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담론] AI 소프트웨어의 등장과 디자인 프로세스의 혼재 2024.5

2024. 5. 31. 11:00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The Emergence of AI Software and Integration into Design Processes

 

 

 

 

이미지 생성형 AI 소프트웨어가 디자인 업계에 서서히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이를 둘러싸고 진정한 창조 행위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으며, 창조행위 자체가 AI에 의해 잠식되지 않을까란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필자는 생성형 AI를 지속적으로 활용해 본 유저(user)의 입장에서, 또한 건축 실무에서 창조적 디자인 프로세스를 반복적으로 경험해 본 입장에서 AI 소프트웨어에 대한 긍정적 가능성을 발견했고, 이 글을 통해 공유하고자 한다.



건축실무에서의 디자인 프로세스의 중요성과 디자인 오피스의 생존전략
건축사사무소들은 각기 나름의 장점과 특화된 개성으로 생존 전략을 취한다. 디자인에 특화되어 다른 사무소들과 차별화 전략을 꾀하는 디자인(Design) 기반의 건축사(Architect)가 있는 반면, 프로젝트 현지 허가 절차 및 다양한 컨설턴트들과 팀업을 꾸리고, 이후에 도면세트의 완성도와 현장 감리 부분에 특화된 AOR(architect of record)의 성격이 강한 건축사사무소 역시 존재한다. 물론 이 두 부분을 모두 추구하는 오피스들 역시 분명 존재한다.

디자인에 특화되어 있고, 본인들의 개성을 살려 차별화 전략을 꾀하는 디자인 오피스에 있어서, 창조적 디자인 프로세스는 그들의 가장 중요한 생존 전략이다. 그들은 대부분의 주요 인력을 디자인의 초반부인 콘셉트 디자인(concept design) 단계에 집중시킨다.

 

창조적 디자인 프로세스의 3가지 단계
미드저니로 생성한 디자인 스터디의 과정. 인풋-베리에이션-셀렉션의 3단계를 묶음으로 활용하면, 건물의 매싱과 파사드 디자인의 두 가지 다른 디자인 과제를 연속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


컴퓨테이션(Computation)의 발전 성향, 
그리고 새롭게 나타난 이미지 생성형 AI 소프트웨어
현재까지 grasshopper를 비롯한 3d script를 활용하는 컴퓨테이션 기술은 초반부 콘셉트 아이디어를 창조해 내는 부분에서는 제한적 사용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여전히 다수의 디자인 오피스에서는 직관적인 스케치와 콘셉트 모형 등을 통하여 초기 공간 콘셉트를 잡아나가는 방향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필자는 일련의 초반부의 창조적 디자인 프로세스에 참여하면서, 직관적인 초반부 콘셉트와 숫자, 정확도를 기반으로 한 컴퓨테이션 기술 사이에서 상당 부분 거리감을 느껴왔었다. grasshopper를 비롯한 일련의 script 기반의 3d 소프트웨어는, 디자인 방향이 정해진 이후에 위력을 발휘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이미지 생성형 AI 소프트웨어는 기존의 컴퓨테이션 툴과 근본적으로 다른 매커니즘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는 흥미롭게도 초반의 콘셉트 디자인 단계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창조적 디자인 프로세스와 생성형 AI 소프트웨어의 구조적 유사성
유럽과 뉴욕에서 실무 경험을 콘셉트 기반의 디자인 오피스에서 주로 경험해 본 결과(건축을 비롯한 음악, 예술, 디자인에서의 창조적 디자인 프로세스에 대해서는 수많은 방법론이 있지만), 필자가 파악한 창조적 디자인 프로세스에서는 어느 정도의 일관된 공통적 논리 구조를 발견할 수 있었고, 다음과 같은 3단계로 요약할 수 있다.

 1. 영감(Inspiration)을 리서치하고 수집하는 단계
 2. 수집한 자료로부터 선택적 취합 및 변형(mutation / variation) 옵션을 만드는 단계
 3. 2단계의 옵션 중에 가장 최적의 옵션을 결정하고 다듬는(selection / refinement) 단계

콘셉트를 강조하는 디자인 오피스에서는 1단계를 위한 전문 리서치 부서를 설립할 정도로 자신들만의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는데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또한 2단계의 뮤테이션(mutation)과 베리에이션(variation)을 실험하는 역할은 디자인 오피스의 많은 주니어 인력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최종 선택을 해야 하는 디자인 디렉터는 3번의 역할에 가장 많은 능력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미지 생성형 AI 프로그램(필자는 midjourney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midjourney의 인터페이스에 초점을 맞춰서 논지를 이어가고자 한다.)을 사용하면서 놀라운 점은, AI 프로그램의 논리가 앞에서 언급한 창조적 디자인 프로세스의 3단계와 놀랍도록 흡사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특히 2단계에서 인간보다 더 효율적이고 많은 양의 뮤테이션(mutation) 옵션들을 창조해낸다는 점이다.

