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대학교_제주대학 옛 본관 가치와회복의 의미 2023.8

2023. 8. 18. 17:19아티클 | Article/특집 | Special

The value of the old main building of Jeju University and the implication of its recovery

 

 

 

1. 들어가며


필자가 김중업 선생을 알게 된 것은 1980년대 초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면서였다. 당시 한국 건축계를 대표하는 원로 건축사는 김중업 선생과 김수근 선생이었다. 이들 두 분의 건축작품을 찾아다니며, 심오한 건축공간을 어설프게나마 체험해 보려 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도 몇 번 제주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고 이러한 인연 때문인지 제주대학에 교편을 잡으며 생활을 하게 됐다. 제주에 생활하면서도 제주대학 옛 본관이 가지는 건축사적 의미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제주도를 방문하는 타 지역 대학 건축학과 학생들과 교수, 그리고 배낭여행의 젊은 건축 지망생들이 수없이 제주대학 옛 본관을 찾아 왔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만큼 제주대 옛 본관은 한국 근대건축을 대표하는 걸작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제주대학 옛 본관은 1995년 8월 5일에 슬그머니 철거되어 버렸고, 이 사실을 모른 채 찾아오는 사람들이 실망감을 느끼고 돌아가는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기만 하다. 이제는 과거 찍어둔 사진 몇 장만으로 기억될 수 있는 과거 속의 건축물, 우리들의 마음속에만 자리 잡은 채, 잊혀져 가는 건축물이었던 김중업 선생의 제주대학 옛 본관을 소환하여 원상태로의 회복에 대한 논의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이미 철거되어 사라진 건축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측면에서 회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본고에서는 회복을 논하는 과정에서 제주대학 옛 본관이 어떻게 철거되었는지 정리하고 제주대학 옛 본관의 가치와 회복의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2. 제주대학 옛 본관 탄생 배경
제주대학교는 1952년 6월 도립 제주초급학교로 출발했다. 그때의 캠퍼스가 제주대학 옛 본관이 건립된 용담캠퍼스였다. 이후 1955년 4월 도립 제주대학으로 승격되었고, 1962년 3월에 숙원사업이었던 국립대학으로 승격하게 됐다. 국립 제주대학의 초대 학장으로 문종철 선생이 발령받으셨다. 이때 제시된 대학 운영방안의 하나로 이농학부의 서귀포 이전을 세웠으나 용담캠퍼스의 연구환경이 개선되지 않아 정부에 건의하여 본관 건축을 추진하게 됐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하여 문종철 학장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김중업 선생께 본관 설계를 의뢰하게 되어 제주대학 옛 본관이 탄생하게 됐다. 좋은 건축물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역시 건축에 대한 이해가 깊은 건축주, 건축주의 의도를 잘 파악하는 건축사의 만남이 중요하다.

김중업 선생의 자서전 성격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열화당, 1984)』에서 문학장과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문종철 국립 제주대학 초대학장

“……나를 아껴 주셨던 독법 학자인 문종철 선생이 제주도에 제주대학교 본관 설계를 위하여 불러 주셨다. 한라산 줄기를 타고 제주 앞 바다에 이르는 용두암, 그 옆에 이상에 불타는 젊은 학도들을 위하여 전당을 꾸며 보자는 이야기였다. 건축이란 클라이언트와 건축사가 동심 일체 될 때 비로소 쾌심의 작품이 탄생된다….”


두 분 사이의 관계를 깊이 파악할 수는 없으나 단순한 건축주와 건축사의 만남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그 이상의 관계였던 것 같다. 이러한 관계가 한국 건축사에 남는 건축작품을 탄생시킨 또 하나의 배경이 되었으리라.

원래 제주대학 옛 본관 용도는 1층은 학생회관, 2층은 도서관, 3층은 행정사무실과 교수연구실, 4층은 민속박물관으로 사용할 계획으로 1964년 10월 15일에 착공되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으나, 예산의 뒷받침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옛 본관은 완공을 하지 못한 채 일부 공사만을 끝낸 후 1967년 3월 15일 본부와 도서관, 학과사무실이 들어섰다. 착공으로부터 6년이 지난 1970년에야 완공하게 됐는데 공사 중에 설계가 변경되어 1층의 학생회관은 완전 백지화되는1) 등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탄생하게 됐다.


