면 층마다 일부는 스킵플로어처럼 연속적으로 한 폭의 그림처럼 외부를 볼 수 있는 눈높이에 가로의 직사각형으로 외벽이 오픈된 곳이 있다. 여기에 서서 외부를 보고 있으면 도가 사상에 심취해 자연과 하나 되는 삶, 도연명적인 삶을 꿈꾸었던 조선 초의 화가 강희안의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에 나오는 사색하는 선비가 된듯하다. 최상층은 완전히 오픈되어 수목원 전체와 창평 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의 절정을 만끽할 수 있다.
천정, 벽 상부, 하부 여기저기에서 자연채광(일부 공간은 아예 지붕이 없는 벽체로만 구성된 공간)을 접할 수 있는 소요헌(알바로 시자), 마음의 정원인 내심낙원, 가톨릭 경당(알바로 시자), 오랜 세월 동안 풍상을 이겨낸 모과나무가 있는 풍설기천년, 사유원의 대표건축물인 명상을 즐길수 있는 ‘명정(승효상)’, 팔공산 비로봉을 바라보며 깊은 사색에 잠길수 있는 가가빈빈(최욱)이라는 이름의 카페, 깊은 생각을 담은 연못인 사담과 승효상 건축사가 설계한 모던한 건물의 레스토랑(내·외부에서 공연 가능) 몽몽비방, 사유원 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물탱크이자 전망대인 ‘첨단’, 그리고 ‘깨달음이 있는 연못’이라는 뜻의 5개의 연못인 오당과 ‘누워있는 수도원’이라는 발상으로 지어진 와사 등 여러 건축물과 그 사이사이에 있는 정원들과 길(모든 건물과 정원, 길, 야외화장실, 벤치마저도 이름을 갖고 있다.)로 연계되어 있다.
사유원을 돌아보면 건축물이 주변의 자연환경과 조화되도록 노력한 건축사들의 흔적이 보인다. 건축물의 기능, 개성을 갖추는 것과 더불어 사색의 공간이란 하나의 주제와 전체적 유기성을 고민한 게 느껴진다. 건축물은 인공물이지만 건축사 스스로의 상상과 실재와 잘 협상해 건축주가 요구하는 주제에 잘 스며들었다고 생각한다. 작은 산의 형태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계속 걸어다니면서도 피곤하다는 생각보다는 나를 위한 시간을 가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유원은 사계절에 다 방문해야 할 것 같다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건축물이 자연과 함께 조화를 이루기에 그 말에 공감이 간다. 기억이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사그라들지만 공간은 시간을 저장한다. 다른 장소, 다른 역사, 다른 공간이지만 무섬마을과 사유원이 그런 곳이다.
글. 서동희 Seo, Donghee 디에이치에스 건축사사무소
서동희 건축사 · 디에이치에스 건축사사무소
디에이치에스 건축사사무소 대표이자 대한건축사협회, 한국건축가협회 정회원이다. 현재 대구광역시건축사회 청년위원회 위원장,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 건축위원회 위원, 대구광역시교육청 학교공간혁신사업 학교공간혁신 촉진자, 계명대학교 건축학전공 겸임교수 등으로 활동 중이다.
sdh110747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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