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담론] 디자이닝 디자인 프로세스 2024.5

2024. 5. 31. 11:05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Designing Design Processes

 

 

 

건축설계: 정답이 명확하지 않은 문제의 해결
건축설계는 단순한 공학 기술을 넘어선 예술·관습·문화적 요소가 결합된 복합적인 분야다. 이에 모범 답안이 존재하지 않으며, 각 프로젝트는 설계자, 엔지니어, 건축주, 사용자, 시공자, 그리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이해관계자의 의견과 요구사항을 반영하여 수행된다. 따라서 각각의 건축 프로젝트는 상황에 따른 최적의 대안을 찾아내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이는 창의적인 문제 해결과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필요로 하며, 다양한 관점을 조율하고 통합하는 것이 성공적인 설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건축설계 분야는 전통적인 제조업과는 다르게, 프로토타입을 통한 사전 검증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특성으로 건축사는 설계단계에서 여러 가능한 변수를 고려하여 다양한 대안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이는 건물의 기능성, 안전성, 경제성, 그리고 사회적, 문화적, 미적 가치를 고려하여 주어진 상황에 적합한 설계안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이러한 건축설계의 과정은 크게 ‘참여자의 의견 -> 대안 생성 -> 피드백 -> 시행착오’의 과정으로 요약할 수 있다. 프로젝트 참여자의 의견은 건축사에 의해 디자인 의도로 정리되며 설계 대안으로 구체화된다. 이는 다시 참여자의 피드백을 통하여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며, 이러한 시행착오 과정을 여러 차례 거쳐 비로소 최종안으로 귀결된다.<그림 1>

 

인공지능: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인간지능의 확장
인간지능의 실체를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공지능이 과연 지능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시냅스를 통한 화학물질의 전달이라는 인간지능의 기계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인공지능은 테이터를 분석하고 추론을 만들어 낸다는 측면에서 통계학적 추론의 진화된 형태다.<그림 2> 인류가 활자를 통한 기록을 하게 되면서 이전 세대의 지식이 후대로 전달되는 데이터의 축적, 혹은 집단지성이 발생했고, 이를 다방면으로 활용하여 문제 해결을 위한 추론을 수행하는 인공지능은 인간지능의 확장이라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통계학적 추론과 유사하게 데이터를 분석하고 패턴을 인식하여 추론을 도출하기에, 하나의 정답 혹은 다수의 정답을 찾을 수 있는 다른 공학/산업 분야의 문제 해결뿐 아니라 건축설계와 같이 상황 종속적인 모범 답안을 찾아야 하는 분야에도 유용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초보 건축사가 무수히 많은 대안의 검토를 통하여 찾아낸 최적의 대안이 때로는 숙련된 건축사의 연륜과 경험 그리고 통찰력을 통해 비교적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대안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음에 견줄 수 있겠다.



블랙박스: 설명가능한 인공지능에 대한 필요성
인공지능은 상술하였듯이 인간지능의 기계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이는 다양한 방식의 인공신경망 형태로 구현되며, 공히 다수의 미지수인 계수를 포함하는 여러 개의 레이어를 거쳐 입력데이터를 판독하고 결괏값을 산출한다. 학습이라고 불리는 과정을 거쳐 특정 문제에 대한 입력값과 판독 값의 오차를 줄여나가는 방식으로 미지수인 계수를 결정하고, 이를 통하여 특정 작업에 특화된 모델을 비로소 완성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공지능 모형이 방대할 경우, 예를 들어 입력값으로부터 출력값 사이에 너무 많은 의사결정의 레이어들이 숨어 있는 경우, 사용자는 인공지능 모형의 결정 과정이나 결과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그림 3> 인공지능 모형의 이와 같은 현상을 보통 블랙박스라 부르며, 내부 작동 메커니즘이 복잡하고 해석하기 어려워 사용자가 결과의 근거를 이해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는 최근 거론되는 설명가능한 인공지능에 대한 필요성을 설명해 준다. 설명가능한 인공지능은 인공지능에 의한 결과를 논리적으로 추론하거나, 데이터의 흐름을 쉽게 시각화하는 등의 장치를 통해 연산의 투명성 및 신뢰성을 향상하고자 노력한다. 건축설계에의 적용에서는 방대한 모형을 지양하고 전체 설계 프로세스를 작은 단위로 구분하여 인공지능을 적용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이외에도, 건축설계 프로젝트는 같은 프로그램을 다룬다고 할지라도, 대지의 물리적인 조건, 사회/경제/문화적인 상황에 종속될 수밖에 없기에, 모든 프로젝트를 아우르는 일반적인 설계지능을 위한 학습의 과정이 어려울 수도 있다.