사용자는 AI 프로그램에게 프롬프트(prompt) 텍스트 혹은 프롬프트 이미지를 인풋으로 입력하고(1단계), AI는 사용자가 입력한 인풋을 바탕으로 엄청난 양의 재창조된 옵션들을 제공한다. (2단계) 사용자는 많은 옵션들 중에 자신이 생각한 방향 혹은 생각지 못한 의외의 흥미로운 옵션들을 선택하고, 부분적 수정을 AI에게 요청한다. (3단계)

이러한 이유 때문에, 생성형 AI 이미지 프록드램은 단순히 이미지를 양산하는 또 다른 그래픽 툴이 아닌, 잠재적으로 디자인(건축을 포함한) 산업의 구조를 재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리지널리티의 정의에 대한 재고찰
모든 창조적 행위는 다양한 영감과 레퍼런스 등의 인풋을 필요로 한다. 현재 힙합 음악의 샘플링, 혹은 팝아트의 적극적 레퍼런스 차용은 오리지널리티 자체보다는 기존의 예시들을 자신만의 개성으로 재창조를 해낼 수 있는가를 더욱 강조한다. (물론 원작자에 대한 로열티 문제 혹은 원작자의 크레디트 명시 등에 대한 윤리적 문제는 여전히 많은 개선점이 필요하다. 음악의 샘플링 문제 역시 원작자와의 합의를 원칙으로 하지만, 정확히 어디까지가 개인 고유의 창작물이고, 영향을 받았는지의 여부 역시 늘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기존의 이미지를 재창조한 앤디 워홀


이미지 생성형 AI는 앞에서 언급한 창조적 프로세스의 3단계(인풋, 뮤테이션, 셀렉션)에서 2단계에 엄청난 장점을 갖고 있다. 물론 2단계를 인간이 직접 뮤테이션 하지 않는 행위 차제를 비판할 수는 있으나, 여전히 좋은 인풋을 1단계에 AI에게 주입하고, AI가 만들어낸 수천 개의 뮤테이션 중에 최적의 옵션을 ‘선택’하는 안목은 디자이너 개인에게 달려있다.

즉 AI를 사용하더라도, 얼마나 좋은 인풋을 고를 수 있고, 얼마나 좋은 아웃컴을 선택할 수 있을지, 즉 감각적 디자인 취향의 수준과 대중성을 가진 안목은 여전히 디자이너의 능력으로 선택해야 하는 영역이다. 바꾸어 말하면, 흥미로운 인풋을 AI에게 제공할 수 있는 안목, AI가 만들어낸 수많은 옵션들을 선별하고 가려내는 안목이야말로 디자이너가 AI와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AI의 활용과 건축 디자인의 미래
이미지 생성형 AI 소프트웨어 중 하나인 midjourney는 대략 1분에 4가지 옵션의 섬네일(thumbnail)을 제공한다. 이를 단순히 산술적으로만 계산해도, 60분을 투자한다면 240가지의 옵션을 AI가 생성한다는 의미이다. 앞서 언급한 창조적 디자인 프로세스의 3단계 중, 가장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부분이 바로 2단계의 뮤테이션(mutation)이고, AI는 이 부분에서 인간을 생산 속도와 양에서 월등히 능가한다.
결국 이 능력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디자인 오피스는, 좋은 안목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인력 채용을 할 경제적 여력을 아직은 확보하지 못한 젊은 건축사사무소들이다. AI 프로그램은 역설적이게도, 이미 대규모 인력을 확보한 대규모 건축사사무소들보다는 중소규모의 아틀리에 사무소들에게 경쟁력 측면에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오래전 예시로 되어버린 2016년의 알파고의 등장과 이세돌 9단과의 대국 이후에, 프로 바둑 기사들의 연구 패턴이 AI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디자인 분야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AI에게 자신이 다양한 분야에서 리서치를 한 정보를 인풋으로 제공하고, AI가 만들어낸 수백, 수천 가지의 옵션을 서로 비교하면서 고민하고, 자신의 건축적 안목을 수련하는 젊은 건축사들이 많아진다면, 집단적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좋은 디자인을 산출하기 위한 동반자로서 AI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하는 건축사들이, 디자인 툴 자체에 많은 노동과 에너지가 잠식되어가고 있는 현시점의 건축에 작은 변화를 일으키기를 희망한다.

 

필자가 midjourney로 작업한 결과물들의 예시

 

 

 

 

글. 이대호 Lee, Daeho Adjaye Associates Project Architect, LMTLS 공동 설립자 및 대표

 

 

이대호  대표·LMTLS(Adjaye Associates Project Architect)

 

현재 Adjaye Associates의 Project Architect이자 LMTLS의 공동 설립자 및 대표 이대호는 건축 및 도시디자인의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OMA, BIG, 소후지모토(Sou Fujimoto), David Adjaye가 이끄는 Adjaye Associates 등의 디자인 오피스들을 거치며,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을 비롯한 전 세계에 걸쳐 다양한 스케일의 작품 활동에 참여했다. 

dh84010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