 
3. 제주대학 옛 본관의 가치와 변형과정


3-1. 건축적 의미
김중업 선생의 자서전적인 작품집인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의 표지에는 프랑스 대사관과 제주대학 옛 본관의 사진이 표지 앞과 뒤로 나란히 게재되어 있다. 그만큼 김중업 선생의 혼과 열정이 담긴 대표적인 작품임을 짐작게 하고, 이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 건축적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제주대학 옛 본관은 철저하게 르 코르뷔지에의 규칙과 방법이 적용되면서도 지역적인 조건이 배려된 공간성과 장소성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입면과 평면의 공간구성에 있어서 르 코르뷔지에의 근대건축 5원칙이 적절히 적용됐다. 각 층의 평면은 기둥에서 벽체가 분리됨으로써 자유로운 평면을 구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입면 형식을 취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부분적으로 분절된 형태이지만 3층의 연속적인 창, 기둥과 분리된 2, 3층의 외부 벽체에 의한 자유로운 입면, 우측면의 3층 돌출부분을 지지하는 외부기둥은 필로티의 기능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옥상의 노천스탠드는 옥상정원의 변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철저한 르 코르뷔지에의 기능주의적 규칙과 방법을 적용하면서도 지역 풍토와 주변경관을 배려하고 장소성과 공간성을 강조하듯 조형적 이미지를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다. 1층과 2층 부분이 기둥과 벽체가 분리되고 단순한 제주대학성을 보완함으로써 교수연구실로 사용하였던 3층 부분의 매스는 마치 날아갈 듯한 항공기의 이미지이거나 혹은 두둥실 떠있는 듯한 선박의 형상을 하고 있다. 실제로 제주대학 옛 본관의 대지는 바다에 가까운 들판이었고, 한때는 일본군의 군용비행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옛 본관은 멀리서 보면 하늘로 웅비할 듯한 모습이다. 아마도 부지가 바다에 접해 있고 제주도가 섬이라는 장소의 이미지를 의식한 것이리라. 또한, 조개껍질을 펼쳐 놓은 듯한 현관, 2층과 3층으로 연결되는 후면 경사로의 기하학적 곡선은 해초류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며 바다가 가지는 생명력이나 제주도가 가지는 역동적 이미지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적 정서에 맞게 결합시킨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적 이념이 담긴 건축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후면
후면부분의 경사로
후면부분의 경사로(3층 진입부분)
우측면의 경사로

   
3-2. 공간변형과 철거
1980년 2월 현재의 아라캠퍼스로 제주대학이 이전하면서 제주대학 옛 본관은 조금씩 공간 변형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됐다. 물론 당시 제주도의 건축 시공기술에서 볼 때 곡선의 형태가 많은 제주대학 옛 본관 완공 그 자체가 놀라운 것이니 당연히 건축물에 하자가 많았을 것이고 게다가 바다 모래의 사용, 준공 후 내부공간의 잦은 변경 등 건축물 관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등이 건축물에 심한 균열이 발생하게 한 주요 원인이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캠퍼스 이전 이후 용도를 변경하고 적절한 관리를 하지 못한 것도 제주대학 옛 본관이 조금씩 변형되고 구조적 훼손으로 이어지면서 안전 문제와 철거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1980년 이후 공간변형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1980년 2월∼1984년 2월 : 아라캠퍼스 이전 후 야간강좌부 사용
○ 1984년 2월∼1992년 9월 : 제주대 사대부고 사용
○ 1990년 5월 : 누수현상 재발생
○ 1990년 9월 14일 : 옥상방수공사 시공 중 RC조 슬라브에 구멍발생. 옥상 4층 건물하부, 3개 보 단부 처짐현상. 철근부식 및 콘크리트 강도 저하, 균열 등 노후로 인한 붕괴 위험성 제기
○ 1992년 11월 25일 : 한국건축가협회 이사회에서 건축역사분과위원회와 건축구조분과위원회 공동으로 토론 주제로 이 문제를 다루기로 함.
○ 1992년 11월 28일 : 건축역사분과위원회에서 김수현(제주지회장), 김석윤 회원 등 제주도지회 회원으로부터 제주대학 옛 본관 현황 설명을 청취함.
   - 원칙적으로 제주대학 옛본관을 보존하기로 하고 유적지, 문화재화 방안을 검토함.
   - 제주대학 옛본관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 보존기금의 마련방안 등 집중 홍보키로 함
   - 제주대학과는 보수, 보존을 위한 국고지원의 증액 배정, 사(私)기금 마련 방안 등 타당성을 검토키로 함.
○ 1992년 12월 15일 : 김중업 선생 제자인 이대형(주.건원국제), 권희영(권희영건축), 김동길(미한건설) 3인이 제주도를 방문하여 제주대 총장 김형욱, 홍태휴(제주사대부고 교장), 전신남(제민일보 기자)과 함께 기초조사와 논의를 함.
○ 1993년 2월 5일 : 제주하니 관광호텔에서 이상해(성균관대) 교수의 사회로 주제발표1(김중업의 건축과 인생)은 안병의(김중업건축사사무소), 주제발표2(희망과 좌절이 합력된 1960년대 한국의 건축)는 김정동(목원대) 교수, 주제발표3(제주대학 옛본관의 훼손조사 및 대책보고)은 김종수(C·S구조연구소) 소장, 주제발표4(제주대학 옛본관 건축물의 문화적 의의)는 신상범(예총 제주지회장) 발표. 이어진 토론회에는 김희춘, 엄덕문, 이광노, 홍태휴, 오성찬, 양종해, 강병기, 김홍식, 윤도근, 유정철, 김영섭, 이청규, 안병의 등이 참여해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짐.
○ 1993년 2월 : 한겨례 신문, 한국건축가협회 잡지 <건축가> 등 언론매체에서 보존 필요성 제기
○ 1994년 12월 : 대한건축학회에서 구조안전진단보고서 제출. 3, 4층의 허용범위를 넘는 균열과 4층 바닥보의 전단파괴, 보수보강 시 기초지반의 내력문제, 구조부재의 중성화 등의 이유로 철거 후 재건축을 제시함.
○ 1995년 8월 5일 : 제주대학 옛 본관 철거

