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1. 30. 09:15ㆍ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I’m not a super insider but a nuclear individual
지금은 출산을 장려하고 다둥이를 둔 집을 부러워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형제가 많은 것이 부끄러운 일이었다. 요즘의 저출산 추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산아 제한 정책이 정부 주도로 펼쳐졌다. 아이를 적게 낳자는 정책 홍보를 위한 공익광고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1960년대, 가족계획협회는 지방에 지부를 설치하고 세 명의 자녀를 세 살 터울로 35세까지만 낳고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말자는 3•3•35운동을 전개했다. 이 때의 표어가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서 가족계획의 표어는 3•3•35에서 ‘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바뀌었다. 불임을 위한 정관수술을 받으면 수술비 면제는 물론이고 예비군 훈련에서 빼주거나 청약 통장을 지급하기도 했다. 심지어 아파트 입주 추첨의 우선권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가족계획의 표어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1980년대에는 급기야 ‘둘도 많다’가 되었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헤드라인이 등장한 때도 80년대이다.
이런 호들갑이 무색하게 현재 우리나라는 합계출산율이 0.78명에 불과한 ‘인구 위기’ 국가다. 1960년대 초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6.3명 정도였으니 8분의 1로 줄어든 셈이다. 인구증가 억제책을 시작한 지 40년 만에 아이를 더 낳으라는 완전히 반대되는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2005년 제정되었고, 같은 해에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발족하여 다양한 출산 장려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바뀐 정책에 따라 광고 캠페인의 내용도 달라져서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아기들의 웃음소리 대한민국 희망소리’ 등의 표어가 등장했다.
어쩌다 보니 나는 우리나라의 가족계획 광고의 변천사를 생생하게 체험하며 살았다. 2남 2녀나 되는 식구들 틈에서 자랐는데 어릴 때는 부끄러운(?) 숫자의 형제자매였다. 올해 아흔이 된 우리 엄마 말씀이 막내는 가질 생각이 없었는데 생겨버려서 낳으셨단다. 하지만 엄마에게 다정다감한 막내가 없었으면 많이 아쉬웠을 뻔했다. 딱히 가족계획을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결혼하고 1년쯤 뒤에는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했다. 그때만 해도 자녀를 가지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었다. 주변 친구들 대부분이 두 자녀를 두었고 나도 심각한 고민 없이 둘째를 가졌다.
내 아이들이 어느새 내가 엄마가 되었던 때보다 더 나이를 먹었다. 둘 중 하나는 비혼주의이고 하나는 결혼도 하기 전에 무자녀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남의 자식 청첩장을 받으면 가끔 부럽기도 하지만 내 아이들에게 결혼이나 출산을 권유할 생각은 전혀 없다. 어디까지나 본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은 각자 나가 혼자만의 가구를 꾸리고 살고 있다. 다가오는 2024년 트렌드의 핵심 키워드로 뜨고 있는 ‘핵개인’의 시대를 이미 몸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핵개인’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데이터분석가 송길영은, 본인이 의사결정의 주체성을 갖고 상호의존성을 탈피해 혼자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핵개인이라고 설명한다. 같이 사는 가족구성원의 도움 없이도 불편함 없이 혼자 살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산업의 변화가 뒷받침하기에 핵개인으로 사는 일이 가능해졌다. 가족과 같이 살더라도 내 삶은 내가 결정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실천한다면 핵개인이다. 핵개인화는 젊은 세대만의 현상은 아니다. ‘이렇게 해야 한다’ 또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는 사회나 가족의 요구를 거부하고 나의 삶을 내가 원하는대로 결정하고 살겠다는 중년 또한 늘어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는 아이를 낳지 말라거나 더 낳으라는 정책 광고가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정책 당국자가 할 일은 출산 장려 광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있든 없든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만약 다시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나는 아이가 있는 삶을 고를 수 있을까? 아이가 없었다면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두어 명 더 낳았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기도 하다. 아이가 있지만 품 안에는 없는 나는 동시대인의 역할에 충실하게도 핵개인으로 살고 있다.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시리즈(2019)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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