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르칸트의 건축유산 ③ 사마르칸트의 주요 이슬람 교육공간 – 마드라사 2024.11

2024. 11. 30. 09:45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Architectural Heritage in Samarkand ③ Madrasahs in Samarkand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이슬람 건축에서 예배 공간 (모스크), 교육 및 수행공간 (마드라사), 사후 공간(마우솔레움/영묘)을 각각 독립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예배 공간과 교육 공간이 함께 있거나, 교육 공간이 사후 공간이 결합되어 있거나, 혹은 이 모든 들이 하나의 앙상블로 조화롭게 존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레기스탄 광장의 세 개의 마드라사를 중심으로 다룬다. 연재가 끝나기 전 한국의 유교 교육공간이나 불교 교육공간과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1. 레기스탄 광장 (Regi-stan Square)

 

레기스탄 야경

사마르칸트에는 레기스탄이란 광장이 있는데, 이는 페르시아어로 ‘모래 땅(sandy place, desert)’을 뜻하며 모래로 뒤덮인 사막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광장은 공공 광장으로 왕의 알현식, 공공 집회, 공개 처형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1세기와 12세기에 사마르칸트는 이 지역의 주요 도시 중 하나가 되었고, 레기스탄 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공공 광장’으로 불리며 고대 도시의 주요 예술 작품이자 심장부로 남아 있다. 티무르 제국기 (1370~1507)에 처음으로 마드라사가 건립되었다. 그 후 여러 시기에 걸쳐 페르시아 건축양식의 이슬람 교육기관이 추가로 세워져, 현재 세 개의 마드라사가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이곳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관광지로서 활발히 역할하고 있다.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마드라사들이 있다. 

 

레기스탄의 마드라사 배치도 © Asian historical Architecture


①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 (Ulugh Beg Madrasa, 1417–1421) 
② 시어 도어 마드라사 (The Sher-Dor Madrasa, 1619–1636) 
③ 틸라 코리 마드라사 (Tilya Kori Madrasa, 1646-1660) 


마드라사 (Madrasah)는 아랍어로 교육기관이라는 의미다. 이 광장은 공공 광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구조로 세 마드라사가 배치되어 있다. 

숙소에서 가까웠고, 다행히 저녁에 늦게까지 개방돼 주로 업무가 끝난 후 방문했다. 그래서 낮에 찍은 사진은 거의 없고 대부분 밤풍경이 많다. 각 건물을 조금씩 자주 드나들며 관찰할 수 있었다.

 

초기 광장(‘카나카’와 ‘카라반 세라이’) / 세 개의 마드라사로 에워싸인 광장




2. 마드라사 (Madrasah)

 

마드라사 모형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 내 전시실)

마드라사는 원래는 초등 교육부터 고등 교육까지 모든 유형의 교육 기관을 지칭하는 아랍어 단어로, 그것이 세속적이든 종교적이든 모든 교육을 포함한다. 아랍 세계 밖에서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이슬람 종교를 연구하는 특정 유형의 종교 학교 또는 단과대학을 의미하며, 이는 기독교의 신학교와 대체로 유사하다. 건축 및 역사적 맥락에서 이 용어는 주로 이슬람 법(샤리아, sharia)과 법학(피크흐, fiqh)을 가리키며, 가끔 다른 과목도 가르치는 특정 유형의 교육기관을 의미한다.

이러한 마드라사의 기원은 11세기 셀주크 왕조(Seljuks)의 재상 니잠 알-물크(Nizam al-Mulk)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는 이란, 메소포타미아, 호라산에서 최초의 공식 마드라사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셀주크 왕조는 11세기 초 페르시아에서 최초의 마드라사를 세웠는데, 중앙에 돔형 홀과 두 개의 측면 이완(직사각형 홀)이 있는 작은 건물이었다. 이후 이완이 있는 안뜰과 갤러리로 둘러싸인 구조로 발전했다. 마드라사는 교육 공간과 학생들을 위한 숙박 시설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중세 이후 무슬림 도시에서는 이슬람 교육을 위한 특정 기관들이 등장했다. 이러한 교육기관의 형성에서 중요한 전환점은 모스크 옆에 후즈라(기숙사)와 마드라사(학습 공간)가 지어진 마지드-칸 단지였다. 마드라사 건축은 쿠라사니 전통 건축에서 영감을 받아 무슬림 세계 동부지역에서 발전했다. 1722년 이스파한이 사파비드 왕조의 수도로 지정되면서, 이 도시는 다르 알-일름(지식의 집)으로 불리며 이슬람 세계에서 교육 기관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스파한은 이슬람 교육 공간의 혁신과 디자인으로 인정받았으며, 이곳의 아키텍트들은 페르시아 스타일의 모스크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내부 정원 구조를 마드라사 건물에도 적용했다. 이 모델은 이후 대부분의 무슬림 세계로 퍼져 마드라사 건물의 고전적 디자인이 되었다. 

마드라사 디자인은 이슬람 규칙과 원칙에 의해 알려졌으며 무슬림 사회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가치를 반영한다. 다양한 이슬람 사회의 건축 양식이 서로 다르더라도, 이슬람 교육 공간에서 공통적인 공간적 특성을 형성하게 되었다.



