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임계점, 전환점 2023.5

2023. 5. 16. 17:11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Start, Critical point, Turning Point

 

 

시작


IMF 시대, 실장님들은 건축사 시험 등의 이유로 회사를 타의로 그만두게 되고, 그야말로 건축은 없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아비규환의 시대에 필자는 신입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핑계로 대학원을 진학하거나, 넉넉한 집안 사정으로 쉬거나, 집을 일을 돕거나, 다른 직종을 찾아가게 되었다. 나는 배워온 환경 때문인지 졸업하면 무조건 일해야지, 집에 불편함을 끼칠 수 없지 하며 무조건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실습생 때부터 캐드에 인허가 대관을 좀 배웠었고, 학창 시절에도 주말이면 선배 사무실 설계공모 아르바이트 등으로 쉽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는 IMF로 인해 선배들이 퇴사한 환경이라 군데군데 어금니가 빠져있듯 멋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대관업무를 하거나 소장님과 맨투맨으로 일을 한 경우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어려운 걸음이 오히려 지금의 나를 만든 계기가 되었다.

 

 


임계점


설계공모, 공공건축, 공동주택, 리노베이션에 대해 이야기 좀 해야겠다.


먼저 설계공모, 주야장천 밤을 지새우는 나름의 풍토와 고단한 연속 작업들을 시작점에서 경험하고도 아직까지 하고 있다. 설계공모는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체력 소모를 바탕으로 거의 제출하기 직전에는 몽환적 마약 같은 신기루를 경험하는 묘미가 있다. 이번에는 꼭 최고의 작품으로 당선될 거야 하는 착각과 바람으로 체력은 소진되어 임계점에 다다르지만, 무언가 또 해냈구나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환각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작업의 특징은 임계점을 넘어선 초유의 결과로 한층 더 실력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태릉선수촌 국가대표 선수들과의 공통점을 따져 보면, 자신의 임계점을 깨는데 우승이 달려있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국가대표 선수들은 다른 일을 추진하더라도 성공하는 이가 많다는 게 사실이다. 아마도 1등은 힘들겠지만, 노력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


직원 시절, 신입 때 입찰에서 낙찰된 공공건축인 노인복지관을 경험할 때의 일이다. 디자인은 교수님과 진행하고 실시설계를 하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디자인 의사결정과 도면들, 그것을 배경으로 공사비 내역서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선배들은 떠나 있고, 몰래몰래 물어보며 내역서의 구성조차도 모르는 나는 재미있기도 했지만,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많았다. 또 공사 내내 도서에 대한 허점을 찾는 시공사의 날선 시각의 따가움도 임계점을 많이 느끼게 한 것 같다. 그때 시공사의 요청으로 주무 과장의 주재로 도서의 미비한 사항의 성토가 있었는데, 도면에 디테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겨대는 시공사에 한방에 도면 번호를 일일이 나열하며 반박했다. 담당 과장님 왈, “도면에 다 있네, 그래 설계자가 알아서 잘 했네” 하며 똑바로 공사나 잘하라고 한, 그 시기를 잘 극복한 사례도 있었다. 그때 난 사실 대표님께 혼날까 봐 떨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고생했다는 대표 건축사님의 따뜻한 격려가 아직까지 맴돈다.

 

어느 정도 경력을 쌓다가 공동주택에 뛰어들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선배들이 사무실로 복귀하게 된다. 근데 공동주택은 꺼리며 막내인 나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그때 부팀장으로 있었는데, 팀장이 건축사 시험공부를 하러 가면서 “네가 그냥 팀장 해라”는 말에 나는 그때부터 공동주택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30대 초반이 무엇을 알려나? 처음 1,727세대 공동주택을 배치하고 조경 협업과 엄청난 프레스의 시행 관계자들과의 첫 경험은, 지나온 지금 다시 하라고 한다면 박봉이 아닌 엄청난 연봉을 제시했을 거다. 시 담당 주무관은 어린 내가 기특했던지, 대관업무를 하는 과정에 하루 날을 잡아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의 조목과 도면을 각각 비교해 주었다. 그런 큰 경험을 하게 되면서, 법규와 도면의 일치를 항상 중요시하며 그냥 선배들이 도면을 이렇게 그렸으니깐 베끼는 것이 아니라 이유를 찾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도면은 단순 시공을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많은 언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007년부터 경험한 리노베이션은 공동주택부터 시작되었고 지금은 공공건축, 일반 건축을 진행하고 있다. 리모델링, 리노베이션의 임계점은 정확한 건축물 정보가 미비하기 때문에 공사 중에도 벌어지는 설계자의 판단과 대처가 중요하다. 앞의 설계공모, 공공건축, 공동주택에서 얻은 판단 능력의 임계점 극복에서 나타난 위기에서의 대처 방법과 연관된다 할 수 있겠다.

 


전환점

 

2011년 사무소를 개소하자마자 우연히 아부다비 프로젝트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탈리아 건축사와 협업 작업을 했다. 선진국 건축은 건축사로 하여금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대우해 당당함이 있었다. 설계자 의도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Give & Take가 분명한 선진국의 건축문화는 그때까지 내가 경험한 한국에서의 오더를 주는 클라이언트 눈치를 살피는 구조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프로세스임이 분명했다. 혹자는 한국의 건축은 그룹사에서 사행과 공사 조직을 운영하기에 설계자의 디자인 논리가 아닌 건축의 상품화로만 다루는 풍토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대등할 수 없는 구조다. 이 경험을 토대로 클라이언트와의 대화 방법은 대등한 구조로 이끌고 있어 상대적으로 귀찮은 일들은 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

이게 첫 번째 전환점이었고, 협회에서 각종 위원회 활동과 설계계약제도 개선, 국토부 미래건축포럼, 건축사시험제도 개선 TF를 통한 건축사 위상 제고 또한 나의 건축 가치관의 전환점이 되었다. 예를 들자면 공공건축 설계 계약 시 설계용역비 산출내역서 항목을 잘 살핌으로써 용역의 범위가 정해지는데, 대부분 이 부분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있다. 과업지침서에 명기 되어 있다고 해서 다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비 산출내역서에 누락된 부분은 별도로 청구해 용역이 끝나기 전에 마무리하는 게 맞다. 개인보다는 협회를 적절히 이용하면 원활히 해결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협회는 존재하는 것이다. 서울특별시건축사회 신진건축사위원회에서 세미나와 페차쿠차가 운영되고 있다. 건축사들의 다양함을 알고자 하는 것인데, 몇 년째 운영해 보니 다양한 경험을 서로 소개하면서 여러 각도로 생각하게 되고 도움이 많이 되어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됐다. 시대를 원망하기보다 스스로 움직여 희망을 꿈꾼다면 다시 한번 일어설 수 있다.

 

 

 

 

글. 백창용 Architect. Baek, Changyong 해담은풍경 건축사사무소

 

 

백창용  건축사·해담은풍경 건축사사무소

 

국립서울과학기술대학교와 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학원을 거쳐 2011년 사무소 개소 직후 아부다비에 건너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2013년부터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해담은풍경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해오고 있다. 서울특별시건축사회 신진건축사위원회 담당이사, 서울전통시장 디자인혁신 평가위원, 서울·대전·양주시 공공건축가로 활동 중이다. 주요 작품으로 화성 펜싱전용경기장, 화성 국궁장,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리노베이션, 서서울예술교육센터 작은도서관 리노베이션, 모제림 모발이식센터, 중계초 체육관 및 급식실, 가평고 그린스마트미래학교 리모델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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