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30. 09:25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Inflection point
요즘은 지난 흔적을 반추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아마 타고난 성향 탓일지도 모른다. 한때 명리(命理)와 자미두수(紫微斗數)에 관심을 두고 뭇 사물의 본성을 헤아려보다가, 문득 내 사주(四柱)를 짚어보니 그랬다.
명리로 풀어보면, 10개의 천간(天干) 중에서 “단단히 벼른 쇠붙이”로 상징되는 ‘신(辛)’이 일간(日干)이었고, 자미두수에서는 “봉흉화길(逢凶化吉)”의 운세로 대표되는, ‘천량(天梁)’이라는 별(星)이 명궁(命宮)에 자리 잡고 있었다. 또 그게 ‘노인의 성향’을 띤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당시, 한참 젊은 시절에 노인의 기질이라니? 다소 의아했지만, 돌이켜보니 대충 그런 본성(本性)대로 취사 선택을 하며 살았다는 걸,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기실 따지고 보면, 우리 인생은 크든 작든 시시각각 ‘선택의 순간’들이 원소로 적당히 나열된, 하나의 ‘집합(集合)’일지도 모른다. 분명 어제의 선택으로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있고 또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내일의 좌표를 설정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 선택의 순간에는 항시 ‘타고난 성향(性向)’과 그 시점에서의 ‘자유의지(自由意志)’가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다고 체념하거나 긴장할 것만은 아니다. 우리 인생이 그 짧은 찰나의 ‘순간 집합체임’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많은, ‘가슴을 뛰게 하는’ 사건과 직면하면서 이런저런 희로애락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또 그게 때로는 우리 인생의 지침을 돌려놓는, ‘결정적 변곡점(變曲點)’으로 작동되기도 한다.
건축설계 업무에 침잠(沈潛)한 지 어느덧 30여 년, 돌이켜보니 나의 변곡점도 서너 차례 있었던 것 같다. 그중 하나가 ‘베니스 헌장(The Venice Charter, 1964)’과의 우연한 만남이었다. 아니 짧은 어느 한 문장과의 ‘마주침’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갑자기 눈이 멈춰졌다. 멍해졌다. 그래! 물아일체(物我一體), 아마 그 체험이었으리라.
“추정이 시작되는 순간, 복원을 멈춰라. 그리고 불가피하다면, 기록으로 남겨라.”
“It must stop at the point where conjecture begins, and in this case moreover any extra work which is indispensable must be distinct from the architectural composition and bear a contemporary stamp.”
“글쎄, 여기에 꽂혔다고?”
“여기 어디에?”
“아니, 왜?”
반문(反問)과 의문이 꼬리를 잇는다. 지금 보면 할 말이 없다.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때 그 자리, 그 순간에는 분명 그랬다. 그 후로 나는 국가유산 ‘실측설계’ 건축사가 되었다. 그걸 계기로 사반세기(四半世紀) 동안 몰두했던 일반건축 설계업무의 비중을 점차 줄여나가면서, 이른바 문화유산 ‘실측설계’ 업무영역을 조금씩 더 확장해나가기 시작하였다.
무려 1,400년 전의 축조(築造) 사실(史實)이 확인된, 익산 ‘왕궁리 유적지’에 발굴조사를 지속하기 위한 ‘발굴조사 연구동’이라는 현대식 건축물을 설계하는 작업에서는, 적잖은 딜레마에 빠지기도 하였다. 지난 역사의 흔적에 비가역적 가해(加害)를 한다는 자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제도적으로 ‘적합’하다고 할지라도, 이미 하나의 사실(史實)로서 완결된 ‘왕궁터’에 1,400년 후의 후대인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만 한다는 것은,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경험이었다.
그러나 사형집행이 확정된 어느 사형수의 암세포를 제거해야만 하는 의료인 입장으로, 또 한편 그 사형수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 사형을 집행해야만 하는 교도관의 심정으로, 마침내 메스(scalpel)를 잡고 오랏줄을 당겼다.