2-1.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
        (Ulugh Beg Madrasa, Samarkand, 1417–1421)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
울르그 베그 마드라사 배치도 재작성 _ 조인숙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는 레기스탄 광장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교육기관으로, 티무르 황제의 손자이자 4대 술탄이며 천문학자로 알려진 울르그 베그가 세운 세 개의마드라사 중 하나로 유명하다.

울루그 베그(Ulugh Beg, 1394~1449. re 1447~1449)는 학문, 특히 천문학에 큰 관심을 자진 통치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망원경 없이도 매우 정확한 별자리 지도를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학문 후원의 강력한 인물로도 평가된다. 프랑스 역사학자 피에르 슈뱅(Pierre Chuvin, 1943~2016)은 울루그 베그에 대해 “이 마드라사를 본격적인 대학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일 수 있으며, 그를 합리주의의 옹호자로 칭송하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다”라고 언급했다. 울루그 베그는 매우 독실한 인물이었으며, 학문을 알라의 창조물에 대한 경외심의 표현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 내부(현재는 역사전시관으로 사용 중)

울루그 베그의 세계관과 학문적 관심은 마드라사의 디자인에도 분명히 반영되었다. 예를 들어 마드라사의 장식은 이슬람의 생명체 표현 금지 원칙을 엄격히 따르며, 대부분의 장식은 캘리그래피와 기하학적 모티브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울루그 베그는 정면에 ‘별자리’ 모양의 장식적 요소를 사용해 천문학에 대한 그의 관심을 표현했으며, 이는 통치자의 천문학적 성향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이 건물은 울루그 베그가 특별히 천문대 역할을 하도록 설계한 건물을 짓기 전까지 잠시 천문대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사망 직후인 1449년 광신도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배치 및 디자인 (Layout and Design)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는 56 x 81미터 크기의 방형 건물로, 30 x 40미터 규모의 내부 안뜰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면은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별 모양의 디자인으로 호화롭게 장식된 기념비적인 2층 이완(Iwan, 거대한 아치형 출입구)이 있다. 이완은 마욜리카 타일(majolica tiles)과 무카르나 볼트(muqarnas vaulting)로 덮인 작은 내부 알코브로 이어지며, 중앙에 있는 작은 스크린 창문을 통해 안뜰을 엿볼 수 있다. 이완의 높이는 15미터이며, 그 위를 둘러싼 란셋 아치 피슈타크(lancet-arch pishtaq, 이완을 둘러싸고 있는 직육면체 형의 구조물) 구조가 있다. 건물의 각 모서리에는 높은 미나레트(미나렛)가 서 있다. 이완 입구의 아치 위에는 기하학적으로 양식화된 모자이크 패널이 장식되어 있다.

 

마드라사의 안뜰 중앙에는 네 개의 이완이 있고, 그 주변에는 2층 높이의 학생 기숙사, 후즈라(hujras: room or cell)가 있다. 원래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는 모서리에 4개의 돔형 강의실, 다르스코나(darskhans: domed lecture hall)가 있는 2층 건물로 설계되었으며, 이 디자인은 이후 중앙 아시아 많은 마드라사에서 열광적으로 채택되었다. 독특한 요소 중 하나는 마드라사 뒤쪽에 위치한 넓은 모스크로, 교수진과 학생을 위한 예배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전시실로 활용되고 있다. 이후 많은 마드라사에서 모서리 교실을 모스크로 전환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 되었다. 

 

 

2-2. 시어 도어 마드라사 (The Sher-Dor Madrasah, 1619–1636)

시어 도어 마드라사

시어 도어 마드라사는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와 마주보고 있으며, 17세기 사마르칸트의 총독(거버너)이었던 야한그도슈 바하도르(Yalangtoʻsh Bahodir, 1578-1656, 재위 1626-1656)의 지시로 건설됐다. 이 마드라사의 가장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이완(Iwan) 상부에 있는 모자이크로, 의인화한 두 개의 태양과 사자의 갈기를 지닌 두 마리의 호랑이가 사슴을 쫓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시어 도어(Sher-Dor)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이는 ‘호랑이가 있다’는 뜻이다. 등에 떠오르는 태양이 있는 호랑이 모자이크는 살아있는 존재를 표현하는데, 페르시아 모티프를 사용한 점에서 흥미롭다.

 

시어 도어 마드라사 배치도 재작성 _ 조인숙

시어 도어 마드라사의 부지는 원래 수피 롯지(Sufi Lodge, 수피 형제단이나 타리카 모임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건물로, 영적 수행과 종교 교육을 위한 장소)와 호스텔로 사용되었던 울루그 베그 칸카(the khanqah of Ulugh Beg)였다. 야한그도슈 바하도르는 이 칸카를 철거하고 현재의 마드라사를 세웠으며, 당시 건설된 지 200년이 넘은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의 배치와 외관을 그대로 차용했다. 