2층 바닥 균열부분과 1층 기둥 피복탈락 부분

 

우리들의 무관심과 무지로 인하여 제주대학 옛 본관이 심하게 균열되고 보수되지 않은 채 마치 난파선의 모습으로 표류하다가 1992년 9월에 급기야 구조적으로 문제가 제기되어 제주대학 옛 본관을 둘러싸고 철거와 보존 의견이 활발히 논의되면서 한국 건축계의 중요한 이슈가 되었고 최초의 근대건축물의 보존운동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교육부, 제주도, 제주대학, 건축 3단체의 협력과 지원, 그리고 구체적인 활동 주체로서의 옛 본관 살리기 위원회 구성이 제시되는 등 제주대학 옛 본관은 원상복구와 함께 보존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이 지속되지 못했고,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난파선과 같이 초라하게 변한 건물의 가치를 알지 못한 채 원형보존조차도 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다 1995년 8월 5일에 철거되어 버렸다.

4. 맺으며 : 회복을 위한 여정의 시작
김중업 선생은 떠나고 대표작인 제주대학 옛 본관도 철거되었지만, 여전히 김중업 선생의 자리는 크게 남아 있는 가운데, 우리들 기억 속에는 날아갈 듯, 떠있는 듯한 낭만적인 서정시의 제주대학 옛 본관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다.

2022년은 제주대학이 개교 70주년을 맞은 해이다. 제주대학 옛 본관은 제주대가 국립대학으로 승격되면서 첫 시설 확충사업으로 지어져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한 제주대학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건축적으로는 문화재로서의 가치까지 거론되는 우리 시대 거장 김중업의 역작이기도 하다. 게다가 김중업 선생의 제주도에 대한 관심과 애착은 건축사의 역할을 넘는 것이었기에 제주대학 옛 본관의 빈자리가 더욱 커져 보이기만 하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제주대학 옛 본관의 회복 논의는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단순한 건축물의 회복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제주대학교의 장기적인 발전의 큰 틀 속에서 제주대학 옛 본관 회복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치열한 논의 토대 위에 어느 장소에, 어떠한 방식으로 회복시킬 것이며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회복의 당위성과 장소성, 그리고 방식과 시점(時點)에 보다 오랜 시간을 두고 진지하게 논의해 가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김중업(1984),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 열화당
김태일(2018), 제주근대건축산책, 루아크
김태일(2021), 원도심으로 떠나는 건축기행, 도서출판 각
격월간PA(Pro Architect) 김중업 편, 1997.01, 건축세계사
제주대학교 60년사 편찬위원회(2012), 제주대학교 60년사

 

 

 

 

 

글. 김태일 Kim, Taeil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김태일  교수·국립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근대문화재 분과)으로 활동하며 저출산고령사회 대응을 위한 정주환경정비문제, 도시경관문제와 근대건축보존과 활용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의 폭을 넓히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고령화사회의 주거공간학』을 비롯해 『제주건축의 맥』, 『제주도시건축을 이야기하다』, 『제주 속 건축』, 『제주근대건축산책』 등이 있다.

kimtaeil@jeju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