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5. 09:12ㆍ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Weißenhof-Siedlung
1907년 12명의 미술가와 산업종사자들이 모여 독일 공작 연맹(Deutscher Werkbund)을 건립했다. 미술가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하는 공동작업을 통해 독일에서 생산되 는 공산품의 질적 향상 및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효과를 기대했다. 독일 공작 연맹이 가지고 있는 모토가 있었는데, 이 모토를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문화적인 그 들의 목적을 세웠다.
“소파부터 도시까지..(vom Sofakissen bis Städtebau)”
20세기 초 독일에서는 대도시에서 주거 부족 문제가 심각해졌다. 사람의 삶을 윤택하게 해줄 수 있는 환경을 가진 주택은 지나치게 가격이 상승했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이런 악 순환이 지속되면서, 건축과 미술 또한 사회 분위기에 따라 공공성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정치적인 상황이 정상화되고, 경제 특히 건설경기가 되살아났다. 수 많은 도시 들에서 다양한 주거 건축이 진행됐으며, 전쟁을 통해 훼손된 주거를 재해석하는 움직임 또한 강하게 일어났다.
이후, 1925년 독일 공작 연맹(Deutscher Werkbund)에서는 다시 한번 주거 환경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제기한다. 표준이 될 수 있는 주거를 만들고, 이에 대한 토론을 자주하여 모두가 공유했다. 그 중심에 21개의 다양한 주거 프로토타입을 독일 남부도시 슈투트가 르트(Stuttgart)에서 진행한 바이센호프 지들룽 프로젝트(Weißenhofsiedlung)가 있다. 대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형태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 이 전시에 가장 큰 목표였다.
이 주거지역은 독일 공작 연맹의 주도로 이루어진 전시 ‘주거(Die Wohnung)’에 포함된 계 획중에 하나였다. 당시 메르세데스 벤츠(Daimler Mercedes-Benz)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이 전시는 슈투트가르트안에 다양한 지역을 대상으로 주거의 새로운 형태를 제안했다. 21주의 짧은 시간동안 63세대 21채의 건축물을 지어내는 계획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 주거의 형태가 단순히 양적인 증가가 아닌 질적인 면에서 새로운 주 거 형태를 제안할 수 있는 성숙한 성장을 기대했다.
독일 공작 연맹이 이 프로젝트와 관련된 슈투트가르트 시청의 건축 허가 승인을 받고 난 뒤, 건축사 미스 반 데 로에가 이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담당자로 지목됐다. 당시 미스 반 데 로에는 당시 시대의 흐름과 다른, 철골과 유리로 고층 건물을 설계하는 디자이너로 유 명했다. 전체 그림을 그리고 난 뒤, 1925년부터 독일 공작 연맹에서 다양한 건축사의 추천 을 받는다. ‘대도시 시민을 위한 주거’의 주제에 맞는 아이디어로 설계를 보여주는 기회를 가지기 시작한다. 이중 대표적인 작가가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였다. 그가 설계한 집은 현재 세계 문화 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하나의 정형화 된 집을 설계했으며 다양한삶의 기본이 될 수 있는 주거의 프로토타입을 제시했다. 기능을 중요시 하지만, 화려한 장 식을 최대한 자제하여 기본적인 형태를 만들고자 했다. 그의 설계 다섯가지 원칙 ‘필로티, 옥상 정원, 자유로운 평면, 파사드, 연속적인 수평창’이 가장 잘 보여지는 대표작이다. 이 원칙을 바탕으로 주거의 형태가 기능에 충실하고 담백한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실내에 서는 간소화된 요소가 더욱 잘 보인다. 가구 자체는 굉장히 절제되고 공간의 비율과 함께 어울려 과하지 않는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다. 미닫이 문과 이동식 가구는 이에 맞춰 시간 대별 공간을 다양하게 할 수 있으며, 당시 전통적인 사고 방식에서는 이러한 미학적 관점 이 급진적으로 평가받았다. 당시 대량 생산체제가 가장 큰 화두였던 만큼, 그의 생각은 한 세기를 지배할 정도로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과 그가 초반에는 사실 선택되지 않았다. 르 꼬르뷔지에가 스위스 출생 이었던 만큼, 정치적인 이유로 그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 다. 당시 혼란스러웠던 정세와 더불어 독일과 스위스와 관계는 좋지 않았다. 이에, 독일 공작 연맹은 선정된 건축사나 미술가를 독일인 위주로 결정해 한다는 주장을 했다. 정세 를 배경으로 독일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인 만큼 꾸준히 독일스러움이 프로젝트에서 묻 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미스 반 데 로에는 독일 공작 연맹의 주장과 달리 그가 가진 역량을 높게 샀을 뿐 아니라, 이 프로젝트가 독일을 넘어서 세계에서 주목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당시 르 꼬르뷔지에가 주장했던 다섯 가지 원칙이 프로젝 트의 흥행 요소 중에 하나였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원칙에 기하학적인 형태 구성, 새로운 재료 즉 콘크리트와 철재 사용은 새로운 화두거리를 만들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프로젝트 관련된 공사가 마무리되고 다음해인 1928년 한 장의 사진이 다시 사람들의 입 에 오르기 시작한다. 한 젊은 숙녀가 깔끔한 정장을 입고, 스포츠카 앞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당시 메르세데스 벤츠에서 출시한 8/38 PS-Roadster, 최고 속도는 시속 75킬로미터. 3년간의 연구 끝에 만들어진 자동차로 F1에서 메르세데스 벤츠가 기타 자동차 제조사보 다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준 차량이다. 이 차량은 르 꼬르뷔지에의 혁신적인 생각만 큼, 메르세데스 벤츠가 차량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시작점이었다. 당시 기록으로 전 세계 약 7,000대의 차량이 판매됐다는 점을 보면 그 수준을 미리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르 꼬 르뷔지에의 건축물 앞에서 작업된 이 사진은 벤츠의 본사가 있는 슈투트가르트의 발전을 보여주는 건축물과 차량이 동시에 담겨 있어 인상적이다.
글. 김성환 Kim, Sungwhan 현대자동차 크리에이티브디자인팀 디자이너
'아티클 | Article > 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디메이드, 반항인가, 순응인가?” 2019.2 (0) | 2022.12.14 |
---|---|
통제 불능의 선을 제거하라 2019.1 (0) | 2022.12.12 |
색을 짓다, 첫번째 이야기 2018.9 (0) | 2022.12.07 |
몰딩은 기능적으로 선택된 것인가? 2022.11 (0) | 2022.11.10 |
낯선 것들의 충돌을 완화해 주는 디자인 2022.10 (0) | 2022.1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