일반건축 설계업무의 전범(典範)대로, 지질조사를 한답시고 유적지(遺蹟地)의 일부 지표면을 뚫어서 지내력(地耐力)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것은 물론, 건축물의 기초가 견실하게 형성될 수 있도록 굴착 깊이와 너비를 예리하게 기입(記入)한 설계도면을 하나둘 작성해나갔다.
나의 이러한 갈등과 번민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침내 1,400년 전 백제의 왕궁터에 그 현대식 2층 건축물이 보란 듯이 들어섰다. 지속적인 발굴조사를 진행해야 하는 연구원들은 편리한 현대식 업무공간에 만족하는 것 같았고, 아울러 유물(遺物)을 보관하는 창고와 최신 유물처리시설의 완비에 탄성을 질렀다.
다행히 요청받은 여러 필수적 공간을 중첩하고 집약하는 방식으로 압축한 효과였던지 건축물은 비교적 과장되지 않았고, 또 형태도 다소 덜 주목받는(?) 이미지로 드러나게 되었다. 그래도 이 유적지에서 발굴조사가 종료되는 날, 정말 그 어느 날이 오면, 포크레인(Poclain)으로 크게 한 삽 ‘푹’ 떠서 저 멀리 던져버리고 싶었다.
그러다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앞마당에 버젓이 서 있는 ‘유리 피라미드’에 주목하게 되었고, 런던과 로마의 유적지 관리실태를 돌아보면서 차츰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어차피 유산(遺産)이란 것 자체가 이미 지난 과거의 흔적이 분명한데도, 현재 우리가 그 유산(heritage)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지금’, ‘오늘’, ‘현재’라는 바로 이 관점 때문이 아니던가?
이른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역설했던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의 주장에도 새삼 주목하게 되었다. ‘과거의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현실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에 의해서 재구성된다는 ‘현재의 역사’라는 관점은, 사실 듣고 싶은 구원의 메시지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쓸모없는 것(無用)’이 ‘쓸모있는 것’을, 정말 ‘쓸모 있게’ 만든다는 장자(莊子)의 일갈(一喝)이 사납게 귓전을 때렸다. 평소 자주 논쟁을 벌이던 막역한 친구 ‘혜시(惠施)’에게 장자가 점잔을 빼며 한 방 먹인 그 핵 펀치가 2,500년 후의 나를 다시 후려친 것이다.
“쓸모없음을 알아야 비로소 쓸모에 관해 말할 수 있다네. 세상이 넓고 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걷는데 실제 쓸모가 있는 것은 ‘발을 디딜 만큼’의 작은 땅만 있으면 된다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발을 디디고 있는 땅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땅을 모조리 파버린다면, 과연 그 밟고 있는 땅이 쓸모가 있겠는가?”
아뿔싸! ‘베니스 헌장’의 어느 한 글귀에서 선명한 변곡점을 경험했던 나는, 그 흔하디흔한 우리 주변의 유적지(遺蹟地)에서 또 하나의 변곡점과 마주쳤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한참 동안 갈팡질팡하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었다. 건축에 입문하지 무려 한 세대의 세월이 지났다고 자주 너스레를 떨면서도 말이다.
아! 그래서 인생은 여전히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인가 보다.
글·사진. 최상철 Choi Sangcheol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최상철 건축사 ·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전북대학교 건축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대표 건축사로 활동하고 있다. 건축설계 작업과정에서 현대건축의 병리현상에 주목하고, 산 따라 물 따라 다니며 체득한 풍수지리 등의 ‘온새미 사상’과 문화재 실측설계 현장에서 마주친 수많은 과거와의 대화를 통하여 우리의 살터를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건축’에 담겨있는 우리들의 생각과 마음을 알기 쉬운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저서로는 『내가 살던 집 그곳에서 만난 사랑』, 『전주한옥마을』 등이 있다.
ybdcs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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