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30. 10:55ㆍ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Bohwagak, an important structure as the cornerstone of modern architecture in Korea”
간송미술문화재단, 보수공사 마치고 ‘보화각’ 재개관, 북단장·보화각 설계도면 최초 공개 보성중고교 신·증축, 농장 설계도면 등 간송 전형필-박길룡 선생 협업 도면 다수 발견 ‘전환기적 성격’ 드러나는 박길룡 선생의 건축 스타일 근대 건축 설계도면 발견된 드문 사례, 근·현대 건축 역사 연구의 발판 마련 간송미술문화재단이 1년 7개월간의 보수공사를 마치고 재개관 전시를 진행했다. ‘보화각 1938: 간송미술관 재개관전’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는 보화각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보화각의 설립과 초기 간송 컬렉션을 선보였다. 특히 북단장 개설과 보화각의 여러 청사진 등이 최초로 공개됐다. 이번 청사진 공개로 보화각의 설계자를 둘러싼 건축계의 갑론을박을 불식시키고, 연구 자료로서의 활용 가능성이 커졌다. 대한건축사신문은 이번 전시를 기획한 간송미술문화재단 전시교육팀의 김영욱 팀장과 보화각 설계자에 대한 최초의 의문을 제기한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김현섭 교수를 만났다.
■ 간송미술재단 전시교육팀 김영욱 팀장
“보수공사를 진행하면서 보화각 내부에 있던 유물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수장고로 이동됐습니다. 유물 정리를 하던 중 간송 전형필 선생의 유품만 모아 둔 상자에서 박길룡 선생의 설계도면을 다수 발견했습니다. 북단장과 보화각 설계도면을 간송 선생이 1936년부터 1938년까지 자필로 작성한 일기와 대조하며, 재개관 기획 전시의 주제를 정했습니다.”
북단장은 1934년 간송이 프랑스식 양관 건물과 인근 대지를 구입하면서 개설됐다. 토지 구매 이후 전반적인 석축 공사를 통해 권역의 정비를 진행했다. 이후 간송은 1938년 4월 당시 경성에서 왕성히 활동 중인 박길룡건축사무소에 보화각과 북단장 부속 가옥, 자동차고 등의 설계 감독 업무를 맡겼다. 박길룡 선생은 1919년 총독부 건축기수로 들어가 1932년 총독부 건축기사로 봉직하다 사직 후, 1932년 7월 박길룡건축사무소를 세웠다. 그의 작품으로는 경성제국대학 본부(1931), 화신백화점(1937), 혜화전문학교 본관(1943) 등이 있다.
“이번에 살펴보니 중복된 도면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아마도 박길룡 선생이 설계를 마치자마자 일괄적으로 간송 선생에게 보낸 것으로 보입니다. 박길룡 선생이 도면 위에 붉은색으로 수정 사항을 표기한 것도 모두 남아 있습니다. 설계 도면뿐 아니라 영수증 등 박길룡건축사무소의 모든 서류가 간송 측에 보관돼 있습니다. 그렇기에 간송 측에서는 보화각의 설계자를 박길룡 선생으로 인지하고 있었지만, 외부에는 다소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보화각에 초점을 맞춰 공개된 설계도면 외에도 간송 선생과 박길룡 선생의 협업을 보여주는 다수의 도면이 함께 발견됐다. 이는 보성중고등학교의 신축과 증축 설계도면, 간송 선생의 농장 관련 설계도면 등을 포함한다. 간송 선생과 박길룡 선생의 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설계도면 상에 남아 있는 건축 시공자 양성삼의 이름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양성삼은 1931년 창립된 건우사의 일원으로, 건우사는 조선인 건축 관계자와 토목건축업자들의 단결을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다. 양성삼은 건우사의 발기인이었고, 박길룡 선생은 발기인 대회에서 축사를 담당했다. 박길룡 선생의 건축 미학뿐만 아니라 그의 가치관 등이 둘의 협업을 가능하게 한 요소로 볼 수 있다.
“경성제대와 보성중고교의 설계도면을 비교해 보니 공간을 운영하는 방식이 굉장히 유사하더라고요. 건축적 스타일을 비교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보려고 합니다. 간송미술재단은 전시 이후 박길룡 선생의 건축적 특징을 연구하고 재조명하는 심포지엄을 기획할 예정입니다. 청사진의 색이 바래기 전에 영인본을 제작해 시지정문화재로 등록 절차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구에 개관할 간송미술관의 공간 아카이브가 진행된다면 박길룡 선생의 설계도면도 함께 아카이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소실된 북단장 내 건축물의 설계도면도 온전히 남아 있는 만큼 박길룡 선생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졌으면 합니다.”
■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김현섭 교수
“박길룡 선생의 대표작인 화신백화점의 경우 역사주의적인 양식에 바탕을 둔 반면, 보화각은 일부 전근대적인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매우 모던한 건축물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근대주의 건축의 시작점에 있는 중요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지요. 보화각은 역사주의적인 면모를 걷어내고 모던한 쪽으로 전이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번에 공개된 박길룡 선생의 보화각 설계도면에 대해 김현섭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1930년대 한국인 최초로 건축사무소를 열고 조선 건축계의 리더로서 굵직한 작품을 남긴 박길룡 선생의 건축 미학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박길룡 선생이 보화각의 설계자가 맞는가에 대한 의문은 ‘박길룡의 기능주의 건축론에 견준 보화각의 전환기적 성격’을 주제로 논고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작됐습니다. 여러 자료를 살펴보았지만 박길룡 선생이 보화각을 설계했다는 객관적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설계도면이 발견된 것은 굉장히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박길룡 선생의 작품을 입증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근대 건축의 설계도면이 발견된 드문 사례인 만큼 중요한 자료가 될 거라 봅니다.”
김현섭 교수는 박길룡 선생의 건축 스타일에 대해 ‘전환기적 성격’이 설계에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서양의 역사주의적 요소, 근대주의적 요소가 혼재된 시대 상황에서 전환기적 성격을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특수성으로 인해 서양의 건축역사와 똑같이 비교할 수 없지만, 여러모로 근대적 전환기의 모습이 건축 설계에 남아 있다고 본 것이다.
더불어 1930년대 발표한 박길룡 선생의 글을 토대로 그가 기능주의 건축론을 내재화해 나간 것으로 추측했다. 다만 이시하라 켄지, 구라타 치카타다의 글을 발췌·번역했기에, 일각의 시도처럼 그의 글에 표명된 기능주의 원칙을 개개의 건물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일제 강점기라는 상황에서 조선 건축계가 세계 건축을 수용하는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그의 글처럼 그의 인식과 실천이 따르기에는 시대적 한계가 컸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입장에 대해 김현섭 교수는 최근 출판한 논문 ‘1930년대 중반 박길룡의 기능주의 건축론과 경성건축 비평’을 추천했다.
“박길룡 선생의 보화각 설계도면 발견으로 한국의 20세기 건축 역사, 근·현대 건축 역사를 조금 더 단단하게 쓸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봅니다. 박길룡 선생 외에도 한국 아키텍트의 설계 자료 등이 조금 더 발굴되기를 바랍니다.”
인터뷰 참여
김영욱 팀장 간송미술문화재단 전시교육팀
김현섭 교수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글. 조아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