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불이(不二) 2023.6

2023. 6. 23. 11:47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Non duality

 

 

<인문 아카이브 양림(養林)> 전경 © 황진수

 

최근 청주의 ‘스페이스 몸 미술관’에서 꽤 알려진 세 여성의 작품들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있었다. 그 미술관은 그 근처 청주 국립현대미술관의 개방수장고처럼 일반적으로 잘 정돈된 공간과는 전혀 다르게 새로 우뚝 선 아파트 단지의 한 가운데에 고립된 외로운 섬처럼 자리하고, 우리들의 구질구질한 시간의 옛 흔적들을 간직한 채 남아있는 아주 평범치 않은 마지막 공간인 듯하였다. 그래서 미술작품 자체보다 아파트 건물 주변과의 새로운 관계에서 작품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을 하기에 충분했다. 그곳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쉽게 목격되는 정신없는 개발의 현장, 즉 자본에 의해 동네가 전폭적으로 뒤바뀌면서 사라져가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에서는 작품들이 어떻게 보일까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매우 흥미로운 곳이기도 했다. 그날 저녁 전시오프닝 공연의 즉흥연주와 퍼포먼스로 놓칠 수도 있었던 그곳의 구석구석을 함께 읽으면서, 그런 공간의 절박한 고민을 즐기게 되었다. 한편, 다음날 아침 일찍 지인의 소개로 근처 주봉 저수지 옆에 ‘인문 아카이브 양림’의 이름으로 새로 높게 지은 한옥 건물을 방문했고, 그 건물과 함께 펼쳐지는 나지막한 동네 풍경과 맑은 햇살, 그리고 방죽에 연출되는 연줄기의 미세한 음영 공간 등으로 그 전날의 고민을 씻을 수 있었다. 이는 전날 체험의 반전이기도 했다.

그곳은 진입부터 ‘연방죽’ 주변의 풍경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 저수지 옆에 인접한 3층 높이의 크지 않은 평범한 옛날 목조 전망대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 건물 안은 ‘인문 아카이브 양림’으로, 건물주가 기증한 장서로 우리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것은 전남 담양 가사문학의 상징인 소쇄원과 식영정 주변의 이름만 있는 관광지 장서각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배우기 위한 우리들의 오늘날 문자와 시각 정보들이 구성된 30,000여 권의 장서로 지하에서부터 1~2층에 걸쳐 여기저기 편안하게 정돈된 모습이었다. 이는 여타의 북 카페 같은 배경처리가 아니라 실제로 찾아 읽을 수 있는 높이와 열려있는 도서관의 넉넉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었다. 

도서관의 역할에서 공공의 공간으로 많은 사람들의 유익한 활용과 여유를 생각해 볼 때, 건물 내부의 대부분을 사설 도서관으로 담은 것은 신의 한 수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여러 시도들은 이 건물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확장시키고 있었다. 인간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진입공간의 시작에서, 또 진입 콘크리트 벽감실에 놓여있는 궁궐추녀마루의 데페이즈망한 잡상에서, 지하 출입문이 열릴 때 ‘후마니타스’ 카페 앞으로 펼쳐지는 연방죽의 풍경에서… 그리고 각층 사방마다 펼쳐지는 난간으로 주변과의 관계와 오랜 풍경, 또 그 의미 등을 담을 수 있는 섬세한 배려들은 목조 외부에서 나무가 주는 따뜻함을 내부 곳곳 노출 콘크리트와 콘크리트 블록 사이에 끼워 넣으며 그 연속적인 감성을 계속 이어주고 있었다. 

특히 이 건물의 상징으로 지하중정에 있는 유리가 덮인 주산 조형물은 안과 밖의 설정에서 인간과 자연과의 필연적 친화관계를 잘 설정하고 있는 듯했다. 결정적으로 건물과 마당, 연방죽과 주변 나무, 그리고 동네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건물공간들의 배치와 크기, 그리고 매체의 선택은 오만하지 않고 섬세하게 배려하는 닫힌 듯 열려있는, 자연스럽게 인간다움을 지향하는 모습으로 읽혔다. 이웃과 주변을 열린 공간으로 항상 바라보면서 단계적으로 주변과 화해하려는 배려와 시도들이 여기저기 목격되면서 건축사, 시공, 장인, 발주자와 관계하였던 모든 분들의 섬세한 노력과 넉넉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들이 사는 도시 풍경은 넉넉하고 풍요로운 주변의 산과 강, 하늘과 평야, 수목과 잡초 등이 높은 벽과 건물들로 가려지고 애써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고 있다. 심지어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는 개구리의 녹음 소리로 장소를 착각하게까지 한다. 건물들은 크게 단지화되고, 과거의 흔적과 시간을 다른 것으로 덮어버리면서 안과 밖을 나누고, 주변의 작고 힘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우리 삶과 눈 밖으로 사라져가는 실정이다. 우리는 스스로 그런 설정을 반복하면서 자연과 주변 인간들의 섬세한 몸짓과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설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의 생성과 소멸에서 목격되는 다양함, 풍부함, 섬세함, 강인함 등을 놓치고 있는 실정이다.

문득 얼마 전 인터넷 자료에 올라온 이곳 청주에서 탄생한 직지심경(直指心經)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사리불이(事理不二), 정난불이(靜亂不二), 선악불이(善惡不二), 색공불이(色空不二), 생사불이(生死不二)….” 결국 안과 밖, 미와 추, 기쁨과 슬픔, 부와 빈, 채움과 비움 등도 모든 것은 둘이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스페이스 몸 미술관’의 황당하면서 솔직하고 삭막한 풍경 안과 밖에서 자본에 대한 거친 저항의 몸부림과 소멸의 인내함 등을 통한 화해의 시도를 읽을 수 있었다면, 이곳 ‘인문 아카이브 양림’에서는 이웃과 자연을 담으면서 안팎을 열고자 하는 섬세한 시도에서 부드럽고 설득력 있는 중도(中道)의 화해를 엿볼 수 있었다. 

그날 오후 ‘스페이스 몸 미술관’의 안팎을 열면서 그 공간과 화해를 찾고자 작품을 펼쳐놓은 작가 외할머니에게 어린 손주들이 찾아왔다. 아이들은 정리 정돈되지 않고 불안하게 사라져가는 공간에서 주변의 석수와 주춧돌, 잡풀과 나뭇가지, 작은 돌멩이와 지하수 등으로도 안팎을 구분치 않고 자기들의 원초적인 놀이를 오랜 시간 즐기고 있었다. 이런 시도들이 우리의 어느 곳에서도 자꾸 이어질 때 우리들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다운 사람을 기르는 장소로 양림(養林)을 다시 생각해 본다.

 

 

 

 

글. 박정환 Park, Jungwhan 조각가

 

 

박정환 조각가

 

1956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교 조소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전 광주교육대학교 교수, 한국미술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개인전(8회)과 단체전 등 다수의 전시회를 가진 바 있으며, 2편의 저서를 집필했다. 또한 김수근 문화상(1994)과 버몬트 스튜디오 센터 프리맨휄로우쉽(1995)을 수상했다.

jwpark296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