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 불능의 선을 제거하라 2019.1

2022. 12. 12. 10:20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Get rid of the uncontrollable line!

 

디자인의 예술적인 측면은 조화와 균형의 아름다움을 구축하는 데 있다. 조화와 균형의 아름다움은 선과 형태, 색채, 질감 등에 대한 철저한 ‘통제’ 아래에서 이루 어진다. 디자인의 완벽함은 인위적인 통제로부터 나온다. 반면에 예술은 지나친 통제가 오히려 창작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통제보다는 저절로 흥에 겨워 맡기는 것이 예술의 완벽에 이르는 길이다. 디자인과 예술의 그런 차이는 자율성의 차이 로부터 온다고 할 수 있다. 디자인은 디자이너 개인의 자율성으로부터 나오지 않 는다. 디자인은 그것을 의뢰하는 클라이언트와 그것을 수용할 사용자의 구속으 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끊임없는 수정과 개선 작업을 요구 받는 것이다. 이러한 제작 과정 때문에 디자인은 통제의 산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대 디자인은 모더니즘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모더니즘이야말로 철저한 통제의 산물이랄 수 있다. 원, 삼각형, 사각형 같은 기하학의 기본 도형으로 모든 제품의 외관을 강박적으로 맞추려고 한다. 자유로운 곡선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이른바 순수한 형태, 기본 도형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헨리 무어 조각 같은 무정형의 자유로운 형태가 디자인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이유다. 오늘날 디자인으로 가장 각광 받는 애플의 제품들을 보라. 군더더기 하나 없이 매끈한 형태는 철저한 통제 아래 조화와 균형의 아름다움에 도달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완고한 질서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1984년에 출시된 최초의 매킨토시는 본체와 모니터 가 일체형으로서 선 하나가 줄었다.

 

애플의 디자인 철학은 스티브 잡스와 그가 아낀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에 의해서 완 성되었다. 그들은 모던 디자인의 출발이라 고 할 수 있는 독일 바우하우스 의 디자인을 좋아했다. 바우하 우스가 최소한의 디자인을 추 구한 것처럼 잡스와 아이브도 최소한의 디자인을 만들고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아이 폰과 아이패드, 아이맥 등의 디자인이다. 뭔가 요소를 줄이고 단순하게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순수한 형태, 완벽한 질서에 편입된 디자인을 좋아하는 그들의 눈을 괴롭히는 것이 여전히 존재했다. 그것은 바로 선이다. 

 

대개 전원의 공급을 위해, 또 어떤 신호나 명령 따위의 전달을 위해 선이 사용된 다. 우리 주변에 수많은 선이 존재한다. 일단 책상 위를 보면 컴퓨터 주변에 선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등은 모두 선으 로 연결되어 있다. 그밖에 프린터, 스피커, 외장하드 같은 주변기기들이 더해지고, 랜선, 여기에 각종 유에스비 선들까지 추가돼 책상은 끊임없이 무질서가 증가하게 된다. 책상의 윗면이나 뒤, 또는 밑을 보면 선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주 보기 흉하다. 최근 생산되는 사무실용 책상은 이렇게 늘어나는 선들을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 장치를 만 드는 것이 디자인의 관건이 되고 있다.

 

애플의 데스크탑 아이맥은 블루투스 기술로 키보드와 마우스 의 선을 없앴다. 이로써 책상 위의 무질서를 줄일 수 있었다.

 

잡스와 아이브는 전혀 다른 접근법으로 무질서 의 주범인 선을 통제하려고 했다. 그것은 선 자 체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데스크탑 컴퓨터의 경우 본체와 모니터를 일체형으로 하면 일단 선 하나가 준다. 잡스가 기획하고 1984년에 출시된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는 처음부터 본체와 모니터가 하나로 되어 있었다. 그 뒤 잡스 가 애플에서 퇴출된 뒤 모니터와 본체나 나누 어진 제품들이 출시되 었다. 그러다가 그가 돌아온 1997년, 다시 모니터와 본체가 결합된 아이맥이 출시되었고, 일체형 컴퓨터 는 지금까지도 아이맥의 기본 구조가 되었다. 선을 없애는 또 하나의 방법은 블루 투스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연결하는 선을 없앴다. 이런 방 향은 아이폰으로도 이어져 아이폰 7 모델에서 이어폰 단자를 없애버렸다. 이어폰 역시 선없이 블루투스로 들으라고 강요한 것이다. 그 정도로 그들의 선에 대한 증 오는 남다르다. 

 

잡스나 아이브 같은 통제 강박의 사람이 아니더라도 선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사람들은 왜 선을 싫어할까? 선의 속성이 자유로움이기 때문이다. 선은 한 마디로 통제되지 않는, 다시 말해 질서로 편입되지 않는 아주 귀찮은 존재다. 결코 진압되지 않는 집 안의 저항세력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사물들은 내가 놓은 방식에 따라 고정된다. 예를 들어 책꽂이의 책은 내가 놓은 방식대로 배열된다. 책 상 위의 물건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선만큼은 자기멋대로다. 내 마음대로 배열 되지 않고 고정되어 있지도 않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처럼 선들은 내가 보지 못하 는 사이에 마구 움직이는 것 같다. 누구나 주머니 속 이어폰 선들이 얽혀서 그것을 푸느라 고생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선의 속성은 통제를 벗어나 있는 자유 로움이며 저항이다.

 

책상 위의 선이 늘어나자 이 선들을 깔끔하게 해주는 케이블 홀더 제품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 시스템은 이러한 자유로움을 언제나 좌시하지 않았다. 말 안 듣고 질서는 깨 뜨리는 자들을 구속하고 격리시키듯이 사물의 세계에서도 통제 불능의 선들은 제 거의 대상이다. 무선 기술의 꾸준한 발전은 결국 이런 저항세력을 통제하려는 동 기의 산물이다. 인공지능의 발전만큼이나 무선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전 력조차 무선으로 보급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선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 그것은 최 소의 디자인, 완벽한 질서의 아름다움을 완성하는 마지막 관문이다.

 

무선 이어폰. 무선 기기들은 보기가 좋아진 만큼 끊임없 는 배터리 충전이나 교체를 요구 받는 대가를 치른다.

 

하지만 그것은 대가를 요구한다. 블루투스 기술은 선이 없는 대신 에너지가 든다. 끊임없이 배터리를 교체해야 하는 것이다. 며칠 지나면 배터리를 교체하라고 신호 를 보내는데, 아주 귀찮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그것은 우리가 그 작동에 대해 전혀 접근할 수 없다는 점, 그래서 고장이 나거나 했을 때 완전히 속수무책의 상태가 된다는 점이다. 기계란 물리적인 요소들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작동한다. 눈으로 그 작동원리를 볼 수 있는 기계와 달리 무선의 기술은 전혀 그 원리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선 없이 작동을 하는 세계는 신기 하면서도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선 없는 세상은 최첨 단의 세계다. 기계가 첨단이 될수록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게 줄어든다. 결국 선의 통제 를 통해 좀 더 우아하고 질서 정연한 세상을 만드는 대신 우리는 점점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지는 것이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 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 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 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