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1. 13:35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Continuity of architecture
첫 직장
처음 맡은 프로젝트는 단독주택이었다. 내 의지대로 진행하기보다 완공된 작품들과 제본된 도면집을 살펴보며 회사 작업 방식과 분위기를 파악하고자 했다. 프로젝트 수가 많지 않지만 작업의 과정과 완성도가 높았다. 연도별로 잘 정리된 컴퓨터 폴더에서 단독주택을 발견, 프로젝트 이름은 ‘조각이 있는 집’이다. 조형미가 넘쳐 보이는 우아한 2층 규모의 건물 사진을 보고 “와, 이 집은 미술관 같이 생겼네” 하고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으니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던 대표님이 클라이언트가 조각가 부부라고 대답해 주셨다. 경상도 특유의 사투리 억양이 강했는지, 신입이라서 잘 대해 주려는 것인지 내가 하는 혼잣말에 곧잘 답이 들려왔다. ‘조각이 있는 집’은 내 프로젝트의 롤 모델이 되었고 직접 방문할 기회도 있었다. 근사했다. 처음으로 맡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서 많이 배우고 성장해 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조각이 있는 집은 보기에도 아름다움이 넘쳐난다. 집안 가득히 조각 작품을 담고 있는 또 하나의 조각이다. 전체적으로 작가의 작품이 주요 개념으로 형상화 됐다. 틈새마다 작품을 배치하는 공간이 있어 집 자체가 하나의 작은 갤러리다. 각 실에서는 북한산 전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전경에 따라 적절한 높낮이로 실내 공간을 배치했기 때문에 얻어진 조망권이다.’ (2002.06.14. 한국경제, ‘명품주택 종로구 평창동 조각이 있는 집’ 발췌)
- ‘(전략) 이 집은 앞으로 분명히 변화할 것이다. 많은 가능성 중에 사설 전시관이 될 가능성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으며 그러한 변화에 쉽게 적응이 되도록 고려되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1999년 5월호, 『이상건축』, ‘글 설계자’ 발췌)
개소
입사한 지 18년 만에 개소를 하게 되었다. 적지 않은 기간이다. 오랜 실무 경험을 통해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높이고 좋은 건축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였다. 상대적으로 기성 건축사보다 기회가 적은 신진은 신축을 할 수 없는 각각의 조건을 갖고 있는 건물에 관한 프로젝트를 접하기 쉽다. 그중 상당 부분은 계약 전에 상세한 법규검토와 인허가 가능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개소 후 지인으로부터 여러 차례 인테리어 관련 일을 소개받았다. 사전검토 작업에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였지만, 건축 행위가 불가능하거나 혹은 비용이 과도하여 진행되지 않기도 했다. 리모델링 일이 신축보다 더 어려운 것이 현실이지만, 꾸준히 해내다 보면 새로운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언젠가 작고 큰 경험으로 축적된 건축을 통해 나에게 어떠한 건축의 지향점이 있었는지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그때까지는 우직하게 프로젝트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지속 가능한 집
얼마 전 ‘조각이 있는 집’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20년 만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멋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지붕, 담장, 마당, 마루, 서재, 다락 그리고 곳곳에 놓인 작가의 작품들이 지난 시간을 품고 있는 듯했다. 다양한 레벨의 여러 공간을 잇는 계단이야말로 이 집의 매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예술가 부부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건축주 자녀는 이제 집이 전시관의 용도로 사용되기를 원한다. 작가가 축적해 온 작품을 더 많은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의 삶과 기억이 담겨있는 곳에서 작품 얘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다. 추천으로 ‘조각이 있는 집’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와, 이 집은 미술관같이 생겼네”라고 감동했던 첫 프로젝트의 롤 모델인 단독주택을 정말로 미술관으로 만들 수 있게 된 것이 신진 건축사인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큰 영광이다. 개소를 하고 응원과 격려를 많이 받았다. 첫 사무소의 대표님은 소규모 건축사사무소가 고생을 하더라도 그 보람만큼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일러주었다. 오래전 교수로 임용되어 건축사사무소를 폐업한 것에 대해 건축사 선배로서 늘 미안해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내가 맡아주어 다행이라고 했다. 건축주도 이 집을 잘 알고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나에게 기회를 주는 것을 반가이 받아들이는 듯하다. 오래전 설계자가 의도한 대로 이 집이 전시관이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계획했기에 가능한 일인 것일까. 한 건축사의 시대를 읽는 혜안이 존경스럽다. 그리고 건축의 가치를 살려 활용하고자 하는 건축주의 의지에도 감사한다.
건물도 세대가 변하면 가치가 변한다. 쓰임의 변화는 그 지역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이 대지 안에서 주택으로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으로 확장된다. 공간을 향유하는 방식에 따라 공간이 변할 수 있을 때 지속 가능한 집이 될 수 있다. 리모델링은 공간을 깊게 들여다보게 된다. 애초에 신축할 때보다 건축을 대하는 자세가 더 신중하다. 이제 건축주의 마음을 잘 읽기 위해 노력하고 세월의 흔적이 담긴 공간을 미술관으로 잘 만들어 내기 위해 애써야 할 시점이다. 작은 작업실 규모의 건축사사무소가 그렇듯 어떤 건축의 방향성을 내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작업을 지속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만큼 기회를 얻기가 어렵고 주어진 기회를 지켜내는 것 또한 간절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하나 주어진 작업을 실제의 완성도 높은 건축물로 마무리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는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글. 이응금 Lee, Eungkeum 이응금건축사사무소
이응금 건축사 · 이응금건축사사무소
15년 실무를 하고 개소한 지 2년 차, 기회가 닿는 일은 가리지 않고 하고 있다. 이름을 건다는 것은 끝없이 애쓰고 무릅쓰는 일을 감내하겠다는 스스로의 당당함이다. 일상과 가까운 건축에 관심이 있고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신진 건축사로서 노력하고 있다.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국립금오공과대학교 건축과를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건축역사연구실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 서초구에서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lee0107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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