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시작, 그리고 첫 작품에 대한 기억 2023.6

2023. 6. 21. 17:05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 light hearted beginning, and the memories of the first work of art

 

 

무모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용기로 그랬을까 싶다. 올해는 개업한 지 7년 차가 되는 해다. 개업 7년 차라고 하면 대부분 놀라는 반응이다. 그럴 만도 한 게, 대학 입학 후 군대에 갈 때 빼고는 별다른 휴학이 없었고, 졸업을 한 달 앞두고 건축사사무소에 첫 출근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5년은 버티자는 나와의 약속을 지킨 후, 60번째 월급을 받고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한 달 정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사업자를 내고 내 일을 시작했다. 사업자 신고가 생각보다 쉬워서 다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첫 회사에서 5년 동안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자평하지만, 그래도 알만한 사람들은 안다. 건축사로서 그리고 회사 대표로 업을 시작하기엔 결코 충분하거나 넉넉한 경력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대표 건축사라는 직함이 어색하고 불편할 때도 있다. 학교와 짧은 실무 수련 과정에서 생성된 내면의 그 무언가를 깊이 성취하기 위해서 시작한 것도 아니다. 시작은 너무 가벼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직장에서 나의 사수였던)파트너와 작은 성과들을 만들어내며 사무실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대학교 4학년 때 현직에서 활동하시는 교수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설계는 긴 숨을 가지고 해야 한다. 그냥 힘을 빼고 진득이 하다 보니까 잘하게 되더라. 그냥 하다 보니 제일 잘한다는 친구가 그만두고, 더 하다 보니 두 번째로 잘한다는 친구가 그만뒀다”라며 그저 열심히만 하라는 조언과는 조금은 결이 다른 조언을 해주셨다. 이는 그 시절 건축으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근거 없는 진지함에 도취돼 스스로를 축내고 있던 내게 한걸음 물러나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해줬다. 지금도 ‘건축사’로 일을 하다 보면 찾아오는 시련과 울분에 맞닥뜨리면,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고자 그때 그 말씀을 떠올린다. “그래, 오래 하는 놈이 잘 하는 거야.”

 


첫 계약

 

한옥사진 © 아크팩토리


용역 계약의 순간은 항상 설렌다. 설계공모가 됐든, 수의계약이 됐든 건축사 업무를 수행하고 그에 따라 정당한 대가를 비용으로 보상받기 때문이다. 모든 건축사의 공통된 경험이겠지만, ‘건축사’로서 첫 계약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개업을 한 지 1년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으니,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개업 직후에는 지인의 소개로 연결된 시공사에서 필요한 업무를 하는 파트타임이나 선배 건축사를 도와 프로젝트 단위별로 일을 맡아 하면서 수입을 얻었다. 개업할 때 꿈꿨던 그림과 완전히 다른 모양새였지만, 그래도 좌절하지는 않았다. 언젠가 내 일을 하려면 내 회사가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에 구조 설계를 하던 학교 선배의 전화를 받았다. 친척의 지인이 한옥을 짓고자 하는데, 한옥을 설계해 줄 건축사를 찾는다는 것이다. 첫 직장에서 한옥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이 있었고, 그 경험이 내 첫 계약의 물꼬를 터준 것이다. 건축주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건축사와 설계를 진행하다 소통의 문제로 그만두고 대타(?)를 수소문하다 나와 인연이 닿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건축주도 무모한 모험을 감행했다. 건축사 실적 없음. 직원 없음. 번듯한 사무실 없음. 3무(無). 뭐 하나 믿을 구석이 없었던 나에게 시공비가 양옥에 비해 두 배 이상을 호가하는 값비싼 한옥의 설계와 감리 업무를 맡겼으니 말이다. 물론 혹독한 면접 과정을 겪었다. 건축주는 나에게 무료 기획업무(흔히 말하는 가설계)를 요구하진 않았고, 나도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겠노라 다짐하고 첫 만남을 가졌다. 점심을 먹으면서 시작된 첫 상담(혹은 면접)은 저녁 시간까지 이어졌다. 건축사로서 실적이 없으니, 많은 대화를 통해서 능력과 자질을 간접적으로 검증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도 물론 적극적으로 임했고, 그래야만 했다. 1년이 넘도록 기다려 온 ‘건축사 양정원’의 계약이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단면도


순조로운 설계의 시간 

 