울루그 베그의 디자인과의 차이점 중 하나는 마드라사의 정면 장식이다. 울루그 베그는 별과 같은 기하학적 형태로 만족했으나, 야한그도슈 바하도르는 사슴을 쫓는 두 마리의 호랑이를 묘사한 인상적인 구성을 선호했다. 이뿐만 아니라, 시어도어 마드라사의 서쪽 정면 모서리에는 두 개의 플루트 돔이 위치해 있다. 이러한 돔은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에도 원래 돔이 있었지만 나중에 제거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데, 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다.



2-3. 틸라 카리 마드라사 (Tilla-Kari Madrasas, 1646-1660)

정면의 길이가 120m인 틸라 카리 마드라사

틸라 카리 마드라사는 레기스탄의 마드라사 중 가장 마지막에 완공된 건물로, 1619~1636년 사이에 건설된 시어 도어 마드라사가 완공된 지 10년 후, 1646년에 짓기 시작해 1660년에 완공되었다. 이 건물은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1417~1420) 보다는 약 240년 늦게 완공되었으며, 건축적 특징과 기능에서 독특한 점을 보여준다.
특이하게도 틸라 카리 마드라사는 이슬람 예배공간인 회중 모스크와 교육 및 수행공간인 마드라사가 결합된 형태로, 이슬람 건축에서 중요한 혼합된 건축 유형을 보여준다.

 

틸라 카리 마드라사 배치도 재작성 _ 조인숙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나 시어 도어 마드라사와는 달리, 틸라 카리 마드라사에는 모서리 강의실 다르샨(darskhans: domed lecture hall)이 없고, 대신 건물의 서쪽에 대형 예배공간인 회중 모스크가 자리 잡고 있어 예배를 위한 충분한 실내 공간이 확보되었다. 회중 모스크는 대형 기도 공간으로 사용되었으며, 교육과 예배의 복합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건설 이전인 1646년 전에는 이 자리에 카라반사라이(caravanserai)가 있었다. 프랑스 역사학자 피에르 슈뱅(Pierre Chuvin, 1943~2016)은 17세기 말까지 사마르칸트의 상업이 쇠퇴하면서 오히려 이 회중 모스크의 필요성이 커졌다고 언급했다. 틸라 카리 마드라사는 이 필요를 충족시키며 상업의 중심지였던 레기스탄 광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건물의 외관은 120미터에 이르는 광대한 정면을 자랑하며, 페르시아 건축의 가장 훌륭한 예로 평가받는다. 틸라 카리라는 이름은 ‘황금을 입힌’이라는 뜻으로, 기도당의 쿤달(Kundal) 스타일로 장식된 금박부조에서 유래했다. 이러한 금박 장식은 마드라사의 기도 공간을 화려하게 꾸미며, 내부 공간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틸라-카리. 타일


야한그도슈 바하도르(Yalangtoʻsh Bahodir)가 후원한 이 건물은 울루그 베그 마드라사 및 셰르 도르 마드라사와 함께 레기스탄 광장의 중심을 이루는 중요한 건축물로 자리 잡았다. 야한그도슈 바하도르는 기념비가 완성되기 전에 사망했으며, 소련 시대 복원가들이 기도당의 외부 돔을 완성시키기 전까지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었다.

안뜰과 교육 공간도 흥미롭다. 날씨가 좋으면 건물의 거대한 안뜰이나 세 개의 이완(중앙 홀)의 그늘에서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마드라사의 학생들은 안뜰을 둘러싼 기숙사 후즈라(hujra)에서 생활했지만, 레기스탄의 다른 마드라사와 달리 후즈라는 한 층으로 구성되었다.

이 공간은 전통 공예품의 전시 및 판매도 겸하고 있는데, 대대로 내려오는 한 가문이 조각타일 보수에 종사한다고 한다. 참고로 이 지역의 특징인 타일 보수를 사진으로 소개한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하나하나를 붙여서 작업한다.

 


<다음 호에 계속>
다음 호에는 사마르칸트의 ‘이슬람 불멸의 사후공간-마우솔레움(영묘)’
① 샤히진다 영묘 군(Shakh-i-Zinda Necropolis 11th-15th Century)
② 비비하눔 영묘(The Bibi Khanym mausoleum 14th Century)
③ 구르 아미르 영묘 단지(Guri Amir - a mausoleum of the Turco-Mongol conqueror Timur (also known as Tamerlane) 15C)를 중심으로 다룬다. 

 

 

 

 

 

글․사진. 조인숙 Cho, In-Souk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조인숙  PhD,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1986~현재)

 

APEC등록건축사(KR-263). ICOMOS 국제목조학술위원회 공동회장(2023~2026). ICOMOS 건축유산구조분석 복원에 관한 국제학술위원회(ISCARSAH) 부회장(2014~2023). 건축유산·문화정체성 UIA 워크프로그램 국제공동디렉터(2014~2021). 국가유산청 문화재수리기술위원회 위원(2021~2024). 건축역사, 건축설계, 설계스튜디오, 한옥 및 전통문화 강사역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로시압 박물관 리모델링 총감독 위촉 전문가(2023).

choinsouk@naver.com