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3. 17. 17:25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Several scenes of water
계획대지는 적벽돌의 도시에 있다. 멀리 고층건축의 커튼월이 빛나고 그 주변을 걸으면 다른 색의 벽돌이나 재료를 발견할 수 있지만, 계획대지를 둘러싼 장소는 단연 붉은 벽돌의 이미지가 지배적이다. ‘성수 wave’는 도시에 면한 세 면에 붉은 벽돌이 대응하는 건축이다. 하지만 이 건축은 주변 건축과 사뭇 다른 인상을 준다. 그것은 외피를 찬찬히 보거나 의미를 해석해서 얻어진다기보다는 직접적으로 그리고 일순간에 인지된다.
벽돌은 고전적이다. 압축력을 가진 재료를 층층이 쌓아 하중을 아래 방향으로 전달하는 것에 집중해 보자. 그 하중은 때로는 지붕, 평평한 바닥, 자신과 일체화된 벽체일 때도 있다. 쌓아 올린 재료는 벽돌, 석재, 심지어 나무이기도 하다. 쌓는다는 행위는 그 물성과 상관없이 위쪽의 힘을 아래로 전달하여 건축이 서 있게 하는 주요한 구조적 방법 중 하나였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랜 시간 동안 존재하고 있다. 이 작동원리에 한정하여 ‘고전적’이라는 단어를 선택한다면 석재나 목재에 비해 벽돌과 벽돌쌓기는 이에 적합한 재료임이 분명하다.
성수 wave의 벽돌과 그 쌓기는 차별성을 지닌다. 물론 현재 외벽에 벽돌을 사용하는 가장 보편적 방식인 치장벽돌쌓기도 비구조 요소이기에 좁은 의미로 고전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한편 외장벽돌을 철재 환봉으로 고정하고 벽돌 사이를 이격하여 빛과 장면을 연출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벽돌을 빗겨 쌓는 것은 어느덧 익숙하다. 그럼에도 성수 wave가 일반적인 벽돌과 다른 궤적을 그리는 이유는 쌓기 방식을 달리하여 다양성을 가지면서도 성수동 도시가로에 면한 모든 면에 확장되어 유사한 느낌을 동시에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성수 wave에서 벽돌은 쌓은 것이 아니라 놓아진 듯하다. 벽돌은 환봉에 고정되어야 하기에 상하부에는 강판이 필요하다. 벽돌에 비해 아주 얇은 이 강판은 건물의 모든 면에서 섬세한 입면의 기준선이 되고 있다. 벽돌들은 서로 모르타르로 부착되지 않는다. 기성재인 스페이서는 이격의 기능을 담당함과 동시에 줄눈이 사라지는 경쾌함과 신선함을 만들어낸다. 두 개의 얇은 강판에 의해 수평으로 구분된 영역은 환봉의 간격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벽돌타공은 일정한 간격을 가지기에 그 치수를 고려하여 패턴을 구성하였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다양한 조합과 구성은 벽돌이 건축의 외장재가 아닌 옷의 겉감 같은 느낌을 준다. 얇은 강판, 기성재 스페이서, 다양한 벽돌 패턴은 기술적 측면과 의장의 측면을 동시에 고려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으며 성수 wave는 두 영역을 자연스레 넘나든다.
성수 wave의 'WAVE'에 대한 설명은 따뜻했다. 물결치는 듯한 벽돌 외벽은 북측으로 치우친 북동향이다. 건축사는 상업건축이 가져야 하는 개방성과 인접대지에 있는 옆 건축물의 프라이버시를 함께 고려한 결과로 물결을 선택했다. 개방성을 확보하기 위해 연와조였던 기존 건축물의 외벽을 철거하고 철골구조로 바꾸었는데, 그로 인해 성수 wave는 벽돌벽 안쪽에 투명유리의 커튼월이 있는 이중외피로 구성되어 있다. 전면 커튼월과 이격하여 외벽면을 설정하고 벽돌을 쌓고 패턴을 조정했다. 이때 외벽면은 바닥면에 수직이 되도록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각 층의 윗부분이 커튼월과 멀어지는 방향으로 기울여 하늘을 향해 틈을 내는 방식을 사용했다. 인접지 주거의 프라이버시를 선택하면서 다소 부족했던 빛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웨이브(Wave)가 있는 커튼월 앞에 섰을 때 이격된 벽돌 사이로 보이는 도시의 모습과 위쪽에서 스미는 빛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고개를 들면 하늘의 일부가 굽이치는 물결의 형상이 프레임 안으로 들어왔다. 다양한 쌓기 방식을 가짐에도 유사한 느낌을 주는 외부와는 달리 내부에서 보이는 벽돌은 각각의 면마다 쌓기의 차이가 비교적 잘 드러나고 내향적인 인상을 준다. 동일한 벽돌임에도 성수 wave의 내·외부에서 마치 다른 재료처럼 인지되는 것, 내부에서 커튼월 너머로 보이는 벽돌의 모습은 이 건축이 가지는 중요한 장면이다. 그러기에 벽돌을 커튼월의 바깥 방향으로 내밀기 위해 필요했던 철제 구조물이 조금 더 세밀하게 다루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도 한정된 공사비와 비구조요소의 내진설계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럼에도 창호를 고정하는 프레임, 철제 구조물의 치수가 조정되어 내부 마감재료 같은 벽돌을 인지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다.
웨이브 부분의 강판은 그 이름처럼 위아래 한 세트의 형상이 다르며, 그러기에 물결치는 듯한 벽돌면은 3차원 곡면이다. 강판은 벽돌을 끼운 환봉이 고정되는 곳이므로 환봉이 고정된 지점은 모두 개별적으로 설정된 위치가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까다로운 조건을 어떻게 현실화했는지가 궁금했다. 곡선 형상의 위아래 강판에 환봉이 결속되는 지점을 각각 모두 작도하여 현장에 전달하고 이를 기준으로 시공하였다는 대답이 되돌아왔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새로움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성수동을 나서면서 묵직하고 단단한 이미지의 벽돌이 경쾌하고 자유로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감정이 나에게 남은 이유는 성수 wave가 보여준 순간들 때문이라기보다는 쌓은 벽돌이 아닌 놓아진 벽돌이라는 차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때로는 잔잔하고 한때는 격정적으로 물결치는 여러 장면으로 변화하고 있다.
글. 김세진 Kim, Sejin 지요건축사사무소
김세진 건축사·지요건축사사무소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2015년 지요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였다. 종이의 면으로 시작한 건축이 존재의 개별성과 감각의 보편성을 가지고 스스로 깊이 있는 것으로 변화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 서울대학교 설계스튜디오에 출강한 바 있으며 젊은건축가상(2020), 한국건축문화대상 신진건축사부문 우수상(2022) 등을 수상하였다.
ssew@ji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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