빨간 도장이 계약서에 찍혔다. 이상했다. 기대한 것보단 감흥이 덜했기 때문이다. 계약까지 이르는 과정에 지쳐서였을까, 아니면 대표 건축사로서 짊어진 책임감과 부담감이 커서였을까.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설계 과정은 순조로웠고,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많다. 한옥은 건축사가 설계를 하지만, 도면에서 통제할 수 없는 순수 도편수의 직능 영역이 존재한다. 현명했던 건축주는 사전 공부를 통해 건축주가 해야 할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고 수행했다. 기획업무 단계에서는 건축주와 건축사의 긴밀한 상호 소통을 통해서, 기본설계와 실시설계 단계에서는 건축사와 선임되어 있던 도편수가 한 팀으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설계가 다 끝나고 나서야 시공사가 선정되는 오늘날의 일반적인 설계 및 시공 과정의 단점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물론 그것은 건축 관계인 각각에 대한 충분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건축주가 잘 갖춰놓은 판에서 건축주, 건축사, 도편수(시공자)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서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충분한 건조를 위해서 착공 1년 전에 구입한 목재가 켜켜이 쌓여있는 창고에 둘러앉아 진한 나무 냄새를 맡으며 설계 회의를 하기도 했고, 꼬물꼬물 만든 지붕 스터디 모형을 여러 개 나열해 놓고 전통 구법의 유·무용론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인 적도 있다. 정답이 중요하진 않았다. 건축사가 계획한 평면과 단면, 이를 도편수의 오랜 경험과 기술을 통해 보완하고 장인의 구법으로 조직했다. 까다로운 건축심의 과정과 인허가 절차는 설계 과정이 좋아서인지 별다른 문제 없이 통과됐고, 드디어 새내기 건축사의 첫 프로젝트는 착공을 맞이한다.

 


완공까지 2년 6개월

 

연면적 약 264제곱미터, 80평 남짓한 지하 1층, 지상 2층의 한옥이다. 집은 처음부터 한옥숙박업을 하고자 계획되었다. 1층은 두 채의 객실이 있다. 각각은 침실, 화장실, 그리고 작은 마당과 마루가 한 세트로 구성된다. 2층은 집주인이 생활하는 공간이며, 지하는 손님과 집주인을 위한 다목적 공간이다. 그리고 숙박 관련 서비스를 도와줄 설비인 덤웨이터를 설치했다. 한옥치고는 단일 필지와 단일 건축물로서 꽤 높은 용적률과 밀도로 계획했다. 서울 시내 비싼 토지 가격과 건축비를 고려한다면 높은 용적률은 한옥이 고밀도 도시 공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제일 중요한 현실적 조건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총 공사비가 10억에 육박하는 비싼 집이다. 첫 직장을 다니면서 더 비싸고 훨씬 큰 집의 착공도 경험해 봤지만, 역시 나의 첫 프로젝트 착공은 달랐다. 총 30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단독주택 공사 기간으로 따지면 짧지 않은 시간이고, 그 안에 담긴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허락된 지면이 모자랄 정도다. 한옥이 지어지는 과정은 건축 행위라기보다 공예 작업에 더 가깝다. 벽체 하나, 창호 하나 쉽게 만들어지는 요소가 없다. 뽀얀 외장 마감의 보편성과 합리성을 사랑했던 르 코르뷔지에가 한옥을 보면 뭐라고 평할지 궁금하다. 건축사는 한옥의 공간을 조직하고 전체 볼륨과 태를 결정할 뿐 그다음은 요소별로 다층화되어 있는 목수와 장인들의 몫이다. 그리고 그것은 집을 단단히 조직하고 있는 튼튼한 살이 된다. 
첫 삽을 뜨고, 조경과 가구 공사까지 완전히 완료되고 난 후 사용승인 허가를 접수했다. 보통 건축법에서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잔여공사를 남겨두고 사용승인 허가를 접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첫 프로젝트만큼은 완전한 모습으로 허가를 받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다. 건축주도 흔쾌히 허락했다.(물론 입주일자에 압박은 없었다.)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애써 준 건축사에 대한 마지막 배려라고 생각한다.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학교에서 건축학교육 인증시스템 안에서 학위를 이수했고, 5년이라는 실무 수련 과정에서 한옥 설계 경력도 있었다. 하지만 작품 하나를 설계하고 건축하는 과정을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냈다고 하면 과장이 크다. 운도 좋았다. 건축주가 나에게 연락을 하게 된 사연부터 생각해 보면 ‘운명’이라는 단어 말고는 적절한 표현을 찾기 어렵다. 그렇게 첫 프로젝트가 건축사 커리어 4년 차까지 장식했다. 그래서 나에게 허락된 이번 월간 <건축사>의 한 페이지를 나의 소중한 첫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채우고 싶었다. 

 

 

 

 

글. 양정원 Yang, Jeongwon (주)건축사사무소 오브

 

 

양정원 건축사 · (주)건축사사무소 오브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졸업 후 (주)황두진건축사사무소에서 현대건축과 한옥에 대한 실무 경험을 익혔고, 2017년 개소하여 현재는 전재영 건축사와 함께 (주)건축사사무소 오브를 운영하고 있다. 공동주택, 단독주택, 상가주택 등 다양한 도시의 주거형태, 그리고 지속가능한 건축과 도시공간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며 일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교육청 꿈담건축가, SH청신호건축가 그리고 서울시와 양주시에서 공공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bomarch.k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