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31. 09:35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Me’ yesterday meets ‘Me’ today
건축은 단순한 물리적 구조체의 집합으로서 그 시대 사람들의 삶, 문화, 경제, 사회적 관계성과 함께하고 그 영향성을 담아내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정한 용도에 따른 건축은 그 용도의 기능이나 목적을 위해 더욱더 다양한 공간구성과 이미지 형태, 건축적 구조 등 다양한 조건들을 수용하고 적용해 건축물을 설계하게 된다. 즉, 그 용도에 최적화된 건축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 건축물이 지닌 목적과 가치가 변화하면 건축물이 가지고 있었던 기존의 공간과 형태도 변화되어야 하는 현실적 요구를 받게 된다. 리모델링은 기존의 공간을 변화시켜 새로운 시대성을 반영해 담아내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법적, 구조적, 기능적 공간의 한계와 부딪히고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극복해 또 다른 건축물을 만들어 낸다.
어제의 나
내가 건축사 자격을 취득한 1990년대는 보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다양한 정책이 도입되면서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설립이 급증하는 시기였다. 2000년대 초기에는 맞벌이 가정의 증가와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강조되면서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 지원이 더욱 활성화됐다. 주거지역과 아파트 단지 안, 그리고 각 지역에 아동들을 돌보는 많은 어린이집과 유치원들이 자리를 잡고 활성화되어 이와 관련한 많은 설계를 할 수 있었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처지에서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일을 했으며, 그 즐거움도 남달랐다. 대다수의 설립자들이 아이들을 키우는 여성분들이어서 서로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았고, 더 차별되는 공간을 위해 함께 고민했던 기억도 있다. 아이들에게 친화적이고 편안한 공간과 그들의 감정과 행동에 맞는 감성적 공간구성, 독특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외관 이미지 등에 관한 세심한 관심과 배려를 많이 주고받았는데, 특정 장소에 대한 기억과 경험이 그 건축물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이며 차별화로 인한 사업적 요소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많은 집중을 했었다. 이런 과정은 다른 건축에 비해 다소 많은 시간이 소요됐지만 나름 행복한 프로젝트였다. 투시도를 가지고 아내와 아이들과 이야기하며 재밌어했던 기억도 있다. 물론 사업성에만 몰두하는 원장님과의 갈등으로 힘들어하고 재미없었던 기억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재미있는 프로젝트였다. 이 시대의 나의 역할은 단순히 수주받은 일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나름 시대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사회적 역할에 이바지하는 건축사의 사회성이기도 했다.
오늘의 나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고 업무를 시작한 지 벌써 32년의 세월이 흘렀다. 건축사사무소에 입사한 것으로 따지면 39년째이다. 재직년수에 비해 짧은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변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제법 긴 세월이 지났다. 다소 빠른 건축환경의 시대적 변화에 적응해야 했고, 다양한 용도의 등장으로 더 많은 관심과 집중을 요구받아야 했으며, 경제적으로는 경기변동에 따른 대처 등으로 힘들어하며 고민하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지금도 동일하게 부딪히고 있는 현실 앞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긴장하고 있지만, 내가 지닌 시간의 나이테는 부정할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변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적극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것은 건축사의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나의 일상적 책임이기도 하다. 2018년 어느 날 내가 설계했던 어린이집 원장님, 벌써 내년이면 일흔을 바라보는 분께서 어린이집을 노인복지시설인 주간보호재활센터로 변경해 달라고 찾아왔다. 벌써 20년도 넘은 시간을 뛰어넘어 나를 기억하고 오셨다. 둘 다 젊은 시절에 만나서 어린이집에 대해 고민했는데, 이제는 둘 다 더 나이 들어 만나 노인관련시설을 고민했다. 그 나이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 하는 모습에 놀라울 뿐이었다. 고령화 시대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대의 변화이다. 우리나라는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 고령화 사회의 진입으로 노인인구가 증가했고, 이에 따른 노인복지시설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이 부분에 정부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많은 지원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체계로 발전하고 있는 이 시대에 나의 사회적 참여도 변화됐다.
어제의 나를 오늘의 내가 만나다
시대도 변화하고, 나도 변화되고, 내가 설계한 건물도 변화되어야 한다.
어제의 나는 어린이가 넘쳐나던 시절에 어린이 관련 설계를 많이 했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프로젝트, 그 시절 건축주들은 나와 같은 동년배였다. 현재 내 나이 60대, 일전 그 당시 만났던 원장님들을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만났다. 아이가 없는 집…… 이로 인해 내가 설계한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새롭게 변화되어야 했다. 그분들이 선택한 변화는 이 시대의 새로운 관심사인 노인복지시설로의 변화이며, 이를 위해 우리는 다시 만났다. 참으로 오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노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리모델링해야 한다. 다행히 이 프로젝트는 변화된 우리들의 삶의 패턴과 마인드로 함께 고민하면 된다. 장차 언젠가 우리가 사용할지도 모르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는 노인들의 사회성 회복을 위하는 마음으로 고민하고 노인들의 남은 짧은 시간을 위하여 고민한다. 물론 사업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어쩌면 이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어린이 시설의 위치는 이런 시설에도 가장 적합한 위치이다. 프로그램도 비슷하다. 모든 것이 나이를 제외하면 많이 유사하다. 종사자들의 마음도 아이들보다 더 많은 공감대를 가지고 케어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오히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공간의 변화는 내부의 전체를 해체해야 하는 구조적 어려움과 새로운 시설의 설치에 따른 많은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시설의 기준이 어린이를 위한 것이었기에, 고령자들을 위한 시설로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 모든 것을 해체해야 한다. 특히 요양원으로의 변경은 더 많은 어려움이 있다. 물론 큰 비용이 요구되기도 한다. 하지만 건축주는 그 나이에도 이러한 변화에 과감하게 도전한다. 그 이후에 이런 유사 프로젝트를 지금까지 참 많이 해오고 있다. 고령화 시대의 새로운 프로젝트이다. 건축주와의 협의 과정에서 공감이 안 되는 부분의 갈등도 있고, 노인들의 자립적이고 품위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더 나은 공간구성을 요청하지만 많은 인원 수용이 사업성과 연관이 있어 쉽지는 않다. 어제의 나도 이런 갈등 속에서 고민했다. 어제의 나를 오늘 내가 만나는 이 순간, 이 시대에 내가 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사회적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금 고령화 시대의 설계 영역에서 이런 종류의 리모델링은 기존의 많은 건축물에 더욱 그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기존의 종교시설과 각종 다중시설 등에서 노인층을 배려한 시설로의 용도와 시설의 변경 등을 필요로 하고, 이에 따른 다양한 리모델링이 증가하고 있다. 이 또한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참여하는 우리의 역할이며, 고령화 시대를 살아가는 그분들에게 더 나은 삶을 부여하는 우리의 사회적 역할이다.
오늘도, 어제의 나를 내일의 내가 만난다…….
글·사진. 정원규 Jeong, Wonkyu 창대건축사사무소
정원규 건축사·창대건축사사무소
동아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부터 현재까지 창대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해오고 있다. 시민의 삶의 공간인 주거와 일터에 관한 관심, 그리고 작은 것으로부터의 큰 만족감을 지향하는 공간작업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집중하고 있다. 2021년 대한건축사협회 사진동호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전국의 소멸 중인 21개 마을을 답사해 ‘사라지는 마을’을 테마로 그곳의 시작과 끝 이야기를 담은 사진여행 코너를 월간 <건축사>에 2년간 연재했다.
c1727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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