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을 바라보는 공동주택 2023.4

2023. 4. 19. 14:30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partment houses looking forward to reconstruction

 

 

 

아파트의 수명이 고작 3~40년이라니, 무슨 건물이 내달리느라 지칠 대로 지친 말도 아니고……. 유럽에 있던 시절, 유럽에서 발발된 두 차례의 전쟁을 겪으며 세기를 지난 집에서 삼대가 동고동락했던 거북이 머물던 집에 머문 적이 있다. 이런 삶을 고스란히 담은 뒤뜰에 연결된 주방은 벽에 걸린 무쇠냄비와 팬들, 그리고 오래된 화덕과 함께 집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그 순간 요리를 하느라 분주한 여인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치즈 내음과 달콤한 디저트의 향기가 코에 머무는 것 같았다. 인간의 생애 속에는 분명 지우고 싶지 않은, 가슴 깊이 머물러 주었으면 하는 기억들이 있다. 어떤 이에게는 다소 수고스러운 장소였을 수도 있지만 집의 곳곳은 가족과 지인들의 만남이 이루어지던 따뜻함이 있던 곳이었음은 분명하다.

 


나는 집이란 세대에 세대를 걸친 그런 기억들이 쌓여있는 곳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던 내가 재건축 이슈가 입에 오르내리고 부동산 정책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주민들이 대다수였던, 재건축을 바라보는 아파트 한 채를 얻었다. 침묵의 살인자라 불리는 석면가루가 어딘가 숨어 있을 테고, 정돈 안 된 주방의 모습이 훤히 보이고 빛바랜 도배지가 눈에 띄던 거실과 요즘엔 잘 보이지 않는 타일로 된 화장실. 실내를 손본 지 10년 되었으니 겉만 살짝 건드려줘도 살기에 무방하다. 하지만 이러한 재건축을 바라보는 빌라나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들은 언젠가 보일러 배관에 문제가 발생해 아랫집에 피해를 주기 일쑤다. 

 


1970~80년대 우리나라는 올림픽이라는 대대적인 국제행사를 앞두고 강남 개발과 함께 판상형 아파트가 어마어마하게 양산되었다. 그 당시 지어진 아파트들은 수명이 고작 30년이 채 안 되는 동관으로 보일러 배관이 시공되었는데, 이런 아파트들은 동관 수명으로 인해 실내 공사를 하게 된다. 그러면 집주인들은 새 아파트 못지않은 구조와 모던한 감각의 인테리어에  마음이 쏠리고, 과거에 투박하게 설계되었던 아파트 구조 개선을 위해 슬래브와 내력벽을 남긴 채 대대적인 철거공사를 시행한다. 이렇게 단명하는 집들에서 오랜 세월의 흔적들이 숨 쉬고 있는 고풍스러운 집은 기대조차 할 수 없다.     

나 또한 어차피 어느 한 부분이라도 남기고 싶은 흔적들은 없었으므로 외벽과 내력벽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철거했고, 공조난방 방식으로 충분했지만 차후의 사용자를 위해 바닥난방을 설치했다. 사람들은 집이 자신의 삶을 잘 담아주는 그릇이 되길 원한다. 공간과 그 공간에 설치된 모든 요소들은 우리에게 말을 하지 않지만 우리 행동양식의 변화에 적극 개입한다. 이 집은 멀티태스킹이 이루어지는 단일공간으로서의 기능이 필요하다. 멀티태스킹의 범주는 업무와 가사일, 학습과 놀이, 요리와 놀이가 병행되거나 휴식과 레크리에이션이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커다란 아일랜드형 공간이다. 1미터 폭에 3.4미터 길이니 대형 식당의 조리대와도 같다. 집에서 필요한 모든 행동들이 가능한 공간이다. 그리고 이 아일랜드형 작업대 앞뒤로 보드역할을 할 대형 슬라이딩 유리도어를 설치한다. 안을 가득 채우고, 그러면서 여러 가지를 배우고, 마음을 그리고 또 다시 마구 지웠던 그 글라스보드는 사용자의 창의력을 키우고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칸칸이 열어 확인하기 힘든 싱크대 장 대신, 커다란 선반에는 커피머신과 예쁜 커피잔들이, 책들과 사진들이 놓인다. 베란다는 햇살을 가득 품는 서재가 된다. 이 집은 낡은 1980년대 옛 모습을 뒤로하고 이렇게 살아남은 듯하다. 

이곳은 아직도 많은 집들이 끊임없이 속만을 탈바꿈하고 있다. 내력벽을 제외한 벽들을 철거하여 구조를 몰라보게 바꾸는 경우도 허다하고, 외부에서 바라보는 창문들 또한 우스울 정도로 제각각이다. 창은 비율만 다른 경우도 있지만 개폐 부분이 다른 경우도 꽤 많다. 아파트의 1층은 공공녹지가 개인정원처럼 사용되고 있다. 이런 수많은 광경은 재건축을 바라보는 아파트라서 볼 수 있는 광경들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공동주택으로서 같은 이름의 아파트에 묻혀 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내부는 자신의 행동양식에 맞춰 바꾸어 놓고 있다. 오래된 판상형 아파트 속에 묻혀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삶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집 한 채들인데 이것들도 어느 순간 재건축이라는 도마 위에서 잘려나갈 것이다. 지방에서 아파트 한 채 살 가격들로 치장된 이 집들이 말이다. 사람들은 낡음 속에서 불평하고 거기에 적응해 살아가지 않는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공간을 만들며 가족들의 삶의 문화를 만든다. 

 

 

 

 

글. 양홍철 Yang, hongcheul 브엔엘메타건축사사무소(주)

 

 

양홍철  건축사·브엔엘메타건축사사무소(주)

 

대일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공학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으며, 2012년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다. 현재 건축사로서 공공건축을 위주로 활동하고 있다.

ynnarc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