프로젝트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고 참여자들의 피드백을 통한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 건축설계 프로젝트에서는 의사결정과정의 투명성과 신뢰성, 결과의 신속한 조정 및 상황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기에, 인공지능이 모든 건축설계의 과정에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힘들 수도 있다.



규칙기반: 인간지능의 구조화
인공지능이 축적된 데이터를 통한 건축사의 노하우를 활용한다면, 규칙기반은 어떠한 작업을 수행하는 인간의 의식의 흐름, 즉 논리적인 생각의 전개를 활용한다고 할 수 있다. 규칙기반 모형은 인공지능 모형에 비하여 역사가 오래되었으며, 논리적 인과관계가 명확한 특정 작업을 더욱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다.<그림 4>

 

규칙기반 설계는 설계 과정을 여러 개의 논리적인 단위로 나누고, 각 단위를 명확한 규칙들로 정의하며, 이를 컴퓨터 연산 및 알고리즘으로 구현한다. 이 방법은 건축사가 사전에 설정한 명확한 규칙과 기준을 따라 작동하므로, 설계 의도를 정확히 반영한 설계안을 생성할 수 있다. 규칙기반 설계는 미리 설정된 규칙을 따라 작동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창의적이고 창발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칙기반 설계는 법규, 조례와 같은 법적 요구조건을 기반으로 하기에, 법적 규준을 준수하는 대안을 제공하는 데 그 효용성이 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규칙기반 설계가 가지는 또 다른 장점은 빠른 연산과 실시간 결과의 도출이다. 인공지능 기반의 설계와는 다르게 학습의 과정이 필요 없으며, 입력값에 반응하여 가능한 대안들이 실시간으로 시각화되기에, 입력에 대한 결과 도출 과정이 투명하다. 건축사는 실시간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를 모니터링하며 입력값을 수정해 나감으로써 주어진 규칙을 벗어나지 않는 대안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



디자인 프로세스: 공정화된 의식의 흐름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공지능과 규칙기반의 설계는 각각 장단점이 있다. 인공지능은 마치 인류의 건축 지식과 경험이 집대성된 백과사전과 같으며, 규칙기반의 경우는 건축사의 논리적인 생각의 전개 및 이의 구조화를 기술하는 디자인 프로세스의 설명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어떠한 방법을 활용하든, 우리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은 건축설계 과정과 제반 지식의 구조화라고 할 수 있겠다.

건축설계의 과정을 예술적 창조 행위만으로 설명하기에 우리 사회는 이미 급격한 구조화가 진행되었다. 인간의 의식의 흐름은 화학적 전달에 의존하는 연속적 과정이다. 전류를 활용하는 트랜지스터를 통하여 화학적 흐름은 논리적인 연속성을 가지는 물리적 불연속의 집합체로 재구성되었고,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의 과실을 향유하며 살아가고 있다.

건축설계는 때로는 인과관계로만 설명할 수 없는 미틱 컨디션(mythic condition)이 분명 존재한다. 이는 어떠한 두 개의 건축설계도 같을 수 없는 건축설계의 특수성을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건축설계의 디자인 프로세스와 지식을 구조화해야 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이러한 건축사의 디자인에 대한 의지를 보다 강화하기 위함이다. 마치 그리드가 창조적 자유로움을 무작정 제한하기보다, 효율적인 창조를 위한 좋은 도구가 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그림 5>

 

화학적인 디자인 과정을 논리적인 연속성을 가지는 연산의 단위로 구분하고, 이를 인공지능 및 규칙기반의 도구를 활용하여 재정의한다면, 건축사는 주어진 시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해 더 많은 창작의 기회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 6> 이를 위하여 건축사들은 건축사들의 의식의 흐름을 구조화하고, 노하우를 집단지성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디자인 프로세스를 디자인하는 데 동참해야 할 것이다.

 

 

 

 

글. 성우제 Sung, Woojae 충남대학교 건축학과(AIA)

 

 

성우제  교수·충남대학교 건축학과(AIA)

 

성우제 교수는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조교수이자 건축설계 분야 기술 스타트업인 SA:PN:DA의 대표이다. Cornell 대학교에서 건축학 석사를, 연세대학교에서 건축/토목공학 학사를 취득했다. 뉴욕의 Grimshaw, OMA, SHoP Architects 및 서울의 삼우건축에서 실무를 하였으며, 최근 국내 대형설계사, 건설사 및 기관들과 함께 비정형 건축설계 및 건축설계 자동화 연구과제 및 용역을 수행하고 있다.

wooj.sung@c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